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의 복수 - 시스티나 천장화의 비밀 반덴베르크 역사스페셜 4
필리프 반덴베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한길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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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여년 전,(그러니까 11살 때) 나는 운좋게도 바티칸의 시스티나 천장화를 직접 구경할 기회를 가졌었다. 쳐다보는 것만도 목이 아파서 고개를 올렸다 내렸다 하기를 여러 번, 그러나 어린 마음에도 그 엄청난 천장화는 무척 감동적이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엽서 속의 시스티나 천장화를 스케치북에 얼마나 열심히 베껴 그렸는지... 그때 가장 열심히 그렸던 남자의 모습은 [천지창조]속의 아담이었고, 여자의 모습은 공교롭게도 [미켈란젤로의 복수] 표지의 바로 그 얼굴, 델포이의 여예언자였다. (그때는 누군지도 몰랐지만 말이다.) 어린 나의 눈엔 그들이 가장 이상적인 미남미녀로 비춰졌었던 모양이다.

사설이 너무 길었다. 하지만, 이 소설 <미켈란젤로의 복수>를 내가 얼마나 큰 관심를 갖고 읽게 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은 되었으리라 믿는다. 델포이 여예언자의 전혀 예언자답지 않은, 삶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찬 인간적 아름다움에 또다시 매혹되면서 이 책을 펼쳐들었다.

이 소설은 교황 암살, 바티칸의 나치 협조, 예수 부활의 부정 등 카톨릭의 입장에서 보면 위험하기 그지없는 설정 속에서 전개된다. 나 역시 카톨릭 신자인지라 이 책이 너무 재미있게 읽혀진다는 사실에 어쩐지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허구는 허구. 작가의 이 정도 소설적 자유도 인정하지 못할 정도로 옹졸해서야 되겠는가. 작가 역시 액자소설의 형식을 취하면서 이 모든 설정들이 한편으로는 어느 개인의 상상속 사건일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교묘하게 은폐된 사실일수도 있다는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고.

어쨌건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척 재미있다. 무수한 해석과 설명이 가능한 시스티나 천장화를 다시 뜯어보는 재미도 보통이 아니고, 교황청 비밀도서관이라는 호기심을 지독히 자극하는 공간으로 안내되는 기쁨도 짜릿하다. 과연 현실 상황이었다면 아불라피아라는 한 인물의 주장이 담긴 문서가 교황청을 그렇게 들었나 놓았다 할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은 남지만... (사실 그보다 더한 수많은 반기독교적 주장들이 바로 이 순간에도 아우성을 치고 있는 걸 뭐.)

반덴베르크의 소설은 처음 읽었는데, 그의 다른 소설도 챙겨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남는' 책이라기보다는 순수하게 재미를 안겨준다는 점에선 추천할만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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