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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의 기억과 타자의 정치학 - 식민지조선에서 태어난 일본인들의 탈향, 망향, 귀향의 서사
차은정 지음 / 도서출판선인(선인문화사) / 2016년 6월
평점 :
<<식민지의 기억과 타자의 정치학>>을 읽고 나의 생각과 유사하면서도 묘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아직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을 대신해 내가 다른 논문에서 일부 언급한 글을 붙여둔다. 이른바 '식민 2세'의 식민지 이후 식민지 인식에 관한 글이 이 책이라면 나의 글은 '식민 2세'의 식민지 생활에 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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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이후 식민통치기간이 길어지면서 처음 50명 남짓의 재조일본인 인구가 100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의 거주 집단이 되었다. 그런 만큼 이주 시기와 거주 지역과 상태에 따라 ‘조선인식’과 ‘제국의식’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유독 다양한 차이 중 확실한 구분을 전제로 하는 것이 세대 간 구분이라고 생각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직 식민 1세대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가 진행되지도 않고 있고, 1세대조차 ‘도래자’와 ‘신도래자’로 스스로를 구분하고 있으며, 식민 2세대(조선에서 태어난) 또는 식민 1.5세대(조선에서 자라난) 중 일제 말기에 성인이 되는 세대와 패전 후 성인이 되는 세대로 구분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식민 2세 연구에서 지속적으로 식민 1세와의 차이가 언급되고 있는 것 같다. 이들 연구의 대부분은 문화 및 문학의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1970년대를 전후한 시기 패전 이후 고착화된 식민지 지배의 망각과 봉인, 그리고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한편, 그동안 숨겨왔던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가기 위한 과정에서 재조일본인으로서의 식민지 경험을 하나 둘 씩 말하기 시작한 세대가 식민 2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거나 자라나 패전에 의해 일본으로 귀환하면서 일본에서 일본인이 아닌 경험을 통해 스스로의 흔들리는 정체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패전 이후 망각의 매커니즘 속에서 부유하던 이들은 1970년대를 전후하여 자신들의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든지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이 출판한 체험기, 수기, 소설, 그리고 인터뷰를 토대로 식민 2세들에 대한 연구들이 21세기에 축적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식민 2세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 성과는 니콜(Nicole Leah Cohen)이라고 할 수 있다. 니콜은 이 연구에서 1940년대 식민지 조선, 그 중에서도 경성의 재조일본인 상류계층에서 자라난 ‘京城子’를 ‘제국의 아이들’로 명명하며 그 경계적인 정체성과 문화적 혼종성을 통해 탈민족주의적인 가치를 확인하고 있다. 그 외 문화, 문학계에서는 식민 2세 작가들의 작품 분석을 통해 식민 2세의 경계자적 위치와 내셔널리즘 비판의 테제로 삼고 있다.
이들 연구에서 식민 1세대와 식민 2세대가 구분되는 첫 번째 이유는 고향이 달랐다는 점이다. 즉, 1876년 개항 이후 조선으로 이주해 거주한 식민 1세대는 한국을 집으로 간주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언제나 일시적인 거주지이며 돌아갈 곳을 염두에 두었다. 반면, 식민 2세대는 식민지 조선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그들의 부모처럼 일본이 고향일 수 없으며 도리어 조선이 고향이 됨으로써 돌아갈 조국도 없는 일본과 조선의 낀 세대일 수밖에 없었다. 나아가 식민 1세대는 식민지에 거주하면서도 지속적으로 ‘본토 일본인’이 되려고 노력했고 따라서 그렇게 생각하며 조선인 앞에 군림하는 ‘제국의식’ 속에서 살았고 그들의 자식에게도 ‘일본인다움’을 지속적으로 교육시켰다. 