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정리는 헤이든 화이트의 <<19세기 유럽의 역사적 상상력 - 메타역사>> 중 니체부분를 정리한 것이다. 현재 문학과 지성사에 나온 책은 절판되었고 알라딘에서 찾아지는 책은 부분 번역된 두 번째 책이다. 이 책에는 니체부분이 없고 전체 중 4편(미슐레-로망스, 랑케-희극, 토크빌-비극, 부르크하르트-풍자)만이 번역되어 있다. 전부가 다시 번역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니체 : 은유 형식의 역사에 대한 시적 변호

서론
니체는 1830년대 이래 역사가들이 이용해온 역사 분석의 근본 개념과 그 개념들이 지향할 수 있는 역사 과정과 같은 현실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사학 사상에서도 하나의 전환을 마련하였다. 니체의 역사에 대한 고찰 목적은 역사적 과거를 믿는 신념과 역사적 과거에서 어떤 특정한 실체적 진리를 배울 수 있다고 믿는 신념을 분쇄하는 데 있었다. 니체는 인간이 역사를 보는 방법을 삶을 부정하는 형태와 삶을 긍정하는 형태로 구분하고 영원히 진실한 “타당한” 역사 개념이 있다고 믿으려는 욕망을 유일신을 믿으려는 그리스도교적 욕구의 또 다른 형태이거나 하나의 완전하고도 진정한 자연 법칙의 실체를 믿으려는 욕망을 지닌, 그리스도교의 세속화된 대응물인 실증주의 과학으로 나타났다고 보았다. 니체가 역사를 성찰했을 때, 그는 언제나 역사 자체가 어떻게 유사한 창조적인 꿈의 형태로 변할 수 있는가, 요컨대 역사가 어떻게 비극의 예술 형태로 바꾸어질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었다. 결국 역사에 대한 니체의 성찰은 비극에 대한 성찰의 확대라고 할 수 있다.

신화와 역사
니체의 사상은 “영겁 회귀”와 인간의 디오니소스적 능력과 아폴로적 능력과의 끝없는 교체라는 이원론적 철학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영겁 회귀나 디오니소스적-아폴로적 이원론은 역사 지식에 대한 과거의 비판이 낳은 산물이며, 무엇보다도 먼저 역사를 예술로 해석하고,이어서 심미적인 시각을 비극적 조건과 희극적 조건에서의 동시적인 삶을 이해하고 파악하려는 니체의 노력이 낳은 결과이다.
철학자로서의 니체의 목적은 세계에 대해 기계적 인과론이나 비인간화된 과학을 배태시킨 모든 환유적 이해와 세계에 대해 “고귀한” 동인, 신․정신․도덕에 관한 이론을 배태시킨 모든 제유적 승화로부터 인간 의식을 해방시킴으로써 아이러니를 초월하고 의식의 은유적 능력, 즉 “이미지의 유희”를 즐길 수 있는 능력을 향유하도록 의식을 복원하며, 세계를 순수한 현상으로 보고 그에 의해서 원시인의 소박한 은유보다도 훨씬 더 자의식적이며 순수한 존재로서의 활동으로 인간의 시적 의식을 해방시키는 데 있었다. 따라서 『비극의 탄생』을 통해 비극에 대해 성찰하고자 하였다.
니체는 비극을 디오니소스적 통찰과 아폴로적 통찰과의 결합으로서, 그리고 세계에 대한 희극적 이해로부터 벗어나 세계 존재에 대한 비극적 이해로서 또한 그와 상반되는 경우를 재해석하는 수단으로 제시하였다. 니체가 파악한 그리스의 고전적인 비극 정신(예술)은 현실적으로는 환상론적이지만, 창조적으로는 예술 자체의 환상을 파괴하려는 경향이 있다. 즉, 근본적인 공허감에 대한 공포를 인간의 고위한 삶에 대한 아름다운 이미지(은유)로 전환시킨 다음, 다시 그 이미지를 파괴함(비극)으로써 새로운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꿈(희극)을 구성하는 토대를 명료하게 드러낸다. 이처럼 비극 예술은 본질적으로 변증법적 예술이고 그것만이 인간으로 하여금 현실과의 영웅적인 대결로 이끌거나, 이러한 투쟁 이후의 삶을 개척하게 할 수 있다고 니체는 주장하였다.
