MBTI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 같다. 그 수많은 인간의 성격 유형을 고작 16가지로 범주화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것 같으면서도 또 그런 재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해보고는 ‘맞아, 맞아’를 연발한다는 이 성격유형 검사. 만일 이 테스트가 내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 활성화되었더라면 어땠을까? 나는 알라딘에서는 흔하지만 저 평범한(?) 세계에서는 흔하지 않다는 INTJ 유형인데, 뭔가 이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해봐도 번번이 이것이 나온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이 성격 유형에 어울리는 직업과 어울리지 않는 직업군을 살펴보다가 무릎을 탁 쳤다. 어울리는 직업으로 도서편집자와 사서, 작가가 있었는데, 그건 둘째치더라도 어울리지 않는 직업으로는 광고대행(집행)업이 있는 게 아닌가! 아아, 그랬구나. 내가 그래서 광고 일로 밥벌어 먹고 살 때 그토록 괴로웠던 거로구나! 누군가가 내게 이십대로 돌아가 다시 직업을 선택할 기회를 준다면, 나는 나 자신을 제대로 직시해서,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을 절대 선택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당연히 지금의 직업을 선택하고는, 책을 마주하며 조용히 은둔하는 듯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책을 만들고 그 책을 팔아 번 돈으로 책을 사 읽는 그런 삶을 아주 만족스럽게 여기며 살아갈 것 같다.


돌이켜보면 나의 이런 성향은 <평범한 인생>의 화자처럼 모든 것이 어린 시절의 그 무엇과 연관되어 있다. <평범한 인생>의 ‘나’는 철도 공무원으로 단조롭고도 지극히 평범한 인생을 살다 일흔을 앞둔 나이에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는 공부도 곧잘 해서 부모의 기대 속에 대학에 진학하고, 아버지의 바람대로 성공한 남자로 살아갈 수도 있었으나, 스물두 살 나이에 철도청에 들어가 공무원으로서 아주 평범하고 조용한 인생을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삶, 모험도 투쟁도 없고 예외적이거나 비극적인 면도 없는 이 아주 평범한 삶이 사실은 유년 시절과 모두 연관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그는 어린 시절 소목장이였던 아버지의 작업장 옆에서 대팻밥을 가지고 놀기를 즐겼는데, 목재 더미 위 높은 곳에 앉아 주위를 바라보거나 울타리와 목재더미 사이에 비밀 장소를 만들고 어른들의 세계를 탐험하기를 특히 좋아했다. 다른 아이들과 뛰어놀기보다는 그렇게 혼자 ‘울타리를 치고’ 조용히 사물과 세계를 지켜보기를 좋아한 아이였던 것이다.

나 또한 어린 시절 <평범한 인생>의 화자처럼 여느 아이들과 어울려 놀기보다는 혼자 ‘울타리’, 그것도 책으로 만든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서 책을 읽으며 놀기를 좋아했다. 그 시간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여겼다. 지금도 그런 습성은 변치 않아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집에서 책에 둘러싸여 책을 읽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그리고 그런 내 곁에는 따뜻하고 몽실몽실한, 마치 따뜻한 오뎅 국물이 담긴 오뎅봉지 같은 내 고양이 한 마리가 살포시 엉덩이를 붙이고 있어서 내가 책을 읽다가 그 엉덩이를 토닥이거나 그 보드라운 털을 조금 쓰다듬어주면 그릉그릉 소리가 화답으로 돌아오는 그런 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그런 내가 나 자신을 알지 못해 여러 사람과 수많은 소통이 있어야만 가능한 직업인 광고계, 그것도 어쩐지 내겐 가식으로만 느껴지는 그 거짓말의 세계에서 밥을 벌어먹고 살겠다고 안간힘을 쓰고 살았다니, 참 나도 나 자신을 몰랐구나 싶어진다. 그러다가도 너무 늦지 않게 내가 좋아하는 일, 책으로 울타리가 쳐진, 그리고 사람과 씨름하기보다는 책과 글자와 언어와 씨름하는 일이 더 많은 그런 일을 하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내내 이렇게 살다가 <평범한 인생>의 화자처럼 어느 즈음 돌아보면, 결국에는 아주 평범했지만 나름대로 행복했다고 평가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닐까.

