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화사가인 린 헌트는 서구에서의 인권 탄생을 서간소설로부터 찾고 있다. 서간소설을 통한 작가와의 교감으로부터 타인과의 교감, 즉 '동정' 현재 사용하는 용어로는 '공감'을 당대인들은 배우게 되고 이 배움을 통해 비로소 타인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타인과 같다는 '평등'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타인과의 공감만으로 '인권'은 탄생하지 않는다. 저자는 유럽의 전 근대 사회에 만연해 있던 고문이라고 하는 형벌을 통해 그 형벌이 사라지게 되는 것과 결부하여 드디어 인권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강조한다. 즉 '신체의 개인화'가 그것이다. 타인이 고통받는 것을 나도 알고 동일하게 고통받을 수 있다는 '신체의 개인화'가 그것이다.  

이렇게 인권은 탄생하였으며 이를 기반으로 하는 혁명을 통해 탄생하였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다. 여전히 세상에는 고문도 존재할 뿐만 아니라 인권이라는 것이 전혀 없는 그런 사회로 보인다. 저 MB정권이 자행하고 있는 작태를 보라. 용산참사로부터 쌍용자동차사건까지.  

이 점 또한 저자는 알고 있다. 서구는 나치에 의해 인권이라 것을 송두리채 잃어버린 역사도 간직하고 있다. 여기서 린 헌트는 한 편으로는 너무나 당연한 결론인 '자명성'을 주장한다. 여기서 이견을 말할 수도 있겠으나 랑시에르의 '평등' 개념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그 내용을 더욱 세밀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다만 랑시에르가 <타자의 입장>에서 우려하는 차이의 망각효과인 인도주의로서의 인권은 구별하자. 이것은 "정치를 도덕으로 이끌고, 고통 받는 자들을 향한 의무에 완전히 흡수되었으며, 결국에는 열강들의 전략 지정학적 치안들을 수반한 '타자의 입장'이다."(랑시에르,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 228쪽)

 

애정소설이 프랑스혁명을 촉발했다?


연합뉴스 | 2009-07-30 10:44:09

 
'인권의 발명'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18세기 유럽에서는 서간소설(epistolary novel) 열풍이 일었다. 주로 편지 형식으로 젊은 남녀가 전통적인 권위와 자유로운 사랑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암울한 사랑이나 비극적인 운명으로 빠져드는 내용으로 된 소설들이다.

장 자크 루소는 '사회계약론'을 내놓기 직전에 '신(新)엘로이즈'(1761)라는 애정소설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으며, 요한 볼프강 폰 괴테도 '파우스트'에 앞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유럽 근대사 전문가인 린 헌트 미국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UCLA) 교수는 '인권의 발명'(돌베개 펴냄)에서 흥미로운 논리를 펼친다. 사회 어두운 곳에 감춰져 있던 인권을 사람들이 인식하게 된 첫 번째 계기가 바로 서간소설의 유행이라는 것이다.

전지적 시점으로 쓰인 소설과 달리 서간소설은 모든 등장인물들이 편지를 통해 내면적 감정을 표현하기 때문에 독자가 주인공을 실존 인물으로 착각하거나 자신과 동일시하기 쉽다.

서간소설 독자들은 잘 알지 못하는 타인들도 자신처럼 내면에 감성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배워 나간다. 신분이나 나이, 성별 등 사회적 경계를 넘어서 '공감'을 하기 시작한 이 시점이 바로 '평등'의 의미를 처음 깨닫는 순간이다.

"독자는 일상의 감성적 밀도를 이해하고, 자신 같은 대중이 스스로 도덕적 세계를 만들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인권은 이 같은 감정이 뿌려진 온상에서 자라났다. 인권은 오직 대중이 타인을 근본적으로 동등하게 생각하도록 배울 때에만 자랄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해서 인권이 바로 고개를 들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인권의 탄생을 부추긴 그다음 계기로 '신체의 개인화'를 꼽는다.

근대 이전에는 유럽, 나아가 전 세계에서 고문이 횡행했다. 흔히 사람들은 고문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은 인권이 확산됐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순서를 정반대로 바꿔놓는다. 인권 의식이 퍼지면서 고문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고문이 사라지게 되면서 인권이 마침내 탄생했다는 것이다.

고문이란 인간 신체를 사회적, 종교적 질서 안에서 마음대로 주무르는 행위다. 그러나 인체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시작하면서 18세기에는 사람의 몸이 사회나 종교에 귀속된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것이며, 다른 사람의 몸과도 분리돼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를 잡는다.

"법률적으로 인가된 고문이 종식된 것은 재판관이 그것을 포기했거나 계몽사상이 그것에 반대했기 때문이 아니다. 고문이 종식된 것은 고통과 인격에 대한 전통적 틀이 깨지고 한 단계 한 단계 새로운 틀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마침내 자신의 신체를 소유하게 되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의 몸과 감정, 고통을 인정하기에 이른다.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었다면, 다음으로는 자연스럽게 이를 널리 알리고 못박아두려는 실천적 움직임이 뒤따른다. 그 결과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이다. 미국에서는 '독립선언'을, 프랑스에서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했으며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그러나 인권의 역사는 아직 '해피엔딩'을 맞지 못했다. 인간은 18세기 들어 인권을 찾아냈으나 인권은 '장기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가장 큰 벽은 민족주의다. 사람들은 점점 집단 폐쇄적이고 방어적으로 변했고 타인에 대한 혐오감을 쌓았다.

이는 제국주의라는 극단적 형태로 변질됐고 제2차 세계대전은 '6천만명의 죽음이라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인간의 야만성'을 보여줬다. 전쟁은 끝났지만 인권의 보장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인권이 보란듯이 짓밟히고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자신이 "인권의 역사에서 '자명성(自明性)'을 가장 중시한다"고 밝혔다. 인권이란 사실 모호한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인권이 사라져 없는 상태가 돼야 인권이 진정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는다. 그럼에도 인권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당연히 존재하며, 존재해야만 하는 진리임을 모든 이들이 아는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는 게 바로 자명성이다.

자명성을 희망하면서 책을 마무리하는 저자는 '공감'의 문제를 다시 한번 꺼내 든다.
"인권의 역사는 결국 수많은 개인들의 감정, 신념, 실천으로 권리를 가장 잘 방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당신은 인권의 의미를 안다. 왜냐하면 그들이 불의를 겪을 때 당신은 괴로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인권의 진리는 역설적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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