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1
임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인의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책이다. 전체 5권이며 1980년 5월 16일부터 열흘 간 광주에서 벌어진 일을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다.

 

프롤로그에 너무 뭉클한 부분이 많아서 옮겨 적어 본다.

 

'그들은 잊고 있다. 총구 옆 혹은 뒤편에 비켜나 있었던(물론 그것은 누구의 탓도 아니다) 사람에게 그것은 단지 하나의 중요한 역사나 사건의 항목으로 어렵지 않게 정리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번 총구 앞에 세워졌던 사람들에겐 그것은 영원한 악몽이거나 좀처럼 치유되기 어려운 생채기라는 사실을. 어차피 고통은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의 몫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특히

 

‘... 아니 무엇보다, 아직도 강기슭을 서성이고 있는 그 도시 사람들에겐 최소한 ’미안했다‘는 한마디 대신 ’화해‘니 ’용서‘니 '역사의 장에 맡기자'느니 하는 말들을 이렇듯 쉽사리 강요해도 좋을 만큼 이 시대는, 그리고 우리들은 정말 떳떳한가.'

 

이 부분은 눈을 한참이나 머물도록 했다. 2012년 대선때 광주 유권자의 92%가 문재인에게 투표했다는 결과를 두고 지역주의니 뭐니 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난 왠지 가슴에서 울컥하는 울음같은 게 느껴진다. 영남지역에서의 박근혜 몰표와 호남지역에서의 문재인 몰표 현상을 동일한 기준으로 바라봐선 안 될 것 같다.

 

책은 80년 5월 16일의 일지부터 시작되는데, 1권의 경우 시위 진압을 앞두고 있는 병사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다루고 있어서 '익숙한 주제의 신선한 소재'라는 생각을 했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유령의 도시처럼 텅빈 시가지의 풍경들뿐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잠들어 있었고, 대문은 차갑게 잠겨 있었다. 이따금 놀라 잠을 깨고 일어났던 사람들은 이내 창문을 내리닫고 황급히 사라져벼리곤 할 뿐, 그 거대한 도시는 완벽한 정적과 무관심 속에 닫혀 있었다.

병사들은 자신들이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확인하고 있었다. 이 거대한 도시에서 버림받은 것은 오직 자신들만이라는 느낌. 자신들이 그 지긋지긋한 훈련과 기합으로 날이면 날마다 녹초가 되어 있는 바로 그 순간에도, 담 바깐의 세상에선 전혀 다른 모습의 전혀 다른 사람들이 전혀 다른 삶을 즐기고 있었으리라는 사실이, 트럭 위에 앉은 병사들을 불현듯 분노로 부글부글 끓어오르게 하고 있었다. 그 분노는 어떤 배신감이거나 혹은 질시, 억울함 같은 것이기도 했다."(227)

 

 한 남자가 시민들을 때리고 잡아가는 군인들은 김일성이 남파시킨 무장공비들이 틀림없으니 112에 신고해야 한다고 우기고, 다른 한 남자가 실성한 소리 말라며 뜯어 말리는 내용이 나와있는 페이지는, 책을 읽는 동안 유일하게 웃을 수 있는 부분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oyoung1404 2013-01-06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딴 얘기지만, 너 점점 우리 지역에 대한 동경이 커지는 것 같다 ㅋ

자네 2013-01-10 22:1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우리 지역'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게 부러울 정도!!ㅋㅋ
 
