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요테의 놀라운 여행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13
댄 거마인하트 지음, 이나경 옮김 / 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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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다보면 좋은 추억도 여럿 쌓이지만 괴롭고 잊고 싶은 기억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과거에 얽매이는 것은 사람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여 고통스러운 기억은 덮어두고 잊는 것이 상책이라고 말한다. 현재에, 순간에 충실한 삶이 최선인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과연 그게 최선일까? <코요테의 놀라운 여행>을 읽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은 꽤 발랄하게 시작한다. ‘코요테라는 조금 특이한 이름의 열두 살 소녀가 아주 자유로운 복장으로 어느 주유소에서 슬러시를 사고 있다. 그런데 소녀는 자기보다 어린 한 꼬마에게 그날 선행을 베풀어 슬러시 한 컵을 사준다. 꼬마는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자기가 갖고 있던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소녀에게 선뜻 선물한다. 소녀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자기의 동행인 몰래 차에 고양이를 태워야 하는데, 꼬마가 보기에 소녀의 동행인은 참 이상하다. 다 떨어진 청바지에 맨발, 셔츠도 안 입었고, 장발에 덥수룩한 수염. 얼핏 보면 노숙자 같다. 그런데 슬러시를 사준 소녀 말한다. 저 사람 이름은 로데오’, “우리 아빠야.” 아빠라고? 심지어 이 두 사람은 노란색 스쿨버스를 타고 여행 중이다. 소녀는 꼬마의 도움을 받아 로데오, 그러니까 아빠 몰래 버스 뒤쪽 창문으로 고양이를 들여오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다시 길을 떠나는 그들- 코요테와 로데오, 두 사람만의 여행길에 또 다른 생명체가 더해진 것이다.

 

이 발랄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처음부터 몇 가지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코요테라는 이상한 이름은 정말 본명일까? 로데오라는 기묘한 이름도? 게다가 두 사람은 부녀지간이라고 하는데, 서로 절대 이나 아빠라고 부르지 않는다. 아빠가 딸을 코요테하고 부르는 건 이해하겠는데, 딸이 말끝마다 제 아빠를 로데오라고 부르는 건 어째 좀 이상하다. 게다가 왜 50인승 스쿨버스로 여행을 하는 걸까? 이 두 사람은 사실 부녀지간이 아니라 말 못할 사정이 있는 다른 관계는 아닐까? 혹시 납치범?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그런데 유괴범과 유괴된 소녀라고 생각하기엔 코요테와 로데오 사이가 너무나 좋다. 그러니, 일단 납치범은 아니고 부녀지간이 맞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계속 책장을 넘긴다. 그래도 여전히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왜 집도 절도 없이 떠돌이 생활 중일까?

 

한눈에 보기에도 자유로운 영혼인 로데오가 딸을 데리고 정처 없이 미국대륙 곳곳을 돌아다니는 것은 그 자신을 위해서는 즐거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열두 살 소녀에게도 과연 그럴까? 실제로 코요테에게는 친구다운 친구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여행지에서 친구가 될 만한 아이를 만나도 내일이면 작별을 해야 한다. 물론, 그 전에 친구(가 될 뻔한 아이)의 부모는 멀리서 로데오의 겉모습을 보고는 이상한 사람일 것이라고, 그래서 아이가 학대당하는 건 아닐까 의심의 눈초리를 치켜세우며 자기 아이가 코요테와 지나치게 가까워지는 것을 경계한다. 때문에 코요테는 매일 작별하는 삶을 벌써부터 체득하고 있다. 그렇기에 슬러시 한 잔의 선행을 베풀고 얻은 고양이 아이반이 코요테에게는 무척 소중하다. 그렇게 정처 없는 여행 중에 코요테에겐 한 가지 엄청난 미션이 주어진다. 5,793킬로미터 떨어진 어느 공원에 나흘 만에 도착해서 불도저가 공원을 싹 밀어버리기 전에 한 나무 아래 묻어둔 추억 상자를 건져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버스를 운전하는 로데오는 행선지를 몰라야 한다!

 

대체 왜 그래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당연히 든다. 사실 코요테와 로데오가 전국을 떠도는 이유는 이 추억 상자와도 관련이 있다. 코요테는 자동차 사고로 엄마와 언니, 동생을 잃었고, 그 후로 집을 떠나 아빠와 단 둘이 여행하며 지내는 것이다. 부녀는 잊고 싶은 고통스러운 기억이 있는 집을 버리고 늘 여행하는, 현재에 충실한 삶을 선택한 것이다. 때문에 잃어버린 가족과의 추억이 담긴 이 상자를, 다시 집으로 돌아가 되찾는 일은 로데오에겐 금기나 다름없다. 그에게 고향 집과 얽힌 일들은 이제 입에 올려서도, 추억해서도, 기억해서도 안 되는 금기이자 고통스러운 과거이다. 코요테가 아빠를 아빠라 부르지 못하고 로데오라고 부르는 것도, 코요테와 로데오라는 기이한 이름을 갖게 된 것도 모두 이 고통스러운 기억과 관련 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과거를 피해서 살아갈 수 있을까?

