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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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저자가 강연한 내용을
'옛 그림 감상의 두 원칙, 옛 그림에 담긴 선인들의 마음, 옛 그림으로 살펴본 조선의 역사와 문화'
이 세 개의 주제로 정리해 펴낸 책이다.
 
저자가 제안하는 옛 그림 감상의 두 원칙이란 옛 사람의 눈으로 보고, 옛 사람의 마음으로 느끼라는 것인데, 구체적인 방식은 다음과 같다.
 
1. 작품 크기의 대각선 또는 그 1.5배 만큼 떨어져서 볼 것
2. 오른쪽 위해서 왼쪽 아래로 쓰다듬듯이 바라볼 것
3.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세부를 찬찬히 뜯어볼 것
 
대부분의 사람들이 책을 읽을때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 방향으로 읽듯 어떤 사물이든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익숙해져 있지만, 선조들은 책을 읽을때에나 그림을 그릴 때에도 오른쪽 방향에서 시작했다는 걸 알게 됐다. 옛 그림을 감상할때 오른쪽 위해서 왼쪽 아래 방향으로 시선을 이동시켜야 한다는 것, 이것 하나 만큼은 절대 잊지 않을 듯.
 
강의 내용 뿐만 아니라 당시 강사의 동선이라든가, 청중의 반응까지도 표기가 되어 있어서 강단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단원 김홍도의 작품이 단연 많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 중에 <송하맹호도>가 인상적이었다. 검정, 갈색, 연갈색, 흰색을 사용해 호랑이 털을 표현했는데 한올 한올이 숨쉬고 있는 것 같은, 그래서 그림 속 호랑이 껑충 그림밖으로 뛰어나올 것 같다. 호랑이 눈동자를 제외하고는 형체를 표현하기 위한 어떤 선도 사용하지 않았다. 오로지 털을 묘사한 것 만으로 호랑이의 형체가 완성되었다. 보통의 인내와 근성으로는 완성할 수 있는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제시대때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이 호랑이 기질을 닮았다고 해서 1914년부터 1917년까지 대대적으로 포수를 동원해 전국의 호랑이를 잡아 죽였다고 한다. 1917년 경주에서 포획된 호랑이가 마지막이었다고. 이놈들 참 악질이다.; .
 
이 책을 읽고나니까 조선회화를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공부해야겠어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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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세상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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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동화 느낌의 소설이다.

왠지 이런 작품은 작가의 초기작일 것만 같은데 가장 최근작이다.

읽은 책 중 <장길산>, <오래된 정원>, <손님> 또 심지어 <강남몽> 까지도 어떤 특정 시기의 역사적 사건을 중심축으로 두고 그에 얽힌 군상들의 삶을 이야기하거나 혹은 날카롭게 사회문제를 비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이 책 <낯익은 세상>은 그렇지 않다.

잔잔하고 은은하면서 등장 인물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짙게 묻어나는 책이다.

그렇다고 작가의 문제의식이 무뎌졌다거나, 뭐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아래는 소설이 끝나는 부분이다.

아, 다행이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딱부리는 이제 알고 있었다. 수많은 도시의 변두리에서 중심가까지의 집과 건물과 자동차 들과 강변도로와 철교와 조명 불빛과 귀청을 찢는 듯한 소음과 주정꾼이 토해낸 오물과 쓰레기장과 버려진 물건들과 먼지와 연기와 썩는 냄새는 모든 독극물에 이르기까지, 이런 엄청난 것들을 지금 살고 있는 세상 사람 모두가 지어냈다는 것을. 하지만 또한 언제나 그랬듯이 들판의 타버린 잿더미를 뚫고 온갖 꽃들이 솟아나 바람에 한들거리고, 그을린 나뭇가지 위의 여린 새잎도 짙푸른 억새의 새싹도 다시 돋아나게 될 것이다. (228)

모든 존재와 현상들이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불교의 화엄사상 처럼 빈부 격차와 불평등의 문제 역시 어쩔 수 없어서 그리 된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만들어낸 것이고, 그 문제를 풀 열쇠 역시 인간들이 쥐고있다는 당연한...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은 좀 어색하다. 저 문장이 없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갑자기 새싹에 빗대어 희망을 얘기하는 것이 왠지 소설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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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여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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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아베 코보는 '일본의 카프카'로 불리는 작가라고 한다. 카프카의 <변신>을 읽었었는데, 주인공이 벌레로 변한다는 설정이나, 이 책 <모래의 여자>처럼 우연한 계기로 모래 구덩이에 갇히게 된 주인공이 모래를 퍼올리는 일을 하다가 결국 세상에서 잊혀져간다는 설정은 기이하고 해괴하다는 점에서 비슷한 측면이 있다.

