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라지 가는 길
김원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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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집 <물방울 하나 떨어지면>에서 저자의 장애문제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었는데, 이 책은 자폐아 시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장편소설이다. 시우 자신이 화자가 되어 독백처럼 자신의 일상을 읊조린다. 자폐를 지닌 사람의 말이 그러하듯, 소설의 문체는 짧고 간명하다.

 

"나는 자주 운다. 할머니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온다. 할머니를 만나면 누구에게도 못했던 말을 하고 싶었다. 고물장수를 따라나선 뒤부터, 대전 지하실 슬리퍼 공장, 부랑아 수용소, 풍류 아저씨와 함께 한 거지 생활, 멍텅구리배를 타고 바다에 갇힌 생활, 거기서 만난 강훈 형, 항구에서의 조폭 생활, 구리시로 올라와서...... 길고 긴 사연이다. 말이 되어 풀릴 것 같지 않다. 그럴 땐 울 수밖에 없다."

 

소설의 등장인물 중 시우는 유일한 장애인이다. 어린 시절 낯선 사람을 따라나섰다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삶을 강요받으'며 살게 된다. 소설의 도입부는 좀 충격적이었다. 시우를 종업원 삼아 먹여주고 재워주며 잠자리를 강요하는 식당 주인. 시우를 둘러싼 모든 인물이 시우를 목적에 따라 이용하려고 하지만, 유독 이 식당 주인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이유는 뭘까;

 

아우라지에서 함께 살았던 돌아가신 아빠와의 추억,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매 순간 시우의 회상을 통해 되살아난다. 그가 있어야 할 곳이기에 반드시 돌아가야만 하는 곳이기도 한 아우라지. 저자의 다른 소설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 역시 화해와 희망을 제시하며 끝이 난다. 우아라지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와준 유일한 사람이었던 경주가 아우라지에 노인과 장애아동을 위한 복지시설을 만들기 위해 주민들을 설득하는 결말.

 

장애란 무엇일까. 무엇이 진짜 장애일까,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시우는 소설 속 유일한 장애인이지만,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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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하나 떨어지면
김원일 지음 / 문이당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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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김원일 읽기' 4번째 책. <오마니별>에 이어 이 책도 단편집이다. 죽음에 임박해 자폐아 아들을 고속버스 터미널의 미화원으로 취직 시키는 이야기('미화원'), 인터넷으로 만난 중증 지체 장애인을 남편으로 보살피면서 장애 어린이들을 돌보아 주고 보육시설을 위해 재산을 내놓게 되는 과정('물방울 하나 떨어지면'), 인혁당원으로 찍혀 체포되어 고문 끝에 사형되는 한 인물의 이력('고난 일지'), 6.25때 미군의 부주의로 인해 성불구와 정신장애를 겪는 남자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이야기('4가 네거리의 축대'), 사회자의자 동생을 둔 피난민 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의 생애를 추적하려는 조카의 이야기('손풍금')가 차례로 실려있다.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과는 달리 절반 정도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작가 김원일이 어떤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인지 좀 더 새롭게 알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물방울 하나가 고요한 수면에 떨어지면 그 중량으로 파문이 겹으로 커지며 넓게 퍼지다가 스스로 넉넉한 물에 섞여 자취를 감춘다. 그 이치와 같이 베풂이나 선행, 우리네 삶 그 자체도 그런 물방울 하나이리라. 언젠가, 그이와 나도 물방울 하나로 떨어져, 끝내는 그렇게 이 지상에서 흔적 없이 사라지리라."('물방울 하나 떨어지면'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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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니별 - 김원일 소설
김원일 지음 / 강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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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재미있게 읽은 단편집이다. 김원일이라는 작가를 왜 이제서야 알게 됐을까.

이 책 끝에서 평론가가 "그의 소설은 마음을 쉽게 흔들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무겁게 움직이게 한다." 라고 했는데 내가 느낀 감정과 비슷하다. 제대로 읽어내진 못했어도 허투루 읽진 않았나보다.

