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 크래커스
한나 틴티 지음, 권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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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눈에 잘 안 들어왔어. 그런데 읽다보니 너무 재밌는 거 있지! 그래서 난 너무 좋아서 혼자 베실베실 웃어도 보다가 얼굴에 책을 묻고 종이 냄새를 한껏 맡아 보다가 그랬어.

동물과 사람이 어쩌고 저쩌고 기괴하고 어쩌고 그런 건 잘 모르겠어. 그런데 왜, 어떤 여자랑 남자가 있는데 그 남자가 여자 집에 다녀갈 때마다 여자는 달력에다가 엑스 표시를 했대. 그게 거의 매일이었다가 이틀, 삼일 걸러서였다가 일주일에 한번 한달에 한번 하더니 어느새 몇 달째 엑스를 긋지 못한거야. 그래서 그 여자는 거울을 가만히 들여다 보다가 얼굴에다가 엑스 표시를 해 버렸어. 알지? 어떤 느낌인지? 이런 식이야. 이런 식으로 말 해. 이 작가는. 그래서 난 너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어.

그리고 말이야 어느 살인청부업자가 있었어. 그런데 그 바닥이 다 그렇잖아. 젊을 때 단물 다 빨아먹고 나면 언젠가는 자신과 같은 업종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기가 했던 그대로 당하는 거~ 그래서 이 남자도 결국엔 그런 순간이 올 줄 알았고 그런 순간이 왔어. 이 남자는 피하지 않아. 다만, 자신이 자란 빵집에 가서 돌아가신 분이 남긴 빵집을 운영하다가 그 분의 레시피를 한가로이 보다가 어느 순간 기척을 느껴. 온 거지. 그래, 기다린 순간이 온 거야. 그 때 이 남자는 이런 생각을 한다? 어린 시절 자신이 즐겨 먹던 달콤한 설탕과자. 그 맛이 떠오르고 그 감촉을 느끼기 위해 밀가루도 살짝 만져봐. 와, 충만해, 이제. 그래서 이 남자는 한번에 심장까지

관통 할 수 있도록 허리를 쭈욱 펴지. 이런 식이야.

그래서 이 책이 난 너무 좋았다. 원래는 대충대충 읽을려고 했는데 사실, 대충대충 읽고 있었는데 결국 난 사로잡히고 만 거지. 이 작가가 그다지 친절하진 않기 때문에 아마 내가 놓친 것들이 많을 거야. 하지만, 내가 잡아 챈 부분만으로도 난 충분히 좋았어. 이 책은 이 작가의 데뷔작이래. 소설집인데 기다려 지는 거 있지.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이. 언제 나오지? 인연 닿으면 꼭 봐야지, 싶은 작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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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제왕의 생애 (반양장)
쑤퉁 지음, 문현선 옮김 / 아고라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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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결국, 우리의 삶인 것이다-라고 말하기를 거부하겠다.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과연 이것이 결국 우리의 삶인 것이다-였을까? 

이미 작가는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세월을 자신이 직접 살아내기 보다는 다관에 나앉은 늙은 손님처럼 세상의 모든 일과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끊임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모두 자신의 눈으로 지켜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 주인공이 단문이 아니라 단백인 것이다.

단문의 시선으로 이 책을 읽었다면 나는 결코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남의 삶을 들여다 보듯이 이 책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단문의 입장에서 단백을 분개하고 단문의 와신상담을 지지하며 하루 빨리 단문이 제왕이 되기를 빌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단백이었고, 노회한 여우의 희생물이 된 단백이었고, 어린 주제에 잔인하기까지 했던 단백이었고, 귀뚜라미를, 새를 좋아하던 단백이었고, 기어이 광대가 되고야 만 단백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이야기들을 나의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을 들여다 보는, 그저 다관에 나앉아 흘러가는 세월을 무심히 지켜보는 시선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단백이 현재가 아닌 과거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작가는 하필이면 단백을 주인공으로, 그리고 하필이면 과거 회상조로 단백을 작중 화자로 만들어 버렸고 거기에다 친절하게 서문에 다관의 늙은 손님의 시선까지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나의 삶으로, 우리네 삶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작가는 모든 기교를 이용하여 이 책을 최대한 무심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나는 단백의 잔인함 앞에서도 크게 분노하지 못했고 혜비와의 사랑도 그다지 간절하게 느끼지 못했으며 폐왕이 된 단백에게서 측은지심을 느끼지도 못했으며 끝내는 광대의 꿈을 이루어 낸 단백에게 박수를 쳐 줄 수도 응원을 해 줄 수도 없었으며, 오히려 그게 서글프지도 않았다.

