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2002/12/03 16:29

김기덕 영화는 "섬", "나쁜남자", "해안선"을 봤어요.

제가 아는 해병대와 영화속 해병대가 매치가 잘 안 되요 제가 아는 해병대는 그렇게 전투적이지도, 폭력적이지도, 늙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휴가나와 있는 해병대 하나만 봐도.. 그냥 평범한 대한민국 아들의 모습인 거 같고..요즘 느끼는 건 군대가 사람 참 변하게 한다..는 건 알겠더라구요. 이런 말 써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순진한 사람들은 군대를 안갔다왔음 하는 생각은 듭니다. 변하는 모습이 싫어서...

초전박살..이라는 단어가 참.. 누가 그런 단어를 만들어 냈는지..
이런걸 분단의 아픔의 상징이라고 승화시키는 글을 쓰기엔 그렇게 고무적이지 않은 내용이었고. 쉬리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모티브는 아니니깐 말이죠.

영화는 특수적 상황이고, 장치이고, 예술이니깐. 하나의 작품으로서 봐야겠지요 일단 현실은 접어두고라도..김기덕이라면 더더욱..
아..예술은 때로는 무서울 수도 있구나..

어쩌면 그런 표현도 가능하겠죠. 한국전쟁과 분단과 혼란스런 현대사회가 빚어낸 왜곡된 인간상.. 슬픈 자화상. 의 하나. 간첩을 잡기를 그렇게 소원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데올로기의 희생양. 근데 그렇게 이 영화를 보면 너무 재미가 없어요.

보다 해부해 보고 싶은 건.
그 영화가 여성적 시각으로는 뾰족한 해석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만 그런건지라는게 참 궁금하구요

男으로 역할을 담당하며 자라온 사람들이 그 세계를 보다 잘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듭니다. 주관적인 영상과 표현을 좀 더 일반화 시켜 이해시켜 줬으면 하는 바램..
전 왜곡된 세상에 대한 인식을 영화에서 보았는데.. 남성적인 것을 강요받고 자라온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각. 왜곡된 사명감.
우리는 잔인함을 너무 많이 보았어요.
전쟁을 통해서.. 우리의 사고도 전쟁으로 잔인함이 많이 흡수되어 있고.
앗..엉뚱한 소리닷.
물론 이런것이 일반적이란 말은 아니구..

잔혹함..
잔혹함과 물은 꼭 같이 등장해요
잔혹함의 잔여를 씼어주는 해소적 역할을 하는 물인지는 모르겠지만
김기덕 영화를 보고나면 물이 공포스러워집니다.

아하..
초반에 갯벌에 뒹굴고 고무보트 들고 뛰어다니는게 하도 애처러워서 진짜루 그러고 뛰냐?..뒹구냐?..라고 물어보니..
그런 해병대도 있기는 있다고 하더구만요.
다 그런건 아니더군요..--a

생각해 보니
이번 영화는 코믹한 요소도 조금은 있었어요.
쪼로미 세워 놓고.. 범인 잡아 낼 때..

한 편의 글도 아닌 것이 참 성의 없게 썼다는 생각이 들긴 하네요.

벌써..
끌리오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어 갑니다.
12월이니깐 말이죠.
시간은 왜이렇게 빨리 가는지..

우물안 개구리가 된 기분이에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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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03/01/17 13:02

이창동 감독 영화 본 순서대로 하자면
박하사탕 -> 오아시스-> 초록물고기

오아시스까지 이창동 감독의 색채를 파악못하다가.
초록물고기 본 다음..
아..이 감독 이런 사람이구나..란 걸 알게 되더군요.

초록물고기 또한 오아시스와 같이 마지막 장면에 변함없는 따뜻한 햇빛이 비치는 오후의 나른한 일상을 묘사하고 있는데
극과극의 대비장치가 주는 진한 페이소스 때문에 심리적으로는 이전의 잔인함을 오히려 극대시켜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주죠. 그리고 소화기로 불끄는 듯한 해소제 역할도 하구요 또한 예술 작품성의 성격은 보다 완결된 형태로 하고 혹은 희망의 메세지를 남기기도 하는데..
일관적 흐름을 반전하는 마지막 화면에서 가식적이라는 느낌 또한 가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술적 효과야 참 멋있단 생각 들고 영화도 정말 재미있었지만..

