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일단 가고봅시다! 키만 큰 30세 아들과 깡마른 60세 엄마, 미친 척 500일간 세계를 누비다! 시리즈 1
태원준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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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살 아들과 예순의 엄마가 함께 한 300일간의 세계여행기.

여행기를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여행기 중 최고인 것 같다.

여행지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하고 예약 방법, 비용, 소요시간, 저렴한 숙소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안내하는 등의 소위 '친절한' 여행책은 아니지만, 여행지에서 벌어지는 황당하고 웃긴 에피소드와 곳곳에 흩뿌려져 있는 모자지간의 애틋한 마음이 큰 감동으로 전해지는 책이다. 다 읽었을 때쯤, 여행이란 이런 거구나... 그치만 결코 정의내리기엔 아직 막막하고 막연한,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또 엄마가 더 나이들기 전에 함께 이런 여행 한 번 해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나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하지 않으면 엄마한테 왠지 너무 미안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저자가 여행을 하며 블로그에 남긴 매일의 기록(여행중에 포스팅한 글만 300개가 넘는다고)이 큰 반응을 얻게 되면서 올해 7월 출판사의 제의를 받아 출간되었다. 네이버 블로그 '둘이 합쳐 계란 세 판'을 핸드폰 메인화면에 바로가기 등록해 놓고 틈틈이 보고 있다. 책에 실리지 않은 사진들을 많이 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책 중간 중간 엄마 동익씨의 일기도 짧게 실려 있는데 마치 요즘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꽃보다 할배'에서 감회에 젖은 신구 할배가 남기는 촉촉한 멘트 같은 느낌을 준다. 요즘 노년의(예순은 결코 노년이라 할 수 없지만) 여행이 유행인 것 같다. 주인공은 나이든 할머니, 할아버지지만 오히려 새파랗게 젊은 내가 용기를 얻고 에너지를 얻는다. 그게 인기비결이 아닌가 싶다.

 

여행 중에 엄마 동익씨가 "살면서 처음으로 내일이 막 궁금해져"라는 말을 하는데, 가슴이 뭉클해졌다. 어버이날을 맞이해 누나가 방콕으로 날아와 서프라이즈 파티를 해주는데 엄마가 눈앞에 있는 딸을 보고도 믿지 못하다가 결국엔 얼싸안고 뛸듯이 기뻐했다는 부분을 읽을땐 눈물이 나기도 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그 나라의 명소를 많이 보고와야 한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 모자의 여행을 결코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없다. 엄마가 돌아가자고 하는 순간이 여행이 종료되는 시점이라는 애초의 계획에 맞게 그날의 컨디션, 여행지에서 받은 감동의 크기에 따라 예정보다 오래 머물기도 하고, '여기 다신 안 온다!'하며 들르자마자 다른 곳으로 떠나기도 한다. 예측할 수 없는 사건과 거기에 대처하는 저자 태원준씨와 엄마 동익씨의 임기응변을 읽는 것이 이 책의 재미이다.

 

10월 달에 출간될 예정이라는 유럽 여행기가 담긴 2권 역시 정말 기대된다.  

 

"첫발만 내딛으면 될 것을, 그동안 왜 그리 고민했을까. 세상은 누구의 발길도 거부하지 않는다. 지금 나보다 훨씬 더 나이 든 길들이 나를 안내하고 있다."(엄마의 여행노트 1)

 

"세계 어느 곳에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업신여기거나 차별하지 않을 것이다. 생명의 존엄함에 경의를 표할 것이고, 자연의 위대함에 고개를 숙을 것이다. 최대한 현지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소비를 하고, 현지의 문화와 환경을 평가하거나 파괴하지 않을 것이다. 각 여행지의 언어와 문화를 아주 얄팍하게나마 공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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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평전 - 시대를 밝힌 '사상의 은사'
김삼웅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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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상의 은사 vs 의식화의 원흉

왕성한 활동을 할때부터 돌아가신 지금까지도 극단의 평가를 받고 있는 리영희선생 평전을 읽었다. 어떻게 한 사람에 대한 평가가 이토록 대척점에 위치할 수 있을까. 그것도 어느 입장에서든 굉장히 적극적으로. 그만큼 사회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치중립적으로 얘기하자면, 그것이 곧 리영희선생의 영향력을 반증하는 척도이기도 할 것이라 생각된다.

기자가 되고 싶어했던 그때에 리영희를 몰랐던 것이 정말 부끄럽다. 리영희선생은 베트남전쟁과 파병이 정당하지 못하다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돈, 직장, 반공법 기소 취하를 보장해줄테니 베트남 출장을 다녀와 달라는 언론사주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기회주의적으로 당대의 권력층에 편승하려는 후배 기자들에겐 무서운 귀신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하지만 미문화원에 방화를 했던 문부식, 김은숙 같이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사상의 은사'였다. 문부식이 재판에서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 반미사상을 갖게 됐다고 진술했는데 이 때문에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계한 일이 없는 리영희가 증인으로 출두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베트남전쟁과 파병의 실상을 잘 몰랐는데, 선생이 쓴 <베트남 전쟁>이나 <대화>를 꼭 읽어봐야 겠다.