니체는 한편, 인간 존재가 단순한 존재에서 소외를 거쳐 세계와의 화해에 이르는 변증법적 과정이 명백한 심미적 충동의 작용에 불과하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니체는 그릇된 낙관론과 그릇된 비관론을 비판하며, 비극 정신이 본질적으로 혼란한 존재의 성격에 대한 인간의 이해와 자신이 만든 환상 속에서 삶을 이어가는 인간의 능력과의 갈등을 초래했다는 팽배한 의식에서 비극 정신의 본질을 발견하였다. 따라서 혼란에서 형식으로, 그리고 다시 혼란으로 되돌아가는 반사 운동이 바로 비극을 시가나 그 밖의 다른 모든 지식이나 신념 체계를 구분하도록 만든다. 오직 비극만인 삶을 위한 형식에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혼란에 대한 의식의 끊임없는 변혁을 필요로 하였다. 니체에 따르면, 가장 파괴적인 형태의 환상론은 이미지를 개념으로 전환시켜, 그 개념이 제시한 조건 속에서 상상력을 얼어붙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니체는 분명히 디오니소스나 아폴로가 최후로 승리하는 예술이 아니라, 그것들의 상호 의존성을 전제로 한 예술을 옹호하였다. 즉 형식과 운동, 구조와 과정의 생생한 종합이 필요하였다. 왜냐하면 인간성은 두 신의 영역을 구분하는 한계선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니체에 의하면 고대 그리스에서의 비극적 감정의 소멸은, 한편으로는 “아폴로적인 정관”에 대한 아이러니의 승리와 다른 한편으로는 디오니소스적 도취에 대한 낭만적인 “격정”의 승리가 낳은 결과였다. 비극 정신의 이러한 왜곡은 소크라테스를 통해서 “아폴로적인 경향은 논리적인 체계로” 굳어지고, 유리피데스를 통해서는 디오니소스적 정서가 자연주의적 정서로 바꾸어지는 것과도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특히 소크라테스의 왜곡은 그릇된 낙관론을 고취했기 때문에 치명적이었고 플라톤과 이를 이은 그리스도교로 말미암아 그리스 시대 이래로, 서구인의 역사는 자기 도입적인 질병의 역사가 되었고 자기 기만의 막대 끝에 매달린 도살된 황소의 모습을 하게 되었다. 한쪽 끝에는 그리스도교가 있었는데 그것은 인간에게 삶의 요구를 부정하도록 인간의 종말에서만 그 모습을 드러내는 내세에서의 목적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주장하였다. 다른 한 쪽 끝에는 실증주의 과학이 있었는데 그것은 인간을 동물의 상태로 변모시켜 비인간화함으로써 만족을 느끼며, 어떤 통제력도 행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떤 구원도 발견할 수 없는 기계적인 요소의 단순한 수단으로서 인간을 인식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비극 정신이 쇠퇴한 이래 서구인의 역사는, 삶의 부정이라는 이 두 경향의 변모 과정, 즉 처음에는 그리스도교가, 다음에는 실증주의 과학이 인간을 타락시켰다는 사실을 설명해주고 있다. 니체에 의하면, 삶을 즐기려는 인간의 능력을 파괴한 바로 그 요소들이 이제는 요소 그 자체를 파괴하는 데 적용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역사의 플롯이 아이러닉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 자신이 신화와 비판의 빈곤을 충분히 자각한 의식 속에서 아이러니컬하게 살고 있으므로 그 결과는 특수한 의미에서 아이러닉하다.
그러나 니체는 디오니소스적 과정과 아폴로적 과정의 교체라고 하는 낙관적인 시각으로 미래를 대하였다. “그리스도교적”인 내세에서, 로마의 군국주의나 “헬레니즘적” 비판으로, 그리고 새로운 비극의 시대나 그 결과로 나타난 본래의 야만상태와는 다른 새로운 야만상태로의 이행을 통해서 말이다. 이것이 역사에 대한 순환의 개념이라면, 그 개념은 매우 기묘한 “순환”이다. 니체에게 있어서 원시 시대 이후의 서구인의 전역사는, 무대에서의 비극의 아곤처럼 단순한 존재로부터 소외를 거쳐 자기와의 화해에 이르는 하나의 위대한 진보의 운동이었다. 그러므로 역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대를 지향하는 운동이 아니다. 니체가 인식한 유일한 “절대”는 자유로운 개인, 모든 정신적-초월적 충동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고, 자신을 초월하려는 능력에서 목적을 발견하며, 자신에게 새로운 과업을 부여함으로써 삶에 변증법적 긴장을 가져다주며, 그리스인들이 신들만이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 형태의 인간적인 삶의 모형 속으로 자신을 몰아넣는 자유인이었다.

