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꽃 - 개정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오마이뉴스 인턴 시절 좋은 선배였던 기자분의 블로그에서 소장하고 있는 책을 간단히 정리하여 소개한 글을 읽었다. 그 중 흥미롭게 읽었다던, 내가 읽어보지 못한 몇 권을 꼽아 수첩에 적어 두었었는데, <검은꽃>은 바로 그 책들 중 하나이다. 이것 말고도 임철우의 <봄날>, 김지우의 <나는 날개를 달아줄 수 없다>, <차마고도>, <남부군>, <실크로드, 움직이는 과거> 등의 책과 성석제, 공선옥 등의 작가 이름을 적어두었다.

 

<검은꽃>은 인터넷으로 구매하지 않고, 얼마 전 영호오빠가 커피 잘 마셨다는 인사와 함께 주고 간 춘천문고 도서할인권(2500원 상당)을 보태 서점에서 직접 샀다. 인터넷으로 구매했을땐, 택배 상자를 열어볼때의 두근 반, 세근 반 하는 묘한 떨림이 좋지만, 보통 두 권 이상을 함께 주문하기 마련이기에 책 한권, 한권에 대한 애착감 같은 건 덜하다. 하지만 서점에선 사고 싶은 이것 저것들 중 당장 보고싶은 딱! 한권을 꼽아서 구매하기 때문에 결제 후 점원으로부터 건내받는 '내 책'이 그렇게 애지중지 소중할 수가 없다.

 

김영하의 <검은꽃>은 1905년 4월, 영국의 대륙식민회사를 통해 멕시코로 떠나는 가난한 이주민들의 이야기이다. 이민의 역사는 1902년에 시작되어 을사조약이 체결되는 1905년에 중단되니 지옥에서 또 다른 지옥으로 떠나는 마지막 배를 탄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겠다.  

 

대한제국의 군인 출신 조장윤, 부모를 잃고 보부상단을 따라 떠돌던 아이 김이정, 제물포 도둑 최선길, 황족 이종도와 그의 딸 이연수 등이 등장한다. 그리고 고종의 육촌인 이종도에서부터 이름조차 없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 1033명이 탄 배에서 유일한 권력자로 통하는 권용준이라는 자까지.

 

배에서 첫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 사람들이 시체 처리 문제를 두고 우왕좌왕 하고 있는 가운데 과거 무당이었던 자가 등떠밀려 나와 굿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식민지배 과정에서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인간성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유린되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았다.

 

"넘어갈 아리랑 고개가 없는 끝없는 평원은 그야말로 낯선 풍경이어서 사람들은 딱히 바닥이 딱딱해서라기보다 지평선이 주는 막막함과 공허로 뒤척였다."(105)

 

이 부분을 읽은 뒤 지척에 있는 산과 들, 강을 허투루 보지 않게 되었다. 익숙한 것이 부재하게 되었을때, 그러니까 정말 산이 눈 앞에서 사라졌을 때 얼마나 막막할까 그런 상상을 하게 된다.

 

"극심한 노동자 부족으로 곤란을 겪고 있던 유카탄 반도의 에네켄 농장주들은, 스페인어를 못해 도주의 우려도 없고 외교관이 주재하지 않아 간섭의 여지도 없는 조선인들에 비교적 후한 값을 쳐주었다."(111) '애니깽'이란 영화 제목이 '에네켄'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스물다섯개의 농장에 분산 수용된 조선의 이민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들이 얼마나 불합리하고 부당한 시스템 속에 들어와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존마이어스와 대륙식민회사에 철저히 속은 것이었다. 자유롭게 일하며 많은 돈을 벌어 금의환향 할 수 있다는 말은 사탕발림이었다. 원주민들을 농노화하여 몇백년간 공고해진 이 대농장 시스템하에서, 동아시아의 어수룩한 이민자들에겐 어떤 희망도 없었다. 이것은 멕시코의 모든 약자들이 공히 겪고 있는 현실이었다. 조선인들은 그런 사정을 전혀 모른 채 통신과 교통이 거의 두절된 유카탄의 시골 농장에 처박혀 겁먹은 쥐처럼 눈동자를 굴리며 이 끔찍한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를 절망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계약이 만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귀국하지 못하는, 가지지 못한 자들의 불행과 절망이 잘 느껴졌다. 삶을 지탱하는 건 이념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했다. 아이들에게도 일제강점기 이주민들의 삶을 제대로 보여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영화 <애니깽>의 파일을 찾고 있는데, 어디에도 없다.

 

<애니깽> 파일을 갖고 계신 분, 공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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