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쇼 - 2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김영하의 소설이다. 항상 무언가를 쫓으며 살다보니 그게 당연한 것처럼 생각된다. 열심히, 항상 치열하게 살아야 할 의무는 없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권리는, 사람에게 있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부모님은 나에게 열심히 살라고 한번도 말씀하신 적 없는 것 같은데, 자라면서 사회적으로 학습되는 것들이 있다. 역경은 극복해야 하는 것이고, 성취는 노력과 운의 결과물이고, 최선을 다했을때 후회는 없지만 미련은 남는다는 것들을...

김영하의 책 중 유일하게 키득키득 웃으면서 읽은 소설이다. 머피의 법칙 처럼 주인공 민수에게 안 좋은 일만 생긴다. 할머니가 엄마인줄 알고 자랐는데 초등학생이던 어느날 학교에 오신 친구들의 부모님을 보고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할머니로부터 사실은 내가 니 할미다, 라는 고백을 듣는다. 할머니 손에서 부족함이 자랐는데 어느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세상에 혈혈단신 혼자가 됐고 그 적적함을 채팅으로 잊게 된다. 상실감이나 외로움, 슬픔이라 표현하지 않고 적적함이라 얘기한 이유는, 김영하의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분위기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을 위로하거나 가엾어하거나 애처로워하지 않는다. 전혀. 김영하 소설의 특징 중 하나인 것 같다.

두분불출 채팅에 빠져 자유로운 날들을 보내던 어느날 동사무소 직원들이, 다음날엔 또 어떤 공무원들이 찾아와 할머니가 남긴 빚을 갚으라고 독촉한다. 풍족하게 살아오던 민수는 자신이 누린 풍요로움이 할머니가 진 빚 덕분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민수는 이 순간에도 절망하지 않는다. 할머니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이 있었기 땜에. 어느날 할머니의 남자친구였던 할아버지가 찾아와, 할머니가 빚을 졌으니 갚을 돈이 없으면 집을 내놓으라고 한다. 민수는 역시 절망에 빠지지 않는다. 담담하게 짐을 꾸려 고시원으로 이사한다.

민수는 자신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찾아오기는 커녕 헐, 진짜? 대박ㅠ 같은 반응만을 보였던 여자친구와도 담담하게 헤어진다. 그런데 이 여친이 자꾸 따라다니자 민수는 보잘 것 없는 날 왜 못 잊냐는 거냐고 물어본다. 여친의 한마디. 니가 불쌍해서..ㅋㅋ

여기까지 민수에게 닥치는 상황들이 정말 코미디다. 처절하게 슬픈 상황인데 읽으면서 자꾸 웃음이 난다. 원 펀치, 투 펀치, 쓰리 펀치, 그리고 결정적 한 방으로 넉다운.

고시원 한달 방값도 낼 수 없는 형편이면서 일을 할 생각이나 취업준비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편의점 알바하다가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점주의 태도에 기분이 상해 박차고 나오질 않나 고시원 옆방에 사는 여자한테 돈을 꾸질 않나. 열심히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민수의 뇌구조엔 없다. 코딱지 만큼도.

채팅에서 만난 벽속의 요정, 지원을 실제로 만나게 되면서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끼게 된다. 채팅방에서 몰래 비밀얘기를 나누며 가까워졌을 때엔 서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데이트를 하며 새삼 낯선 감정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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