<평범한 인생>은 이미 세상을 떠난 화자의 이야기를 그를 치료하던 의사와 그를 알고 지내던 어느 노인이 그의 자서전을 읽는 액자식 구조로 이루어진다. 화자인 ‘나’는 앞서 언급했듯이, 평생 철도 공무원으로 모범적으로 살다 일흔이 채 안 되어 세상을 떠난다. 소목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착하고 조용한 아들로, 열심히 공부하고 대학에도 진학하지만 어느 한 주정뱅이 시인과의 만남을 계기로 삶의 궤도를 바꿔 철도 공무원의 삶을 선택한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도 하고 직업적으로 소소한 승진도 하면서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아주 평범한 인생을 살다가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토록 평범하기 짝이 없는 그가 ‘자서전’이라는, 뭐랄까, 위대하거나 대단한 일을 이룩한 사람만이 남기는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바로 ‘정상적이고 평범한 삶은 영광스러울 수 없는 것인가?’라는 질문 때문이다.

<평범한 인생>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부분을 읽노라면 너무나 평범해서 어떤 이는 ‘아, 그것 참 시시하다’ 투덜댈 만큼 그의 삶에서 ‘비일상적이고 극적인 일’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화자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길이 ‘올바르고 편안했다는 것’에 거의 자랑스러운 기분까지 느낀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평범하고 시시한 삶인가!’(19쪽) 찬양까지 한다. 그런데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았을 때 말할 수 없이 화려하고 스펙터클하며 극적인 삶을 살아간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누구나 알 만한 유명인이 아니고서야 다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그럼에도 다들 ‘인생이란 별난 모험이 아닌 일상적 법칙의 흐름’이라는 것을, ‘덜컥거림이나 비통함이 없고 산산이 부서지지 않았다고 해서 부족한 삶’이 아니라는 것을, ‘많은 일을 했고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책임을 완수’한 삶의 가치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알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물론 한편으로는 에이,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이 다 그렇게 만족스럽기만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 또한 돌아보면 왜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그랬더라면, 이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들이 밀려오기도 한다. 평범한 삶에 안분지족하는 마음도 있지만, 그런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욕심과 번뇌에 시달리는 나 자신도 틀림없이 존재한다. <평범한 인생>의 화자 또한 그렇다. 그래서 이 작품은 후반부부터는 ‘억척스러운’ 또 다른 자아가 나타나 평범하기에 소박하고 안온했던 삶에 만족했던 화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우울증을 앓고 있는 노년의 자아까지 합세해 그 자신의 인생을 또다시 완전히 새로운 관점으로 평가한다. 그런 자아들이 나타날 때마다 이 평범한 남자의 삶은 평범하면서도 전혀 평범하지 않은, 세 개 또는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이 세 개의 자아는 화자의 아내도 알고 있는 그의 모습으로 외부에 드러난 자아, 즉 사회적 페르소나라 할 수 있다. 나에게도 이 가면은 여럿 있어서 회사에서, 사회적 인간관계를 맺을 때, 알라딘에서 놀 때, 친구들을 만날 때, 애인을 대할 때, 가족과 있을 때, 나 혼자 있을 때 등등 아주 크게 차이는 없을지언정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사회적 자아 말고도 나 혼자만 아는 자아가 또 여럿일 수 있다. 이 작품의 화자 또한 그러해서 아내조차 모르던 또 다른 자아 여럿이 등장해 그에게 질문한다. 정말로 너는 그 삶에 만족했느냐고. 그리고 그 여러 개의 자아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삶, 그것들 중 어느 것이 진정한 삶이냐고 묻는다. 실제로 그에게는 가지 않은 수많은 ‘가상의 인생’이 있다.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 때 가장 행복했을까? 인생은 하나뿐이지만, 저마다 다른 자아에 따라 독자적인 인생이 있었다면 ‘훨씬 단순하고 각자의 삶은 완전하며 앞뒤가 들어맞고 그 나름대로 법칙과 의미‘(159쪽)를 가졌을까?


