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덮고 잠자리에 눕자 얕은 구역질이 올라왔다.

희미한 피냄새가 주위를 맴도는 기분,

그만큼 작가가 단편에 풀어놓은 

피의 세계가 강렬했던 탓이었다.

짧은 단편들인데도 이런 찝찝함을 가득 남길 수 있다니,

 

특히나 작품집 마지막을 제목도 무지하게 긴 

'괴물 같은 얼굴을 한 여자와 녹은 시계 같은 머리의 남자'를 배치해놓은 건

잔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단편의 세계는 온갖 고문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세계를 꽤나 많이 접한 덕에

맷집이 강해져있다 생각하고 있는데도

오랫동안 불쾌하기까지 한 기분이 가시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 책은 세번째 읽는 것임에도

새롭고, 잘 읽히고, 동시에 불쾌감과 찝찝함이 스물스물 기어올라온다.

이건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잘 써놓았다는 이야기다.

 

이 작품집을 처음 읽은 게 7년전쯤이었던 것 같은데,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이미지가 하나 있었다.

'오메가의 성찬'이란 단편에서는

오메가라는 코끼리같은 덩치의 대식가가 등장한다.

그는 조직이 해치운 자들을 먹어치우는 일을 하는데,

특이하게도 사람의 뇌를 먹어치울 때 그 지식까지 함께 섭취하는 바람에

그런 덩치에 불쾌한 일을 하는데도

묘하게 현학적이고 도인같은 분위기가 있다.

그 설정이 꽤나 충격적이었는지 그 잔상이 오래 남았고,

이번에 다시 읽어도 그 긴장감은 여전했다.

놀라운 건 그런 끔찍한 세계임에도 분위기는 가볍고 유쾌하다는 점,

그런 묘한 불일치가 더욱 그 세계를 인상적으로 만드는가보다 싶었다.

 

한여름에 추천할만한 소설 목록에 넣어두겠지만

이런 단서를 붙여놓을 것이다.

자기 전에 읽으시면 끔찍한 악몽으로 잔류할 수도 있습니다.

다 읽은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이 책의 표지를 볼때면 옅은 구역질이 느껴진다.

한 권의 책이 더 번역되어 나와있으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런 마음을 먹기까지는 내게도 시간이 필요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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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통 머리를 쓰지 않는다.

 

최근 읽은 만화 중 중반부까지 너무나 강렬했던

<오메가 트라이브>는

시작부터 충격적이었다.

(결말으로 갈수록 이야기 수습 불가 ㅠㅠ

자료조사를 너무 열심히 했는지

기껏 설정해놓은 매력적인 세계관은 활용 못하고

정치인들 현실 묘사에 치중하면서 말아먹고 말았다. ㅠㅠ) 

 

히키코모리 소년이 쓸모없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정글에서 살해를 당할 뻔했지만

오메가라는 존재를 만나 혼을 바치면서

새로운 종으로 나아간다는 설정의 내용.

 

 

 

 

 

 

 

 

 

 

 

 

 

새로운 종이 나타난다는 설정은 

<제노사이드>를 떠올리게 했는데,

두 작품 모두 인류라는 종과 폭력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게 만드는 동시에

무척이나 재미도 넘쳐나기에 강추.

 

 

 

 

 

 

 

 

 

 

 

 

 

 

두 작품 모두 새로운 종이 등장하는데

신기하게도 그 종의 특징이 같다. 

뇌가 미친듯이 빨리 돌아간다는 것.

<오메가 트라이브>에서는 클락 업이라고 표현하는데,

무아지경에 빠졌을때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흐르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상태를

의식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영화 <리미트리스>에도 그런 게 있었네,

그 영화도 무척이나 재미있었는데, 난 이런 작품들을 좋아하는건가.

 

그 설정에 매혹되었는지 꿈까지 꿀 정도였다.

뇌가 고속회전하는게 느껴져, 아아, 이렇게 짧은 시간 많은 책을 읽을 뿐더러

그 내용까지 다 기억이 나다니, 아아, 굉장하다

하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하다 막상 깨어나니

바보가 앉아있었다. ㅠㅠ

 

이러다보니 나 자신의 뇌 가동률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됐는데,

매일 익숙한 일만 해서 그런지

거의 제로에 가깝지 않을까 싶어 아찔.