김원봉이 해방 후 친일경찰 노덕술에 잡혀가 일제치하 일본 경찰에게서도 당하지 않은 모진 고문을 받고나서 굴절된 해방정국을 한탄스러워 했듯이, 리영희 역시 서대문형무소에 갇혀 동상 걸린 열 개 발가락의 피를 뽑아내며 자기 국가의 시설 안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겠냐며 서글퍼했다. 일제시대 때 감옥보다도 못한 처지였다.

리영희선생은 기자, 교수였던 적이 있지만 거듭된 해직과 수감생활로 순탄한 직장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리영희를 얘기할때 기자, 교수라고 하기 보다는 '지식인'이라는 수식어를 많이 쓴다. 오늘날 소위 지식인이라 불리는 사람들과 비교한다면 리영희에 대한 온전한 평가를 내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물며 요즘 독보적 지식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기는 한가?

김대중 정부 수립 직후 3.1절 기념 사면조치에 앞서 준법서약서라는 것을 쓰게 했는데, 리영희가 김대중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그 조치의 부당성을 논박했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김대중 정부는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양심수들의 석방에 준법서약의 굴레를 씌우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죽을때까지 일관된 신념을 갖고 발언한, 실천한, 양심있는 지식인이 또 있을까?

지식인이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새롭게 알게 해준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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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쇼 - 2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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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소설이다. 항상 무언가를 쫓으며 살다보니 그게 당연한 것처럼 생각된다. 열심히, 항상 치열하게 살아야 할 의무는 없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권리는, 사람에게 있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부모님은 나에게 열심히 살라고 한번도 말씀하신 적 없는 것 같은데, 자라면서 사회적으로 학습되는 것들이 있다. 역경은 극복해야 하는 것이고, 성취는 노력과 운의 결과물이고, 최선을 다했을때 후회는 없지만 미련은 남는다는 것들을...

김영하의 책 중 유일하게 키득키득 웃으면서 읽은 소설이다. 머피의 법칙 처럼 주인공 민수에게 안 좋은 일만 생긴다. 할머니가 엄마인줄 알고 자랐는데 초등학생이던 어느날 학교에 오신 친구들의 부모님을 보고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할머니로부터 사실은 내가 니 할미다, 라는 고백을 듣는다. 할머니 손에서 부족함이 자랐는데 어느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세상에 혈혈단신 혼자가 됐고 그 적적함을 채팅으로 잊게 된다. 상실감이나 외로움, 슬픔이라 표현하지 않고 적적함이라 얘기한 이유는, 김영하의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분위기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을 위로하거나 가엾어하거나 애처로워하지 않는다. 전혀. 김영하 소설의 특징 중 하나인 것 같다.

두분불출 채팅에 빠져 자유로운 날들을 보내던 어느날 동사무소 직원들이, 다음날엔 또 어떤 공무원들이 찾아와 할머니가 남긴 빚을 갚으라고 독촉한다. 풍족하게 살아오던 민수는 자신이 누린 풍요로움이 할머니가 진 빚 덕분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민수는 이 순간에도 절망하지 않는다. 할머니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이 있었기 땜에. 어느날 할머니의 남자친구였던 할아버지가 찾아와, 할머니가 빚을 졌으니 갚을 돈이 없으면 집을 내놓으라고 한다. 민수는 역시 절망에 빠지지 않는다. 담담하게 짐을 꾸려 고시원으로 이사한다.

민수는 자신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찾아오기는 커녕 헐, 진짜? 대박ㅠ 같은 반응만을 보였던 여자친구와도 담담하게 헤어진다. 그런데 이 여친이 자꾸 따라다니자 민수는 보잘 것 없는 날 왜 못 잊냐는 거냐고 물어본다. 여친의 한마디. 니가 불쌍해서..ㅋㅋ

여기까지 민수에게 닥치는 상황들이 정말 코미디다. 처절하게 슬픈 상황인데 읽으면서 자꾸 웃음이 난다. 원 펀치, 투 펀치, 쓰리 펀치, 그리고 결정적 한 방으로 넉다운.

고시원 한달 방값도 낼 수 없는 형편이면서 일을 할 생각이나 취업준비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편의점 알바하다가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점주의 태도에 기분이 상해 박차고 나오질 않나 고시원 옆방에 사는 여자한테 돈을 꾸질 않나. 열심히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민수의 뇌구조엔 없다. 코딱지 만큼도.