죄와 벌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2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홍대화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죄와 벌>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비극 다섯 작품 중 첫번째로 쓰여진 소설이라고 한다. 다른 네 작품은 백치, 미성년, 악령,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이다. 이 중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을 읽었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우울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 <죄와 벌>과 비슷한 느낌의 책이었던 것 같다. 지금 막 예전에 썼던 리뷰를 뒤져 보니까, 별 내용은 없지만(;;) '도스트예프스키는 러시아에 대해 또 이야기들을 풀어갈 수 있을까'라고 끄적인 부분이 있는 걸로 봐서,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을 읽으며 당시의 러시아를 잘 느낄 수 있었다고 여겼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에필로그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세계 속에서 장소와 무대 장치는 등장인물과 신비할 정도로 긴밀하게 연관된다. 이들은 물질적인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상징물들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소설의 배경이 된 도시, 빼쩨르부르그에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제목이 <죄와 벌>이듯, 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은 주인공이 노파를 살해한 뒤 겪는 심리적 징벌을 다루고 있다. 작품속에서 라스꼴리니꼬프에게 다가오는 징벌은 육체적인 징역살이도 아니고, 후회의 심정도 아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더럽고 해로운 <이> 같은 존재, 아무에게도 필요치 않은 고리대금업자'라고 생각하는 노파를 살해한 것에 대해 나폴레옹이였더라도 대의를 위해 노파와 같은 <이> 같은 존재를 수도 없이 죽였기 때문에 자신의 행위는 정당했다고 합리화한다. 자수를 하는 그 순간에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범죄 사실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끊임없이 의심하며, 그 사실의 긍정과 부정에 따라 기쁨과 절망, 공포감을 번갈아 느낀다.  가장 사랑하는 가족마저도 불신하고 원망하게 되면서 주인공의 정신과 육신이 어떻게 죽어가는지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주인공을 무너뜨리는 것은 죄의식이 아니라, 자신이 나폴레옹과 같은 범인 아니라 스스로 <이>라고 표현했던 보통의 비범인과 다를 바 없는 존재하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느끼게 되는 절망감이라는 사실이다.

 

소설의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과대 망상증에 걸리고 영웅중의에 빠진 정신분열증 환자' 정도가 될 것 같다. 이런 주인공의 심리가 잘 납득이 되지 않으면서도, 오늘날처럼 인간에 대한 존엄성 혹은 각자가 느끼는 자아존중감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는 주인공 처럼 자신의 존재 가치를 왜곡된 방식으로 증명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이 생겨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 덕분에 2012년 연말의 무료함을 덜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죄와 벌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홍대화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 1권, 도스또예프스키의 죄와벌 상권을 읽고 있다. 살인을 저지른 라스콜리니꼬프의 심리 묘사가 잔인할 정도로 잘 되어 있어서 마치 내가 죄인이 된 것 마냥 심장이 쫀득쫀득 해진다.

그리고 이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는 매우 좋은 것 같다. 읽는데 어려움이 없으니 번역상 오류나 난해함도 없는 것 같고 무엇보다 두껍지만 작고 가벼워서 똑바로 눕든, 비스듬히 눕든 자유자재로 들고 읽을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망 좋은 방 열린책들 세계문학 28
E. M. 포스터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열린책들의 세계문학 28번째 책, E.M.포스터의 소설 <전망 좋은 방>을 읽었다.

사촌지간인 루시와 샬럿은 이탈리아 여행 중, 예약 당시 약속받았던 것과는 달리 배정받은 숙소의 전망이 좋지 않자 숙소주인과 실랑이를 벌이게 된다. 이를 지켜보던 에머슨 부자가 전망이 비교적 좋은 자신들의 방을 루시와 샬럿에게 양보하고 첫만남에 이은 몇차례의 마주침으로 루시와 조지 에머슨은 운명적 끌림을 경험한다. 혼란스런 감정에 휩싸인 루시는 샬롯을 설득해 피렌체에서의 여행을 정리하고 로마로 떠난다.

조지에 대한 감정이 사랑이란걸 깨닫지 못한.. 어쩌면 진작에 깨달았지만 인정할 수 없었던 루시는 로마에서 만난, 조지보다 부유하고 학식과 사회적 지위도 높은 세실과 약혼까지 한다.

'아주 사소한 일'들이 만들어낸 운명의 결과물들로 인해 엔더슨 부자가 루시의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되고, 루시와 조지는 재회한다. 결국 루시가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며 살기보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삶을 살기로 결심하게 되면서 조지와 결혼에 골인하는 이야기.

드라마에서 많이 본 것 같은, 너무 흔해서 요즘은 잘 쓰이지 조차 않는 통속적이고, 식상한 구조와 설정이지만.. 여전히 사랑은 아주 사소한 우연과 우연을 가장한 필연 또는 의도된 우연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자.. 그것을 얻기위해선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겁쟁이 루시가 대범한 루시로 거듭났듯 나도 그렇게 용감해질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검은 꽃 - 개정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오마이뉴스 인턴 시절 좋은 선배였던 기자분의 블로그에서 소장하고 있는 책을 간단히 정리하여 소개한 글을 읽었다. 그 중 흥미롭게 읽었다던, 내가 읽어보지 못한 몇 권을 꼽아 수첩에 적어 두었었는데, <검은꽃>은 바로 그 책들 중 하나이다. 이것 말고도 임철우의 <봄날>, 김지우의 <나는 날개를 달아줄 수 없다>, <차마고도>, <남부군>, <실크로드, 움직이는 과거> 등의 책과 성석제, 공선옥 등의 작가 이름을 적어두었다.

