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나날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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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전한 삶이란 없다. 그 조각만이 있을 뿐. 우리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존재로 태어났다. 모든 것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그런데 빠져나갈 이 모든 것들, 만남과 몸부림과 꿈은 계속 퍼붓고 흘러넘친다.... 우리는 거북이처럼 생각을 없애야 한다. 결의가 굳고 눈이 멀어야 한다. 무엇을 하건, 무엇을 하지 않건 그 반대는 하지 못한다. 행동은 그 대안을 파괴한다. 이것이 인생의 역설이다. 그래서 인생은 선택의 문제이고, 선택 자체가 중요한게 아니라 되돌릴 수 없을 뿐이다. 바다에 돌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중요한 깨달음 중 하나는 꿈 꾼 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비장해둔다. 남들이 실패하면 우리가 성공한 것익느, 남들이 바보 같으면 우리는 현명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실을 부여잡고 나아간다.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을 때까지.

379. 그녀가 말하는 자유란 자기 정복이었다. 그건 자연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자신의 모든 걸 걸 수 있는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었다. 그게 없는 삶이란 이가 남아 있을 때까지 느끼는 식욕에 불과하다는 걸 아는 사람에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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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 펭귄클래식 135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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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찾으러 갔다가 같은 책장에 꽂혀 있는 이 책을 같이 빌리게 됐다. 책 커버 뒷장에 '성경,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전 세계 독자가 가장 많이 읽은 책!'이라 적혀 있는데, 난 이 책에 대해 아는 바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성경 다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이자, 톨스토이가 '19세기 최고의 문호로 존경'한 찰스 디킨스의 대표작이자 또 프랑스혁명의 광기를 그린 역사소설이라니까 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앞부분은 좀 재미없었다. 프랑스혁명이 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즉 앙시앙레짐의 고통 속에서 프랑스 민중들이 어떤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는지는 이미 다른 활자로, 최근의 영화 '레미제라블'을 통해서도 접해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좀 지루하게 느껴졌다. 책의 분량이 장장 600페이지에 달해 이걸 다 읽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대전에서 만난 김보영이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를 봤는데 재밌었다는 얘기를 해 인내심을 발휘해 주말 내내 기숙사에 틀어박혀 읽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1789년 시점의 이야기는 소설 중반부터 시작이 된다. 그때부터 좀 재밌어졌다. 바로 이 시점부터 혁명이 어떤 대의나, 묵직한 역사적 사건으로서가 아니라 지배계급을 향해 총, 칼을 겨눌 수밖에 없었던 개인들의 이야기가 펼쳐져서 흥미로웠다.

 

그런데 대충 빨리 읽어서 그런가, 책의 제목이 왜 '두 도시 이야기'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물론 루시와 찰스 다네이가 한때 런던에서 살다가 파리로 가게 되면서 말그대로 '두 도시 이야기'가 좀 대조적으로 서술된 부분이 있기도 한데 그게 이 소설에서 그렇게 큰 축을 차지하고 있는지는 좀 의문이다. 뮤지컬에서는 이 부분이 어떻게 반영됐는지 궁금하네.

 

귀족 가문의 찰스 다네이, 그 가문의 추악함을 우연히 알게 됐고 그로인해 바스티유 감옥에서18년 동안 갇혀 지내야 했던  마네트 박사, 이런 사실을 모르고 찰스 다네이와 결혼한 박사의 딸 루시, 그리고 찰스 다네이 가문에 의해 가족을 잃은 농노 드파르주 부인, 루시를 사랑했고 그녀의 가정을지켜주기 위해 찰스 다네이를 대신해 기요틴 행을 자처했던 카턴.

 

아무래도 소설을 이끌어가는 인물은 드파르주 부인인 것 같다. 그녀의 원한이 결국 지배층에 대한 분노로 확대되고 복수를 위한 계획과 실천이 프랑스혁명의 일부를 장식하게 된다. 이런 개개인들의 스토리가 하나의 물방물이 되어 결국은 프랑스혁명이라는 큰 파도를 만들게 된 것 같다.  

 

소설의 마지막 시점은 1794년이다. 1분 마다 한명씩 단두대에서 처형을 당해야했던 공포정치의 잔혹한 측면이 소설 속에 잘 나타나는데, 이런 잔인함이 순수하게 '자유, 평등, 박애'를 위해서도 발휘될 수 있는 것일까. 개인적인 복수심, 원한, 억울함이 없었다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민중의 분노는 개인의 고통, 불만에 기초한 것이고 그것의 분출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한번도 제대로 성공하지 못한 걸까.

