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으로 본 한국역사 - 젊은이들을 위한 새 편집
함석헌 지음 / 한길사 / 200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공주에서 1정 연수 중, 강의해주신 현직 선생님께서 고등학교때 이과에서 문과, 그것도 역사 교사로 진로를 바꾸게 된 계기가 되었던 책이라고 말씀하셔서 읽게 됐다. 저자와 책 제목을 한번쯤 들어보기도 했었다.

 

원래 책 제목이 <성서적 입장에서본 조선역사>였다고 한다. 출판 직전 교파주의적이고 독단적인 내용을 삭제하는 등 대대적인 수정을 가하고 제목도 지금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로 바꿨다는데

책을 읽는 내내, '이게 수정된 내용 맞나' 싶을 정도로 친기독교적 시각이 많이 반영되었다. 아니, '친기독교적', '반영'이라고 할 것 없이 그저 기독교 관점에서 쓰여진 책이었다. 분명 내가 이해한 것 이상의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는 책일텐데, 내겐 저자의 '주의'가 잘 나타나 있는 책 정도로만 다가왔다. 그 '주의'와 화법은 이제껏 다른 책에선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것이기는 했다.

 

저자는 한국의 역사를 한마디로 '고난의 역사'라고 규정한다. 한반도의 지세가 백두산을 시작으로 하여 거기서 뻗어나온 산맥과 줄기가 남으로, 남으로 내려올수록 높고 낮음의 반복은 있되 전체적으로 낮아지는 경향을 보이듯 한국의 역사도 고조선에서 해방 이후로 오면서 고난을 면치 못해 쭉 쇠퇴해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한국역사에 있었던 외침이라든가 자연 재해, 임금의 폭정, 당쟁, 관리들의 가렴주구와 같은 고난들이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본다. 책 제목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뜻'이란 바로 '하나님의 의지, 의도'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언젠가, 어디선가 책 제목을 들었을 땐 그 '뜻'이 '정의'를 의미하는 것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거다.

 

금강산, 설악산, 지리산 등에 한국 역사가 비교적 진취적 경향을 보였던 삼국시대, 고려전기(묘청의 서경천도 운동), 세종시대 등을 대입했다. 그 마지막은 한라산인데, 지리산에서 마지막 힘을 발휘했다가 쭉 낮아지는 형태의 지세가 섬에 있는 한라산에서 다시 높아지는 이유를 역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거기 담겨있는 하나님의 뜻이란, 한라산의 높이는 1950미터로 하여 한국의 역사가 1950년을 기점으로 큰 변화의 계기를 갖게 되리라는 걸 암시했다는 거다.

 

저자는 한국 역사가 이렇듯 고난의 연속인 이유를 우리 민족이 자아를 되찾으려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신라의 삼국 통일, 고려 광종 시기 이후 과거제 실시와 유교 정치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당과 연합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에 이르게 한 김춘추를 '용서받지 못할 , '신라는 찌끄러기 막내아들'이라고 언급한 부분에는 저자의 분노가 여과없이 표출되어 있는 것 같다. 고구려가 망하지 않았다면 세계 역사까지 다르게 되었을 것이라는 저자의 생각은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다.

"신라가 삼국통일 한 것은 고구려의 비장한 주검의 그늘 밑에서 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반도 동남구석의 조그만 신라가 반도 통일의 터를 닦게 된 것은 고구려가 몇백년 두고 북쪽의 침략자와 피를 흘리며 고된 싸움에 쉴 날이 없는 동안 덕택을 입어가면서 된 일이다. 신라 통일 사업 공로의 거의 절반은 고구려의 영(靈)앞에 제물로 바쳐야 한다."(176)

 

세조와 같은 잔인무도한 임금이 난 것도 최영 등을 죽이고 새 왕조의 임금이 된 이성계의 부덕함때문으로 보고 있으며, 임진왜란 역시 "태조의 건국 이래 2백년의 역사를 심판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보내는 폭풍우"라고 했다. 또 통신사로 갔던 동인 김성일이 나라의 장래보다 자기가 속한 세력의 이익을 더 많이 생각한 결과 왜곡된 사실을 보고한 것을 가지고,

 

"김성일의 말보다 더 교묘하게 망국민의 심리를 그려낼 수 있는 시인, 화가가 어디있나? 평안 평안, 안락 안락, 마치 주린 거러지가 비웃음과 욕과 짓밟고 때림과, 그밖이 무엇과 바꾸어서라도 한 덩이 찬밥을 구하는 모양으로, 고난 가운데 부대껴온 이 민족은 한 찰나의 안락을 바꾸어 얻기 위하여 정신차릴 겨를이 없었다"(310)라고 비판하고 있다. 김성일을 '주린 거러지'에 비유한 것이다.