일관되게 진지함이 끝까지 묻어나는 형태였으면 더 감독을 신뢰할 수 있을 텐데..란 생각.

모래시계에서의 일관되게 마지막까지 흐트러지지 않는 진지함이 주는 감동이 생각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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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03/05/12 22:12

정말 오래간만에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주말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아침 일찍 나가서 조조할인 보고 점심 언능먹고 사람 많아지기 시작할 때 시내에서 빠지는 것이 상책이더군요

80년대 실제로 있었던 연쇄살인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
비가 오는 날 빨간옷을 입은 여인네들이 유재하의 어떤 노래(잘 기억이 안나네요..우울한...으로 시작되는 제목인데..)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뒤 절묘한 타이밍에 맞춰 살해당하는 일이 그 마을에서 계속 일어납니다. 중심 내용은 대강 그러하고..주인공인 송강호와 김상경(?) 두 형사가 사건을 추적하는 내용인데 요즘 한국영화는 욕을 빼면 영화가 되지 않는지.. 욕이 엄청 많이 나옵니다. (제가 욕한다는 것이 아니라..등장인물들이..)

영화는 긴 편인데 보고나서 그렇게 감동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정도는 아니지만..그냥 볼 만한 영화라는 그정도.. 아무래도 살인..이니까.

영상의 미학..시대적 풍경....애드립..음악 배치..효과..그런 트릭들이 잘 구성되어서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송강호라는 배우의 효과를 톡톡히 본 영화입니다. no.3에서 이미 조짐을 보였던 사투리의 개그효과. 덤으로 김상경이라는 배우도 나름대로 부각에 성공했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살인범이 누구인지는 결코 증거상,표면상,문서상으로 밝혀지진 않지만 정황으로 볼때 박현규라는 미소년스럽게 생긴 전혀 살인범일 것 같지 않은 인물에 상황이 집중됨에 따라 의외의 공포감이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살인범은 지능적인 미소년이다.. 겉은 멀쩡한데..가려진 이면의 살인본능...철저한 가면..완전범죄를 꿈꾸며.. 그러고 보면 좀 식상한 것도 같네요

전 재미있게 보았는데 누가 그러더군요.. 이 영화 수출하려면 참 번역하기 힘들겠다... 사투리며 욕이며...하는 것들..우리는 나름대로 재미있게 보지만.. 번역 때문에 영화 수출이 어렵겠다라는 말을 들으니깐..그런거 같기도 하고..저는 우리 나라의 영화 산업의 번영까지 고민을 안 해 보았던 거죠..

요즘은 거의 전쟁, 살인 폭력, 돈..이런 주제들만 접하다 보니..인도주의적인 사고를 거의 못하고 살아갑니다. 드라마도 무인시대만 보고.. 그러면서 그게 진짜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사는 건 전쟁이라고 얼핏 흘려들은 말인데 그 말이 참말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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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02/11/06 15:16

지난 금요일.. 11월 1일에 개교기념일을 맞이하야 나의 아리따운 깨정양과 함께 단 둘이 여행을 떠났답니다.
처음엔 목포를 간다느니..소쇄원을 간다느니..아웅다웅하다가 합의 끝에 등산을 원하는 깨정양의 바램과 한국적 건축물을 보지 않으면 그건 여행이 아니라는 나의 바램이 합쳐져서 간 곳이 바로 영주였답니다.

소백산, 영주, 소수서원, 부석사
이렇게 말하면 답사 전문가이신 끌리오 친구들은 대강 알 듯 싶군요.
나중에 알고 보니 부석사는 2000년 안동 답사때 다녀온 곳이었답니다. 그런데도 전 신경숙의 부석사를 예전에 읽었으니 거기에 가봐야 겠다고 했던 며칠 전을 생각해 보면..인간의 망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몇 십년 후에도 종종 이럴까봐 겁이 나는군요. 그래도 깨정양은 2000년에 답사를 가지 않았으니깐 같이 가는 길에 나도 간다고 생각하고 즐거운 맘으로 갔습니다.

p 서로가 잠이 많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지라 새벽에 일찍 일나서 가느니 차라리 1박2일로 잡고 가자는 것은 당연지사. 12시 다되어 잠에서 깨어나 즉석으로 시간 정하고 부산역까지 가서 기차를 타기까지.. 모든 일들이 아무런 계획없이 어찌나 즉석해서 착착 진행되는지 놀라울 정도였죠. 답사 귀신이 붙은 듯 했답니다.