그냥 모든 것이 아, 그렇구나. 아, 그랬군요. 그래서요...? 이, 그래서요..? 에서 작가는 무슨 말이 하고 싶었을까? 많은 이들이 말하는 대로 결국에 우리네 삶은 그런 것, 이런 것일까?

작가는 삶이란 슬픔과 기쁨, 괴로움과 즐거움이 갈마드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아, 그렇군요, 우리네 삶은 그런 것이군요, 그러니 우리가 느끼는 기쁨, 우리가 느끼는 슬픔, 즐거움, 괴로움 모두 당연한 것이군요,가 아니라 그러니 우리는 그저 타인의 삶을 구경하듯이 우리네 삶도 크게 슬퍼할 것도 크게 노여워 할 것도 없군요..크게 욕심부릴 것도 없이 그저 떠도는 광대처럼 이 한 세상 즐거이 살다 가면 되겠군요..때로는 우리가 왜 사는 지도 모르면서 그저 살라니 살고 죽으라니 죽는 듯이 그렇게 이 한 세상 머물다 가면 되겠군요..내가 나비였을까, 나비가 나였을까, 하면서 그저 이 한 세상 꿈꾸듯 살다 가면 되겠군요..라는 생각을 했다.

책은 빨리 읽히지도 늦게 읽히지도 않았다. 한참을 내달리며 읽다가 어느 순간 딱 맥이 끊어지고, 그러다 또 몰두하여 읽다가 또 맥이 끊어지고를 반복했다. 그래서 순간, 쑤퉁의 이야기 솜씨가 이 책에서는 다 발휘되지 못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가졌지만 다 읽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 맥이 끊긴 사이사이, 나는 내 나름대로 이 책을 소화시키면서 내 나름의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그 잠깐 잠깐의 공백이 이 책을 좀 더 맛있게 읽을 수 있게 해 준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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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경영 서돌 CEO 인사이트 시리즈
이나모리 가즈오 지음, 김형철 옮김 / 서돌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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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경영. 늘 책을 받을 때마다 느끼는 설레임을 안고 배송 박스를 뜯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책 앞에 띠지가 둘러져 있는데 그 띠지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삼성 경제 연구소 선정 <CEO가 휴가 때 꼭 읽어야 할 책>’. 헉, 불쌍한 CEO. 휴가 때조차 편히 쉴 수 없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음..이나모리 가즈오라는 사람은 엄하면서도 인자하게 생겼네, 교세라 그룹이 어디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경영서적이라기 보단 철학 서적이라고나 할까. 철학 이야기를 하는데 그 이야기를 쉽게 하기 위해서 경영이라는 예를 택한 느낌이었다. 경영이라는, 그리고 그 창업자의 인생을 통해 철학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 책의 입장은 유신론이다. 일본인은 원래 산천초목 실개성불, 정령사상 등으로 유일신은 믿지 않지만 세상에 신이 존재한다는 걸 믿는 민족이다. 이는 우리네 옛 조상들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웃집의 토토로에 보면 먼지 뭉치에게도 령이 있다고 믿는 등, 그야말로 만물에 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민족이 일본인 인 것이다. 이에 비춰 보면 이나모리 가즈오의 신에 대한 철학은 특별하달 것은 없었다. 하지만 이나모리 가즈오가 특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믿음 하에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하늘을 감동시켰다는 것일 게다. 신념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이론으로만 무장된 사람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오로지 경험에만 의지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하에 최선을 다했던 사람이었고, 그러한 경험들이 인생이라는 큰 틀 안에서 언젠가는 보상 받았다고 믿었기에 그러한 믿음을 아직까지도 유지할 수 있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요즘 젊은이들은 젊은이로서의 패기와 신념을 가지기 이전에 세상에 통용되는 단기적인 시점에서의 편법을 먼저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이나모리 가즈오는 어떤 말들을 했는가? 내가 감명 받은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알아보도록 하겠다. 우선 이 책의 프롤로그에 보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는 영혼을 닦아나가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인상적인 견해이다. 언젠가 내가 존경하는 이외수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 중에 우리는 자기완성을 도모하기 이 세상에 온다는 말이 있었다. 갑자기 그 말이 떠오르면서 역시 인생에 있어 깊은 성찰을 하신 분들이 내 놓는 의견은 일맥상통 하는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각자 인생의 출발선은 다르지만 저마다 다른 출발선 상에서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영혼일 것이다. 영혼은 가난한 자든 부자든 사회적 지위에 차별 받지 않고 그 사람이 닦아 나가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의미를 영혼의 수양에 두고 있기에 자신만의 도덕률, 신념을 한 평생 지켜가며 살 수 있었으리란 생각이다.





