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철의 세계건축기행
김석철 지음 / 창비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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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전공한 전문가가 저술한 책이다. 소재는 '건축물'이지만 그 소재를 풀어가는 소스는 역사와 철학, 그리고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다.

 

책은 크게 죽음의 공간, 신의 공간, 삶의 공간, 인간의 공간 이 4부로 구성이 되어있고 각각의 챕터에 그 나라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건축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백번 듣는 것 보다 한번 직접 눈으로 보는 게 낫다고, 사실 내용 자체는 그렇게 감명깊었던 것은 아니지만 건축물을 대하는 저자의 관점이랄까 태도가 무척 와닿았다.

 

"건축은 건축가가 이해하는 것보다 더 넗고 깊은 의미로서 실재한다. ... 건축이라는 이름의 역사적 분석이나 미학적 접근은 오히려 건축을 조형 예술에 국한시키는 일이다. 건축공간은 의미형식이 물상을 지배할때 뜻이 있게 된다. 건축은 물상의 미학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설화의 세계와 의미의 미학을 표현할때 인류의 유산이 되는 것이다."

 

 

-소소한 잡식-

* 나폴레옹은 피라미드 석재들로(쿠푸왕 피라미드 230만개 돌) 프랑스 국경 전체에 담을 쌓을 수 있으리라 했다.

* 카이사르의 알렉산드리아 침공때 일어난 화재로 '이집트 역사' 30권을 포함해 무려 70만권의 장서가 소실되었다.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제국 안의 모든 이교도 신전을 폐쇄한 이후 고대 이집트의 역사는 지하세계에 묻혔다.

*까다콤베의 아치형 구멍은 부유층의 시신을 놓았단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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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제국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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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소설이다. <검은꽃>을 본 이후 두 번째인데, 며칠 전에 이분 고향이 강원도라는 걸 알았다. 지금 찾아보니 화천 출신이시네.

 

 

여기 김유정역에 있는 책들이 어떤 기준으로 선정된 것인지 궁금했는데 바로 강원도 출신의 작가들 작품이라는 것. 이중에 김영하의 <검은꽃>이 있다.

 

<빛의 제국>은 김영하의 작품이라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는 게 없는 상태에서 읽었다. 주인공 기영이 남파된 지 21년 된, 끈 떨어진 간첩이라는 것도 책을 읽는 도중 알게 됐다.

 

책 겉표지엔 아무 활자도 없이 그림 한점이 가득 채워져 있는데, 이 그림의 제목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빛의 제국'이라는 것도 책을 다 읽고 나서 책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보던 중 알게 됐다.

 

화가 르네 마그리트가 '빛의 제국'을 그리는데 사용한 기법이 더페이즈망 기법이라는 것인데 불어보 '추방하는 것'이란 뜻이라고 한다. 같은 장소에 있어서는 안 될 물건을 공존시키거나 일상적인 세계에 있어선 안될 물건을 존재하게 만드는 기법이라고. 누군가 한마디로 정리하기를 '공존해선 안 될 물건들이 공존하는 역설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설명을 보고나서야 책의 내용이 정리되는 듯 했고, 책의 제목이 '빛의 제국'인 것도 이해가 됐다. 설마 저자 김영하는 이 그림 한점을 보고 소설을 구상하게 된 걸까..?

 

이 소설은 주인공 기영과 그의 아내 마리, 딸 현지의 어떤 하루, 아침 7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 사이에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세 명 전부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없는(내가 내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설사 가깝다고 여기는 사람에 대해서 조차) 케릭터다. 끈 떨어진 간첩이라는 존재가 가장 희귀한 것 같지만, 사실 자식 뻘의 대학생을 몰래 사귀고 그것도 모자라 그의 친구까지 함께 세명이서 여관에서 관계를 하는 기영의 아내, '마리' 케릭터가 더 이해할 수 없었다.

 

책을 읽다가 표시해 둔 부분이 있는데, 다시 보니 표지 그림과 글의 이미지가 겹쳐지면서, 주인공의 심리가 더 잘 이해됐다.

