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수>는 다시 읽어도 걸작이야.

오스터냥이 책에 고개를 파묻은 채 야옹거렸다.

나는 슬그머니 <뼈의 소리>를 내밀었다.

그런 전설의 시작이라고 할까.

 

책을 읽던 오스터냥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아앗, 이거봐, 이 표정 정말 굉장한데.

 

이 여자, 죽음따위 아무렇지 않아하면서 빌딩에서 뛰어내렸잖아?

그런데 막상 저 남자에게 구조되고 나니

죽음에 대한 공포를 제대로 겪어보았다고 할까,

그런 무시무시한 감정이 확 다가오지 않아?

 

그림은 아주 잘 그린다기보다

어쩐지 투박하고 거친 느낌이 있는데,

묘하게도 무얼 표현하고자 한다는 건 확 와닿게 그린단말이지,

형식보다 본질이 중요하다는 건 진부한 이야기지만

다시 한번 체감한다고 할까.

무얼 전달하고 싶은지 그리는 사람부터 잘 알고 있는 것만큼

강력한 건 없는걸텐데, 그게 참 쉽지 않지?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내가 무얼 말하고 싶어하는지 정확하지 않은것만 봐도 말야.

 

신기하지. 내게 가장 좋았던 부분은

가장 마지막에 부록처럼 실린 작가 자신의 이야기였어.

<어시스턴트 시절에 배운 것>이란 제목의.

 

만화가 선생님의 어시스턴트로 들어갔는데

자기 터치로 어떤 배경을 그려도

그 선생님이 그리는 인물은 훌륭하게 조화를 이뤄내기에

감탄하면서 배워나갔다고 하지.

그러다가 이제 잠시 쉬면서 제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그렇게 그려 입선한 작품이

저 위의 그림이 실려있던 <쓰레기의 바다>였던 거야.

그걸 보면서 뭐랄까,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다는 걸 새삼 되새겼다고 할까.

 

기생수 이전에 발표된 이 단편들을 보고 있으면

아아,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기생수까지 나아갔구나

그런 이어지는 지점들이 보여,

역시 그런 작품은 갑자기 한번에 태어나는게 아니었을텐데,

기생수로 처음 만난 나같은 독자는 그런걸 잊곤 하지.

기생수가 있기까지 수많은 습작과 고민들이 이어져왔을 꺼라는걸

되새겨준다고 할까나.

난 어쩐지 그런데 힘을 얻곤 해.

허접한 자신에게 미약한 희망을 부여해줄 수가 있거든.

아울러 일단 시작해봐야한다는

그런 격려와 함께.

곧 다시 사그러들겠지만 그땐 또 다시 이런 책을 펴들면 되는거야.

 

모든 걸작에도 미약한 출발점이 있다.

그런 진실을 자신에게 들려주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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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7-27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떤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땐 되도록 발표 연도순으로 읽으려고 해요. 작가의 초기작부터 먼저 읽어나가면서 작가의 문체나 글 쓰는 방식의 변화를 주목할 수 있으니까요.

느긋느긋 2015-07-28 18:01   좋아요 0 | URL
오오, 그렇게 읽어나갈때 변화하는 모습이 잘 보이겠는데요~
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으로 읽다보니 점점 감흥이 떨어진다는 크나큰 단점이 ㅠㅠ
다음에는 한번 발표 연도순으로 읽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