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감벤은 <<목적없는 수단>>의 <이 망명지에서, 이탈리아 일기 1992~4년>에서 이탈리아 사회를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있는데 이 대목에서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사회를 비판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많은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이탈리아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직시하는 글이라 단순한 대입은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그 의미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아감벤은 패배와 불명예를 구별할 줄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며 1994년 이탈리아 국회의원 선거의 좌파 패배를 언급한다. 이탈리아 좌파의 패배는 아감벤이 보기에 대립적인 우파와의 입장 싸움에서 패배한 것이 아니라 "그저 스펙터클, 시장, 기업의 동일한 이데올로기를" 좌파나 우파 중 "누가 실천할지를 결정해준 것"이었기 때문에 불명예라고 강조한다. 아감벤에 의하면 이탈리아 국회의원 선거는 좌파나 우파나 모두 스펙터클한 자본, 국가,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실천하고자 하는 입장에 서 치뤄진 선거였고 여기서 좌파가 패배했다고 본 것이다. 이 때문에 아감벤은 지성의 완전한 부패를 주장한다. 그리고 오늘날의 진보주의를 기만적이고 보수주의적인 형태에 도달한 것으로 파악한다. 장-클로드 밀네르의 글을 인용하면서 더욱 그 이유를 명시하는데, 밀레르는 '진보주의'를 다음과 같은 타협과정으로 본다는 것이다.  

"혁명은 자본, 권력과 타협해야 하곤 했다. 마치 교회가 근대 세계와 협정을 맺어야 했듯이 말이다. 권력을 향해 나아가는 진보주의의 전략을 이끌던 좌우명이 그런 식으로 조금씩 형태를 갖춰갔다. 모든 것에 양보해야 한다. 반대파와 모든 것을 화해해야 한다. 지성은 텔레비전, 광고와 화해하고, 노동계급은 자본과 화해하며, 언론의 자유는 스펙터클한 국가와 화해하고, 환경은 산업발전과 화해하며, 과학은 의견과 화해하고, 민주주의는 투표기계와 화해하며, 죄의식, 개종은 기억, 충실성과 화해해야 한다."(148쪽)

이상과 같은 타협적인 전략이 좌파를 모든 영역에서 화해의 도구와 합의를 마련하는 데 적극적으로 협력하도록 만들었고 결국 선거에서의 패배와 더불어 우파가 별 어려움 없이 자신들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도구와 합의를 그저 사용하면 되도록 했다는 점에서 패배가 아니라 불명예라고 아감벤은 주장한다. 이탈리아의 정치 상황을 비판하는 것이지만 우리 사회와 겹쳐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인가? 한국의 좌파는 밀네르를 인용한 아감벤의 주장처럼 '진보주의'는 아닌가? 한국의 좌파는 이제 어떻게 해야하는가? 아니 무엇을 할 것인가? 스펙터클, 자본, 권력과의 타협 아니면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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