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2002/11/06 15:16

지난 금요일.. 11월 1일에 개교기념일을 맞이하야 나의 아리따운 깨정양과 함께 단 둘이 여행을 떠났답니다.
처음엔 목포를 간다느니..소쇄원을 간다느니..아웅다웅하다가 합의 끝에 등산을 원하는 깨정양의 바램과 한국적 건축물을 보지 않으면 그건 여행이 아니라는 나의 바램이 합쳐져서 간 곳이 바로 영주였답니다.

소백산, 영주, 소수서원, 부석사
이렇게 말하면 답사 전문가이신 끌리오 친구들은 대강 알 듯 싶군요.
나중에 알고 보니 부석사는 2000년 안동 답사때 다녀온 곳이었답니다. 그런데도 전 신경숙의 부석사를 예전에 읽었으니 거기에 가봐야 겠다고 했던 며칠 전을 생각해 보면..인간의 망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몇 십년 후에도 종종 이럴까봐 겁이 나는군요. 그래도 깨정양은 2000년에 답사를 가지 않았으니깐 같이 가는 길에 나도 간다고 생각하고 즐거운 맘으로 갔습니다.

p 서로가 잠이 많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지라 새벽에 일찍 일나서 가느니 차라리 1박2일로 잡고 가자는 것은 당연지사. 12시 다되어 잠에서 깨어나 즉석으로 시간 정하고 부산역까지 가서 기차를 타기까지.. 모든 일들이 아무런 계획없이 어찌나 즉석해서 착착 진행되는지 놀라울 정도였죠. 답사 귀신이 붙은 듯 했답니다.

지도도 한번 안보고 영주까지 기차는 5시간 혹은 6시간 정도를 열심히 달리더군요. 경북에 영주가 있는 줄 알았지 영주가 어디 있는지는 알았겠습니까. 뒤늦게야 지도를 보니 가까이에 강원도가 있는줄을 알고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부산보다 서울이 더 가깝더래요.
도착하니 벌써 밤이 되고 안락한 밤을 보낼 24시간 풀 가동하는 목욕탕을 찾아..거기는 찜질방도 겸으로 하더군요. 암튼. 이런 얘기는 쓰지 않는게 좋을 듯 하여..

영주의 물은 정말 경이로울 정도로 좋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닌 새로 태어난 듯. 가뿐하더군요.
깨정양이 그토록 원하던 등산을 위해 점심용 김밥을 싸들고 소백산 희방사 가는 길로 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예전에 단체로 큰 버스를 타고 다니는 여행과는 정말 사뭇 다른 맛이었습니다. 소백산은 참 아담하면서도 한국적인 맛이 나는 산이었습니다. 푸근해 보이는 모습이 폭신폭신하게 보이기도 하고.. 하얀 쉬폰케잌 위에 초콜렛 파우더를 잔뜩 얹어놓은 듯한 느낌. 한국적이어야 하니깐 백설기에 팥고물 뿌린 느낌? --;; 단풍은 벌써 거의 지고 특히 그날 아침은 유독시리 춥더군요. 뉴스는 정확했습니다.

등산하는 사람이 정말 없어서 조용했습니다. 추운것이 외려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할까요.. 사람들이 너무 없고 조용하니깐 자연을 감상하기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여건이었죠. 소백산은 정말 소백스런 느낌을 준다?는 건 좀 이상하고 작고 아기자기한 볼거리들이 좋았죠. 무엇보다도 고요한 산 속의 정기를 빨아들이는 것이 최고였죠. 산이라는 존재가 곁에 있다는 것이 정말 느껴지더군요. 산과내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이 친밀감이 들었습니다.
목적은 등산의 기분을 느껴보는 것이라서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거나 하진 못했습니다. 희방폭포를 지나 희방사까지 갔다가 돌아와야 했으니깐요 일정도 있고 해서.