 


과거를 돌아보는 건 아무 소용없는 일이야. 코요테. 로데오는 늘 말했다. 안 돼 거기로 돌아가지마, 네 행복은 여기, 지금에 있어. 예전 일은 다 잊어야 해. 하지만 나는 로데오처럼 할 수 없었다. 감추는 실력이 좋아진 것뿐이다. 금지된 추억을 몰래 꺼내보는 실력이 좋아진 것뿐이다. (72)

 

코요테의 삶은 현재로 충만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늘 떠나는 삶 속에서는 친구도 사귈 수 없다. 매일 새로운 것을 만나지만 그 새로운 것과도 곧 작별해야 한다. 로데오는 과거를 돌아보는 건 쓸데없는 일이라고 말하지만 코요테가 어제 만난 친구도 곧 과거가 되고 만다. 행복은 정말 지금 여기에만 있을까? 만사를 때려치우고 달려가야 하는 소원인 만때달소원처럼 지극히 현재진행형이고 순간적인 기쁨에만 행복이 있는 걸까? <코요테의 놀라운 여행>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 두 사람의 짧고도 기나긴 여행을 통해 보여준다.

 

코요테는 로데오가 만든 금지 리스트를 깨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선택해서 달려간다. 그 추억 상자를 열면 닫아두었던 고통스러운 기억이 밀려올지도 모른다. 아니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소녀는 그 선택을 한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한때 자신을 눈부시게 만들어준 아름다운 사람들과 얽힌 소중한 추억들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길에서 소녀는 뜻하지 않게 동행하게 되는 친구들을 여럿 만난다. 둘도 없는 친구가 된 고양이 아이반은 물론, 흑인 음악가인 레스터’, 폭력적인 아버지를 떠나 엄마 에스페란사와 함께 이모를 만나러 가는 살바도르’, 그리고 결국 만나게 된 살바도르의 이모 콘셉시온’, 커밍아웃했다가 부모에게 상처받고 집을 나온 ……. 어찌 보면 하나같이 제 나름의 상처가 있고 소외된 이들이다. 그들과 함께 하는 이 결코 길지 않은 여행은 코요테를, 로데오를, 그리고 이 노란 스쿨버스에 오른 그 모든 이들을 조금씩 자라게 한다.

 

노란 스쿨버스를 타고, 여행길에서 사람들을 만나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어떤 의미로든 조금씩 자기의 생각을 고치고, 삶을 돌아보면서 조금은 성장한다는 내용은 인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만나는 타인들은 모두 삶의 승객이며 함께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라는 말도 그래서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외면하고 회피하기만 했던 그 지난날의 고통스러운 기억도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데 꼭 필요한, 외면할 수 없는 하나의 역사였음을 이 발랄하고 유쾌한 책은 소박하지만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코요테와 로데오가 잊고 싶고, 피하고 싶기만 했던 과거의 한때와 정면으로 마주해 고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새롭게 다시 길 위에 서는 모습은 참 아름답다. 이 두 사람의 여행길은 이제 그 전과는 확실히 다를 것이다. ‘뭔가를 향해 달려가는 건 뭔가로부터 달려가는 것보다 낫다.’(357)는 코요테, 이 어린 소녀의 말도, 살아가는 동안 이따금 들춰보면 꽤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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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5-20 1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청소년 문학이라니. 저도 읽어보겠습니다.
표지만 보고 어? 잠자냥 님이 읽으실 것 같지 않은 표지인데..라고 생각했는데 저도 보관함에 넣어버리네요.
저는 결국은 성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아이든 어른이든)가 참 좋더라고요. 아마도 제가 사람은 계속 성장해야 한다고 성장에 가치를 두는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나저나 이런 책은 또 어떻게 앍고 읽으신겁니까?!

잠자냥 2021-05-20 11:06   좋아요 1 | URL
재미있었어요. 약간 눈시울 찡해진 부분도 있고. ㅋ 제가 성장 소설 좀 좋아해서....ㅎㅎ
10대에 있는 조카에게 선물하기 좋은 책 같아요. 다락방 님 읽고 나면 타미에게~ ㅎㅎ
아참, 이 책은 5월에 조카들 주려고 책을 좀 샀는데, 마침 리뷰대회 하기에 부랴부랴 읽었습니다.
근데 다락방 님 리뷰대회에 낚여서 사지 마시고 ㅋㅋㅋ 걍 맘 편히 읽으세요.

다락방 2021-05-20 12:44   좋아요 1 | URL
아, 이 책 리뷰대회 합니까? 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05-20 13:07   좋아요 0 | URL
그냥 10명 똑같이 준다니까 함 도전해보심은??

단발머리 2021-05-20 1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청소년 책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이 책은 끌리네요. 그냥 봤으면 넘겨봤을 책인데 잠자냥님 리뷰 읽고 나니 읽고 싶어졌어요.
책내용 알고 혹은 책내용 아는데도 찾아서 읽는 우리들만의 마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05-20 12:31   좋아요 1 | URL
아니 그런 과찬을! ㅎㅎ 책 내용 알아도 찾아서 직접 읽어보면 또 다른 맛을 알게 되니까 또 굳이 찾아 읽는 게 아니겠습니까?! ㅎㅎ

psyche 2021-05-21 02: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실 이 책이 조금 불편했어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알겠고 사람들이 칭찬하는 이유도 알겠는데 저는 계속 코요테가 마음이 쓰이더라고요. 아빠의 슬픔과 고통을 이해하지만 2년정도가 아니라 5년을 저렇게 다니는 건 또 다른 형태의 학대가 아닌가? 싶었어요. 코요테가 넘 어른스러운 것도 마음 아프고, 마땅히 가져야 하는 친구, 할머니와의 시간을 가지지 못한 것도 슬펐어요.

잠자냥 2021-05-21 09:36   좋아요 0 | URL
그렇죠. 본문에 썼듯이 저도 그렇게 생각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아빠 마음대로 끌고 다니면 저 아이의 삶은? 친구도 사귈 수 없는 삶은? 학교도 안 간다고? 이것도 학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마도 그건 작가가 코요테 나이 또래 아이가 아니라, 로데오와 비슷한 어른 남성이라 그런 한계가 있는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