 

심지어 "해방도 하늘에서 온 것"(395)이라고 했다. 그 이유를,

 

"(해방이 되리라는 것을) 아무도 모른 것은 아무도 꾸민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꾸미지 않고 온 것은 하늘의 선물이다. 이것은 하늘이 직접 민중에게 준 해방이다. ... 이 해방은 어느 인물이 힘써서 된 것도 아니요, 어느 파가 투쟁을 해서 된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공정하게 사실을 사실로 보는 한 이것을 인적노력에 돌릴 수는 없고 부득이 하늘에 돌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렇게해야만 아무도 그 고역을 치르고 나오는 민중을 속일 수 없고, 따라서 그들이 오는 시대의 주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후술하긴 했지만, 해방 직후 민중이 진정한 의미로서 역사의 주인이 되지 못했을 뿐더러, 해방을 위한 지난한 노력들을 다 무용했던 것으로 보는 것은 좀 지나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이것은 책 앞부분에서 저자가 역사, 역사가에 대해 서술한 내용이다.

 

'자아에 철저하지 못한 믿음은 돌짝밭에 떨어진 씨요, 역사의 이해없는 믿음은 가시덤불에 난 곡식이다.'

 

'인간사회라는 솥 위에 피어오르는 일정한 형체없는 일(事象)의 수증기를 식혀서 한 형상을 붙잡아내는 것이 그(역사가)의 일이다. 그보다도 일고 꺼지는 산맥과 언덕과 골짜기며 시내를 두루 뒤타서 그 밑으로 달리고 있는 한 줄기 광맥을 찾아내는 일이라 하는 것이 옳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리랑, 태맥산맥, 한강, 허수아비춤을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시대를 아파하는 유일한 작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간의 소설들에서 한국의 근현대사를 풀어냈다면, 신작 <정글만리>는 중국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라고 하니 어떤 내용일지, 어떤 감동을 줄지 궁금합니다. 마지막으로 읽은 한강의 마지막 권을 덮으며 조정래 선생님의 대하소설을 더이상 읽을 수 없을줄로 알았는데, 이렇게 신작이 나와 정말 좋습니다. 기대가 큽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심판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58
프란츠 카프카 지음, 김현성 옮김 / 문예출판사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최인훈의 <회색인>을 읽다가 중간에 카프카에 대한 언급이 있길래, 또 그 이름을 어디서 많이 들어본듯하여 읽게 되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20세기 가장 위대한 작가, 꼭 읽어야 할 작품 등으로 얘기됐던 것 같다. 사실 이런 찬사는 그리 보기드문 게 아닌데, 어쨌든 그런 말이 적혀있음으로 인해 괜히 관심을 더 갖게 되는 효과는 확실히 있는 것 같다.

 

소설은 "누군가 요제프 K를 중상한 것이 틀림없다. 아무 잘못한 일도 없는데 어느 날 아침 그는 체포되었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오늘 카프카의 또 다른 소설, 단편 <변신>을 읽었는데 첫 문장에서 소설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을 알려주는 것이 카프카 소설의 특징인 것 같다.

 

<변신>은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로 시작한다. 쓰고 보니 첫 문장에서 이미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벌어져 있다는 것 말고도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바로 사건이 일어나는 시점이 '어느 날 아침'이라는 거다. 예상치 못한 일이(소설 밖에선 상상 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어느 날 갑자기 벌어졌다는 설정 자체가 독자로 하여금 막연한 불안과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 같다.

 

다시 <심판>으로 돌아가서, <소송>으로 번역된 책도 있던데 어떤 게 더 맞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송>이 더 맞을 것 같다. 심판이라고 했을 때 왠지 기독교적인 느낌, 결정권을 지닌 절대적 존재와 나약한 인간 같은 이미지가 연상되는데 소송이라고 하면 동등한 인간 사이에 행해지는 법에 의한 결정이라는 느낌이 묻어나서 더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또 써놓고 보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에 따르자면, 이 소설은 '소송'으로 시작하여 '심판'으로 끝나고 있다. 주인공 K는 자신이 왜 체포되었는지도 모른채 소송에 휘말리게 된다. 자신은 죄를 짓지 않았을 뿐더러 어떤 불찰 혹은 오해로 인해 소송에 휘말렸지만 일상생활을 그대로 영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사건을 중대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K의 직장 동료, 친척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소송 사실을 모두 알고 있고, 자신을 걱정하자 혐의를 벗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변호사를 선임하고 화가를 만나고 비슷한 일을 당한 사람들을 만나 해결책을 모색해보지만 누구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화가는 K에게 이렇게 말한다.

 

"무슨 죄를 지어서 기소되는 것이 아니라 기소되었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유죄가 된다. 그러므로 일단 기소되면 실제적인 무죄 판결이란 없고 가능한 것은 형식적인 무죄 판결과 소송을 한없이 지연시키는 방법밖에 없다. ... 유죄를 인정하는 것만이 최후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길이다."