 

프랑스 혁명을 새로운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게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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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블랙 장르의 재발견 1
오스카 와일드 지음, 서민아 옮김 / 예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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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게 재밌는 소설을 발견했다. 엊그제 읽었던 김영하의 <빛의 제국>에서 주인공의 대사 중 언급이 되었던 소설이다. 기영이 남파된 간첩으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회의하면서 이 책을 얘기했던 것 같은데,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외모와 양심은 공존할 수 없는 것인가, 라는 문제를 제기하며 역시 '공존할 수 없는 것들의 공존'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좀 비슷한 느낌의 책이다. 1890년대쯤 쓰여진 책이고 지금까지 여러 차례 영화, 연극화 되었다고 하는데 난 왜 몰랐을까;

 

화가 홀워드는 영혼을 빼앗길 만큼 아름다운 외모의 도리언 그레이를 우연히 알게 되었고, 그를 모델로한 초상화를 그리게 된다. 스무살이 채 안 된 도리언 그레이의 외모에 완전히 매료되어 자신의 예술적 혼을 담은, 그래서 도리언의 초상화이지만 곧 자기 영혼의 초상화이기도 한 작품을 완성하게 된다. 그전까지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인지 몰랐던 도리언은 홀워드가 완성한 초상화를 보고 자기 모습에 홀딱 반하게 되었다. 초상화를 보며 도리언은 영원히 늙지 않기를 원한다는 기도를 하게 되고 이것이 곧 그의 삶을 바꿔놓게 된다.

 

"나는 점점 늙고, 추하고, 끔찍해지겠지요. 하지만 이 그림은 언제까지나 젊음을 간직하고 있을 거예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유월의 오늘 모습 그대로 남아 있을 거라고요. 아, 그와 정반대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는 언제까지나 젊은 모습 그대로 남아 있고, 그림이 나 대신 점점 나이를 먹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게만 된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난 무슨 짓이든 할 거예요! 그래요, 그럴 수만 있다면 온 세상을 다 뒤져서라도 무엇이든 가져다 바치겠어요!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내 영혼이라도 바칠 거예요!"(54)

 

도리언은 극장에서 알게 된 배우 베인과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약속하게 된다. 홀워드와 그의 친구 헤리(헤리는 도리언을 쾌락에 빠지도록 부추기는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는 한순간에 사랑에 빠져버린 도리언을 지켜보며 복잡한 감정에 휘말린다. 홀워드는 질투 비슷한 감정을, 헤리는 순수하고아름다웠던 도리언이 쾌락의 맛을 알아가며 변해갈 모습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도리언은 홀워드와 헤리에게 베인을 소개시켜주기 위해 그녀가 연극을 하고 있는 극장에 둘을 데려갔다. 도리언과 결혼을 약속한 베인은 진실한 사랑을 알게 되자 무대 위에서의 연기가 모두 가짜, 위선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완벽한 배우에서 모두가 경악할 정도의 '발연기'의 1인자로 전락하고 마는데 이 모습을 지켜본 도리언은 베인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충격받은 베인은 그날밤 자살을 한다.

 

이별을 통보하고 집에 돌아온 도리언은 우연히 자신의 초상화를 보다가 표정이 어딘가 달라졌음을 알게 된다. 초상화에서 입가의 잔인한 표정을 읽게 된다. 도리언은, 자신은 젊은 모습 그대로 남아 있고 초상화가 나이를 먹으면 좋겠다고, 자신의 아름다움은 녹슬지 않고 자신의 열정과 죄악의 모든 짐을 켄버스 위의 얼글이 대신 짊어지면 좋겠다고, 그림속 얼굴을 고통과 걱정으로 생긴 주름살로 시들어가고 자신은 이제 막 깨닫고 있는 소년기의 섬세한 청순함과 아름다움을 영원히 간직하면 좋겠다고, 그렇게 빌었던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도리언은 그림이 그에게 눈에 보이는 양심의 거울이 되게 하겠다고, 유혹과 쾌락에 저항할 것이라고 다짐하며 베인에게 바로 사과의 편지를 쓴다. 그러나 그 다음날, 헤리로부터 베인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해듣는다. 도리언은 자신에게 사죄의 기회가 사라졌음을 깨닫고 자책한다. 헤리는, 베리가 예술가로서 가장 비극적인 방식으로 그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역할을 해낸 것이라는 말로 도리언을 위로 하고, 도리언은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후 초상화는 더욱 추악하게 변해가지만, 도리언은 뛰어난 외모의 소유자이자 부유한 상속자로서 명성을 쌓아간다. 도리언이 쾌락에 빠져들수록 초상화를 더욱 사납고 추악하고 끔찍하게 변해갔고, 도리언은 자기만 볼 수 있는 곳에 초상화를 감춰버린다.