기억과 역사
니체의 「역사의 선용과 남용」은 동물성을 지닌 인간으로서의 독특한 성격으로 이해할 수 있는 회상과 망각의 역학관계에 관한 글이다. 인간의 문제는 모든 것을 너무도 잘 기억한다. 특히 과거를 회상하는 이 능력으로부터 인간적인 모든 건조물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인간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역사 속에서 살아야 하며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숙명적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영광이며 파멸이기고 하다. 그렇다면 그 문제는, 역사를 망각하는 적절한 시기가 언제인가를 배우는 것이다.
니체는 회상이 창조적으로 행동하려는 의지를 봉쇄하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역사 지식으로 하여금 인간의 개혁 능력과 자기 초월의 능력에 기여할 수 있게 한다고 파악하였다. 그렇다면 니체의 마지막 목적은 역사 지식을 인간의 욕구라는 한계 속으로 끌어들여 욕구의 지배자가 아니라 욕구의 노예로 만드는 데 있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니체는 “인간의 행동과 투쟁이라는 면에서 보수적이며 경건한 능력에 도움이 되고, 인간의 고통을 달래는 위안으로서, 그리고 구원에의 열망에 도움이 되는” 기념적, 골동수집적, 비판적 역사가 형성한다고 하였다. 이 세 거지 형태의 역사가 인간의 능력을 촉진시킨다고 하였다.
기념적 역사(환유적 형식)는 창조적으로는 과거의 위대성에 대한 존경을 바탕으로 하여 미래를 지향하도록 인간을 이끌지만, 파괴적으로는 위대한 것에 대한 충동의 토대를 무너뜨린다. 골동 수집적인 역사(제유적 형식)는 창조적으로는 기원에 대한 경건한 외경심을 불러일으키고, 파괴적으로는 현재의 욕구와 갈망에 저항한다. 비판적 역사(아이러니 형식)는 창조적으로는 과거의 위대성과 가치의 신화를 통찰하고, 외경심을 짓밟으며, 과거가 현재를 구속한다는 주장을 거부하는 힘을 가지지만, 파괴적으로는 궐석 재판에 의해서 고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선고함으로써 결국 현재의 범속성을 떠받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처럼 니체에 의하면 역사 의식의 위험성은, 골동 수집적․비판적․기념적 역사의 극단, 다시 말하면 의고주의․현실주의․미래주의의 극단에서 각기 발견된다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과거는 피할 수 없으므로 과거를 읽는 이 세 가지 방법을 종합하는 데 있다. 극단적이거나 파괴적인 특징을 지닌 이 세 가지 형태의 모든 역사 의식에 대해서 니체가 제시한 해독제는 은유 형식으로 작용하는 역사 의식이다. 예술 형식으로서의 니체의 역사 개념은 비극 예술로서뿐 아니라, 특히 순수한 비극 예술로서의 역사 개념이다.
니체는 역사가 일종의 예술 형식이 됨으로써 삶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삶에 기여하는 예술 형식으로 인식된 역사는 진리와 정의에 기여하지 않고 오히려 “객관성”을 지향하게 될 것이고 니체는 객관성을 최고의 형식으로 “구성된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며, 이것은 역사적 지혜가 바로 극작가의 통찰 내지 설화화나 헤이든 화이트가 “플롯 구성”이라고 부른 것과 같은 것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니체는 객관성의 개념을 조심스럽게 이용해야 한다고 경고하였다.