오마니별, 용초도 동백꽃, 임진강, 남기고 싶은 이야기, 카타콤, 화가의 집 이렇게 여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압권은 역시 가장 앞에 실린 오마니별이다. 뜨겁게 엉킨 무언가가 마지막에 울컥하고 솟아올라서 그 마지막을 몇번이나 읽었다.

이보다 간단하게 정리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 평론가의 말을 옮기자면..

"하늘어 빛나는 별(오마니별)처럼, 땅에 흐드러진 동백꽃(용초도 동백꽃)처럼, 사랑하는 이는 죽어서 별로 뜨고, 아물지 않은 상처는 해마다 핏빛으로 피고 또 진다."

기다림과 외로움은 인간이 타고나는 사명이자 숙명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기꺼이 받아들이고마.. 생각했다.

역사가 씌운 굴레를 벗겨내고자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 때문에 생긴 상처인지도 모른채 자기 자신 혹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내에서 굴레를 짊어지고 그저 고달프게 살아갔던 사람들의 이야기라 더 애처롭게 느껴진다. 나도 꼭 그랬을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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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7
김원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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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었을때 마음이 묵직해지는 느낌. 주인공의 질곡 짙은 삶이 주는 무게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훌륭한 소설을 만난 것에 대한 기쁨 때문이기도 하다. 김원일의 소설 <마당깊은 집>을 읽었었는데 그때의 배경보다 2~3년 앞선 해방 직후 정부수립 즈음을 시대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그 소설보다 더욱 치밀하고 진솔하고 생생한 느낌을 준다. 이 작가, 정말 지독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당깊은 집> 역시 1인칭 시점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노을>은 주인공 갑수가 고향에 계신 삼촌의 부고 소식을 듣고 떠나온지 29년이 지난 고향을 되찾으며 지우고 싶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현재에 이르고, 다시 회상하고, 다시 현재에 이르는 서사 구조를 취하고 있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자면 소설은 갑수와 아들이 고향을 찾는 날부터 시작해 다시 서울로 돌아오기까지의 단 사나흘의 시간을 담고 있지만, 갑수의 기억에 따라 되짚어지는 지난 날의 일들은 정부 수립을 앞두고 있던 1948년을 시작으로 한다.

 

갑수에게 아버지 김삼조는 애증의 대상이다. 백정으로 짐승을 죽이는 것도 모자라 엄마를 구박하고 때려 결국 엄마와 누이로 하여금 자신과 동생을 남겨두고 집을 나가게 만든 공포와 원망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세상에서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다. 일자무식의 아버지는 진영 시골에까지 흘러들어온 이념에 물들어 남로당 봉기의 주역이 되고, 짐승을 도륙하듯 마을의 지주와 관리들을 죽였다. 아버지의 낌새가 이상하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아차린 갑수는 오로지 엄마와 아버지를 제자리로 돌려놓고 싶다는 바람 하나로 전전긍긍 아파하고 절망한다. 봉기가 실패로 끝나자 아버지는 산 속에 숨에 지내다 월북을 시도했지만 발각되어 진영 읍내에서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야산대가 된 아버지를 대신해 엄마는 지서에 끌려가 모진 문초를 당했고, 갑수는 이웃의 소개로 부산에 있는 서점에서 일을 하게 된다.

 

어엿한 성인이 된 갑수는 서울 유명 출판사에 일하며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다. 이제 더이상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던 백정의 자식도 아니고, 좌익 빨갱이의 자식, 부역자도 아니지만 그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는 과거의 기억은 29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고향을 등지게 만들었다. 그가 모진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고향을 앗아간 과거가, 지난 삶이 모질었던 것이다.

 

그러나 소설에서 결국 갑수는 과거와 화해한다. 벗어날 수 없음을, 그 스스로 놓여나기를 원하지 않음을 인정함으로써 소설은 끝이 난다. 핏빛으로 얼룩진 지옥보다 더 지옥같은 과거라 할지라도 그곳에 자신의 뿌리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주인공의 성장통은 끝이 난다. 성장통이라 얘기 하기엔 고통과 절망의 사이즈가 비교조차 되지 않지만.. 