채팅에서 만난 벽속의 요정, 지원을 실제로 만나게 되면서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끼게 된다. 채팅방에서 몰래 비밀얘기를 나누며 가까워졌을 때엔 서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데이트를 하며 새삼 낯선 감정을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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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나날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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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전한 삶이란 없다. 그 조각만이 있을 뿐. 우리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존재로 태어났다. 모든 것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그런데 빠져나갈 이 모든 것들, 만남과 몸부림과 꿈은 계속 퍼붓고 흘러넘친다.... 우리는 거북이처럼 생각을 없애야 한다. 결의가 굳고 눈이 멀어야 한다. 무엇을 하건, 무엇을 하지 않건 그 반대는 하지 못한다. 행동은 그 대안을 파괴한다. 이것이 인생의 역설이다. 그래서 인생은 선택의 문제이고, 선택 자체가 중요한게 아니라 되돌릴 수 없을 뿐이다. 바다에 돌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중요한 깨달음 중 하나는 꿈 꾼 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비장해둔다. 남들이 실패하면 우리가 성공한 것익느, 남들이 바보 같으면 우리는 현명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실을 부여잡고 나아간다.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을 때까지.

379. 그녀가 말하는 자유란 자기 정복이었다. 그건 자연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자신의 모든 걸 걸 수 있는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었다. 그게 없는 삶이란 이가 남아 있을 때까지 느끼는 식욕에 불과하다는 걸 아는 사람에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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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 펭귄클래식 135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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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찾으러 갔다가 같은 책장에 꽂혀 있는 이 책을 같이 빌리게 됐다. 책 커버 뒷장에 '성경,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전 세계 독자가 가장 많이 읽은 책!'이라 적혀 있는데, 난 이 책에 대해 아는 바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성경 다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이자, 톨스토이가 '19세기 최고의 문호로 존경'한 찰스 디킨스의 대표작이자 또 프랑스혁명의 광기를 그린 역사소설이라니까 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앞부분은 좀 재미없었다. 프랑스혁명이 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즉 앙시앙레짐의 고통 속에서 프랑스 민중들이 어떤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는지는 이미 다른 활자로, 최근의 영화 '레미제라블'을 통해서도 접해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좀 지루하게 느껴졌다. 책의 분량이 장장 600페이지에 달해 이걸 다 읽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대전에서 만난 김보영이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를 봤는데 재밌었다는 얘기를 해 인내심을 발휘해 주말 내내 기숙사에 틀어박혀 읽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1789년 시점의 이야기는 소설 중반부터 시작이 된다. 그때부터 좀 재밌어졌다. 바로 이 시점부터 혁명이 어떤 대의나, 묵직한 역사적 사건으로서가 아니라 지배계급을 향해 총, 칼을 겨눌 수밖에 없었던 개인들의 이야기가 펼쳐져서 흥미로웠다.

 

그런데 대충 빨리 읽어서 그런가, 책의 제목이 왜 '두 도시 이야기'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물론 루시와 찰스 다네이가 한때 런던에서 살다가 파리로 가게 되면서 말그대로 '두 도시 이야기'가 좀 대조적으로 서술된 부분이 있기도 한데 그게 이 소설에서 그렇게 큰 축을 차지하고 있는지는 좀 의문이다. 뮤지컬에서는 이 부분이 어떻게 반영됐는지 궁금하네.

 

귀족 가문의 찰스 다네이, 그 가문의 추악함을 우연히 알게 됐고 그로인해 바스티유 감옥에서18년 동안 갇혀 지내야 했던  마네트 박사, 이런 사실을 모르고 찰스 다네이와 결혼한 박사의 딸 루시, 그리고 찰스 다네이 가문에 의해 가족을 잃은 농노 드파르주 부인, 루시를 사랑했고 그녀의 가정을지켜주기 위해 찰스 다네이를 대신해 기요틴 행을 자처했던 카턴.

 

아무래도 소설을 이끌어가는 인물은 드파르주 부인인 것 같다. 그녀의 원한이 결국 지배층에 대한 분노로 확대되고 복수를 위한 계획과 실천이 프랑스혁명의 일부를 장식하게 된다. 이런 개개인들의 스토리가 하나의 물방물이 되어 결국은 프랑스혁명이라는 큰 파도를 만들게 된 것 같다.  

 

소설의 마지막 시점은 1794년이다. 1분 마다 한명씩 단두대에서 처형을 당해야했던 공포정치의 잔혹한 측면이 소설 속에 잘 나타나는데, 이런 잔인함이 순수하게 '자유, 평등, 박애'를 위해서도 발휘될 수 있는 것일까. 개인적인 복수심, 원한, 억울함이 없었다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민중의 분노는 개인의 고통, 불만에 기초한 것이고 그것의 분출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한번도 제대로 성공하지 못한 걸까.

 

프랑스 혁명을 새로운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게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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