 

<검은꽃>은 인터넷으로 구매하지 않고, 얼마 전 영호오빠가 커피 잘 마셨다는 인사와 함께 주고 간 춘천문고 도서할인권(2500원 상당)을 보태 서점에서 직접 샀다. 인터넷으로 구매했을땐, 택배 상자를 열어볼때의 두근 반, 세근 반 하는 묘한 떨림이 좋지만, 보통 두 권 이상을 함께 주문하기 마련이기에 책 한권, 한권에 대한 애착감 같은 건 덜하다. 하지만 서점에선 사고 싶은 이것 저것들 중 당장 보고싶은 딱! 한권을 꼽아서 구매하기 때문에 결제 후 점원으로부터 건내받는 '내 책'이 그렇게 애지중지 소중할 수가 없다.

 

김영하의 <검은꽃>은 1905년 4월, 영국의 대륙식민회사를 통해 멕시코로 떠나는 가난한 이주민들의 이야기이다. 이민의 역사는 1902년에 시작되어 을사조약이 체결되는 1905년에 중단되니 지옥에서 또 다른 지옥으로 떠나는 마지막 배를 탄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겠다.  

 

대한제국의 군인 출신 조장윤, 부모를 잃고 보부상단을 따라 떠돌던 아이 김이정, 제물포 도둑 최선길, 황족 이종도와 그의 딸 이연수 등이 등장한다. 그리고 고종의 육촌인 이종도에서부터 이름조차 없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 1033명이 탄 배에서 유일한 권력자로 통하는 권용준이라는 자까지.

 

배에서 첫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 사람들이 시체 처리 문제를 두고 우왕좌왕 하고 있는 가운데 과거 무당이었던 자가 등떠밀려 나와 굿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식민지배 과정에서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인간성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유린되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았다.

 

"넘어갈 아리랑 고개가 없는 끝없는 평원은 그야말로 낯선 풍경이어서 사람들은 딱히 바닥이 딱딱해서라기보다 지평선이 주는 막막함과 공허로 뒤척였다."(105)

 

이 부분을 읽은 뒤 지척에 있는 산과 들, 강을 허투루 보지 않게 되었다. 익숙한 것이 부재하게 되었을때, 그러니까 정말 산이 눈 앞에서 사라졌을 때 얼마나 막막할까 그런 상상을 하게 된다.

 

"극심한 노동자 부족으로 곤란을 겪고 있던 유카탄 반도의 에네켄 농장주들은, 스페인어를 못해 도주의 우려도 없고 외교관이 주재하지 않아 간섭의 여지도 없는 조선인들에 비교적 후한 값을 쳐주었다."(111) '애니깽'이란 영화 제목이 '에네켄'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스물다섯개의 농장에 분산 수용된 조선의 이민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들이 얼마나 불합리하고 부당한 시스템 속에 들어와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존마이어스와 대륙식민회사에 철저히 속은 것이었다. 자유롭게 일하며 많은 돈을 벌어 금의환향 할 수 있다는 말은 사탕발림이었다. 원주민들을 농노화하여 몇백년간 공고해진 이 대농장 시스템하에서, 동아시아의 어수룩한 이민자들에겐 어떤 희망도 없었다. 이것은 멕시코의 모든 약자들이 공히 겪고 있는 현실이었다. 조선인들은 그런 사정을 전혀 모른 채 통신과 교통이 거의 두절된 유카탄의 시골 농장에 처박혀 겁먹은 쥐처럼 눈동자를 굴리며 이 끔찍한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를 절망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계약이 만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귀국하지 못하는, 가지지 못한 자들의 불행과 절망이 잘 느껴졌다. 삶을 지탱하는 건 이념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했다. 아이들에게도 일제강점기 이주민들의 삶을 제대로 보여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영화 <애니깽>의 파일을 찾고 있는데, 어디에도 없다.

 

<애니깽> 파일을 갖고 계신 분, 공유해주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