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제국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김영하의 소설이다. <검은꽃>을 본 이후 두 번째인데, 며칠 전에 이분 고향이 강원도라는 걸 알았다. 지금 찾아보니 화천 출신이시네.

 

 

여기 김유정역에 있는 책들이 어떤 기준으로 선정된 것인지 궁금했는데 바로 강원도 출신의 작가들 작품이라는 것. 이중에 김영하의 <검은꽃>이 있다.

 

<빛의 제국>은 김영하의 작품이라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는 게 없는 상태에서 읽었다. 주인공 기영이 남파된 지 21년 된, 끈 떨어진 간첩이라는 것도 책을 읽는 도중 알게 됐다.

 

책 겉표지엔 아무 활자도 없이 그림 한점이 가득 채워져 있는데, 이 그림의 제목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빛의 제국'이라는 것도 책을 다 읽고 나서 책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보던 중 알게 됐다.

 

화가 르네 마그리트가 '빛의 제국'을 그리는데 사용한 기법이 더페이즈망 기법이라는 것인데 불어보 '추방하는 것'이란 뜻이라고 한다. 같은 장소에 있어서는 안 될 물건을 공존시키거나 일상적인 세계에 있어선 안될 물건을 존재하게 만드는 기법이라고. 누군가 한마디로 정리하기를 '공존해선 안 될 물건들이 공존하는 역설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설명을 보고나서야 책의 내용이 정리되는 듯 했고, 책의 제목이 '빛의 제국'인 것도 이해가 됐다. 설마 저자 김영하는 이 그림 한점을 보고 소설을 구상하게 된 걸까..?

 

이 소설은 주인공 기영과 그의 아내 마리, 딸 현지의 어떤 하루, 아침 7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 사이에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세 명 전부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없는(내가 내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설사 가깝다고 여기는 사람에 대해서 조차) 케릭터다. 끈 떨어진 간첩이라는 존재가 가장 희귀한 것 같지만, 사실 자식 뻘의 대학생을 몰래 사귀고 그것도 모자라 그의 친구까지 함께 세명이서 여관에서 관계를 하는 기영의 아내, '마리' 케릭터가 더 이해할 수 없었다.

 

책을 읽다가 표시해 둔 부분이 있는데, 다시 보니 표지 그림과 글의 이미지가 겹쳐지면서, 주인공의 심리가 더 잘 이해됐다.

 

"만으로 마흔둘, 내 삶은 과연 무엇이었나. 별다른 과오 없이, 남들보다 조금 위험한 직업에서, 커라단 실패없이 안정되게 살아왔다. 처음 스물한 해는 북에서, 그리고 나머지 스물 한 해는 남에서, 내 인생은 둘로 정확히 나뉘어 있다. 전도양양한 평양외국어대학의 영어과 학생이었던 절반과 조용히 비합법적 이민자로, 자발적 고아로 살아온 나머지 절반은 아무래도 아귀가 맞지 않는 퍼즐처럼 분리되어 나뒹굴고 있다. 이런 생을 살게 되리라 예상하지 않았고, 이런 생을 살게 된 후엔 이전의 반생을 잊어야 했다. 갑자기 전생을 알게 된 사람의 기분이 혹시 이럴까. 잊어도 좋다고 생각했던 과거는 바이러스처럼 잠복해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존재를 드러냈다." (325)

 

기영과 마리가 겪은 하루는 지나치게 독특한 설정이긴 하지만, 사실 누구에게나 이런 이중적인 모습이 조금씩은 있는 것 같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조차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읽을 땐 잘 몰랐는데 읽고 나니 뭔가 생각하게 하는 소설인 것 같다.

 

아래는, 딱히 내용과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고, 단지 좋아서 표시해두었었는데, 이것 역시 따져보면, 역설적이고 공존할 수 없는 행동이나 감정도 어느 부분에서 만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들었다.

 

"기영은 눈을 감았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은 슬픈데, 그것은 그들이 자신의 어린 모습을 간직한 채로 늙어가기 때문이었다. 소년이 늙어 노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소년은 늙어 늙은 소년이 되고 소녀도 늙어 늙은 소녀가 된다."(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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