 

결국 소설이 끝날 때 까지도 주인공K가 기소된 이유는 밝혀지지 않는다. K가 점점 수렁으로 빠져들어 갈수록 '대체 왜!'라는 궁금과 짜증이 폭발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재판관들은 하나같이 무책임하다. 문지기, 곧 재판관은 말한다.

 

"그렇게 들어가고 싶거든 내가 금지하는 것을 어기고라도 들어가 보게나. 그러나 내겐 권력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둬. 그리고 나는 가장 낮은 문지기이 지나지 않아. 문마다 문지기가 서 있으며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욱 권력이 강하지. 세 번째 문지기를 보면 나도 겁이 나."

 

K는 결국 최후의 심판을 받아들인다.

 

"흐려져 가는 눈으로 K는 두 남자가 눈앞에서 뺨을 맞대로 자신의 종말을 지켜보는 것을 보았다. '개같이!' K가 말했다. 그가 죽은 후에도 치욕은 남을 것 같았다."

 

어떤 잘못을 저질렀든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에게나 최후의 심판이 다가오는 순간이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죽음의 집행이 유예되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법의 비인간성, 관료주의의 폐해를 꼬집고자 한 것인지. 어렵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회색인 최인훈 전집 2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인훈의 소설. 오래전부터 읽기로 마음 먹고 있다가 어제 공주 내려올때 짐에 넣어 가져왔다.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에서 봤었는지, 해방 이후 이념대립 속에서 고뇌하는 청년의 이야기..로 알고 있었다. 시대 배경은 1958,59년. 뚜렷한 사건이나 상황의 전개 없이 주인공 독고준, 또는 그의 친구 김학의 생각들이 독백처럼 쭉 나열된다. 너무 관념적이라 너무 어려웠다..
이 이상 리뷰 쓰는 것은 불가..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로 시작되는 첫 문장에서부터 소설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주인공이 느낀 삶의 무게 역시 전해지는 듯 했다.

 

<인간 실격>은 다자이 오사무가 주인공 '요조'의 이름을 빌어 자신의 생애를 고백하듯 털어놓는 자전적 소설이다. "저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아무래도 인간을 단념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라는 말 속에 요조가 '인간 실력'이라는 파국을 맞게 된 궁극적 원인이 담겨있는 것 같다. 세상 한 가운데에 놓이기를 비정상적으로 두려워하고, 인간들의 가식과 위선 때문에 모든 관계들에 체념적이었으면서 한편으로 순수한 것을 쫓았고, 순수하다고 믿었던 것들에 무한 신뢰를 보냈던 요조.

 

"아무런 타산도 없는 호의, 강요하지 않는 호의, 두번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사람에 대한 호의. 저는 백치 아니면 미치광이 같은 그 창녀들한테서 마리아의 후광을 실제로 본적도 있습니다."

 

요조는 자신 역시 익살로써 자신의 존재를 포장하려 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이기적인 행동, 속보이는 행동, 위선적인 행동들을 결코 질타하거나 공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럴수록 '순수한 것','신뢰한 것'에 대한 요조의 강박은 심해져갔다. 또 동시에 버려져야 할 존재, 사라져야 할 존재로서의 자기 인식 역시 강해졌을 것이다. 그래서 요조는 무언가를 상실할 때마다 자살을 결심한다.

 

"무구한 신뢰심은 죄인가? 유일하게 믿었던 장점에서조차 의혹을 품게 된 저는 더이상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었고, 그저 알코올에 손을 뻗칠 뿐이었습니다."

 

...

 

"불행. 이 세상에는 갖가지 불행한 사람이, 아니 불행한 사람만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죠. 그러나 그 사람들의 불행은 소위 세상이라는 것에 당당하게 창의할 수 있는 것이고, 또 '세상'도 그 사람들의 항의를 쉽게 이해하고 동정해 줍니다. 그러나 제 불행은 모두 제 죄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항의할 수 없었고 또 우물쭈물 한마디라도 항의 비슷한 얘기를 하려하면 넙치가 아니더라도 세상 사람들 전부가, 잘도 뻔뻔스럽게 그런 말을 하는군 하고 어이없어할 것이 뻔했습니다. 저는 도대체 세상에서 말하는 '방자한 놈'인 건지 아니면 반대로 마음이 너무 약한 놈인 건지 저 자신도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죄악 덩어리였던 듯. 끝도 없이 점점 더 불행해지기만 할뿐 막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없었던 것입니다."

 

삶이 곧 불행이었고, 죽음이 곧 행복이었던 요조는 결국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자살을 택한 것이다. 자신을 결국 질식하게 만든 세상의 가식과 위선.. 그것이 나를 향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