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5
임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5권은 정말 읽기 힘들었다.

5월 24일, 25일 광주 시내 외곽에서 벌어진 참상을 읽는 건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관을 구하기 위해 화순으로 이동하던 시민군의 일부가 주남마을을 지나다 공수부대에 적발, 대규모의 총격을 받았다. 관을 구하러 가는 일에 합류하기 위해 동승했던 고등학생 박현숙과 고향에 가기 위해 버스를 얻어 탔던 일신방직 여성 노동자 고영자(22세), 김춘례(18세)를 포함 15명이 학살당했다. 3명의 부상자 중 남자 2명은 야산으로 끌려가 총살 당했고, 17살 홍금순만이 유일하게 생존했다.

 

송암동에 있는 저수지에서는 물놀이하던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이 두부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옆마을에서는 군인들이 신기해 쫓아가던 초등학교 4학년 남학생이 도로변에서 가슴에 총을 맞아 사망했다. 작은 몸뚱이의 어린 아이들이 아무 이유 없이 죽임을 당했다.

 

계엄군끼리의 오인 사격으로 군인 5명이 사망하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고향이 광주인 명치. 시위대 속에서 형 무석과 동생 명기를 발견하고 가족을 향해 총구를 겨눠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부분이다.

 

"지금 이 순간, 저 눈앞의 도시 전체와 팔십만의 시민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병사들 - 그들 모두가 그 거대한 그물 속에 한꺼번에 갇혀 있는 거였다. 그들 모두는 서로가 똑같이 포획당한 물고기일 뿐, 결코 적도 원수도 아니었다. 적은 정작 다른 곳에 있을 터였다. 병사들을 일순간에 맹목적인 증오와 폭력과 광기의 노리개로 만들어서 동족을 처참하게 살육하도록 만들고, 마침내는 형제와 친구끼리 서로 총구를 맞대도록 만들고 있는 자들. 저 거대한 그물을 한 손에 쥔 채 제멋대로 뒤흔들고 있는 자들. 이 추악한 범죄를 처음부터 음모하고, 조종하고, 관리하는 자들, 바로 그들이었다, 적은."(178)

 

자식들이 서로 대치하게 된 상황에 절망하고 있는 아버지 원구.

"원구는 비로소 어렴풋이나마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시대의 어마어마하게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수레바퀴 밑에서 개개인의 삶과 운명이란 얼마나 미미하고 무력하기 그지없는 것인가를. 그 수레바퀴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도 없다. 누구든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그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린 채, 마침내는 폭포의 까마득한 낭떠러지까지 떠밀려가 저마다 무수히 짖기고 부서지고 바스라질 뿐이다." (314)

 

마지막은 도청 최후 항전 당시 무석의 심리를 묘사하는 부분이다. 희생당했거나 가까스로 살아남은 자들의 대부분이 북한에 의해 조종되고 있는 간첩 집단이 아니라 한무석과 같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야말로 진정한 비극인 것 같다.

 

"무석은 문득 자신이 어쩌다가 지금 여기에 서 있게 되었는지 어리둥절해지기까지 했다. 지난 며칠 동안의 일들이 꿈만 같았다. ... 자신의 눈으로 지켜보았던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참혹한 죽음... 그러자 무석은 두려움이 훨씬 가라앉는 듯했다. '두려워하지 말자. 만일 죽게 된다면, 그래, 촛불이 한 순간 깜박하고 꺼지듯이, 그냥 그렇게 죽고 마는 것이겠지. 후회 같은 것, 이젠 하지 말자...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총을 들게 되었을까. 칠수,봉배, 헌혈하고 나오다가 총에 맞아 죽은 그 여학생, 그리고 다른 수많은 사람들. 그들은 모두 이미 죽었거나 피를 흘리고 쓰러졌다. 나 역시 잠시 후면 그들처럼 죽을 수도 있을테지. 그뿐이다. 이유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민주주의니, 자유니, 정의니 하는 거창한 주제 따위를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어. 난 다만 이 추한 현실을 용서할 수 없었을 뿐이야. 인간이 인간에게 이렇게까지 할 수는 없다는 것. 사람이 이렇게 개나 돼지처럼 처참하고 비루하게 죽임을 당할 수는 없다는 것. 그래서 나도 모르게, 정말 어쩌다 보니까 총을 들게 되었을 뿐이지." (4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