한편, 역사 의식이 지향해야 할 원리는 무엇인가. 니체는 대체로 유럽, 특히 독일에 고통을 안겨준 그러한 형태의 역사 의식은 헤겔 철학과 다윈주의, 그리고 하르트만으로 대표되는 무의식의 철학이라는 세 가지 형태를 취한다고 하였다. 무의식의 지배권을 인정한 하르트만의 이론이나 헤겔의 “세계정신”이나 다윈의 신격화된 자연에 대한 이론은 형식에의 의지가 삶에의 의지에 더욱 유해하게 작용하는 것임으로 위험한 것이다. 역사가 살아 있는 인간의 욕구에 기여하는 것이라면, 그러한 모든 보편적인 체계는 마땅히 배제되어야 한다고 니체는 강조하였다. 결국 니체는 “역사의 질병”에 대한 해독제는 역사 자체에 있다는 결론(아이러니)을 내렸다. 왜냐하면 역사 자체가 역사 문화의 역사적 기원임을 드러내고 있을 때, 그 방향은 “비역사적”(예술의 힘) 또는 “초역사적”(예술과 종교에 시야를 돌리는 힘)인 것으로 알려진 관점을 지향하게 될 것이며, 또 그러한 관점에서 예술의 신화 창조적인 능력이 작용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도덕과 역사
니체의 『도덕의 계보』는 도덕, 인간의 도덕 의식, 인간의 양심 그리고 “선”이나 “악”과 같은 특성에 대한 인간적인 신념의 기원과 본질을 밝히려고 한다. 니체는 루소와 달리 인간이란 근본적으로 선과 악 그 어느 속성도 지니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그렇지만 니체는 멀지 않아 인간이 제한된 “선”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케 하는 방법을 통해서 서구의 도덕사를 구성하기 위한 도식을 제시하였다. 이 해방은 마르크스와 같이 “사회적” 조건으로부터의 해방이며 마르크스와 달리 타인과의 모든 필요한 유대로부터의 해방, 기초가 된다고 여겨지는 모든 “가치들”을 해체함으로써 형성된 무정부 상태와 다를 바 없는 개인의 자기 만족에 대한 기대로 이해하였다.
『도덕의 계보』에 실린 첫 에세이는 “선”과 “악”, “좋은 것과 나쁜 것”이라는 두 가지 형태를 고찰한 것이다. 여기에서 고귀한 인간과 비천한 인간과의 구분은 은유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인간과 개념적으로 사고하도록 강요당한 인간과의 구분으로서 인식된다. 고귀한 인간은 예술의 언어를 사용하며, 비천한 인간은 과학․철학․종교의 언어를 사용한다. 고귀한 인간이 자신의 행동을 “선”으로 부르고 자신과 다른 행동을 “악”으로 부르는 반면, 약자는 자신보다 우월한 자들의 행동을 “악”으로 부르고 자신의 행동을 “선”으로 부르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좋은 것”과 “나쁜 것”의 이분법(완전히 비도덕적이며 개인이 느끼는 쾌락과 고통의 경험을 표현한 것)은 “선악”의 이분법(본질적으로 형이상학적이며 도덕적일 뿐 아니라 질적으로 악한 실체가 개인이나 집단이 규정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행동에 귀속되는 그런 형태의 것)으로 대체된다. 니체 스스로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도덕과 문화를 설명하기 위해서 언어의 비유법을 이용했으며 은유적 언어의 본질적인 창조성이라는 개념에 입각하여, 인간의 자제력에 나타난 은유 그 자체가 수행한 역할의 문제에 매달리고 있었다. 이것은 의식의 전개에 대한 그의 순환 개념이, 은유에서 환유와 제유를 거쳐 아이러니에 이르는 언의 순화에 대한 그의 개념에 반영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순수한 의식으로의 복귀는 필연적으로 은유적인 언어 단계로의 복귀로 인식되었다.
“죄”와 “나쁜 의식”과 “그와 연관된 문제들”에 대해서 쓴 『도덕의 계보』 두 번째 에세이는 인간의 독특한 회상 능력에 관한 재고찰에서 출발하고 있다. 니체는 기억을 인간이 고정된 과거나 특정한 미래에 자신을 결합시키는 나쁜 형태의 성향으로서 설명하였다. 회상하는 능력은 과거에 이루어진 약속에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들을 결정하는 힘을 부여한다. 반면에 망각하는 능력은 우리로 하여금 현재에 살도록 만든다. 따라서 과거와 미래를 “망각”할 때 우리는 명확하게 현재를 “볼” 수 있다. 망각이 회상 때문에 중단될 때, “특히 회상이 약속의 문제가 될 경우에”, 의지는 과거의 조건과 욕구에 얽매이게 되고 건전한 회상을 제물로 바치고서라도 과거의 조건과 욕구를 계속 강화하려고 한다. 따라서 니체는 나쁜 의식은 과거의 행동을 자신의 행동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무능, 과거의 행동을 자신의 의지와는 다른 어떤 동인이나 섭리의 산물로 보려는 충동, 그리고 과거의 행동을 자신보다 우위에 있거나 초월하는 어떤 “능력”의 표현으로 보려는 충동 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파악했다. 반대로 양심은 이미 일어났거나 미래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내 자신의 특성을 나타낸 나의 힘에 의해서 일어났거나 일어날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창조적인 망각이 동시에 창조적인 회상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도덕의 계보』 나머지 부분은 억압과 순화에 관한 심리학의 이론에 의해서 문화․사회․도덕의 역사를 논구한다. 여기서 돌이킬 수 없는 특정한 과거와 공포에 대한 의식은, 본질에 있어서 동일한 것으로 다루어진다. 기억의 창조는 고통에 의해서만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며 개인의 기억과 마찬가지로 문화의 기억도 쾌락이 아니라 고통의 산물이라고 하였다.
