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으로 가다
박민규 지음 / 어진소리(민미디어) / 2002년 2월
평점 :
절판


연수 이틀째, 선교장 답사 일정이 예정보다 일찍 끝나서 시립도서관에 왔다. 가방 속에 있는 책 말고, 지금! 이곳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서가에 들어가 책을 고르기 시작했다. 수첩에 빼곡히 적어두었던 책 이름이, 정작 필요한 순간임에도 생각이 안 나는 거다. 한국 소설 코너의 책 분류가 저자의 이름 ㄱ,ㄴ,ㄷ 순으로 되어 있길래 작가의 이름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성석제, 공선옥, 박민규, 황석영이 생각났고,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읽고 싶어졌다. 재밌다는 얘기를 여러번 들었었고, 어쩌다 먼저 읽게 된 박민규의 다른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무지 재밌어서 다른 소설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무엇보다  최근에 박민규를 기억에서 끄집어내게 된 특별한 계기기 있었던지라...

 

서가를 뒤졌더니, 하필 박민규의 책 중 하필 그것만 없다;; 성석제와 공선옥의 다른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가 <태양으로 가다>라는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읽으면서도 느꼈던 것 같은데, 이 사람의 책, 일단 전체 분위기가 심각하고 우울하면서 소재 자체는 좀 독특하고 기발하다. <마지막 팬클럽>의 분위기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박민규의 세번째 소설이라는 이 <태양으로 가다>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불안, 고독, 소외, 자기 파괴의 심리는 <파반느>의 또다른 주인공에게도 그대로 이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한권을 거의 다 읽어갈 때 쯤 되면 남은 페이지 수를 헤아리게 되는데, <태양으로 가다>는 마지막 장을 읽는 순간까지 호흡이 쭉 이어지게 하는 긴장감이 있다. 다만 결말이 좀 허무하다는 점에서 <파반느>보다는 완성도가 덜 하다는 생각이 든다. 통속적인 말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점차 고립되고 소외되어 가다가 자기 부정에까지 이르게 되는 인간의 심리를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이 설정한 상황과 주인공이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은 매우 독특하고 충격적이다.

 

주인공 조영하는 자기 귀를 자르려던 결심을 포기했고 결국 '고흐'가 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소설의 결말은 결코 희망적이진 않지만, 실현 불가능한 희망을 꿈꾸게끔 기대 혹은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아하게도.. 좀, 위로가 되는 소설인 것 같다. 이런 현실적인 소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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