 

소설의 시작도 왠지 비슷한다. "누군가 요제프 K를 중상한 것이 틀림없다. 아무 잘못한 일도 없는데 어느날 그는 체포되었기 때문이다"로 시작하는 카프카의 <심판>이나,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기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변신>의 도입부분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이미 첫 문장에서 소설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사건을 결과처럼 미리 알려준다는 것이다. 소설을 읽는 그 순간부터 이미 사건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모래의 여자> 또한 비슷하다. "8월 어느날, 한 남자가 행방불명되었다. .. 이렇게 하여 아무도 그가 실종된 진정한 이유를 모르는 채 7년이 지나 민법 제 30조에 의해 끝내 사망으로 인정되고 말았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데, 사실 이 문장만 봐도 사건의 시작과 결말을 알게 되는 셈이다.

 

 

소설의 후반부에 가서야 알게 되는 사실이지만, 교사이면서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한 주인공 남자(이 책에선 사람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 남자와 주인공 여자가 있을 뿐이다)는 아내와의 결혼생활이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에서도 만족감을 별로 얻지 못했던 것 같다. 아직 곤충대백과사전에 등록되지 않은 희귀종을 찾아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고자 사구를 찾아 떠난다. 사구에서 곤충을 채집하다 돌아갈 시간을 지체하여 마을 주민의 안내로 묵을 곳을 찾아 들어가게 되는데, 그곳이 하필이면 한번 들어가면 이제껏 누구도 자신의 의지대로 빠져나온적이 없는 모래 구덩이였다.

 

 

모래 구덩이에는 주인공 여자가 혼자 살고 있다. 여자는 밤낮으로 구덩이속 모래를 퍼 올리는 작업을 한다. 그 일을 조금이라도 게을리 하면 여자가 살고 있는 집은 모래 바람 때문에 모랫속에 파묻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남자는 자신이 구덩이 속에 갇히게 된 이유가 자기로 하여금 여자와 함께 모래를 퍼내는 일을 하게 하려는 마을 주민들의 계획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된다.

 

 

모래 구덩이 속 여자와 남자는 주민들에 의해 철저히 감시를 받는다. 하루 할당량의 일을 해야만 마실 물과 음식이 주어진다. 남자는 자신이 여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짐이 되는 존재처럼 보이고자 꽤를 부리거나 탈출시도를 하지만 번번히 실패한다. 그리고 마시고 먹기 위해 여자를 도와 모래를 퍼올려야 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남자의 의식 속에서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나는게 되는 시기는 여자와 첫 관계를 갖게 된 이후인 것 같다. 아내와의 잠자리는 남편으로서 해내야 할 의무 같은 것이었는데, 여자와의 관계를 통해 자존감과 약간의 책임감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책임감 같은'이라고 한 이유는 주인공 남자가 스스로 그것을 부인하고 있으므로)  

 

 

탈출에 가까스로 성공하지만 마을을 벗어나는데 실패하고 다시 붙잡히게 되는데, 이때 주인공 남자가 하는 말이다.

 

 

"살려줘!"

늘 정해져 있는 말! ... 아무렴 어떠랴... 다 죽어가는 판에 개성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나. 판으로 찍어낸 싸구려 과자 신세라도 좋으니, 아무튼 살고 싶다! ... 이제 곧 가슴까지 묻히고, 턱까지 묻히고, 코밑까지 빠지면... 그만! 이제 그만!"(192)

"납득이 안 갔어... 어차피 인생이란 거 일일이 납득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지만, 저 생활과 이 생활이 있는데, 저쪽이 조금 낫게 보이기도 하고... 이대로 살아간다면, 그래서 어쩔 거냐는 생각이 가장 견딜 수 없어... 어떤 생활이든 해답이야 없을 게 뻔하지만... 뭐 조금이라도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것이 많은 쪽이 왠지 좋을 듯한 기분이 들거든..."(199)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종의 발견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자 했던 주인공 남자가 결국 모래 구덩이에 빠져 살기 위해 끝도 없이 모래를 퍼내는 작업을 하면서 '판으로 찍어낸 싸구려 과자' 신세라도 좋으니 살고싶다고 말하는 이 부분이 소설의 의도를 가장 잘 담고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을 동경하면서 그곳에서라면 마치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만 실제로 이곳과 그곳이 그리 다르지 않을 거라는 말이다. 마치 안과 밖이 구분되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말이다.

 

 

결국 주인공 남자는 탈출할 기회가 주어짐에도 불구하고 모래 구덩이 속에 계속 살기를 선택한다. "어떤 생활이든 해답이야 없을 게 뻔하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것이 많은 쪽"이 도시가 아닌 사구 한 복판이었던 것이다.