니체는 나쁜 의식의 기원을 죄에서 찾는다. 니체에 의하면, 죄의 개념은 보상의 개념에서 발생했다. 그리고 손실과 고통의 관계는 “채권자와 채무자의 계약 관계에서” 발생했다(계급 제도의 토대). 나아가 채무자와 채권자의 관계에서 국가의 기원을 찾는다. 그러나 니체의 실제 목적은 정의의 개념이 본질에 있어서 비도덕적인 인간 존재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고통의 자본화라는 개념을 이용하였다. 니체에 의하면 정의는 강자가 약자의 원한을 감소시키기 위해서 이용한 수단이었다. 즉, 법률의 설정은 개인적으로 멸시를 받거나, 특수한 사정 때문에 행해지는 복수를 방지하고 그것을 객관적인 관계로 바꾸어놓았다. 요컨대, 정의는 “옳고” “그른” 행동에 대한 자의적인 구분에 그 기원이 있으며, 그 결과는 이기적인 감정을 제거화하기 위해서 가해자나 피해자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의 지각을 재조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니체는 사물의 기원이 어디에 있든 존재하는 모든 것은 새로운 의도에 따라 권력에 내포된 요소에 의해서 주기적으로 재해석되고 재정비된다는 역사 방법에 따라 고통과 양심과의 관계를 다시 분석하였다. 니체는 처벌이 공포와 경계와 본능의 제어를 증대시키고, 문명화된 존재의 토대가 될 뿐 아니라, 시초부터 문명의 토대로서 존속해왔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므로 니체에게 “나쁜 의식이란 인간이 이제까지 경험한 가장 심각한 변화-인간을 다만 사회적․평화적인 존재로 만든 변화의 압력에 굴복한 뿌리깊은 질병이었다.” 이 나쁜 의식을 형성하는 배후에는, 본능의 조직적인 억제와 “후에는 인간의 영혼으로 불린 발전의 토양만을 제공하는 ‘내면화’가 놓여 있다.” 여기에 종교의 기원이 있다.
사회, 양심, 종교의 기원에 관한 니체의 설명은 『독일 이데올로기』에 나타난 마르크스의 설명과 근접해 있지만 차이점이 있다. 마르크스는 이 모든 것을 인간의 절박한 생존에 근거하여, 분업을 필요로 하며 생산된 재화의 불평등한 분배를 초래한 사회 조건으로 설명한 데 반해, 니체는 주요 원리를 심리적 요소, 권력에의 의지, 삶에의 의지보다 더 강하고 타인에 대한 지배와 착취뿐 아니라 인간 자신을 파괴하는 능력을 설명하는 요소에서 찾았다. 인간성에 내재한 양심의 기원에 대해 니체는 양심이 형성되는 토대를 강자에게 내재한 순수한 심미적 충동(권력에의 의지에 굴복)과 이러한 충동에 대한 약자의 심리적 반응(권력에의 의지의 억압과 감추어진 본능적인 충동)에서 찾았으며, 이 두 가지 충동은 모두 인류가 지닌 독특하고도 공통적인 권력에의 의지를 포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진.선.미의 “개념”은 지배자들의 자연스런 권력에의 열망이나 삶의 즐거움과는 대비되는 피지배자들인 개인의 실질적인 격하를 통해서 존재하는 것과 마땅히 존재해야 하는 것과의 차이를 발견하는 좌절된 개인의 의지가 낳은 산물이다. 또한 니체는 사회적 양심의 기원을 단순한 권력 관계에서 찾았다. 개인의 책임에 대한 관념이 부채자의 정심에 조직적으로 작용함으로써 고취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도덕적인 연속성도 세대 사이에, 그리고 현존하는 인간과 조상 사이에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채무자와 채권자와의 관계에 나타나는 작용으로 보았다. 그리고 인간이 원시적인 조상으로부터 종고 나쁜 것에 대한 개념을 물려받은 것처럼, “인간은 종족의 신과 결합한, 현저한 부담과 최후의 보상을 받으려는 욕망을 종족으로부터 불려받았다.” 이것이 바로 모든 구원의 종교가 발생하는 기원인데, 그 종교는 개인의 책임과 죄를 인간에게 귀속시킴으로써 조상들과의 관계를 고르디오식의 일도양단의 방법으로 해결하지만, 그 과정에서는 지상에서의 열매를 구원 때문에 영원히 단념해야 한다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따라서 니체는 그리스도교란 은혜와 죄를 영원히 의식하는 가장 고귀한 의식의 승리를 대변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니체는 또한 그리스도교의 완성을 환희의 한 경우로 보았다.
