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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 하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홍대화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죄와 벌>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비극 다섯 작품 중 첫번째로 쓰여진 소설이라고 한다. 다른 네 작품은 백치, 미성년, 악령,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이다. 이 중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을 읽었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우울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 <죄와 벌>과 비슷한 느낌의 책이었던 것 같다. 지금 막 예전에 썼던 리뷰를 뒤져 보니까, 별 내용은 없지만(;;) '도스트예프스키는 러시아에 대해 또 이야기들을 풀어갈 수 있을까'라고 끄적인 부분이 있는 걸로 봐서,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을 읽으며 당시의 러시아를 잘 느낄 수 있었다고 여겼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에필로그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세계 속에서 장소와 무대 장치는 등장인물과 신비할 정도로 긴밀하게 연관된다. 이들은 물질적인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상징물들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소설의 배경이 된 도시, 빼쩨르부르그에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제목이 <죄와 벌>이듯, 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은 주인공이 노파를 살해한 뒤 겪는 심리적 징벌을 다루고 있다. 작품속에서 라스꼴리니꼬프에게 다가오는 징벌은 육체적인 징역살이도 아니고, 후회의 심정도 아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더럽고 해로운 <이> 같은 존재, 아무에게도 필요치 않은 고리대금업자'라고 생각하는 노파를 살해한 것에 대해 나폴레옹이였더라도 대의를 위해 노파와 같은 <이> 같은 존재를 수도 없이 죽였기 때문에 자신의 행위는 정당했다고 합리화한다. 자수를 하는 그 순간에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범죄 사실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끊임없이 의심하며, 그 사실의 긍정과 부정에 따라 기쁨과 절망, 공포감을 번갈아 느낀다. 가장 사랑하는 가족마저도 불신하고 원망하게 되면서 주인공의 정신과 육신이 어떻게 죽어가는지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주인공을 무너뜨리는 것은 죄의식이 아니라, 자신이 나폴레옹과 같은 범인 아니라 스스로 <이>라고 표현했던 보통의 비범인과 다를 바 없는 존재하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느끼게 되는 절망감이라는 사실이다.
소설의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과대 망상증에 걸리고 영웅중의에 빠진 정신분열증 환자' 정도가 될 것 같다. 이런 주인공의 심리가 잘 납득이 되지 않으면서도, 오늘날처럼 인간에 대한 존엄성 혹은 각자가 느끼는 자아존중감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는 주인공 처럼 자신의 존재 가치를 왜곡된 방식으로 증명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이 생겨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 덕분에 2012년 연말의 무료함을 덜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