 

" 아버지를 그토록 지긋지긋하게 여기던 엄마가 왜 저렇게 흥분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엄마도 나처럼 아버지만 떠올리면 미움과 사랑이 한데 섞갈려 때와 곳에 따라 한 가지씩만 나타나는지 알 수 없었다." (259)

 

어린 동생 갑득이가 엄마가 사준 흰고무신을 자랑할 생각에 들떠 신나있을때, 아버지가 좌익의 선봉에 서있음으로써 자기 가족에게 닥칠 위험에 두려워하던 갑수가 결국 처음으로 소리내 울던 장면..

 

"나는 우는 방법 외 다른 방법이 없다는 듯, 울고 울었다. 흐느낌이 흐느낌을 부르고, 눈물이 마르지 않는 샘처럼 쏟아졌다. 내 울음이 아버지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나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오래 울고나면, 더 나올 눈물도 말라버릴 때쯤 하나님이 우리 가족을 도와 지켜줄 것만 같았다."(263)

 

""니만은 이 애비를 나뿐 사람이라고 생각지 말거래이." 나는 아버지 말에 울컥 눈물이 솟았다. 목이 메었다. 아버지 말이 거짓말이래도 좋았다. 어쩜 당신이 심심풀이로, 이유도 닿지 않는 줄 뻔히 알면서 해보는 희떠운 소리일 수 있었다. 그러나 잠시 뒤, 아니 내일, 아니 먼 훗날, 그때 내가 당신을 욕하게 될지라도 지금은 아버지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해주리라고, 그럴 수밖에 없다고 나는 다짐했다. 당신 외에 어느 누구도 나에게 아버지가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315)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던 아버지나 외삼촌은 스물아홉 해 전에 죽고, 그 무리의 이론자 지도자였던 배도수씨는 지금 펄펄 살아 대한민국 땅을 딛고 내 앞에 앉아 있는 현실을, 다 제가끔 타고난 팔자 소관으로 미루어버리기엔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다. ...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자니가 하며 낑중거렸던 아버지와 외삼촌이 거창한 사상 문제에 뛰어들어 죽었다는 사실은 한마디로 비극 중의 희극이요, 희극이라기엔 너무 비극적인 종말이었다."(324)

 

"지금 노을진 차창 밖을 내다보는 현구 앞에 비친 아버지 고향도 반드시 어둠을 기다리는 상처 깊은 고향이기보다, 내일 아침을 예비하는 다시 오고 싶은 아버지 고향일 수 있으리라."(345.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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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만리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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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는 나폴레옹이 남겼다는 "중국인이들이 각성하면 세계가 달라질 것이다"는 말, 그리고 에피소드로는 마지막이 가장 인상적이다. 종합병원 의료납품 프로젝트를 독일에게 빼앗긴 이토 히데오의 회사. 눈 앞에서 거액의 프로젝트가 날아간 이유를 알고보니 그 중 하나가 '남경대학살' 때문이었다는 것. 1권은 이렇게 이토 히데오와 도요토미 아라키가 일본 정치인들을 원망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생각해보니 등장인물 일본인 두명의 이름이 공교롭게 철천지 원수 이토 히로부미,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앞부분이 같다. 작가의 의도된 설정인가?)

 

기대했던 만큼의 역작은 아닌 것 같다. 1권이라 여러가지 에피소드의 시작 부분만 나열 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읽는 내내 왠지 산만하고, 숨이 가쁘고, 찜찜한 느낌이 든다. 산만하고 숨이 가쁜 건 이러저러 에피소드의 나열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설이 전체적으로 짧은 시간에 이뤄진 중국의 경제성장을 조명하고 있다보니 스토리와 구성 자체가 얽혀서 그런 느낌을 주는 것 같고 찜찜한 기분은.. 역시 돈이면 모든 것이 허용되는, 자본주의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속물 근성이 소설 전체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돈과 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것은 인맥, 중국말로 '꽌시' 뿐이다. 물론 꽌시 역시 궁극적으로 돈과 이익을 목적으로 한다.

 

소설이 결론적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바가 무얼지, 그게 궁금해서라도 마저 읽긴 읽어야겠다. 중국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지만 왠지 한국인과 일본인이 읽으면 좋을 것 같은. 뭘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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