그럼 세대가 짊어진 의무감과 “역사 의식”은 결국 동일하다. “회상”의 능력은 이 두 의식의 중심부에 놓여 있다. 그리고 세대가 짊어진 의무로부터의 도피는 역사 의식으로부터의 도피를 수반한다. 인간이 자신만을 위한 삶을 억제하는 채무자의 심성 때문에 괴로워지 않는다면, 회상은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망각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진리와 역사
니체는 인간이 지닌 자기 단절의 능력이 초래한 결과의 역사를 인류의 관점에서 개관한다. 그는 금욕주의적 이상의 발전을 인간 의지의 한 충동, 즉 의지의 “허무에의 공포”로서 파악하였다. 인간이 동물적 열정을 충분히 발산시킬 수 없을 때 인간은 미덕을 필요로 하며 순결을 하나의 목표와 목적 또는 이상적인 가치로 바꿀 수도 있다. 그리하여 금욕주의적 이상이나 고통과 단절을 신성시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니체에 의하면 고급 문화의 모든 영역은 이러한 금욕적인 충동의 순화가 낳은 산물이다. 니체는 금욕적인 이 문화는 철학자들이 자신의 권력, 전도된 권력 의지를 표현한 하나의 기만이라고 주장하였다. 철학자는 본질에 있어 성직자의 적이지만, 애초부터 철학자에게는 성직자의 위신이 없었으므로 성직자처럼 위장할 수밖에 없었다. 불행하게도 그 위장은 행위자를 사로잡고, 종교로부터 벗어나려는 철학적 충동을, 본래 종교가 발생한 본질과는 다른 금욕적인 새로운 형태의 종교로 바꾸어놓았다. 그 결과 삶에 기여하는 순수한 철학은 소멸되어버렸다. 니체는 당시의 철학적 이상은 “순수이성․절대지식․절대적 사고력”이 이른다는 목적을 지닌, “순수하며 의지가 결여된 고통 없는 영업한 知者”를 동경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어서 니체는 근대의 역사가들을 바로 의지를 갖지 않은 知者의 이상을 구현한 존재로 파악하였다. 근대의 사가들은 역사적 과거 앞에 자신들을 의지와 사고력을 지니지 않은 사건의 “거울”로서 설정하였다. 그들은 다만 검증하고 기술할 따름이었다. 따라서 니체에 의하면, 이 “객관적”인 역사가들은 “위선적인 무기력의 ‘공정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니체는 유럽 문화를 문화 자체가 초래한 소외의 외면적 한계에 도달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비록 허무 때문이기는 했지만 의지도 구제되었다. 오직 허무에의 의지를 자의식으로까지 고양하고, 의지를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계획으로 바꾸며, 금욕적으로 인도된 감성이 인간에게 부과한 모든 짐 가운데서도 지나치게 세련된 이지의 능력을 분쇄하고 파괴하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이것과 그리고 이것만이 적극적인 욕구에의 의지를 발산시킬 것이다. 니체는 이와 같은 파괴와 창조의 작용을 통해서 역사도 초역사적인 예술이 됨으로써 어떤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니체는 공동의 과업을 통해서 인간을 서로 결합시키는 마지막 유대를 끊기 위해서 역사 의식을 이용하였다. 그는 마르크스보다도 더 급진적으로 역사 자체의 궁극적인 해체를 추구하였다. 마르크스처럼 그는 그와 같은 해체가 남긴 조각들의 피안에서 새로운 인간성을 형성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니체는 자율적인 개인을 창조하기 위해서 과거와 미래의 개념에 따라 사회와 문화의 개념을 해체했기 때문에, 새로운 사회나 순화된 문화를 위해 역사 의식을 이용하지는 않았다. 니체에게는 오직 현재만이 있을 뿐이었다. 인간은 그 속에 외로이 존재하며, 그의 영원성처럼 모든 현재의 삶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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