 

"홀워드가 그려준 자신의 초상화 앞에 서서 캔버스 위의 늙고 사악한 얼굴을 바라보다가, 그 곁에 윤이 나게 닦엔 거울 속에서 자신을 보고 활짝 웃고 있는 젊고 아름다운 얼굴을 들여가보곤 했다. 그 현저한 대조가 그의 쾌감을 자극했다. 그는 점점 자신의 미모에 반했고, 점점 자신의 영혼이 타락하는 모습에 흥미를 느꼈다."(237)

 

어느덧 2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르고, 점차 도리언에 대한 추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도리언을 가까이 한 사람들이 모두 망하거나 타락하게 되었다는 것, 그가 늙지 않는 이유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기 때문이라는 것 등의 소문이 퍼지게 되고 이를 염려하게 된 홀워드는 깊은 밤 도리언을 찾아갔다. 홀워드의 충고가 견디기 힘들었던 도리언은 그에게 그가 그린 초상화가 어떻게 변했는지 직접 보여주고, 변한 추상화를 본 유일한 사람이 된 홀워드를 죽이게 된다.  

 

도리언 때문에 자살했던 베인의 오빠가 도리언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를 쫓기 시작하면서 도리언은 점점 벼랑끝에 몰리게 된다. 나중에 도리언을 쫓던 베인의 오빠마저 사라지게 되지만 도리언은 불안과 공포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의 눈길과 관심에도 진저리를 치게 된다.

 

"아! 세월의 짐은 초상화가 모두 떠맡고 자신은 영원한 젊음을 유지하며 흠 없이 화려한 빛만 발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오만과 정념으로 똘똘 뭉친 극악무도한 순간들이여! 그의 모든 타락들은 바로 그 기도 때문이엇다. 차라리 죄를 지을 때마다 그 즉시 확실하게 벌이 내려졌더라면 좋았을 것을. .. 가장 공정한 신에게 바치는 인간의 기도는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가 아닌 '우리 죄를 벌하시고'가 되어야 했다."(402)

 

결국 도리언은 홀워드를 살해했던 칼로 초상화를 찢어버리기로 결심한다. 도리언의 집에서 들리는 비명 소리에 경찰이 출동했다. 그의 다락방에서 아름답고 고귀한 모습의 앳된 청년이 그려진 초상화와 가슴에 칼이 꽂힌 채 바닥에 쓰러져있는 늙은이가 죽은 채 발견되었다.

 

외모의 아름다움을 쫓다 완전히 타락하게 된 도리언의 이야기..

결국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가장 공정한 신에게 바치는 인간의 기도는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가 아닌 '우리 죄를 벌하시고'가 되어야 했다."라는 말로 정리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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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철의 세계건축기행
김석철 지음 / 창비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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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전공한 전문가가 저술한 책이다. 소재는 '건축물'이지만 그 소재를 풀어가는 소스는 역사와 철학, 그리고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다.

 

책은 크게 죽음의 공간, 신의 공간, 삶의 공간, 인간의 공간 이 4부로 구성이 되어있고 각각의 챕터에 그 나라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건축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백번 듣는 것 보다 한번 직접 눈으로 보는 게 낫다고, 사실 내용 자체는 그렇게 감명깊었던 것은 아니지만 건축물을 대하는 저자의 관점이랄까 태도가 무척 와닿았다.

 

"건축은 건축가가 이해하는 것보다 더 넗고 깊은 의미로서 실재한다. ... 건축이라는 이름의 역사적 분석이나 미학적 접근은 오히려 건축을 조형 예술에 국한시키는 일이다. 건축공간은 의미형식이 물상을 지배할때 뜻이 있게 된다. 건축은 물상의 미학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설화의 세계와 의미의 미학을 표현할때 인류의 유산이 되는 것이다."

 

 

-소소한 잡식-

* 나폴레옹은 피라미드 석재들로(쿠푸왕 피라미드 230만개 돌) 프랑스 국경 전체에 담을 쌓을 수 있으리라 했다.

