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여행가방 - 박완서 기행산문집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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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목차를 보고 구매를 결심하게 됐다. 물론 작가의 명성도 있었지만, 작가가 소개하는 여행지가 좀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남도, 하회마을, 섬진강, 오대산 등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바티칸, 백두산, 에티오피아, 인도네시아, 티베트, 카트만두 등은 하나하나 그 자체로도 여행서에서 접하긴 좀 어려운 곳들이고, 조합 자체가 특이했다.

 

책을 읽은 뒤, 티베트에 꼭 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인간의 입김이 서리기 전, 태초의 하늘빛이 저랬을까? 그러나 태초에도 티베트 땅이 이고 있는 하늘빛은 다른 곳의 하늘과 전혀 달랐을 것 같다.. 바늘쌈을 풀어놓은 것처럼 대뜸 눈을 쏘는 날카로움에선 적의마저 느껴진다. 아마도 그건 산소가 희박한 공기층을 통과한 햇빛 특유의 마모되지 않은, 야성 그대로의 공격성일 것이다..” 라고 작가가 얘기했던 티베트의 하늘을 눈으로 꼭 보고 싶다.

 

또,

“우리가 초모랑마(에베레스트)에 대해 외경심을 갖는 것은 세계의 최고봉이기 때문이지만 인도나 티베트, 네팔 등 힌두 불교 문화권에서는 창조의 근원이라고 생각하고 일생에 한 번이라도 순례하기를 열렬하게 소망한다. 순례의 길이 고통스러울수록 죄가 정화된다고 믿어 고통보다는 법열을 느낀다고 한다. 그들처럼 최소한의 소유로 단순 소박하게 사는 민족도 없다 싶은데 이런 엄청난 죄의 대가를 지불하려 들다니, 그들이 느끼고 있는 죄의식이 어떤 것인지 우리 같은 죄 많고 욕심 많은 인간에겐 상상이 미치지 않는 영역일 듯싶다.”부분은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전부 다 오체투지로 초모랑마를 넘어야할 인간들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진정코 부끄러운 것은 남의 도움을 받는 게 아니라 받은 것을 더 낮은 곳으로 돌려주는 것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다.”

나도 이렇게 뉘우침으로부터 깨달음을 얻게 해주는 여행 한 번 해보고 싶네. 문화유적이 아주 많은 곳에 가서 하나라도 놓칠세라 전전긍긍 목적에 따라 이끌려 다니는 여행 말고, 네팔 같은 곳에 가서 무한정 걸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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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빠져드는 기독교 역사 - 미처 알지 못했던 재미있는 기독교 이야기
유재덕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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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로의 희생양이 된 그리스도인들.

64년 여름, 로마에서 대규모의 화재가 발생했다. 로마인들은 화재의 원인이 도시를 재개발하기 위한 네로의 음모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러자 네로는 인기 없는 신흥 종교 세력인 그리스도인들을 희양 삼아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모면할 생각을 하게 됐다. 사도 베드로 역시 이 박해의 시기에 로마에서 순교한 것으로 추정된다.

 

저자는 기독교가 로마 시민들에게 인기가 없었던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했다. 무신론, 인육을 먹는 만찬, 근친상간. 이름이 알려진 신이라면 대상을 가리지 않고 숭배했던 로마인들에게 하나님만을 숭배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무신론자로 비춰졌던 것. 그리스도인들이 포도주와 빵을 먹으며 예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신다고 하는 것도 식인 풍습을 연상시켰으며.. 그리스도인들이 서로를 '형제', '자매'라고 부르는 것도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으로 작용하였다.

 

유대인들이 로마의 통치에 반대하는 봉기를 일으켰을때, 그리스도인들은 방관적 태도를 취했는데, 이로 인해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들은 공식적으로 결별하게 되었다.

 

(31) 교황 요한 바오르 2세가 1986년 4월 13일 로마의 유대교 회당을 공식적으로 방문해서 유대인들을 "그리스도인들의 특별한 형제들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의 형"이라고 부를 때까지 거의 2천년 동안 양측은 서로 화해를 모른 채 살았다.

 

기독교 신앙은 4세기 후반까지 156개의 이단이 활동중이었다고 기록될 정도로 확고한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 이후 기독교는 현실 정치와 밀착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로마의 황제들은 교회를 위해서 기꺼이 관대한 후원자와 보호자가 되어주었고, 교회는 제국의 영원한 번영을 위해서 기도했다.

 

(74) 기독교는 황제의 적극적인 비호를 받으면서 서서히 로마제국을 닮아 갔다. 교회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통성과 보편성을 추구했고, 점차 법률적인 체제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변화의 과정을 거친 기독교는 더이상 어렵고, 소외당한 소수 계층을 위한 종교가 아니게 되었다. 이단들을 다스리는 데 폭력마저도 서슴지 않고 행사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의 입장에 서게 되었지만 그에 따른 반성은 없었다.

