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적으로 가장 문제시되고 있는 기후 위기의 역사적 근원을 화석 자본으로부터 추적해 그 자본주의의 무한한 확대재생산의 메커니즘을 밝히고 있다. 검은 돌인 석탄이 화석 자본으로 연소되어 탄소를 본격적으로 배출하기 시작한 시기와 나라는 영국과 산업혁명 이후이며 이 또한 소유 관계로 말미암아 석탄이 동력-권력이 되었다는 주장으로 구체화된다. 결국 이 동력-권력을 둘러싼 자본주의 메커니즘이 기후 위기와 지구 멸망의 길을 앞당기고 있는 것이다. 태양력, 풍력 등 재생 에너지에 대한 논의가 있는 현재 시점에도 여전히 왜 더디며 이에 대한 자본적 저항이 난무하는지도 마찬가지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화석 자본의 은폐된 장막이 기후 위기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대안적 탐색으로 등장한 인류세 서사의 문제점도 지적한다. 즉, 인류세 서사는 화석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눈감고 기후 위기를 인류의 보편적 행위로 본다는 점에서 기후 위기의 진정한 주범에게 면죄부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화석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추동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시대는 여전히 자본의 시대이며 '자본세'라고 할 수 있다.더불어 서발턴 연구자인 디페시 차크라바르티의 <<행성 시대 역사의 기후>>가 지닌 문제점을 지적한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즉, 차크라바르티는 기후 위기가 '자본주의의 위기와는 다르게 부유층과 특권층을 위한 구명정이 없다'. 인류라는 하나의 종은 '공통의 재앙 경험을 통해서 보편적인 단일 존재'가 된다고 주장하지만, 저자는 현실 세계가 '기후변화의 모든 충격에 대해 차별화된 취약성'을 드러내는 이 모든 사실을 보라고 강조한다. 나아가 '언제나 부유층과 특권층을 위한 구명정은 있을 것이며, 공통의 재앙 경험은 없을 것이다'고 단언한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저자는 벤야민의 역사테제 8번의 "억압받는 자들의 전통은 우리가 그 속에서 살고 있는 '비상사태'가 예외가 아니라 상례임"을 자각하며 "가서 피어나는 저 연기를 멈추자!"고 한다. '전망은 암울하다. 그러니까 더더욱 행동에 나설 필요가 있는 것'이라고 글을 맺고 있다. 은폐된 기후 위기의 역사적 과정을 직시하며 어떻게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과 사유로 우리를 이끈다는 점에서 현 시점에서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