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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를 위한 변명, 군주론 ㅣ 나의 고전 읽기 23
조한욱 지음, 니콜로 마키아벨리 원작 / 미래엔아이세움 / 2015년 7월
평점 :
'범인은 절름발이다!!'
유주얼 서스펙트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 반전을 미리 공개하면, 그것은 엄청난 스포일러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키아벨리와 그의 가장
유명한 저서인 '군주론'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을 수많은 독자들에게, <마키아벨리를 위한 변명, 군주론>은 이와 같은 반전을
선사한다. 다만 영화 속 반전과 달리 이 책의 반전은 초반부터 공개되고, 심지어 서양사상사를 오랫동안 연구한 저자 조한욱 교수의 자세한 설명이
덧붙여진다. 실례를 무릅쓰고,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 미리 그 반전을 살짝 공개한다.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는
사실 공화주의자다.'
목적을 위해서 군주는 온갖 부도덕한 수단을 활용할 수 있다는 극단적 현실주의 정치 이론가로 알려진 마키아벨리가 공화주의자였다는 사실은
독자들을 다소 당황스럽게 한다. 사실 <군주론>은 마키아벨리가 <로마사 논고>라는 책을 집필할 때 두 달에 걸쳐 급히 쓴,
소책자로 된 실용서적이다. <로마사 논고>에는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적에 대한 이상이 잘 나타나 있다. 실제로 마키아벨리는 공화정 시기
관직에 봉직했던 인물로, 메디치 가문의 지배가 복구된 뒤 감옥살이까지 했다. 그렇다면 그의 공화주의에 대한 이상향이 담긴 <로마사
논고>와 메디치 가문의 군주에게 바치는 통치 교본 <군주론>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동안 많은 정치사상가들은 이 간극을 설명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어느 하나 명쾌한 해설은 없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맥락주의(contextualism)적인 설명을 시도한다. 풍요롭고 유서 깊지만, 정치적인 격동이 심했던
도시국가 피렌체와 인간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르네상스 시대를 살았던 마키아벨리의 공간, 시간적 맥락(context)을
분석하여 <군주론>이라는 자료(text)를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책의 머리말과 1장에 걸쳐 잘 드러나 있는 이러한 분석을
통해 저자는 그동안 많은 정치사상가들이 넘지 못했던 한계를 단번에 넘어섰으며, 역사학자로서 줄곧 강조했던 맥락주의적
접근방법이 <군주론>이라는 소책자를 그 어떤 전집보다 두껍게 읽게 한다.
이 책은 서양사의 권위자인 저자가 로마시대부터 르네상스 시대까지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설명을 곁들여 <군주론>을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 책 곳곳에서 인용되고 있는 <군주론>의 내용들은 마키아벨리가 15~16세기 피렌체의
사람들을 분석하여 저술한 것이지만, 우리에게도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마키아벨리가 했던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을, 수많은 정치적 격변을
겪은 현재의 대한민국 사람들은 깊이 공감할 것이다. 특히나 '비르투(virtu)'와 포르투나(fortuna)'같은 마키아벨리의 용어들을
서양사상사의 흐름 속에 위치시켜 주는 저자의 설명은 <군주론>에 대한 최고의 분석이다. 청소년용으로 쉽게 설명된 책이지만, 다 읽고
나면 어른들이 더 깊은 감동을 받으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