* 카이사르의 알렉산드리아 침공때 일어난 화재로 '이집트 역사' 30권을 포함해 무려 70만권의 장서가 소실되었다.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제국 안의 모든 이교도 신전을 폐쇄한 이후 고대 이집트의 역사는 지하세계에 묻혔다.

*까다콤베의 아치형 구멍은 부유층의 시신을 놓았단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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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제국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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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소설이다. <검은꽃>을 본 이후 두 번째인데, 며칠 전에 이분 고향이 강원도라는 걸 알았다. 지금 찾아보니 화천 출신이시네.

 

 

여기 김유정역에 있는 책들이 어떤 기준으로 선정된 것인지 궁금했는데 바로 강원도 출신의 작가들 작품이라는 것. 이중에 김영하의 <검은꽃>이 있다.

 

<빛의 제국>은 김영하의 작품이라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는 게 없는 상태에서 읽었다. 주인공 기영이 남파된 지 21년 된, 끈 떨어진 간첩이라는 것도 책을 읽는 도중 알게 됐다.

 

책 겉표지엔 아무 활자도 없이 그림 한점이 가득 채워져 있는데, 이 그림의 제목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빛의 제국'이라는 것도 책을 다 읽고 나서 책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보던 중 알게 됐다.

 

화가 르네 마그리트가 '빛의 제국'을 그리는데 사용한 기법이 더페이즈망 기법이라는 것인데 불어보 '추방하는 것'이란 뜻이라고 한다. 같은 장소에 있어서는 안 될 물건을 공존시키거나 일상적인 세계에 있어선 안될 물건을 존재하게 만드는 기법이라고. 누군가 한마디로 정리하기를 '공존해선 안 될 물건들이 공존하는 역설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설명을 보고나서야 책의 내용이 정리되는 듯 했고, 책의 제목이 '빛의 제국'인 것도 이해가 됐다. 설마 저자 김영하는 이 그림 한점을 보고 소설을 구상하게 된 걸까..?

 

이 소설은 주인공 기영과 그의 아내 마리, 딸 현지의 어떤 하루, 아침 7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 사이에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세 명 전부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없는(내가 내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설사 가깝다고 여기는 사람에 대해서 조차) 케릭터다. 끈 떨어진 간첩이라는 존재가 가장 희귀한 것 같지만, 사실 자식 뻘의 대학생을 몰래 사귀고 그것도 모자라 그의 친구까지 함께 세명이서 여관에서 관계를 하는 기영의 아내, '마리' 케릭터가 더 이해할 수 없었다.

 

책을 읽다가 표시해 둔 부분이 있는데, 다시 보니 표지 그림과 글의 이미지가 겹쳐지면서, 주인공의 심리가 더 잘 이해됐다.

 

"만으로 마흔둘, 내 삶은 과연 무엇이었나. 별다른 과오 없이, 남들보다 조금 위험한 직업에서, 커라단 실패없이 안정되게 살아왔다. 처음 스물한 해는 북에서, 그리고 나머지 스물 한 해는 남에서, 내 인생은 둘로 정확히 나뉘어 있다. 전도양양한 평양외국어대학의 영어과 학생이었던 절반과 조용히 비합법적 이민자로, 자발적 고아로 살아온 나머지 절반은 아무래도 아귀가 맞지 않는 퍼즐처럼 분리되어 나뒹굴고 있다. 이런 생을 살게 되리라 예상하지 않았고, 이런 생을 살게 된 후엔 이전의 반생을 잊어야 했다. 갑자기 전생을 알게 된 사람의 기분이 혹시 이럴까. 잊어도 좋다고 생각했던 과거는 바이러스처럼 잠복해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존재를 드러냈다." (325)

 

기영과 마리가 겪은 하루는 지나치게 독특한 설정이긴 하지만, 사실 누구에게나 이런 이중적인 모습이 조금씩은 있는 것 같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조차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읽을 땐 잘 몰랐는데 읽고 나니 뭔가 생각하게 하는 소설인 것 같다.

 

아래는, 딱히 내용과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고, 단지 좋아서 표시해두었었는데, 이것 역시 따져보면, 역설적이고 공존할 수 없는 행동이나 감정도 어느 부분에서 만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들었다.

 

"기영은 눈을 감았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은 슬픈데, 그것은 그들이 자신의 어린 모습을 간직한 채로 늙어가기 때문이었다. 소년이 늙어 노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소년은 늙어 늙은 소년이 되고 소녀도 늙어 늙은 소녀가 된다."(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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