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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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미제라블>이 개봉되었을 때, 한겨레 21 주간지에 관련 기사가 실렸었다. 레비제라블 처럼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앞으로 더 개봉될 예정이라며, <안나 카레리나>와 <위대한 개츠비>를 언급한 기사였다. 제목은 친숙하지만 읽지 않아 내용은 모르는, 그런 책 중 하나였기 때문에, 그 기사를 보고 읽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인 피츠제럴드의 작품으로, 1920년대 미국의 사회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재즈와 자동차, 도박은 1920년대 미국을 상징하는 것들인데, 피츠제럴드의 '재즈 시대의 왕자'라고 부른다고도 한다.  피츠제럴드는 실제로 물질적 성공을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는데, 작가의 이러한 태도는 개츠비에게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개츠비에게 삶의 지향점이자 목표, 목적이었던 데이지 역시 작가의 실제 아내와 비슷하다고 한다.  

 

1차 대전 이후 미국은 유례없는 경제 성장을 이루지만,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허황된 꿈을 쫓도록 부추겼고, 도덕적 타락을 낳게 했다.

 

"그들 모두 증권이든 보험이든 자동차든 뭔가를 팔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들은 적어도 눈 먼 돈이 가까이 있음을 고통스러울 정도로 꿰뚫어 보고 말만 어떻게 하면 그 돈이 자신의 것이 되리라고 확신하고 있는 모양이었다."(64)

 

"1919년에 월드 시리즈가 조작된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 사건은 우연히 발생한 일이라고, 불가피한 여러 상황이 얽힌 결과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한 인간이 오천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믿음을 갖고 놀 수 있으리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도 금고를 폭파시키는 강도처럼 집요하게 말이다."(106)

 

개츠비가 주말마다 벌이는 사치스러운 파티에 부나비떼 처럼 모여 들었던 사람들이 그의 몰락 이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부분은 부를 통해 얻은 명성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를 잘 느끼게 하는 것 같다. 톰이나 데이지 같은 인물이 반성, 성찰 없이 살아나는 '부나비'를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개츠비 자신도 전화가 걸려 오리라고는 믿지 않았을 것이고 이미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그는 그 옛날의 따뜻한 세계를 상실했다고, 단 하나의 꿈을 품고 너무 오랫동안 살아온 것에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고 느꼈던 것이 틀림없다. 그는 장미 꽃이 얼마나 기괴한 것인지, 또 거의 가꾸지 않은 잡초 위에 쏟아지는 햇볕이 얼마나 냉랭한 것인지 알았을 때,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나뭇잎 사이로 낯선 하늘을 올려다보며 몸서리를 쳤음에 틀림없다. 현실감이라고는 없는 세계, 가엾은 허깨비들이 공기처럼 꿈을 마시며 이리저리 방황하는 새로운 세계... 형체도 없는 나무를 헤치고 그를 향해 서서히 다가오는 그 잿빛 환영의 인물처럼."(227~228)

 

여기서 '가엾은 허깨비들이 공기처럼 꿈을 마시며 이리저리 방황하는 새로운 세계'라고 하는 부분은 1920년대의 미국, 그 자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개츠비는 결국 허망하게 죽지만, 그가 적어도 톰, 데이지와는 다르게, 꿈과 환상을 간직하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온갖 희생을 감내했다는 점에서 '위대한 개츠비'라고 쓰여지게 된 것이 아닐까.

 

"그리고 달이 점점 높이 떠오르면서 실체 없는 집들이 녹아 없어져버리자 나는 서서히 옛날 네덜란드 선원들의 눈에 한때 꽃처럼 찬란히 떠올랐던 이 옛 섬이 어떤 곳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바로 이 섬이야말로 신세계의 싱그러운 초록빛 가슴이었던 것이다. 이 섬에서 사라진 나무들, 개츠비의 저택에 길을 내준 나무들은 한때 인간의 모든 꿈 중 마지막이자 가장 컸던 꿈에 소곤거리며 유혹했던 것이다. 덧없이 흘러가 버리는 매혹적인 한 순간 인간은 이 대륙을 바라보며 숨을 죽였음에 틀림없었다."(254)

 

이 부분은 개츠비가 품고 있던 꿈, 환상이 미국을 낳게 한 원동력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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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여 잘 있거라 - 어니스트 헤밍웨이 장편소설 열린책들 세계문학 199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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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수업 준비하다가 인터넷에서 1차대전에 대한 글쓰기수업 자료를 찾았는데, 관련 도서들 중 읽지 않은 것이 많아서 적어 두었었다. 개선문, 서부 전선 이상 없다, 귀로, 동물농장, 생명의 불꽃, 리스본의 밤 등.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도 그 중 한권이다.

지난주 목요일, 시립도서관에서 하는 인문학강좌를 들으러 갔다가 처음 자료실 구경도 하고 대출증을 만들어 이 책을 대여했다.

