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나의 학문적 토양은 크게 두 갈래의 상이한 토대에 기반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나는 역사라는 학문의 과학성 및 실천성과 관련이 있다. ‘막바지민주화 운동 과정에 위치했던 나의 대학시절은 무엇보다 실천성이 삶의 기준이었다. 더불어 나는 역사가 과학임을 먼저 배웠다. 이를 상징하듯 내가 다닌 사학과는 실천사학과였고 단과대학은 인문과학대학이었다. 다른 하나는 역사의 과학성과 실천성을 부정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 1992년 현실 사회주의 몰락 이후 한국 사회 특히 학문 시장에 불어 닥친 근대 이후 또는 탈근대의 사상적 조류이다. 이 때문에 분과학문의 위상은 흔들렸고 그 경계는 차츰 허물어졌다. 역사는 이제 과학이라기보다는 이야기가 되었다. 더 나아가 역사는 사실과 허구가 구별되지 않는 단지 이야기일 뿐이라는 주장까지 제기되었다.

두 가지 상반되고 모순적인 학문적 토양은 내게 음양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나는 상이한 이 두 가지 토양 중 하나만을 굳이 선택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여전히 역사가 과학임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과학은 곧 진리가 아니며 해당 시대의 담론이기에 부정할 이유는 없다. 다만 어떠한 과학이며 누구를 위한 과학인지가 문제이다. 여기서 학문의 실천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또한 나는 역사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때 이야기는 허구가 아니라 사실에 기초한 경험의 이야기이다. 또한 타자의 이야기이다. 따라서 역사는 획일적이고 유일한 경험의 권력화를 거부하고 주체들 각각의 사실적 경험과 그 주체들이 속한 시공간의 또 다른 경험을 드러내야 한다. 그렇다면 역사는 한번 말해지고 그칠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말해져야 한다. 또한 말하지 못한 타자의 경험은 계속 발굴되어야 한다. 벤야민이 말한 저 유명한 파울 끌레의 천사처럼 말이다. 더불어 발굴된 타자의 경험에 대해 각각의 주체들은 서로 맞대고 생각하며 사유할 수 있는 정치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더군다나 사유하는 것조차 빼앗긴 지금 여기에서 말이다.

이상과 같은 두 가지 토대 위에서 나는 다른 시기도 아닌 일제시기, 그것도 자본가단체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는 폭력적인 지배 권력을 문제 삼기 위한 것이며 이를 한국 근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일제시기부터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왜냐하면 일제시기는 현재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시대든 그 이후든 지배 권력은 자본을 둘러싸고 형성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지배 권력을 문제 삼는 것은 자본과 권력과의 메커니즘을 문제 삼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연구 틀인 일제시기를 민족이라는 한 가지 측면만으로 볼 수는 없었다. 민족이라고 하는 틀로 일제시기를 보면 지배와 저항이라는 이분법적 사고 속에 갇힐 수밖에 없겠지만 또 다른 틀과 함께 시차를 두고 보면 지배와 저항의 바깥도 확인하고 사유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 각각의 내부적 차이도 드러낼 수 있다. 흔히 지배와 저항의 바깥 또는 경계로 의미되는 회색지대는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다. ‘지배와 저항각각의 간극과 틈새 속에서 만들어지는 유동적인 공간이다. 따라서 지배와 저항의 간극과 틈새를 확인하고 이를 통해 일제시기 식민 권력을 다시 이해해야만 한다. 나는 우선 지배의 간극과 틈새 확인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 간극과 틈새는 자본과 권력의 메커니즘에 의해 드러나기도 봉합되기도 한다. 이를 확인한다면 일제시기는 물론 이후 한국 사회의 자본과 권력 메커니즘을 문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일제시기 조선 상업회의소 연구』(선인, 2011)은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 2007년 작성된 나의 박사논문 일제하 조선상업회의소연합회의 산업개발전략과 정치활동을 기초로 구성되었다. 기본적인 내용은 이후 학술지에 게재하면서 수정하였고, 별도로 발표한 글도 목차에 맡게 첨부하였다. 이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서론에서는 조선 상업회의소 연구의 필요성과 이러한 연구의 의의를 드러냈다. 특히 지배 권력을 획일적으로 파악하지 않고 층위를 구분하여 살펴봄으로써 식민 권력과 식민 정책의 특징을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점을 강조했다. 1부는 조선 상업회의소의 성립과 그 구성원에 관한 글들이다. 일제시기 조선 상업회의소는 조선의 식민경영과 자신들의 경제적 기반을 확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조선총독부와 함께 혹은 독자적으로 조선의 개발에 뛰어들었다. 우선, 기존의 민족별 상업회의소를 없애고 일본인 중심의 상업회의소를 성립시켰다. 이 과정에서 소극적 조직으로 남길 바라는 조선총독부와 적극적 이익단체이길 바라는 상업회의소는 충돌하였다. 상업회의소 는 연합조직인 조선상업회의소연합회를 성립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더불어 연합회는 이후 주로 대상업회의소의 의도에 따라 운영되었다.