 

아리우스파의 주장이 정통 교리로 채택되지 못한 이유를 자세히 알게 됐다. 아리우스는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단일한 본질의 절대자를 추구했다. 그런 하나님이 유한한 존재인 인간으로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때문에 아리우스는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라는 삼위일체 교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19세기 말에 등장한 '여호와 증인'은 교리 면에서 아리우스와 흡사한 점이 많다고 한다. 자신들을 완전한 하나님을 증언하는 사람들로 간주하는 동시에 예수님을 유한한 피조물로 간주한다는 부분에서다.

 

476년, 게르만족에 의해 서로마가 멸망하였는데, 제국이 멸망했다고 해도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콘스탄티노플에는 여전히 서방 세계를 상대로 주권을 주장하는 황제가 버티고 있었고, 로마 교구의 수장이 권력의 공백을 메우면서 교회에 유리한 분위기로 이끌어 갔기 때문이다.

 

동방 교회는 북아프리카 교회들을 배격하고 박해를 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정책은 이슬람교의 확산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 무슬림은 교회를 폐쇄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자유롭게 예배하도록 허락했다.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예배당을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카롤루스 대제가 이민족을 개종시키는 방식은 매우 잔인했다고 한다.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특정 부족을 지배하게 되면 일제히 세례를 받게 했다. 그가 다스리는 지역의 백성들은 90% 이상이 기독교로 개종했을 정도. 하루만에 4,500명을 목을 베어버리기도 했다는..

 

음..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부분은,, 동/서로마 교회 분열의 결정적 이유가 삼위일체설 때문인가.. 하는 점이다.

 

십자군 원정 시기 그리스도인 병사들은 대 학살극을 펼치면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서 닥치는 대로 무슬림을 살육했는데, 오늘날까지도 유대인들과 무슬림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신뢰하지 않는 것은 이 학살극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1995년, 예루살렘의 라틴 총대주교는 십자군 원정 호소 900주년을 기념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185) "종교적 극단주의와 종교전쟁을 낳는 것은 교리가 아니라... 인가이다. 만일 모든 신자들이... 하느님을 경회하는 데 힘을 쏟으면 하나님에 대한 탐구과 존경은 더 이상 전쟁과 범죄, 증오의 명분이 되지 못할 것이다."

 

종교개혁에 대해,

(248) 위클립과 후스가 화약을 준비했다면, 에라스무스는 거기에 도화선을 매달았다. 1517년 10월 31일에 어느 수도사가 도화선에 불을 댕겼고, 결국 그 폭발 때문에 유럽 전체가 들썩였다."

 

뒷부분의 근대 신학에 대한 설명은 잘 이해가 안됐다.

저자가 신학대학을 나온 사람이라 왠지 친기독교적이고 어느 정도 편향적일 것 같았는데,

그런 점을 느낄 수 없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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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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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영이가 추천해줘서 읽게 됐다. 예전에 욱지쌤도 이 책의 저자가 쓴 <연을 쫓는 아이>를 추천해준 적이 있는데, 저자가 같은 사람인데다가 전작보다 훨씬 더 재밌다고 하길래 이 책을 먼저 사서 읽었다. 이 책의 내용이 수만 명의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겪었을 고통 중 일부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끔찍하다. 아프간 여성들의 대부분이 마리암, 라일라와 같은 삶을 살았겠지. 그리고 마리암의 엄마 니나의 삶이 그의 딸에게서 그대로 되풀이 되었듯이, 누군가 역시 마리암, 라일라와 같은 삶을 살게 되겠지. 역사는 고통스럽다...

 

‘난민’. ‘전쟁’, ‘테러’, ‘굶주림’, ‘고통’과 같은 말들이 그 실제와 비교했을때, 너무나 추상적이고. 주변적이며.. 한편으로 고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마리암, 그게 우리 팔자다. 우리 같은 여자들은 그런 거다. 참는 거지. 그것이 우리가 가진 전부다.”

 

마리암이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할 때마다 그녀의 삶은 불행해졌다. 새 살림을 꾸려 살고 있는 아버지를 찾아갔을 때, 거둬줄 거라고 믿었던 아버지로부터 곧 버림받았고 홀로 남게 된 엄마는 목을 매 자살하였다. 그녀의 젊음과 인격과 인내를 모두 짓밟았던 악마 같은 남편, 자기에겐 더 이상 남편도 뭐도 아니지만, 누군가의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한 그를 죽였을 때. 그녀에게 해방의 기쁨이 찾아올 줄 알았지만 남편을 죽인 죄로 사형을 당하게 된다. 죽음.. 삶으로부터 해방이었다.

 

“아름다운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마리암은 대부분의 삶이 자신에게 친절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마지막 스무 걸음을 걸으면서 조금 더 살았으면 싶었다. 라이라를 다시 보고 싶었다. ... 그녀와 같이 별들이 떠 있는 하늘 밑에서 차를 마시고 먹다 남은 할와를 먹었으면 싶었다.”