책 사는 것만 좋아하는건

지르는 데에는 뇌를 거의 쓰지 않기 때문이고,

그나마 책을 읽을 때 약간 사용하긴 할테지만

읽기만 하는건 참으로 편한 행위이다.

이렇게 뭔가 쓸 때 조금 더 뇌를 활용하는 것 같긴 하지만

아아, 역시 뇌를 쓰는 건 피곤한 일인지라

지금도 쓰지 않지만 보다 더 적극적으로 쓰지 않기를

늘 선택하고 만다.

 

점점 바보가 되어 가는 느낌이군, 흑흑

 

어차피 유전자는 남기지 않을 생각이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는 부족마저 일찍 멸종하게 생겼구나 싶어

꼭 읽은 책에 대해 한마디라도 쓰겠다고 결심했다.

그 결심을 며칠 안가 잊어버린다는 게 이 부족의 한계입니다만 ㅠㅠ

 

 

오늘은 제목이 너무나도 긴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와

<십시일반>을 읽다.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 은

다 아는 그런저런 이야기구나 하면서 읽는데도

어쩐지 찡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갈매기를 돌보는 검은고양이 소르바스가

갈매기 아포르뚜바라에게 해주는 말이 그렇다.

 

"우리들은 네게 많은 애정을 쏟으며 돌봐왔지.

그렇지만 너를 고양이처럼 만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단다.

우리들은 그냥 너를 사랑하는 거야.

네가 우리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아.

우리들은 네 친구이자, 가족이야.

 우리들은 너 때문에 많은 자부심을 가지게 됐고, 많은 것을 배웠다는 것도 알아줬으면 좋겠구나.

 우린 우리와는 다른 존재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아낄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지.

우리와 같은 존재들을 받아들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야.

 하지만 다른 존재를 사랑하고 인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

그런데 너는 그걸 깨닫게 했어." 

 

같은 존재를 사랑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만,

다른 존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줄 안다는 건

굉장한 경지다.

다른 존재를 만나면서 그를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상상 속의 존재가 있고,

다른 존재를 만나면서 증오하고 배척하고 이용하려 애쓰는

현실 속의 존재가 있다.

 

<십시일반>은

출간된 지 10년도 넘은 책인데

지금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몇 번이나 읽었던 책이지만 여전히 뭉클하고 반성하게 만든다.

8명의 만화가들이 지적하고 있는

장애인, 여성, 이주노동자, 빈민, 동성애자 등의 문제들이

아직도 달라진게 없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슬프게 만든다.

 

국가단체에서 이런 책을 펴내던 시절도 있었는데,

인권위원회가 이렇게 멋진 일을 하던 때가 있었는데,

어쩌다 지금은 이름만 남은 껍데기가 된겨 ㅠㅠ

 

그나저나 이렇게 한 페이퍼에 읽은 책들을 함께 쓰다보니

정말이지 중구난방 독서로구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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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7-28 2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은 책 내용이나 감상을 마음대로 쓰면 기분이 홀가분하게 느껴져서 좋아요.
 

 

 

 

 

 

 

 

 

 

 

 

 

 

오래된 이상문학상 작품집들을 꺼내

과거에서부터 한편씩 읽어나가고 있다.

그 당시 읽을때는 아직 내가 많이 부족해서 잘 모르겠나보다 라고 생각했었다.

지금도 부족한 건 다름없지만

이제는 왜 이런 작품이 대상이지요? 라고 말할 수는 있게 됐다.

아이러니하게 실려있는 작품들 중 가장 와닿지 않는 단편이 대상 수상작이었다.

 

책 뒷편의 종합적인 총평에는 이 작품에 대해 줄거리를 소개한 뒤 이렇게 써놓았다.

 

파괴적 폭력에 대응하기 위해

자기 안의 천사를 불러내는 고통스러운 여성의

자기 정체성 확인법을 보여주는 이 소설은

핏빛처럼 선연하고 처절하지만

고통스러우면서도 찬란한 자기 내면의 생명이라는 빛을

천사의 모습으로 구현해 냈다.

 

다른 작품들에도 이런 식의 과도한 의미부여를 붙여놓았는데,

막상 작가들은 자기 작품에 대한 이런 해설을 보고 어떤 느낌이 들까 궁금해졌다.

심사위원들이 스스로 자신들에게 부여하는 권위를 위한 말장난들이 아닌가.

몹시도 신물이 났다.

 

의외의 발견은 한창훈 작가.

