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여공 - 시다에서 언니되다>는 감독의 연출의도처럼 여공이었던 여성들의 말과 표정을 통해 부산의 신발공장 여공들의 삶을 1960년대부터 1990년대(현재진행형)까지 확인할 수 있어서 그 무엇보다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그간 흔히 노동자 또는 여공에 대한 영화 또는 다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의 대표적 산업인 신발공장 여공에 대한 영화는 전무했다. 아니 영화는 물론이고 그녀들의 목소리를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다. 노동자들의 연대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노조운동 가운데서도 여성의 목소리는 남성노동자의 목소리에 압도당하여 드러나지 못했다. 이 영화에서도 노조활동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는데 주로 남성노동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야기되고 있다. 더군다나 부산은 해방이후 임해공업단지의 조성과 함께 신발산업의 메카이며 여전히 신발산업의 메카임을 자부하고 있다. 그러나 신발산업의 메카가 될 수 있었던 제반 노동조건에 대한 이해는 관은 물론이고 시민 또한 전혀 관심이 없었으며 무심했다. 그런 점에서 부산의 현재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구성원인 신발공장 여공들의 이야기를 그녀들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점만으로도 이 다큐의 성과는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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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의 선구적인 측면을 고려하더라도 다큐가 풀지 못한 또는 목소리를 내지 못한 문제점도 여전히 많이 지니고 있다. 그 원인은 감독도 말하고 있지만 인터뷰 시간이 그다지 길지 못했다는 점, 인터뷰어의 수가 제한적이었던 점, 그리고 개별 인터뷰와 집단 인터뷰의 병행하는 등 심도깊은 인터뷰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시간적 순서에 따라 4부분으로 나눠 일관된 주제 하에 인터뷰하여 다큐를 제작했기 때문이다.
한편, 이 다큐는 기존의 노동영화 또는 다큐가 지니고 있는 노동문제에 대한 묵직한 현실을 애써 피하기 위해(함께 본 분들 중에서는 이를 식상하다고까지 표현했고 그런 작품이었으면 보러 오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노동문제가 과연 식상할 정도로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으며 그 현장에 있는 분들의 목소리를 귀기울이고 있는지 의아했으며 당황스러웠다) 그녀들의 일상을 사랑과 결혼이야기로 부각한 점에서 상당히 희극적이며 영화적인 요소가 두드러졌다. 공장 출근부터 공장 안에서의 일상이 주는 에피소드는 당시에 그녀들이 어떻게 느꼈든지간에 회상과 함께 그렇듯 유쾌하고 즐겁게 묘사되었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당시의 현실문제에 대한 그녀들의 이해와 목소리는 더욱 어렵게 되었으며 현재도 여전히 진행형인 여공들의 문제에 대한 접근 또한 어렵게 만들었다. 분명히 가장 어린(?) 여공, 다큐에서는 1980년대 후반에 여공이 되어 현재도 여공인 그녀가 1980년대와 현재 여공 임금은 크게 차이나지 않고 있다고 한 목소리는 스쳐지나가듯 묻혀버렸다. 이러한 점은 4부분으로 나눠져 있는 여공의 목소리 중 유독 가장 먼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가장 많은 수의 목소리로 지닌 것 때문인지 다큐에서 권위를 획득하여 전면에 포진한 그녀들이 지금도 여전이 과거의 기억을 '즐거운 또는 유쾌한' 추억으로만 회수한 지점에서 두드러졌다. 시간은 과거를 아름답게도 포장한다. 포장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언어로 변질되었음을 일컸는다. 이런 점에서 그녀들의 목소리는 과거의 기억을 추억으로 말했지만 그런 그녀들의 말은 과연 그녀들의 언어인지 의문이다. 지배받는 자들에 대한 서발턴 연구에서 제기된 문제처럼 과연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도발적인 스피박의 질문이 이 다큐에도 어느 정도 제기될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서 스피박은 서발턴의 목소리가 아니라 그 목소리를 우리가 '대변'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는데 그녀들의 목소리를 다큐라는 틀을 통해 '대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그녀들의 목소리지만 그 목소리는 화면을 통해 재현된다. 이 지점에서 '대변'의 문제가 제기되는데, 그렇다면 그녀들의 말을 빌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정말로 그녀들의 말인가? 우리는 어떤 목소리로 그녀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야할지 이 지점에서 제기되는 의문이다.
물론 이 다큐는 서발턴인 여성 타자들이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장을 열었으며 부분적이지만 그녀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 측면에서 여전히 소중하다. 좀더 다양한 그녀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고 그녀들의 언어와 표정을 대변하고 싶다. 덧붙여 참고로 김원의 <<여공 1970, 그녀들의 반역사>>와 함께 읽으며 감상하면 더욱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