소설의 배경은 전쟁이 한창 진행중이던 1915년, 이탈리아다. 주인공 헨리는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전선에 참전한 미국인 중령이다. 엠블런스 후송 작업을 총 지휘하는 일을 맡고 있다. 전쟁 중 부상을 입어 밀라노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던 중 간호사 캐서린과 사랑에 빠졌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헤밍웨이가 1차대전 중 미국 적십자사의 자원병 장교로 뽑혀 구급차 운전사로 활약했던 실제의 경험담과 일치한다고 한다.

헨리는 부상에서 회복되자 다시 전투에 투입되었다. 오스트리아군의 공격에 밀려 부하들을 이끌고 후퇴하던 중 위장한 독일군으로 몰려 아군에 의해 총살당할 위기에 처한다.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해 캐서린과 재회했지만, 탈영병 처지였기에 쫓기는 신세가 됐다. 하지만 스위스로의 망명에 성공하게 되면서 그곳에서 행복한 생활을 만끽하며 지낸다. 책의 마지막 5부는 이 행복이 어느 순간 불행으로 돌변할 것이라는 불안감을 계속 느끼게 했다. 전쟁 소설이 해피엔딩일 수는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 그리고 지금 누리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돌연 불행은 찾아오더라, 하는 어떤 경험들 때문에.

제왕절개 끝에 태어난 아기가 죽고 회복하던 중 캐서린 마저 죽음으로써 소설은 끝을 맺는다. "잠시 후 병실에서 나온 나는 병원을 벗어나 비를 맞으며 호텔을 향해 걸었다."하며 소설은 끝이 나는데, 이러한 결말은 주인공에 대해 어떤 연민도, 동정도 불가능하게 하는 것 같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기대나 희망 없이 연민, 동정도 있을 수 없을테니. <무기여 잘 있거라>라는 제목은 세파에 지친 헨리가 세상에 고하는 작별인사 처럼 느껴진다.

아, 제목을 떠올리게 하는 순간이 중간에 한번 더 있다. '나는 혼자가 되어 기뻤다. 신문을 가지고 있었지만 읽지 않았다. 전쟁 기사를 보고 싶지 않았다. 전쟁을 잊고 싶었다. 나는 혼자서 평화 조약을 맺은 것이다.'

실제 헤밍웨이는 부상 중에 병원에서 사귀었던 간호사와 결혼하지 않았고, 그 이후 네 명의 여성과 네 번의 결혼을 했다. 결혼한 세 명의 부인이 헤밍웨이를 떠난 이유는 그의 마초 기질을 견뎌내지 못해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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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5
임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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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은 정말 읽기 힘들었다.

5월 24일, 25일 광주 시내 외곽에서 벌어진 참상을 읽는 건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관을 구하기 위해 화순으로 이동하던 시민군의 일부가 주남마을을 지나다 공수부대에 적발, 대규모의 총격을 받았다. 관을 구하러 가는 일에 합류하기 위해 동승했던 고등학생 박현숙과 고향에 가기 위해 버스를 얻어 탔던 일신방직 여성 노동자 고영자(22세), 김춘례(18세)를 포함 15명이 학살당했다. 3명의 부상자 중 남자 2명은 야산으로 끌려가 총살 당했고, 17살 홍금순만이 유일하게 생존했다.

 

송암동에 있는 저수지에서는 물놀이하던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이 두부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옆마을에서는 군인들이 신기해 쫓아가던 초등학교 4학년 남학생이 도로변에서 가슴에 총을 맞아 사망했다. 작은 몸뚱이의 어린 아이들이 아무 이유 없이 죽임을 당했다.

 

계엄군끼리의 오인 사격으로 군인 5명이 사망하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고향이 광주인 명치. 시위대 속에서 형 무석과 동생 명기를 발견하고 가족을 향해 총구를 겨눠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부분이다.

 

"지금 이 순간, 저 눈앞의 도시 전체와 팔십만의 시민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병사들 - 그들 모두가 그 거대한 그물 속에 한꺼번에 갇혀 있는 거였다. 그들 모두는 서로가 똑같이 포획당한 물고기일 뿐, 결코 적도 원수도 아니었다. 적은 정작 다른 곳에 있을 터였다. 병사들을 일순간에 맹목적인 증오와 폭력과 광기의 노리개로 만들어서 동족을 처참하게 살육하도록 만들고, 마침내는 형제와 친구끼리 서로 총구를 맞대도록 만들고 있는 자들. 저 거대한 그물을 한 손에 쥔 채 제멋대로 뒤흔들고 있는 자들. 이 추악한 범죄를 처음부터 음모하고, 조종하고, 관리하는 자들, 바로 그들이었다, 적은."(178)

 

자식들이 서로 대치하게 된 상황에 절망하고 있는 아버지 원구.

"원구는 비로소 어렴풋이나마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시대의 어마어마하게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수레바퀴 밑에서 개개인의 삶과 운명이란 얼마나 미미하고 무력하기 그지없는 것인가를. 그 수레바퀴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도 없다. 누구든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그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린 채, 마침내는 폭포의 까마득한 낭떠러지까지 떠밀려가 저마다 무수히 짖기고 부서지고 바스라질 뿐이다." (314)

 

마지막은 도청 최후 항전 당시 무석의 심리를 묘사하는 부분이다. 희생당했거나 가까스로 살아남은 자들의 대부분이 북한에 의해 조종되고 있는 간첩 집단이 아니라 한무석과 같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야말로 진정한 비극인 것 같다.