 

으.. 원래 행복의 순간은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지극히 일상적인.. 평범한.. 때인 걸까??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 뒤에 남아 비극을 살아내야 했던 평범한 여성들의 이야기라면, <연을 쫓는 아이>는 비극을 뒤로 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아프간 이민자(남성들)의 이야기라고 한다. 남성들의 이야기도 꼭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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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해석 돋을새김 푸른책장 시리즈 8
지크문트 프로이트 지음, 이환 옮김 / 돋을새김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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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사실 읽다 말았다.

이 책을 손에 쥔 지 일주일 정도 된 것 같은데.. 2/3정도밖에 못 읽었다. 끝까지 읽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좀 더 뒤에 산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빨리 읽고 싶어서.. 그냥 덮어버렸다.

차분한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기도 하다.

올해 담임을 처음.. 그것도 고3을 맡다보니, 아무것도 안할때 조차 아이들에 대한 뭔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물론 생각하는 것들 중엔 비생산적인 것들도 많지만.. 어쨌든 책에 몰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이 와중에.. 무의식적인 꿈에 대한 해석이라니.. 별로 읽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

 

꿈이 소망의 충족을 목적으로 하고, 소중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비통함을 느끼는 꿈 역시 언젠가 그 사람이 죽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진 적이 있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점은.. 좀 섬뜩했다.

 

누군가 나한테, 내가 죽은 꿈을 꿨다고 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 사람이 꿈 속에서 엄청 비통해했을지라도 결국 내가 죽기를 조금이라도 바란 적이 있었기에 그런 꿈을 꾸었을 것이 아닌가.

 

게다가 난,, 엄마가 엄청 많이 아파하는 꿈을 꾼 적도 있는데.. ㅠ

이것도 나의... 어떤..... 무의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하니...

 

무의식은 무서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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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6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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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중고샵에서 이런 책을 건지는 건 정말 큰 행운인 것 같다ㅋㅋ

이 책은.. 나중에 이탈리아 여행할 때 꼭 지니고 다닐거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미완성의 창작가'라는 말을 들을 만큼 미완성 작품을 많이 남겼다고 한다. 그 이유는 대략 두 가지 정도인데, 첫번째 이유는 자신의 역량으로는 머릿속으로 상상한 완벽한 아름다움과 깊이를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이다. 두번째 이유는 작품을 제작하는 도중에 이미 완성된 모양이 뻔히 보여서 표현하고자 했던 욕망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가 스스로에게 얼마나 진솔한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설명인 것 같다. 괜한 아집으로 일을 망치는 사람도 많은데 말이다...

 

교과서에는 최초의 인문주의자로 '페트라르카'를 꼽는데, 이 책에서는 성 프란체스코를 얘기하고 있다. 성 프란체스코를 르네상스인으로 보는 이유는 그가 '로마 교황청-사제 계급-수도사 계급- 속인'의 관계를 허물었기 때문이고, 또 그가 선택의 자유라는 인간의 기본권을 인정하고, 그것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종교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56) "이탈리아어로는 '아테오'와 '크레덴테'와 '라이코'라고 부르는데, '아테오'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무신론자를 가리킨다. '크레덴테'는 신앙을 가진자.. '라이코'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지만, 종교가 관여하는 분야와 관여해서는 안되는 분야를 명확히 구분하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 르네상스는 이 '라이코'들이 일으킨 정신운동이었다고 해도 좋다."

 

(160) 고대는 마치 혈관 속을 흐르는 피처럼 르네상스인의 마음속에 살아있었다.

 

메디치가문은 피렌체 공화국의 버팀목이었는데 메디치 은행이 파산했을 때 피렌체의 장래가 불안해진 것을 물론이고,'사회 불안 -> 종교의 득세 -> 인간 중심 사상의 위축'을 가져와 결국 르네상스의 중심적 지위를 로마에 넘겨주게 되었다.

 

로마에서 르네상스의 꽃을 피우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메디치 은행이 파산하여 메디치 재벌도 해체된 상태였기 때문에 교화 레오 10세는 면죄부 판매를 생각해낸 것이다.

 

반종교개혁으로 르네상스 정신은 위축되었다. 그래서 마키아벨리의 저서는 금서가 되었고 미켈란젤로의 나체 그리스도상에는 아랫도리를 가리는 헝겊이 덧칠되고,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철회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왔다. 레오나르도가 좀 더 뒤늦게 태어났더라면 그가 남긴 위대한 작품들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책에서(287) "콜럼버스나 아메리고 베스푸치 같은 이탈리아 세력이 대항해 시대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다면 잉카 제국은 멸망하지 않았을 거다"라고 한 말은 인상적이었다. 에스파냐 세력이 중남미를 식민지로 삼은 것은 자기와 다른 생각이나 다른 인간의 존재를 철저히 배제한 반종교개혁 정신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은 해외 영토를 식민기지가 아니라 교역의 기지로 삼았기 때문에 신대륙을 발견했더라도 식민지배 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모르는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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