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7
김원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 읽었을때 마음이 묵직해지는 느낌. 주인공의 질곡 짙은 삶이 주는 무게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훌륭한 소설을 만난 것에 대한 기쁨 때문이기도 하다. 김원일의 소설 <마당깊은 집>을 읽었었는데 그때의 배경보다 2~3년 앞선 해방 직후 정부수립 즈음을 시대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그 소설보다 더욱 치밀하고 진솔하고 생생한 느낌을 준다. 이 작가, 정말 지독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당깊은 집> 역시 1인칭 시점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노을>은 주인공 갑수가 고향에 계신 삼촌의 부고 소식을 듣고 떠나온지 29년이 지난 고향을 되찾으며 지우고 싶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현재에 이르고, 다시 회상하고, 다시 현재에 이르는 서사 구조를 취하고 있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자면 소설은 갑수와 아들이 고향을 찾는 날부터 시작해 다시 서울로 돌아오기까지의 단 사나흘의 시간을 담고 있지만, 갑수의 기억에 따라 되짚어지는 지난 날의 일들은 정부 수립을 앞두고 있던 1948년을 시작으로 한다.

 

갑수에게 아버지 김삼조는 애증의 대상이다. 백정으로 짐승을 죽이는 것도 모자라 엄마를 구박하고 때려 결국 엄마와 누이로 하여금 자신과 동생을 남겨두고 집을 나가게 만든 공포와 원망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세상에서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다. 일자무식의 아버지는 진영 시골에까지 흘러들어온 이념에 물들어 남로당 봉기의 주역이 되고, 짐승을 도륙하듯 마을의 지주와 관리들을 죽였다. 아버지의 낌새가 이상하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아차린 갑수는 오로지 엄마와 아버지를 제자리로 돌려놓고 싶다는 바람 하나로 전전긍긍 아파하고 절망한다. 봉기가 실패로 끝나자 아버지는 산 속에 숨에 지내다 월북을 시도했지만 발각되어 진영 읍내에서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야산대가 된 아버지를 대신해 엄마는 지서에 끌려가 모진 문초를 당했고, 갑수는 이웃의 소개로 부산에 있는 서점에서 일을 하게 된다.

 

어엿한 성인이 된 갑수는 서울 유명 출판사에 일하며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다. 이제 더이상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던 백정의 자식도 아니고, 좌익 빨갱이의 자식, 부역자도 아니지만 그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는 과거의 기억은 29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고향을 등지게 만들었다. 그가 모진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고향을 앗아간 과거가, 지난 삶이 모질었던 것이다.

 

그러나 소설에서 결국 갑수는 과거와 화해한다. 벗어날 수 없음을, 그 스스로 놓여나기를 원하지 않음을 인정함으로써 소설은 끝이 난다. 핏빛으로 얼룩진 지옥보다 더 지옥같은 과거라 할지라도 그곳에 자신의 뿌리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주인공의 성장통은 끝이 난다. 성장통이라 얘기 하기엔 고통과 절망의 사이즈가 비교조차 되지 않지만.. 

 

" 아버지를 그토록 지긋지긋하게 여기던 엄마가 왜 저렇게 흥분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엄마도 나처럼 아버지만 떠올리면 미움과 사랑이 한데 섞갈려 때와 곳에 따라 한 가지씩만 나타나는지 알 수 없었다." (259)

 

어린 동생 갑득이가 엄마가 사준 흰고무신을 자랑할 생각에 들떠 신나있을때, 아버지가 좌익의 선봉에 서있음으로써 자기 가족에게 닥칠 위험에 두려워하던 갑수가 결국 처음으로 소리내 울던 장면..

 

"나는 우는 방법 외 다른 방법이 없다는 듯, 울고 울었다. 흐느낌이 흐느낌을 부르고, 눈물이 마르지 않는 샘처럼 쏟아졌다. 내 울음이 아버지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나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오래 울고나면, 더 나올 눈물도 말라버릴 때쯤 하나님이 우리 가족을 도와 지켜줄 것만 같았다."(263)

 

""니만은 이 애비를 나뿐 사람이라고 생각지 말거래이." 나는 아버지 말에 울컥 눈물이 솟았다. 목이 메었다. 아버지 말이 거짓말이래도 좋았다. 어쩜 당신이 심심풀이로, 이유도 닿지 않는 줄 뻔히 알면서 해보는 희떠운 소리일 수 있었다. 그러나 잠시 뒤, 아니 내일, 아니 먼 훗날, 그때 내가 당신을 욕하게 될지라도 지금은 아버지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해주리라고, 그럴 수밖에 없다고 나는 다짐했다. 당신 외에 어느 누구도 나에게 아버지가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315)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던 아버지나 외삼촌은 스물아홉 해 전에 죽고, 그 무리의 이론자 지도자였던 배도수씨는 지금 펄펄 살아 대한민국 땅을 딛고 내 앞에 앉아 있는 현실을, 다 제가끔 타고난 팔자 소관으로 미루어버리기엔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다. ...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자니가 하며 낑중거렸던 아버지와 외삼촌이 거창한 사상 문제에 뛰어들어 죽었다는 사실은 한마디로 비극 중의 희극이요, 희극이라기엔 너무 비극적인 종말이었다."(324)

 

"지금 노을진 차창 밖을 내다보는 현구 앞에 비친 아버지 고향도 반드시 어둠을 기다리는 상처 깊은 고향이기보다, 내일 아침을 예비하는 다시 오고 싶은 아버지 고향일 수 있으리라."(345. 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