그러고보니 책들을 사놓고서는 막상 제대로 읽은 작품은 없었나보다.

구수한 글빨과 대사들이 어찌나 매력적이던지,

우와, 우와 이러면서 읽어나갔다.

한창훈 책들이나 찾아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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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7-27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창훈 책은 강추입니다, 기억상실님. 일단 [나는 여기가 좋다]라는 단편집을 권해드립니다. 진짜 대박이에요. 엄청엄청 좋음요. ㅋㅋㅋㅋㅋ

느긋느긋 2015-07-28 17:59   좋아요 0 | URL
오오, 다락방님이 이렇게 추천해주시다니, 다음 시간 날때 필독 해야겠어요,
책은 언제 샀는지 책꽂이에 꽂혀있는데 왜 아직도 안 읽고 있었을까요 ㅠㅠ
엄청 바쁘실텐데도 이렇게 와주셔서 추천까지 해주시고, 서재 관리인 다락방님의 섬세함이란! ㅎㅎ
 

 

 

 

 

 

 

 

 

 

 

 

 

<기생수>는 다시 읽어도 걸작이야.

오스터냥이 책에 고개를 파묻은 채 야옹거렸다.

나는 슬그머니 <뼈의 소리>를 내밀었다.

그런 전설의 시작이라고 할까.

 

책을 읽던 오스터냥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아앗, 이거봐, 이 표정 정말 굉장한데.

 

이 여자, 죽음따위 아무렇지 않아하면서 빌딩에서 뛰어내렸잖아?

그런데 막상 저 남자에게 구조되고 나니

죽음에 대한 공포를 제대로 겪어보았다고 할까,

그런 무시무시한 감정이 확 다가오지 않아?

 

그림은 아주 잘 그린다기보다

어쩐지 투박하고 거친 느낌이 있는데,

묘하게도 무얼 표현하고자 한다는 건 확 와닿게 그린단말이지,

형식보다 본질이 중요하다는 건 진부한 이야기지만

다시 한번 체감한다고 할까.

무얼 전달하고 싶은지 그리는 사람부터 잘 알고 있는 것만큼

강력한 건 없는걸텐데, 그게 참 쉽지 않지?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내가 무얼 말하고 싶어하는지 정확하지 않은것만 봐도 말야.

 

신기하지. 내게 가장 좋았던 부분은

가장 마지막에 부록처럼 실린 작가 자신의 이야기였어.

<어시스턴트 시절에 배운 것>이란 제목의.

 

만화가 선생님의 어시스턴트로 들어갔는데

자기 터치로 어떤 배경을 그려도

그 선생님이 그리는 인물은 훌륭하게 조화를 이뤄내기에

감탄하면서 배워나갔다고 하지.

그러다가 이제 잠시 쉬면서 제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그렇게 그려 입선한 작품이

저 위의 그림이 실려있던 <쓰레기의 바다>였던 거야.

그걸 보면서 뭐랄까,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다는 걸 새삼 되새겼다고 할까.

 

기생수 이전에 발표된 이 단편들을 보고 있으면

아아,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기생수까지 나아갔구나

그런 이어지는 지점들이 보여,

역시 그런 작품은 갑자기 한번에 태어나는게 아니었을텐데,

기생수로 처음 만난 나같은 독자는 그런걸 잊곤 하지.

기생수가 있기까지 수많은 습작과 고민들이 이어져왔을 꺼라는걸

되새겨준다고 할까나.

난 어쩐지 그런데 힘을 얻곤 해.

허접한 자신에게 미약한 희망을 부여해줄 수가 있거든.

아울러 일단 시작해봐야한다는

그런 격려와 함께.

곧 다시 사그러들겠지만 그땐 또 다시 이런 책을 펴들면 되는거야.

 

모든 걸작에도 미약한 출발점이 있다.

그런 진실을 자신에게 들려주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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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7-27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떤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땐 되도록 발표 연도순으로 읽으려고 해요. 작가의 초기작부터 먼저 읽어나가면서 작가의 문체나 글 쓰는 방식의 변화를 주목할 수 있으니까요.

느긋느긋 2015-07-28 18:01   좋아요 0 | URL
오오, 그렇게 읽어나갈때 변화하는 모습이 잘 보이겠는데요~
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으로 읽다보니 점점 감흥이 떨어진다는 크나큰 단점이 ㅠㅠ
다음에는 한번 발표 연도순으로 읽어봐야겠습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품 같은 책,

소소한 단편 두 편을 한 권으로 묶어놓았다.