지도도 한번 안보고 영주까지 기차는 5시간 혹은 6시간 정도를 열심히 달리더군요. 경북에 영주가 있는 줄 알았지 영주가 어디 있는지는 알았겠습니까. 뒤늦게야 지도를 보니 가까이에 강원도가 있는줄을 알고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부산보다 서울이 더 가깝더래요.
도착하니 벌써 밤이 되고 안락한 밤을 보낼 24시간 풀 가동하는 목욕탕을 찾아..거기는 찜질방도 겸으로 하더군요. 암튼. 이런 얘기는 쓰지 않는게 좋을 듯 하여..

영주의 물은 정말 경이로울 정도로 좋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닌 새로 태어난 듯. 가뿐하더군요.
깨정양이 그토록 원하던 등산을 위해 점심용 김밥을 싸들고 소백산 희방사 가는 길로 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예전에 단체로 큰 버스를 타고 다니는 여행과는 정말 사뭇 다른 맛이었습니다. 소백산은 참 아담하면서도 한국적인 맛이 나는 산이었습니다. 푸근해 보이는 모습이 폭신폭신하게 보이기도 하고.. 하얀 쉬폰케잌 위에 초콜렛 파우더를 잔뜩 얹어놓은 듯한 느낌. 한국적이어야 하니깐 백설기에 팥고물 뿌린 느낌? --;; 단풍은 벌써 거의 지고 특히 그날 아침은 유독시리 춥더군요. 뉴스는 정확했습니다.

등산하는 사람이 정말 없어서 조용했습니다. 추운것이 외려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할까요.. 사람들이 너무 없고 조용하니깐 자연을 감상하기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여건이었죠. 소백산은 정말 소백스런 느낌을 준다?는 건 좀 이상하고 작고 아기자기한 볼거리들이 좋았죠. 무엇보다도 고요한 산 속의 정기를 빨아들이는 것이 최고였죠. 산이라는 존재가 곁에 있다는 것이 정말 느껴지더군요. 산과내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이 친밀감이 들었습니다.
목적은 등산의 기분을 느껴보는 것이라서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거나 하진 못했습니다. 희방폭포를 지나 희방사까지 갔다가 돌아와야 했으니깐요 일정도 있고 해서.

소백산 자락에서 풍기 시내로 들어왔습니다.
풍기 인삼..이 유명하죠. 그냥 넘길 수 없어 풍기 인삼시장에서 추운 올 겨울의 보양식으로 삼아보고자 수삼을 좀 구입했죠. 길에서 동네 아주머니께 인삼 보는 법 좀 가르쳐 달라고 하니깐.. 아가씨들이 가면 속는다면서 직접 데리고 가셔서 골라주시기까지 했답니다. 동네 인심이 참말로 좋더군요. 농협 아가씨들도 정말 친절하고. 인삼집에서 끓여내어주는 인삼액? 한 잔에 몸이 정말 든든해지더군요. 홍삼 사탕까지 받아 왔었답니다.ㅋㅋ.

풍기에서 1시간에 한 번오는 소수서원가는 버스를 타고 말로만 듣던 소수서원을 드디어 가게 되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정말 멋진 곳이더군요. 규모 면에서는 도산서원보다는 작은 듯하고 병산서원보다는 넓은 듯 하였고 무엇보다도 옆에 흘러가는 개울이 그렇게 맑을 수가 없더군요. 주세붕이 흰 글씨로 백운동이라 쓰고 아래에 이황이 敬이라고 쓴 붉은 글씨가 멀직이 보이는데 그런것들이 저를 감흥시키는 것들이었습니다.

