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0 - 선조실록 - 조선엔 이순신이 있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0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선조는 중종의 서자인 덕흥군의 3남.

이이의 등장 : 세 살에 시를 짓고, 입곱 살에 경서를 섭렵, 열세 살에 진사시에 장원한 천재.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열아홉에 출가하여 법명을 받기도 했음. 이황이 사화시대의 인물이라면 이이는 사림 시대의 부상과 함께 정계에 발을 들여놓음. 후일 탄핵으로 사직하고 물러난 뒤 석 달 뒤 49세 나이로 별세.

동서붕당

선조는 붕당을 파타해야 할 역모 혐의자가 아니라 때론 협력하고 때로는 견제하며 정치를 함께 해나갈 파트너로 받아들였다.

세자 책봉 문제 대두. 영의정이었던 이산해는 동인, 북인으로 분류되었던 인물. 인빈 김씨의 오라비인 김공량을 찾아가 정철이 인빈 김씨 모자(신성군)를 살해하려 한다고 고함. 선조가 면대를 청한 날 정작 이산해는 병을 핑계로 나가지 않고, 유성룡이 망설이는데 정철이 세자 책봉을 건의함. 왕은 인빈 김씨에게서 들은 정보가 사실이라고 판단해 정철을 유배보냈음.



왜란 발생 당시 의주로 피난했던 선조는 일본군이 4월에 서울을 떠났는데도 환도를 미루다가 10월에야 돌아왔다. 전쟁의 참상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사헌부가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백성들이 인육을 먹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명나라가 참전한 이후 자발적으로 병사를 일으켜 싸우던 관군과 의병들의 활동이 주춤해졌다. 군량 부족과 의욕 저하로 관군의 수가 줄어들었고 의병 조직도 급격히 와해되었다.

고니시는 가짜 항복문서를 만들어 명에 보내고, 명에 조공무역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왕위 책봉을 허락해달라는 요구를 했다. 명이 이를 받아들이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의 휴전 조건이 관철된 것으로 착각했다. 항복사절인줄 알았던 심유경 일행이 책봉 사절단이라는 것을 알고 다시 전쟁을 선포했다.

한편 전쟁이 끝난 후 이순신, 권율, 원균은 선무공신 1등에 책록. 선무공신은 총 18명, 호종한 공이 있는 이들은 호성공신에 책봉되었는데 무려 86명 이었다.

선조는 전쟁이 끝나고도 10년 넘게 왕좌를 지켰다. 재위 기간이 무려 40년 8개월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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