 

"무석은 문득 자신이 어쩌다가 지금 여기에 서 있게 되었는지 어리둥절해지기까지 했다. 지난 며칠 동안의 일들이 꿈만 같았다. ... 자신의 눈으로 지켜보았던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참혹한 죽음... 그러자 무석은 두려움이 훨씬 가라앉는 듯했다. '두려워하지 말자. 만일 죽게 된다면, 그래, 촛불이 한 순간 깜박하고 꺼지듯이, 그냥 그렇게 죽고 마는 것이겠지. 후회 같은 것, 이젠 하지 말자...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총을 들게 되었을까. 칠수,봉배, 헌혈하고 나오다가 총에 맞아 죽은 그 여학생, 그리고 다른 수많은 사람들. 그들은 모두 이미 죽었거나 피를 흘리고 쓰러졌다. 나 역시 잠시 후면 그들처럼 죽을 수도 있을테지. 그뿐이다. 이유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민주주의니, 자유니, 정의니 하는 거창한 주제 따위를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어. 난 다만 이 추한 현실을 용서할 수 없었을 뿐이야. 인간이 인간에게 이렇게까지 할 수는 없다는 것. 사람이 이렇게 개나 돼지처럼 처참하고 비루하게 죽임을 당할 수는 없다는 것. 그래서 나도 모르게, 정말 어쩌다 보니까 총을 들게 되었을 뿐이지." (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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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4
임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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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6년>이 개봉 됐을 때, 아무리 잘못을 했어도 어떻게 과거 대통령이었던 사람을 암살하려고 하는 내용의 영화를 개봉할 수 있냐고 핏대 세우며 얘기하던 아이들에게 이 소설을 꼭 읽히고 싶다.

 

무고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너무도 허망하게 죽어갔다는 것.

특히 8개월 만삭의 여성이 퇴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배웅하러 대문 밖에 나갔다가 군인의 조준 사격으로 머리에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는 대목을 읽는 순간 내 머리가 총 맞은 듯 울리는 것 같았다. 또 오륙십 명의 사람들을 군용트럭에 가득 싣고 밀폐시킨 뒤 최루탄을 털어 넣는 짓을 저지르기도 했다. 사람들이 사지를 뒤틀려 죽어갔다. 아비규환인 지옥의 모습이다.

 

1, 2권까지는 군인들의 심리에 어느 정도 이해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3, 4권에서 군인들이 보여주는 잔인한 행동은 광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군인들의 진압 수칙들.

 

-공격은 과감하고 신속하게 하라.

-타격시에는 두부를 제외한 전신을 무자비하게 가격하라.

-도주하지 못하도록 하체를 집중 공격하라.

-대중에게 최대한 공포심을 유발시켜라.

-공포심이야말로 폭동 집단을 와해시키는 최상의 전술이다.

 

광주 민주화 항쟁은 조직적인 학생운동도, 사회운동도 아니었다. 시민항쟁이었다.

 

"그것은 윤상현을 한없이 절망하게 만들었다. 무수한 시민들이 생명을 걸고 계엄군과 맞서고 있는 순간에, 그 동안 민중과 민주주의르 위해 일해왔노라고 자부해왔던 자신과 동료들은 정작 더없이 성급하고 나약한 꼴로 허둥거리고 있다는 사실에 윤상현은 분노와 자책감을 견디기 어려웠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그들의 판단과는 정반대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오로지 이름없는 무수한 시민들의 무수한 생명과 피와 희생으로 마침내 계엄군을 시 바깥으로 몰아내고, 이 도시는 잠시나마 평화를 되찾은 것이다." (4권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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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
임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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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 19:00 부터 5월 20일 06:00 까지의 기록.

 

공수부대 진압 작전.

 

과감하고 신속하게 행동하라.

다중의 공포심을 유발하도록 폭도 진압 및 검거는 최대한 적극적이고 과격하게 실행하라.

적극 가담자와 주동자는 최대한 가혹하게 궤멸시켜라.

다중의 시위 가담 의지를 초기에 꺾어놓는 과감한 진압 행동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191) "병사들은 눈앞의 광경이 차마 믿어지지 않았다. 어느덧 그들에겐 투척할 최루탄도 별로 남아 있지 않은 상태다. 벌써 몇 시간 동안 줄곧 쉴새업이 움직여야만 했던 까닭에 그들의 사지는 점점 무거워지고, 녹진한 피곤이 전신을 억누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다시금 또 한차례의 공격 명령이 하달되기 직전이었다. 병사들은 저마다 지치고 충혈된 눈을 하고 전방을 노려보았다. 끝없이 밀려들고 있는 군중들 앞에서 그들은 불현듯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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