 

"만으로 마흔둘, 내 삶은 과연 무엇이었나. 별다른 과오 없이, 남들보다 조금 위험한 직업에서, 커라단 실패없이 안정되게 살아왔다. 처음 스물한 해는 북에서, 그리고 나머지 스물 한 해는 남에서, 내 인생은 둘로 정확히 나뉘어 있다. 전도양양한 평양외국어대학의 영어과 학생이었던 절반과 조용히 비합법적 이민자로, 자발적 고아로 살아온 나머지 절반은 아무래도 아귀가 맞지 않는 퍼즐처럼 분리되어 나뒹굴고 있다. 이런 생을 살게 되리라 예상하지 않았고, 이런 생을 살게 된 후엔 이전의 반생을 잊어야 했다. 갑자기 전생을 알게 된 사람의 기분이 혹시 이럴까. 잊어도 좋다고 생각했던 과거는 바이러스처럼 잠복해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존재를 드러냈다." (325)

 

기영과 마리가 겪은 하루는 지나치게 독특한 설정이긴 하지만, 사실 누구에게나 이런 이중적인 모습이 조금씩은 있는 것 같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조차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읽을 땐 잘 몰랐는데 읽고 나니 뭔가 생각하게 하는 소설인 것 같다.

 

아래는, 딱히 내용과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고, 단지 좋아서 표시해두었었는데, 이것 역시 따져보면, 역설적이고 공존할 수 없는 행동이나 감정도 어느 부분에서 만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들었다.

 

"기영은 눈을 감았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은 슬픈데, 그것은 그들이 자신의 어린 모습을 간직한 채로 늙어가기 때문이었다. 소년이 늙어 노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소년은 늙어 늙은 소년이 되고 소녀도 늙어 늙은 소녀가 된다."(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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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으로 본 한국역사 - 젊은이들을 위한 새 편집
함석헌 지음 / 한길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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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에서 1정 연수 중, 강의해주신 현직 선생님께서 고등학교때 이과에서 문과, 그것도 역사 교사로 진로를 바꾸게 된 계기가 되었던 책이라고 말씀하셔서 읽게 됐다. 저자와 책 제목을 한번쯤 들어보기도 했었다.

 

원래 책 제목이 <성서적 입장에서본 조선역사>였다고 한다. 출판 직전 교파주의적이고 독단적인 내용을 삭제하는 등 대대적인 수정을 가하고 제목도 지금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로 바꿨다는데

책을 읽는 내내, '이게 수정된 내용 맞나' 싶을 정도로 친기독교적 시각이 많이 반영되었다. 아니, '친기독교적', '반영'이라고 할 것 없이 그저 기독교 관점에서 쓰여진 책이었다. 분명 내가 이해한 것 이상의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는 책일텐데, 내겐 저자의 '주의'가 잘 나타나 있는 책 정도로만 다가왔다. 그 '주의'와 화법은 이제껏 다른 책에선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것이기는 했다.

 

저자는 한국의 역사를 한마디로 '고난의 역사'라고 규정한다. 한반도의 지세가 백두산을 시작으로 하여 거기서 뻗어나온 산맥과 줄기가 남으로, 남으로 내려올수록 높고 낮음의 반복은 있되 전체적으로 낮아지는 경향을 보이듯 한국의 역사도 고조선에서 해방 이후로 오면서 고난을 면치 못해 쭉 쇠퇴해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한국역사에 있었던 외침이라든가 자연 재해, 임금의 폭정, 당쟁, 관리들의 가렴주구와 같은 고난들이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본다. 책 제목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뜻'이란 바로 '하나님의 의지, 의도'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언젠가, 어디선가 책 제목을 들었을 땐 그 '뜻'이 '정의'를 의미하는 것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거다.

 

금강산, 설악산, 지리산 등에 한국 역사가 비교적 진취적 경향을 보였던 삼국시대, 고려전기(묘청의 서경천도 운동), 세종시대 등을 대입했다. 그 마지막은 한라산인데, 지리산에서 마지막 힘을 발휘했다가 쭉 낮아지는 형태의 지세가 섬에 있는 한라산에서 다시 높아지는 이유를 역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거기 담겨있는 하나님의 뜻이란, 한라산의 높이는 1950미터로 하여 한국의 역사가 1950년을 기점으로 큰 변화의 계기를 갖게 되리라는 걸 암시했다는 거다.

