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귀 : 잠들지 않는 전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35
장 마리니 지음 / 시공사 / 1996년 10월
평점 :
품절


시공사의 디스커버리 총서를 보면 어렸을 적 문방구에서 (서점이 아니라 문방구) 사서 읽곤 하던 「UFO대백과사전」이니 「공룡백과사전」같은 책들이 떠오른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다양한 그림과 사진 자료, 흥미를 자극하는 신기한 정보들,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의 가뿐한 크기... 물론 이 시리즈는 어릴 적 그 백과사전들의 근거를 확인할 길 없는, 때로는 정말 터무니 없던 정보들에 비하면 훨씬 고품질, 고품격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만.

책장에 꽂혀있는 몇 권의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가운데, 특히 이 <흡혈귀: 잠들지 않는 전설>은 더더욱 어릴 적 추억을 자극한다. 분명 그 소재의 기괴함때문에 더욱 그런 거겠지... 이 책은 유럽인들의 상상 속에서 발전해온 흡혈귀의 변천사를 더듬고 있다. 처음에는 극히 단순했던 '산 송장'의 개념이 종교적인 영향을 받고 (파문 당하거나 죄를 씻지 못한 시체들이 송장의 모습으로 떠돌아 다닌다는 식으로), 페스트 등의 재앙과 몇몇 엽기적인 실제 사건(살인광이었던 블라드 테페스와 바토리 여백작 사건)에 의해 살이 붙으면서, 유럽인들을 두려움에 떨게하는 흡혈귀의 모습으로 발전한다.

사실, 이 무렵까지는 흡혈귀는 실제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졌으며, 일부 성직자들은 그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성과 합리주의가 지배하는 시대가 오면서, 흡혈귀에 대한 믿음은 터무니없는 미신으로 여겨지게 되고 그 인기도 시들해진다. 그러나, 흡혈귀는 이성주의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낭만주의 문학 속에서 부활하게 된다. 현실 속의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문학 작품의 소재로 등장한 것이다.

흡혈귀에 대한 이미지는 그 유명한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에서 종합 정리되면서 전에 없던 '관능미'까지 획득하고, 20세기에 들어와서는 헐리우드 영화의 인기 소재가 되면서 또 한번 대대적 탈바꿈을 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익숙하게 여기는 흡혈귀의 이미지는, 그 오랜 역사의 맨 끝에 위치한 극히 최신식 이미지일 뿐인 것이다.

비록 짧지만, 다분히 적절하게 인용되는 역사적 문헌들이 인상적이다. (이 문헌들은 인류가 미개함을 벗은 것이 그렇게 오래전 일이 아님을 깨닫게 해준다.) 누군가가 맘먹고 한참이나 수집했을 다양한 그림 및 사진 자료들도 흥미를 끌고. 물론 디스커버리 총서 시리즈의 특성상, 이 책 속에는 깊이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다채로움에 무게를 실은 폭넓은 정보들이 제공되고 있다. 하지만,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닌, 전후 관계가 차근 차근 설명된 나름의 맥락을 갖추고 있어, 읽는 이들이 충분히 수긍하며 읽을 수 있다는 점을 칭찬하고 싶다. 이렇게 짧은 분량의 글에서는 분명히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이다.

흡혈귀라는 존재를 좀 더 깊이있게 알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좋은 시작이 될만한, 잘 정리된 가이드북이라고나 할까? 물론, 흡혈귀에 대해 딱 요 정도까지만 알고 싶은 분들에게도 충분히 흥미로울만한 책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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