풍기가 인삼이 유명해 진 이유는 주세붕이 풍기 지역에 할당된 산삼 공납의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인삼을 인공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한 연유랍니다. 그래서 소수서원과 풍기인삼, 주세붕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소수서원이 위치한 곳은 풍기가 아니라 순흥인데 그 옆엔 또 순흥향교라는 곳이 있더군요. 거기는 뭔가 공사를 하고 있길래 구경은 못해봤습니다. 여전히 아쉬웠던 것은 전시실에 있는 고문서나 비문 같은 것을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는 것. 누가 못 읽게 한 것도 아닌데.. 그 아쉬움이란..

소수서원까지 갔다가 마지막으로 부석사를 향할 때 쯤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죠. 토요일 오후즈음이라 부석사는 사람들이 정말 붐볐습니다. 여기저기 여러 단체들이 와서 정말 혼란스럽더군요.. 예전에 답사왔을 때의 좋았던 느낌이 잘 오질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으로 시작되는 책의 영향이 큰 것 같았습니다. 부석사는 또 태백산 자락에 있다고 하더라구요 하루만에 두 산을 오간건지..지도를 자세히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아주 많이 다닌 듯한 기분.
부석사에서 최고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그 곳.. 까지 올라가서 탑 앞에서 사진 찍고 전망까지 본 후에는 정말 몸이 천근만근이 되었습니다. 여행에 있어 주변 환경과 컨디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더라구요 어디든지 여행을 가려면 평일에 가는 것이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석사에서 영주 시내로 들어오니 저녘 6시
이미 부산가는 버스는 끊겼고 기차는 밤12시 56분차가 있더군요 그냥 기차에서 밤새도록 잘 것을 다짐하며 추운 초겨울 저녘을 때울 곳을 찾아 전전긍긍하다가. 온돌방이 따뜻한 전통 주점을 발견하고.. 동동주 한사발에 김치전을 안주삼아 장작 그 곳에서 5시간을 버티어 냈습니다. 그래도 술은 남았습니다. 넘 피곤하면 식욕도 떨어지는가 봅니다. 누군가 술배와 밥배는 따로라고 하는 이론을 내세우기도 했는데... 그래도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낯설은 도시에서 오랜벗과 해묵은 얘기들을 도란도란 나누는 그 맛은 잊을 수 없을 겁니다.

11시30분이 넘어서 드디어 영주역으로 갔죠.
영주역이 그렇게 깨끗하고 좋은 곳인지 몰랐답니다. 따뜻한 스팀도 나오고 푹신한 의자에 티비까지.. 잊을 수 없는 영주역이네요.

드디어 밤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는데 아마 중간에 한 숨도 안 깨고 잔 것 같습니다. 새벽의 부산역은 언제나 늘 그렇듯이 여기저기 부산한 사람들의 움직임이 느껴지고...

언제 이런 여행 다시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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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02/04/26 12:23

통도사..
작년 가을인가 우리 까꿍(참..까꽁이었징..)이와 전 선배의 차를 타고 통도사를 갔습니다. 그 선배는 가끔..마음이 답답하면 혼자서 차를 몰고 통도사를 찾는다고 하더군요..그렇게 가서 불전마다 돌아다니며 절도하고.. 저는 범어사를 적극 추천했지만.. 아니야..통도사가 더 좋다면서 저의 범어사는 무시당했더랍니다.
그 전날 우리 까꽁이는 잠을 못자서 차 안에서 계속 자고.. 전 토이 베스트 앨범을 꽃아놓고 계속 들으면서 흥얼거렸죠

가을의 햇살을 쪼이면서 쉬엄쉬엄 걸어가는 통도사 가는 길..
그 길을 차를 타고 올라간다면 얼마나 바보같은 짓일까..란 생각을 했답니다. 절 코앞에까지 가지 않는 이유를 그 전에는 몰랐지만 그 선배는 우리에게 그 길을 일부러 걷게 하려고 했다는 걸 알게 됐죠..

결코 짧지 않은 길이지만 수다떨면서..깔깔거리고 웃으면서 .. 뻥튀기를 바삭거리게 부수면서 걸어가는 그 길은 그야말로 여정이었습니다.
길 가로 큰 나무들이 울창하게 길 쪽으로 뻗어나오면서 그늘을 이루고 있었는데요 햇빛이 그 잎들을 투과하면서 우리에게 도달할 때 그 빛깔은 노란것도 아닌 것이 연두빛도 아닌것이.. 그 오묘한 은은함은 세상 전체를 푸르게 느끼도록 하는데 참 좋더라구요 그 맑고 시원한 바람이 압권이었습니다. 나를 씻어내어 준다..는 후련함.