 

저자는 한국 역사가 이렇듯 고난의 연속인 이유를 우리 민족이 자아를 되찾으려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신라의 삼국 통일, 고려 광종 시기 이후 과거제 실시와 유교 정치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당과 연합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에 이르게 한 김춘추를 '용서받지 못할 , '신라는 찌끄러기 막내아들'이라고 언급한 부분에는 저자의 분노가 여과없이 표출되어 있는 것 같다. 고구려가 망하지 않았다면 세계 역사까지 다르게 되었을 것이라는 저자의 생각은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다.

"신라가 삼국통일 한 것은 고구려의 비장한 주검의 그늘 밑에서 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반도 동남구석의 조그만 신라가 반도 통일의 터를 닦게 된 것은 고구려가 몇백년 두고 북쪽의 침략자와 피를 흘리며 고된 싸움에 쉴 날이 없는 동안 덕택을 입어가면서 된 일이다. 신라 통일 사업 공로의 거의 절반은 고구려의 영(靈)앞에 제물로 바쳐야 한다."(176)

 

세조와 같은 잔인무도한 임금이 난 것도 최영 등을 죽이고 새 왕조의 임금이 된 이성계의 부덕함때문으로 보고 있으며, 임진왜란 역시 "태조의 건국 이래 2백년의 역사를 심판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보내는 폭풍우"라고 했다. 또 통신사로 갔던 동인 김성일이 나라의 장래보다 자기가 속한 세력의 이익을 더 많이 생각한 결과 왜곡된 사실을 보고한 것을 가지고,

 

"김성일의 말보다 더 교묘하게 망국민의 심리를 그려낼 수 있는 시인, 화가가 어디있나? 평안 평안, 안락 안락, 마치 주린 거러지가 비웃음과 욕과 짓밟고 때림과, 그밖이 무엇과 바꾸어서라도 한 덩이 찬밥을 구하는 모양으로, 고난 가운데 부대껴온 이 민족은 한 찰나의 안락을 바꾸어 얻기 위하여 정신차릴 겨를이 없었다"(310)라고 비판하고 있다. 김성일을 '주린 거러지'에 비유한 것이다.

 

심지어 "해방도 하늘에서 온 것"(395)이라고 했다. 그 이유를,

 

"(해방이 되리라는 것을) 아무도 모른 것은 아무도 꾸민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꾸미지 않고 온 것은 하늘의 선물이다. 이것은 하늘이 직접 민중에게 준 해방이다. ... 이 해방은 어느 인물이 힘써서 된 것도 아니요, 어느 파가 투쟁을 해서 된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공정하게 사실을 사실로 보는 한 이것을 인적노력에 돌릴 수는 없고 부득이 하늘에 돌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렇게해야만 아무도 그 고역을 치르고 나오는 민중을 속일 수 없고, 따라서 그들이 오는 시대의 주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후술하긴 했지만, 해방 직후 민중이 진정한 의미로서 역사의 주인이 되지 못했을 뿐더러, 해방을 위한 지난한 노력들을 다 무용했던 것으로 보는 것은 좀 지나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이것은 책 앞부분에서 저자가 역사, 역사가에 대해 서술한 내용이다.

 

'자아에 철저하지 못한 믿음은 돌짝밭에 떨어진 씨요, 역사의 이해없는 믿음은 가시덤불에 난 곡식이다.'

 