반면, 식민 2세대는 그러한 교육을 받으면서도 ‘거의 비슷’하기는 했지만 ‘완전하지 않’는 위치였고 이 때문에 이들은 ‘반일본인 반조선인’이라는 경계적 삶을 살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세대 구분론은 먼저, 식민 2세대가 자신이 태어난 조선을 그리워하며 그들 일본인들이 식민지에서 저지른 식민지배의 실상을 반성하든 아니면 단순히 태어난 고향을 그리워하든 사후적인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즉, 제국과 식민지의 경계자적 삶이나 ‘반일본인 반조선인’이라는 인식은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으로서 느끼며 품었던 생각과 인식이 아니라 패전을 통해 일본으로 돌아오면서 그리고 정착하면서 느끼며 가졌던 복합적인 감정인 것이다. 물론 식민 2세 연구에서 지적한 것처럼 사회주의와의 만남이든 고통 받는 재일조선인과의 만남을 통해서든 전후 반성 없이 기억을 봉인하고 망각하는 일본의 과거 인식을 문제 삼으며 스스로가 식민자였으며 일본인과 다른 정체성을 가졌다고 느끼는 감정과 인식이 전후 각각의 국가에 만연하는 내셔널리즘에 따라 과거를 한 방향으로만 보는 시각을 해체할 수 있는 탈민족적이고 트랜스내셔널한 시선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자세는 여전히 주목해야할 긍정적인 태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인식이 식민 1세대와 식민 2세대를 구분할 수 있는 사실적 근거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오히려 세대 구분을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조선에 이주하는 시기적 차이와 더불어 지역별, 계층별, 젠더별로 더욱 세밀하게 구분하여 다양한 재조일본인 상을 확인하고 이를 구축하는 것이 역사에 더 부합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더군다나 식민 1세대는 물론 태어난 고향이 일본이기에 돌아갈 조국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조선에 뿌리박고 ‘제국의식’ 속에서도 ‘조선본위’ 또는 ‘지역본위’, 예를 들어 ‘경성의식’ 또는 ‘부산의식’을 앞세우면 살아갔다. 그들은 살아서 돌아갈 고향을 일본에 두고 있었지만 죽어서도 자신들이 일구어 놓은 조선에 눕고 싶었을 것이다. 특히, 조선에서 성공한 재조일본인들은 더욱 그랬다. 패전이 되었을 때 자신이 모은 농장과 재산을 조선에 두고 갈 수 없어서 한국인으로 귀화하고자 했던 군산의 일본인 지주 시마타니 야소야의 일화는 상징적이기까지 하다. 또한 식민 1세대가 고향으로 귀환을 생각하며 조선에서 거주했다면 일본인 거주지마다 조성된 무덤들은 어떤 의미일까. 오히려 이들은 조선에 건너와 뼈를 묻을 각오였지 않았을까. 일반적으로 재조일본인 상층부의 인물들도 조선에서 죽으면 자기가 거주한 조선의 거주지와 일본의 고향에서 각각 장례 의식을 거행했지만 결국 조선에서 묻힌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면 단순히 1세대와 2세대를 태어난 고향과 조국으로 구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식민 2세대는 오히려 ‘일본인다움’ 또는 ‘본토 일본인’이 되기 위한 교육과 활동에 앞장섰다. 그들은 본국과 같은 공동체를 형성했으며 동일한 여가의 대부분과 소비를 추구했고 자주 일본 스타일의 집에서 사는 동시에 신사와 사찰에 예배하거나 일본 상점에서 쇼핑하거나 다른 일본인들과 클럽이나 이웃 단체에서 관계를 맺었다. 물론 이들은 일본의 각 지역 사람들이 섞이기도 하고 조선이라는 풍토적 속성도 가지고 있었기에 절충적인 문화를 드러내기도 했지만 이 또한 일본 문화라고 여기며 살았다. 또 다른 식민 2세 연구에서 언급한 것처럼 식민 2세들 중 성인으로 조선에서 활동하거나 조선과 일본문단에 등단한 사람들은 스스로 내선일체의 선봉에서 활동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들과 패전 이후 일본에서 등단한 작가들은 등단의 차이와 전후 조선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있을 뿐 세대로는 구분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식민 2세로서 ‘제국의 딸’이 된 아사노 시게노를 볼 때, 이들은 철저하게 일본인으로 그리고 ‘제국의 딸’이라는 역할을 완수하기 위해 악전고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재조일본인들의 다양한 모습과 정체성은 세대로 구분할 것이 아니라 이미 언급한 것처럼 조선으로 건너온 시기적 차이, 태생적 차이, 계층적 차이, 지역적 차이, 젠더적 차이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연구가 축적되고 난 이후 이들 차이를 통해 정체성을 입체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재조일본인 연구는 보다 다양한 군상들을 발굴하는 것이 급선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