 

안팎이 다르지 않으므로 안에 머물 건지, 밖으로 나갈 건지 선택하는 건 결국 각자의 몫일텐데..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 중인 요즘과 같은 상황에서, 어찌하는 게 좋을지.. 그저 답답할뿐이다.  

 

 

아 그리고.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은 일본이고, 주인공들도 일본인인데 실제로 일본에 이 같은 모래사막이 있는지 궁금했다. 있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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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날들
성석제 지음 / 강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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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이름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의 소설을 읽은 건 처음이다.

자기다움을 가지고 있는 작가인 것 같다.

내가 아는 작가 중 언어유희 능력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 아닐런지.

 

시종일관 피식피식 웃음이 나는데, 원두의 눈에 말더듬이 진용이가 염소귀신으로 비춰지는 부분에서는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긴장감이 넘치기도 했다. 또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기도 한데, 진용이가 난생 처음으로 도시락을 싸갔던 날, 쌀과 보리의 비율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 아이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고 도시락까지 압수당하는 수모를 겪는 부분을 읽을 때에는 진용이가 너무 가엾고 안쓰러워서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옛날 옛날에, 장원두라는 착한 소년이 살았습니다. 소년이 사는 곳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은척읍 변두리 마을이었는데요, 동쪽으로 가면 동곡이 있고요, 서쪽으로 가면 서곡이, 남쪽으로 가면 남천이, 북쪽으로 가면 까마득한 절벽을 따라 북천이 흘렀습니다. 그게 소년이 살던 세상의 울타리였습니다.

중간 중간 감탄하며 읽었던 문장들이 많이 있는데, 이런식이다.

 

"원두는 고민과 고민의 새끼와 손자와 증손자를 데리고 결국은 기타 리를 찾아갔습니다."

"조그만 우산이 가슴 속에 퍼지는 느낌. 그 우산 아래 들어가 빗소리를 듣는 듯한 편안함. 좋은 노래는 그런 역할을 하는 건가 봅니다."

"정말 눈물이 나려고 했습니다. 서쪽 하늘에 반짝이는 샛별처럼 자꾸만 눈물이 원두의 눈가에 맺혔습니다. 진용이는 잠자코 원두를 바라보고 서 있었습니다. 눈물 흘리는 사람 처음 본다는 듯이 말이지요.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자, 아, 내가 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그게 서러워 다시 눈물이 나고, 아 눈물이 났구나, 하니 또 울음이 더 거세지고 울음이 거세지니 아, 박자를 맞춰야겠구나 하고 눈물이 홍수라도 일으킬 듯이 더 흘러내렸습니다. 원두는 자리에 주저앉아 꺼이꺼이 소리내며 울었습니다."

 

콧물 땟물 꼬질꼬질하게 묻은 어린시절 일기장을 꺼내 읽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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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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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스릴러 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선택지가 몇개 인지, 선택하기까지 주어진 시간이 얼마인지에 상관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니 적어도 나는 동일하거나 혹은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고민할 시간적 여유가 없이 즉흥적으로 내린 결정이라고 해도(어쩌면, 빠르게 내린 결정일수록) 과거의 내 체험이나 나의 행동패턴, 습관 같은 것들이 작용한 결과일 수 있다.

그래서 순간에 내린 선택일수록 그 사람의 진심이 담겨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주위에 정말 착하고 선행을 일상적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을 보면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손과 발이 먼저 움직인다. 나는 그렇게 되려면 멀었다.;

따라서 어떤 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그 사람의 생을 치명적인 파국으로 몰고 갔을 지라도 동일한 상황이 연출되었을 때 그는 같은 선택을 할 가능성이 크다. 주인공 최현수 역시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사고 직후 소녀를 호수에 던지지만 않았더라면'이라는 후회와 가정은 불필요하다.

 

 

책상 앞으로 돌아와 앉았다. 보이지 않는 저 창밖에 무엇이 있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손이었다. 내 삶을 흔들어온 오영제의 손. 나는그의 손가락에 낀 요요였다. 던졌다가 당기고 말아 쥐었다가 멀리 날려 보내면서 그는 7년을 기다린 것이다. 내가 어딘가에 정착하는 걸 막는 게 첫 번째 목적이었겠지. 떠돌이로 만들어야 영원히 사라져도 궁금해할 사람이 없을 테니까. 덤으로 사소한 보복행위라는 즐거움도 누리고. 자기 딸을 죽인 자의 아들을 맘 편히 살게 놔두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설령, 때가 오면 자기 손으로 거둘 놈이라 할지라도. 나는 죽어라, 도망쳤으나 실은 한 번도 그를 벗어난 적이 없는 셈이다.(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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