2부는 조선 상업회의소의 산업정책 수립과 이에 대한 정치활동을 살펴본 글들이다. 연합회를 기반으로 한 조선 상업회의소는 산업분야를 모두 망라하는 조선 산업개발정책의 수립을 조선총독부에 요구하였다. 이러한 요구는 산업조사위원회의 설치로 이어졌다. 산업조사위원회는 상업회의소의 자문안을 기초로 하여 작성된 총독부의 참고안을 가지고 조선 산업개발정책을 결정하였다. 상업회의소의 요구와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산업개발정책이 수립되었다. 하지만 총독부는 통치안정화에만 관심을 기울였고 산업개발에 대해서는 소극적이었다. 상업회의소는 조선총독부의 소극적인 식민정책을 비판하며 시급히 해결해야할 산업개발 ‘4대요항을 결의하고 그 실현운동에 뛰어들었다. 상업회의소가 제기한 ‘4대요항은 철도건설, 관세철폐, 산미증식, 수산개발과 그에 필요한 자금의 보급이었다.

3부는 일본 본국의 긴축재정에 대한 산업개발자금 요구활동과 ‘4대 요항중 철도문제로 집중하는 조선 상업회의소의 활동을 살펴본 글들이다. 1923년 때마침 발생한 관동대진재로 인하여 조선 상업회의소의 산업개발 ‘4대 요항은 물론이고 그나마 수행되고 있던 조선의 개발 사업은 중지될 위기에 처했다. 상업회의소는 산업개발 ‘4대 요항의 실현을 위해 시민대회공직자대회등과 연합하고 일부의 조선인까지 포함시켜 더욱 적극적으로 조선 산업개발의 필요성과 자금 확보를 위해 노력하였다. 상업회의소의 노력은 조선 산업개발에 소극적이었던 조선총독부와 일본정계에 큰 영향을 주었고 ‘4대 요항중 관세철폐와 산미증식은 실현되었다. 한편, 조선 상업회의소는 산업개발자금의 확보와 함께 ‘4대 요항의 가장 중요한 항목인 철도문제에 집중하며 조선철도망 속성운동을 전개하였다. 상업회의소의 조선철도망 속성운동은 일본 정재계는 물론 조선총독부에까지 영향을 미쳐 조선철도망계획을 수립하도록 추동하였다. 그리고 철도망계획의 수립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조선총독부의 조선철도12년계획의 수립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상의 내용을 통해 일제시기 조선 상업회의소가 단순히 식민권력의 하부에서 식민정책의 수동적 수행자로 머문 것이 아니라 식민권력의 일부로서 식민정책을 능동적으로 입안하였음을 밝혔다. 또한 상업회의소의 산업개발전략과 정치활동이 조선총독부의 농업중심 산업정책을 철도 등 산업기반시설의 확충이라는 영역으로 확대되도록 견인하였음도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조선의 개발에 소극적이었던 일본정부와 조선총독부를 추동하여 긴축재정임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조선의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도록 만들었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렇다면 일본제국주의의 확장이 일본 내부의 요구에 따라 이루어진 점도 무시할 수 없지만 식민지 현장과 현장인에 의해서도 이루어졌다는 점도 분명하게 드러내어 준다. 그리고 여기서 일제시기를 민족만이 아니라 또 다른 관점인 지역을 통해서 살펴봐야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한편 조선 상업회의소는 조선에 토대를 둔 일본인들이 중심이 된 중요한 경제 단체였다. 당연하겠지만 이들이 주장한 조선의 산업개발은 일차적으로 일본인이 대부분인 조선의 자본가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그들은 공공연히 조선의 산업개발을 조선 본위라는 이름 아래 추구하였다. ‘조선 본위가 정치적 수사일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들의 경제적 이익과 직결된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조선의 산업개발은 제국 일본의 이해와 떨어질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조선이라는 지역의 이해와 부합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일제시기 한국자본주의의 특징이 드러난다. 이는 제국주의라는 틀 속에서 자본과 지배 권력과의 관계가 제국-식민지라는 상하 관계로 단순화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불어 일제시기 조선의 개발과 성장이 또한 현재 한국자본주의의 성장과 발전에 어떻게든 연관되었다면 조선인 자본가가 아니라 조선의 자본가들에 대한 분석을 전제로 해야만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물론 이 책의 의미를 아무리 포장한다고 해도 아주 제한적인 사실을 이야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드러나지 않는 사실들이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대로 책으로 출간하는 이유는 첫째, 역사가가 사실 전부를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또 다른 목소리를 경청하기 위해서이다. 둘째, 파편적인 경험의 이야기를 통해 또 다른 경험의 이야기가 존재할 것이라는 경험의 잠재성을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경험은 말해지지 않은 타자의 경험이다. 셋째, 이미 드러난 것들과 경합하며 일제시기를 다시금 사유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도 존재한다. 그 위에 앞으로의 연구와 생산적 논쟁의 장이 형성되기를 바라며 또한 일제시기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사유가 다시 가능해지길 간절히 희망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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