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자연철학, 수사학의 장소

 

공허를 둘러싸고

그리스 고대 철학에서 본격적인 장소론은 공허를 둘러싸고 논의되었다. 파르메니데스는 존재 자체를 하나이자 전부이고 충만한 것으로 이해하며 장소로 파악한다. 이에 반해 레우키포스나 데모크리토스 등의 원자론자들은 공허 속에서 충실한 미소립자들이 운동해 존재가 생성되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원자론자들의 공허에 이어서 나타나는 것이 플라톤의 코라였다. 플라톤은 우주론에서 세 가지 원리, 즉 조형자로서의 신 데미우르고스(이성), 존재자의 원형으로서의 이데아(규정 원리), 존재자의 질료 혹은 장으로서의 코라(무한정한 것)를 설정하고 이들의 관계를 통해 우주의 생성을 주장했다. 이때 데미우르고스의 질서 짓는 힘에 의해 나타난 우주를 코스모스’, 즉 아름다운 것으로 파악하는데 그런 점에서 코라는 다른 한편, 데미우르고스에 저항하는 무질서를 낳는 원리가 된다. 이처럼 플라톤이 주장하는 코라는 온갖 생성의 수용자로서 결코 멸망하는 일 없이 모든 생성하는 것에 그 위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플라톤은 우주 속에 공허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코라를 질료와 장을 동일시한 것이라며 비판했다.

 

2. 질적 자연관과 자연적 위치

아리스토텔레스의 토포스론은 보통 장소론이 아니라 弁証論이라 번역되는 토피카Topica’를 가리키지만 그는 애초 공간적인 장소로부터 출발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초에 카오스()가 생겼다라는 헤시오도스의 전제로부터 존재자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우선 장소가 없어서는 안 되는 것(근원적인 것)으로 파악했다. 그리고 장소를 자신을 직접 감싸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면서 시작했다. 그런데 장소는 사물로부터 분리될 수 있고 사물을 감싸기 때문에 사물과 분리될 수 없는 형상과 분리도 감싸지도 못하는 질료와는 다르다. 따라서 장소는 감싸는 물체의 내측의 경계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또한 장소의 부동성이라는 관점을 도입하는 것으로, 그것은 포괄하는 것의 원초적 부동의 경계가 장소라고 환언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상에 공통의 장소(코이노스 토포스)전 존재자를 포괄하는 우주의 가장 바깥둘레의 테두리가 바로 부동의 참된 장소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부동의 참된 장소 내부에 동심원상의 부동의 몇 개의 경계(, , 공기, )를 갖는다고 주장하며 이것이 자연적인 위치(불은 위쪽, 흙은 아래쪽)’를 향해 운동하는 것(여러 원소의 동류성과 차이성으로 인한 동화와 전화)이라고 했다. 이처럼 운동은 공허에 의해 가능케 되는 것이 아니라 충실한 것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고, 사물을 움직이고 있는 이 충실한 것의 힘이 토포스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장소는 일종의 힘의 장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을 파악한 방식은 상징론적으로서만 아니라 생태학적으로도 적극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토포스론에는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이 있다. 그것은 수사학의 흐름에 속하는 토피카로서의 측면이다.

 

3. 토피카와 토포스

레토릭의 일부를 이루는 토피카란 개별적인 문제나 테마에 관한 구체적인 고찰법=논의법인데 이것이 장소론 또는 토포스의 학(토피카)으로 불린 이유는 논거나 논점의 소재를 아는 것이 논의의 기초를 이룬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고찰법=논의법에서는 기억(개인적 및 집단적인 기억)속에 축적된 다수의 논점, 논제가 중요한 작용을 하고, 그 논점과 논제들이 축적되기 위해서는 각자 특정의 장소가 없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거기서부터 그 논점들이나 논제들도 토포스(라틴어로는 로쿠스Locus)라 불리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토피카를 논의에 임하여 그 논의가 얼마나 많은 사항에, 또 어떤 종류의 사항에 관계되는가, 또한 어떤 화제로부터 시작하면 좋은가를 결정하는 것이라 간주한다. 그래서 토피카의 상징으로 변증술적 추론을 주장하며 그 실천은 발견, 배열, 설문이라는 단계를 좇아 행해진다고 했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는 토피카를 발견을 중심으로 혹은 출발점으로 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발견, 배열, 설문3단계는 고전 레토릭의 발견, 배열, 조사[미사여구], 기억, 진술5단계로서 완성되었고 키케로는 토피카를 장소의 기억과 확실히 결부시켰다. 시모니데스의 유명한 에피소드를 통해 키케로는 장소의 기억을 통해 장소의 배열이 사물의 배열을 유지하고, 사물의 이미지가 사물 자신을 나타내게 된다고 주장했다. 한편, 중세 유럽에서 널리 읽힌 <<헤렌니우스 수사학>>에서도 기억술을 형태짓는 것은 무엇보다도 장소와 이미지라고 주장하며, 장소(로키)란 기억함에서 유력한 실마리가 되는 장소(예컨대 가옥, 주거 공간, 구석, 아치 등), 그것에 비해 이미지란 우리들이 기억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의 형상, 징표, 상 등이라고 했다. 이처럼 고전 레토릭에서 말하는 토피카에 장소(토포스)의 문제는 가장 직접적으로는 기억술에 관한 것으로서 나타난다. 그런데 여기서의 기억은 단지 수단이나 오늘날의 방법적인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인식에 대립하고 필적하는 또 하나의 인식인 현려(賢慮:프로네시스)’와 결부된다. 따라서 고전 레토릭에서 토피카는 장소와 기억과 현려, 이 세 가지가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4. 토포스의 상실과 방법

기억술과 결부된 고전 레토릭의 토피카는 르네상스 이후의 서구세계에서는 점차 지식의 전면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 역사나 전통이 무거운 짐이 되어 공동체가 붕괴해 가는 추세 속에서 인간은 전통이나 역사의 중압에서 벗어나고 또 공동체로부터 개인이 독립하기 위해서는 과거와의 연결을 끊을 필요가, 결국은 기억을 지울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토포스(장소, 기억의 집적)는 부정되어 상실되어 갔고 고전 레토릭적 기억술은 룰루스의 결합술을 거쳐 전통적인 기억술도, 룰루스의 (기억)술도 아닌 참된 기억술로서 논리의 사슬을 더듬어 사물을 그 원인으로 환원해 가는 방법’, 근대 과학의 기계론적 사고와 표리를 이루는 지점의 데카르트적인 방법으로 전화했다. 그러한 까닭에 근대란 확실히 방법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방법이 원리화해서 그 지배가 진행 관철되어 사람들은 그 생존 혹은 존재 기반의 상실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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