'인간사회라는 솥 위에 피어오르는 일정한 형체없는 일(事象)의 수증기를 식혀서 한 형상을 붙잡아내는 것이 그(역사가)의 일이다. 그보다도 일고 꺼지는 산맥과 언덕과 골짜기며 시내를 두루 뒤타서 그 밑으로 달리고 있는 한 줄기 광맥을 찾아내는 일이라 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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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태맥산맥, 한강, 허수아비춤을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시대를 아파하는 유일한 작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간의 소설들에서 한국의 근현대사를 풀어냈다면, 신작 <정글만리>는 중국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라고 하니 어떤 내용일지, 어떤 감동을 줄지 궁금합니다. 마지막으로 읽은 한강의 마지막 권을 덮으며 조정래 선생님의 대하소설을 더이상 읽을 수 없을줄로 알았는데, 이렇게 신작이 나와 정말 좋습니다. 기대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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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58
프란츠 카프카 지음, 김현성 옮김 / 문예출판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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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의 <회색인>을 읽다가 중간에 카프카에 대한 언급이 있길래, 또 그 이름을 어디서 많이 들어본듯하여 읽게 되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20세기 가장 위대한 작가, 꼭 읽어야 할 작품 등으로 얘기됐던 것 같다. 사실 이런 찬사는 그리 보기드문 게 아닌데, 어쨌든 그런 말이 적혀있음으로 인해 괜히 관심을 더 갖게 되는 효과는 확실히 있는 것 같다.

 

소설은 "누군가 요제프 K를 중상한 것이 틀림없다. 아무 잘못한 일도 없는데 어느 날 아침 그는 체포되었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오늘 카프카의 또 다른 소설, 단편 <변신>을 읽었는데 첫 문장에서 소설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을 알려주는 것이 카프카 소설의 특징인 것 같다.

 

<변신>은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로 시작한다. 쓰고 보니 첫 문장에서 이미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벌어져 있다는 것 말고도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바로 사건이 일어나는 시점이 '어느 날 아침'이라는 거다. 예상치 못한 일이(소설 밖에선 상상 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어느 날 갑자기 벌어졌다는 설정 자체가 독자로 하여금 막연한 불안과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 같다.

 

다시 <심판>으로 돌아가서, <소송>으로 번역된 책도 있던데 어떤 게 더 맞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송>이 더 맞을 것 같다. 심판이라고 했을 때 왠지 기독교적인 느낌, 결정권을 지닌 절대적 존재와 나약한 인간 같은 이미지가 연상되는데 소송이라고 하면 동등한 인간 사이에 행해지는 법에 의한 결정이라는 느낌이 묻어나서 더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또 써놓고 보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에 따르자면, 이 소설은 '소송'으로 시작하여 '심판'으로 끝나고 있다. 주인공 K는 자신이 왜 체포되었는지도 모른채 소송에 휘말리게 된다. 자신은 죄를 짓지 않았을 뿐더러 어떤 불찰 혹은 오해로 인해 소송에 휘말렸지만 일상생활을 그대로 영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사건을 중대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K의 직장 동료, 친척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소송 사실을 모두 알고 있고, 자신을 걱정하자 혐의를 벗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변호사를 선임하고 화가를 만나고 비슷한 일을 당한 사람들을 만나 해결책을 모색해보지만 누구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화가는 K에게 이렇게 말한다.

 

"무슨 죄를 지어서 기소되는 것이 아니라 기소되었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유죄가 된다. 그러므로 일단 기소되면 실제적인 무죄 판결이란 없고 가능한 것은 형식적인 무죄 판결과 소송을 한없이 지연시키는 방법밖에 없다. ... 유죄를 인정하는 것만이 최후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길이다."

 

결국 소설이 끝날 때 까지도 주인공K가 기소된 이유는 밝혀지지 않는다. K가 점점 수렁으로 빠져들어 갈수록 '대체 왜!'라는 궁금과 짜증이 폭발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재판관들은 하나같이 무책임하다. 문지기, 곧 재판관은 말한다.

 

"그렇게 들어가고 싶거든 내가 금지하는 것을 어기고라도 들어가 보게나. 그러나 내겐 권력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둬. 그리고 나는 가장 낮은 문지기이 지나지 않아. 문마다 문지기가 서 있으며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욱 권력이 강하지. 세 번째 문지기를 보면 나도 겁이 나."

 

K는 결국 최후의 심판을 받아들인다.

 

"흐려져 가는 눈으로 K는 두 남자가 눈앞에서 뺨을 맞대로 자신의 종말을 지켜보는 것을 보았다. '개같이!' K가 말했다. 그가 죽은 후에도 치욕은 남을 것 같았다."

 

어떤 잘못을 저질렀든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에게나 최후의 심판이 다가오는 순간이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죽음의 집행이 유예되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법의 비인간성, 관료주의의 폐해를 꼬집고자 한 것인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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