차페크는 철학 3부작에 속하는 <호르두발>에서 한 인간의 죽음에 관해서 주관적, 객관적인 관점으로는 사건을 밝힐 수도 없으며, 죽은 이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그 진실은 알아낼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별똥별>을 통해서는 한 사람의 정체성은 다양한 관찰자의 시선에 따라서 여러 개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제 이 <평범한 인생>을 통해 개인 저마다 주관적인 사고로 자기 정체성에 대해서도 갈등을 보일 수 있음을, 그 자아에 따라서 생의 진실은 또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한 사람의 인생은 하나의 큰 흐름이 분명히 존재한다. ‘사람의 인생은 결국 어떤 연관성’(181쪽)이 있으며 ‘단순한 우연에 기인하는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고 모두가 필연의 사슬로 연결’(83쪽)되어 있는 것이다. 사실 그가 그토록 평범하고 조용한 삶에 만족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어린 시절 자기만의 ‘울타리’ 안에서 지낼 때 행복감을 느끼는 아이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고, 노년에 우울증 환자가 되어서도 그 우울증을 겪는 자아가 평범한 시절의 자아를 억척스러운 자아보다 편안히 느끼는 것도 다 그 유년 시절의 기억과 연관되어 있다. 만일 그가 밖으로 뛰어나가 다른 아이들을 이기고 승리를 쟁취하는 놀이에 더 큰 관심을 갖고 행복감을 느꼈던 아이였다면 사람이 드문 기차역의 철도 공무원으로서 조용히 살아가기보다는 좀 더 모험적인 일에 인생을 걸지 않았을까. 그래도 한편으로는 그 억척스러운 자아가 있었기에 그는 그의 불만에 찬 비난을 들으면서도 생활을 더욱 윤택하게 하는 데 힘을 기울일 수 있었고, 전체적으로 삶의 조화를 찾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개의 자아는 화자인 ‘그’의 분신이면서도 평범한 인간 누구나가 갖고 있을 또 다른 자아이기도 하다. 어떤 자아가 더 강한지에 따라 인간의 삶은 저마다 달라질 테고, 결국 그 강한 자아가 그 사람의 개성을 만들겠지만, 그 자아에 따라 책임을 다한 모든 삶은 제 아무리 평범하더라도 가치가 있다고 <평범한 인생>은 조용히 전한다.


*이 책은 죽음을 앞두고 다시 한 번 읽는다면 남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 같아 페이퍼 제목을 ‘죽고 싶지만 차페크는 읽고 싶어’로 정했지 사실 나는 아직 죽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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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1-23 01: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니 변자냥님 책은 내줄 수 있다고 했던게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니 ㅋㅋㅋㅋㅋ 책만드는 사람이었어...🫢

공쟝쟝 2023-01-23 09:06   좋아요 1 | URL
은오님 스토킹 덕분에 제가 술취해서 쓴 댓글을 오글거려하는 명절 연휴 아침… 아… 과거의 나여… 왜저러니 ㅋㅋㅋ

잠자냥 2023-01-23 09:27   좋아요 1 | URL
쟝쟝 다시 보니 진짜 무슨 소주 댓병 마신 오글 댓글 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01-23 09:32   좋아요 1 | URL
어휴 ㅋㅋㅋ ㅋㅋㅋㅋ 주정뱅이 쟝쟝ㅋㅋㅋ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01-23 09:33   좋아요 2 | URL
술 먹고 뭐쓰면 안되겠네요 ㅋㅋㅋ 암튼 제가 잠자냥을 많이 좋아했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 🙄🙄🙄

잠자냥 2023-01-23 11:18   좋아요 2 | URL
많이 좋아하다가 이제는 변자냥을 사랑하는 단계… 다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지. 여수밤바다~~~

공쟝쟝 2023-01-23 11:26   좋아요 3 | URL
그러나 이제와 느끼는 나의 내적 친밀감은.. 자냥과 같은 i 여서가 아니라 ㅋㅋㅋ 그가 건너뛰고(!) 읽어도 문맥을 잘 파악하는 문맥파악 왕이었기 때문이므로 알려져…
🙄

건수하 2023-09-07 17: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에야 잠자냥님이 100자평과 제목을 어떻게 그렇게 찰지게 쓰는지 알아버렸다!
리뷰는 책 안 읽어서 그런가 왜 이렇게 어렵죠?

요즘엔 평범하게 조용히 만족하며 사는 것도 힘든 것 같아요. 평범하게 살면 갑들이 괴롭히고 안평범하게 살려면 열심히 살고 나서도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 이 나이 먹도록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겠고..

잠자냥 2023-09-07 17:44   좋아요 2 | URL
ㅋㅋㅋ 뒤늦게 잠자냥의 과거를 알아가는 건조수하. ㅋㅋㅋㅋㅋ 저 전에 100자평 대회 이벤트에서 적립금 60만원인가 받은 적 있어요. 개당 15만원 줬던 듯…. 그때 다부장도 호기롭게 60만원을 꿈꿨으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5천원 받고(참가상) 울던 그날들이여…. 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09-07 18:37   좋아요 1 | URL
와 그럼 4개에 60이요….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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