소백산 자락에서 풍기 시내로 들어왔습니다.
풍기 인삼..이 유명하죠. 그냥 넘길 수 없어 풍기 인삼시장에서 추운 올 겨울의 보양식으로 삼아보고자 수삼을 좀 구입했죠. 길에서 동네 아주머니께 인삼 보는 법 좀 가르쳐 달라고 하니깐.. 아가씨들이 가면 속는다면서 직접 데리고 가셔서 골라주시기까지 했답니다. 동네 인심이 참말로 좋더군요. 농협 아가씨들도 정말 친절하고. 인삼집에서 끓여내어주는 인삼액? 한 잔에 몸이 정말 든든해지더군요. 홍삼 사탕까지 받아 왔었답니다.ㅋㅋ.

풍기에서 1시간에 한 번오는 소수서원가는 버스를 타고 말로만 듣던 소수서원을 드디어 가게 되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정말 멋진 곳이더군요. 규모 면에서는 도산서원보다는 작은 듯하고 병산서원보다는 넓은 듯 하였고 무엇보다도 옆에 흘러가는 개울이 그렇게 맑을 수가 없더군요. 주세붕이 흰 글씨로 백운동이라 쓰고 아래에 이황이 敬이라고 쓴 붉은 글씨가 멀직이 보이는데 그런것들이 저를 감흥시키는 것들이었습니다.

풍기가 인삼이 유명해 진 이유는 주세붕이 풍기 지역에 할당된 산삼 공납의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인삼을 인공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한 연유랍니다. 그래서 소수서원과 풍기인삼, 주세붕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소수서원이 위치한 곳은 풍기가 아니라 순흥인데 그 옆엔 또 순흥향교라는 곳이 있더군요. 거기는 뭔가 공사를 하고 있길래 구경은 못해봤습니다. 여전히 아쉬웠던 것은 전시실에 있는 고문서나 비문 같은 것을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는 것. 누가 못 읽게 한 것도 아닌데.. 그 아쉬움이란..

소수서원까지 갔다가 마지막으로 부석사를 향할 때 쯤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죠. 토요일 오후즈음이라 부석사는 사람들이 정말 붐볐습니다. 여기저기 여러 단체들이 와서 정말 혼란스럽더군요.. 예전에 답사왔을 때의 좋았던 느낌이 잘 오질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으로 시작되는 책의 영향이 큰 것 같았습니다. 부석사는 또 태백산 자락에 있다고 하더라구요 하루만에 두 산을 오간건지..지도를 자세히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아주 많이 다닌 듯한 기분.
부석사에서 최고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그 곳.. 까지 올라가서 탑 앞에서 사진 찍고 전망까지 본 후에는 정말 몸이 천근만근이 되었습니다. 여행에 있어 주변 환경과 컨디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더라구요 어디든지 여행을 가려면 평일에 가는 것이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석사에서 영주 시내로 들어오니 저녘 6시
이미 부산가는 버스는 끊겼고 기차는 밤12시 56분차가 있더군요 그냥 기차에서 밤새도록 잘 것을 다짐하며 추운 초겨울 저녘을 때울 곳을 찾아 전전긍긍하다가. 온돌방이 따뜻한 전통 주점을 발견하고.. 동동주 한사발에 김치전을 안주삼아 장작 그 곳에서 5시간을 버티어 냈습니다. 그래도 술은 남았습니다. 넘 피곤하면 식욕도 떨어지는가 봅니다. 누군가 술배와 밥배는 따로라고 하는 이론을 내세우기도 했는데... 그래도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낯설은 도시에서 오랜벗과 해묵은 얘기들을 도란도란 나누는 그 맛은 잊을 수 없을 겁니다.

11시30분이 넘어서 드디어 영주역으로 갔죠.
영주역이 그렇게 깨끗하고 좋은 곳인지 몰랐답니다. 따뜻한 스팀도 나오고 푹신한 의자에 티비까지.. 잊을 수 없는 영주역이네요.

드디어 밤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는데 아마 중간에 한 숨도 안 깨고 잔 것 같습니다. 새벽의 부산역은 언제나 늘 그렇듯이 여기저기 부산한 사람들의 움직임이 느껴지고...

언제 이런 여행 다시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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