 

아마도 르 클레지오가 노벨문학상을 받았기 때문에

그에 편승해서 나왔던 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여백은 많고, 사진까지 넣고,

어찌어찌 한권으로 만들어내려는 꼼수가 보여서

약간은 불편했던 책.

그럼에도 읽고 있는 동안 어떤 동질감이 느껴져 쓰고 만다.

짧은 이야기인데도 클레지오의 문장에는

아름다운 서정이 있고, 그 아래에는 쓸쓸함이 배어나온다.

 

주인공이 어릴적 선망하는 눈빛으로 보곤 했던

빌라 오로라가 있었다.

우거진 수풀에 가려져 있고,

고양이들이 살고 있으며, 가꾸지 않은 정원은

요정이 사는 곳인듯 신비하게만 보였던 곳,

그곳에서 그는 많은 시간 동안

빛을 몸 안에 담으며 보내곤 했었는데,

그런 곳을 어느 순간,

잊고 말았다.

 

내 인생에는 큰 공백 같은 것이 있었다.

왜 나는 어느 순간 벽에 난 구멍으로 들어가는 일도

새 울음소리를 듣고 들고양이들이 달아나는 모양새를 살피면서

가시덤불 사이를 빠져나가는 일도 관두게 되었을까?

그것은 오래 병을 앓으면서

내가 유년기로부터, 어린 시절의 놀이와 비밀들로부터,

길들로부터 떨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또한 나눠진 두 부분을 결합하는 일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안에서 사라진 것은 어디로 가버렸는가?

나는 몇 년 동안 기억상실에 사로잡혀 영원히 다른 세계로 던져졌고,

내 안에서 사라진 내 반쪽은 그 같은 단절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인사이드 아웃> 초반부를 지루하게 보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나온 건 장난감 대륙이 무너지던 때였다.

함께 잘 놀아주던 아빠의 원숭이 흉내에 반응하지 않던 순간

그 섬은 무너져내렸고, 영원히 아이 안에서 사라져버렸다.

그 순간 내게도 어릴 적 장난끼 가득하던 때가 있었고,

그것이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 상실감은 몹시도 슬픈 감정이었다.

내 기억에서 사라진 그 많은 순간들을

나는 영원히 되찾지 못할 것이다.

 

<오로라의 집>의 주인공은

문득 어린 시절 오로라의 집을 떠올리고는

다시 그곳을 찾는다.

어릴 적 머물던 곳의 모든 것은 달라졌고,

영원히 되찾지 못할 느낌들에 고통과 불안함을 느낀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로라의 집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1년 뒤 그는 관리인이 필요하다는 공고를 보고 그곳의 초인종을 누른다.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여전히 내 안에 있을,

어릴 적 나와 이어지겠다는 바램.

그곳에서 그는 처음으로 어릴때 상상속에서 흠모했던

오로라의 집 여주인을 만난다.

주위는 온통 개발 중이었고,

개발업체들로부터 오로라의 집을 지키기 위해

관리인이 필요하다던 그녀의 말을 듣던 그는

죽어가고 있는 그 집을 다시 떠나버린다. 아니, 도망쳐버린다.

빌라 오로라는 점점 무너져내릴 것이고,

어릴 적 그의 공간은 그의 기억처럼

온전히 사라질 것이다.

 

이제 노부인이 된 그녀는 말했다.

 

"나는 정원 한옆에 남아 있어요.

나는 정말 힘들어요.

몇 번인가 정말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사람들에게 집을 남겨 두고 떠나야 한다고요.

그 사람들이 건물을 완성하는 일을 끝내도록,

모든 것을 끝내도록 말이에요.

그러나 난 할 수 없었어요.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었거든요.

아시겠어요.

난 여기에서 너무 오래 살아서 다른 곳은 전혀 몰라요..."

 

그녀의 고통이 전달된 까닭은

최근 내가 종종 중얼거리던 말과 닮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래도록 이 일을 해오고 있지만

이제 이 일을 떠나야 할때라는 걸 느끼고 있다.

하지만 떠나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는

어디로 가야할지 도무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하고 싶은 일은 대부분 해보고 살아왔는데

그 때문인지 일찍 소진된 열망을 지켜보고 있다.

 

난 할 수 없었어요.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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