그 길을 지나는 동안 벌써 속세에서 쌓여온 답답함들이 하나 둘씩 벗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전 통도사 자체보다는 그 길이 정말 인상깊었죠
통도사 절 자체는 규모가 작지는 않은 편인데 웬지 전 그다지 정이 가지는 않더라구요..그냥 개인적인 느낌.
저에겐 범어사가 너무도 강열하기 때문이죠. 통도사는 평지에 넓게 자리잡고 있는데 사람도 많고 정취를 느끼기에는 그냥 저에게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규모가 약간은 부담스러웠다고나 할까..

참..물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작년 여름 양산 터미널에서 양산 시로 들어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착각하고 반대로 가는 버스를 탔지 모에요..그래서 그 버스를 타고 계속 계속 어디론가 가게됐는데.. 혼자서 여기가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떻게 할지를 몰라 계속 차를 타고 갔죠.. 그러다가 종점가지 가게 돼었는데요..거기가 바로 물금이었답니다.
정말 멋진 동네였어요.. 넓은 논이 있고 주변에는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었는데 깨끗하고 시골느낌이 그대로 있어서 참 좋았답니다.
우연히 발견한 곳 치고는 성과가 컸습니다.

그리고..나의 범어사..
평지는 아니라서 오르기 힘든 길.. 통도사의 아류같은 느낌을 주는 약간 좁은 규모.. 조선 중기에 불타버리고 재건했기 때문에 처음 지어졌을때의 모습을 자꾸 궁금하게 만드는 곳.
내가 이십년을 넘게 몸담고 살아왔던 금정산. 제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언제부터인지 모르도록 오랫동안 나와 어머니와..우리 할머니와..그 위의 할머니들의 삶이 묻어 있는곳..

그리고 지금 너무나 그리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고이 잠들어 계신 곳.

다른 절도 그런지 모르겠는데..범어사를 중심으로 금정산에는 숨어 있는 절들도 산속 깊숙이 많은데요..
그 분들의 살아왔던 옛날얘기를 전 어릴때 참 많이 들었는데 주 무대가 바로 범어사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었죠.. 그 때는 아무런 생각 없이 얘기 듣곤 했는데 대학와서 역사를 배우면서..다시 생각해 보면 참 재미있더라구요.. 내가 살고 있는 곳 자체가 역사의 무대였구나..라고 생각을 하니..

어떻게 보면 통도사와 범어사는 같은 가족과도 같은 절인데..
저에게도 통도사는 먼 친척같은 존재이며..범어사는 나의 집 같은 곳이죠.
지금 주변에는 엄마들 계할때 가는 고급 음식점이며 노래방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고..백악관 노래연습장..실내 골프장..압구정 갈비..아이비 레스토랑..분위기 있게 보이는 평사리 가는길..이라는 간판을 지닌 음식점도 있고 한자로 적혀진 나는 가 본적 없는 한정식 집들도 그렇고..이런것들도 같이 좋아해야..하나..하는 생각.
점점 나의 조상들의 흔적들은 없어져가고..사람들도 어딘가 흩어져 가고..
그런 생각하면 가끔 맘이 가끔 아파집니다.
세월이 흐르면 그에 따라 가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서도..
이 오래된 과거에의 향수와 집착은 저에겐 벗어나야 할 숙제와도 같은 것이죠 저의 주변 친척들도 모두 그렇고. 나의 큰 모순이기도 합니다.
역사의 흐름에서 어쩌면..이러한 해체는 역사의 발전을 의미한다고..그렇게 호전적으로..긍정적으로 사람들은 말을 하겠지만
그래도 완전히 그 흔적이 없어지지 않는 이상.. 약간 마음이 씁쓸한 것은 어쩔 수는 없는 부분이기도 하네요..제가 역사를 배우지 않았다면 차라리 아무런 생각이 없게 살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구요..
암튼..극복해야 할 문제들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아하..
그러고 보면 저 또한 역사의 현장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군요..^^

이상 역사의 현장속에서 저 "???"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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