그리고 이나모리 가즈오는 사고방식을 중요시한다. 이나모리 가즈오의 인생의 방정식을 보면‘인생(일)의 결과 = 사고방식 * 열의 * 능력’ 이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고방식이다. 사고방식에는 마이너스도 있기 때문이다. 이 간단한 수식 하나로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나타내었다. 경영인다운 효율적인 방법이었다고나 할까.


사고방식과 더불어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노력이다. 이나모리 가즈오가 말하는 노력은 단순히 남보다 열심히 했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집중해서, 오로지 그 한 가지에만 집중해서, 그 정도에 있어서는 신이 도와주고 싶을 정도라니 과연 그는 한 평생을 살아오면서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면서 살았던 것일까? 꾸준히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은 집중력으로 승부한다는 말을 종종 하곤 하지만 이나모리 가즈오는 그 집중력에 꾸준한 노력까지 말하고 있으니 이나모리 가즈오가 성공할 수 없었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경영인들을 위한 책이라지만, 띠지엔 CEO들이 휴가에 가서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되어 있지만 오히려 요즘 젊은이들이 읽어야 하는 책이지 않을까? 이렇다 할 신념도 없고 어떻게 열심히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 원하는 것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테크닉은 알고 있을지 모르나 어떤 마음가짐이어야 하는지 모르는 젊은이들이 읽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젊은이가 하고 싶은 분야가 어느 분야이든 이나모리 가즈오의 철학을 바탕으로 해서 한 세상 살아간다면 적어도 그가 원하는 분야에서만큼은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이루면서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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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병사 - 어느 독일 병사의 2차 대전 회고록
기 사예르 지음, 서정태 엮음 / 루비박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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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지금 에어컨을 틀었어. 너무 더워서 말야. 책의 말미에 가서는 갑자기 울컥 하더라고. 전쟁 중에 흘리지 못한 눈물이 전쟁이 끝난 후, 한꺼번에 왈칵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이건 전쟁 중의 눈물과는 다른 눈물일거야. 죽어간 동료를 위해 흘린 눈물, 두려움 속에서 흘린 눈물들과는 또 다른 눈물이었겠지. 사실, 난 좀 잔인했어.

 

이 책이 그다지 생생하지 않다고 생각했어. 묘사도 그다지 살아있지 않고 사람이 죽으면 그냥 공습으로 탱크가 폭발 했는데 병사도 함께 폭발했다. 그리고 시체 냄새랄까. 아, 그렇구나. 그다지 그 시체가 어떤 모습인지 어떤 느낌인지 말초신경을 자극할 만큼 생생한 묘사는 아니구나. 뭐가 그리 잔인한 전쟁 회고록이라는 거지? 이런 생각을 한거야. 그러면서 작가 글발이 안 되나보지, 내지는 어쩌면 작가 입장에선 이 정도가 한계인 걸까? 전쟁을 겪지 않은 소설가의 상상으로 쓰는 글과 직접 겪어 본 사람이 쓰는 글은 좀 다르지 않을까. 겪어 본 사람들 중엔 생생하게 써 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오히려 직접 겪었기 때문에 그렇게 쓰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거라고. 생생함은 없겠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이 더 인간적이었다고 할까. 여하튼 나는 이 잔혹한 전쟁이야기를 읽으면서 고작 이런 생각이나 한 거야. 

 

그런데 다 읽고 나니까, 더욱이, 이 병사가 포로로 잡혔다가 석방 된 상황을 보니까 너무 어처구니가 없는 거야. 이 독일 병사는 자신은 독일인이라 생각했고 또 독일병사라고 생각했으며 그 사지에서 때로는 조국을 위해, 때로는 동료를 위해, 때로는 민간인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그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싸운 독일 병사였던거야. 독일 병사들과 똑같이 혹독한 훈련을 받고 전투를 하고 그러면서 자신은 진정한 독일인으로 독일병사로 인정받았다고 나도 그들과 같다고 느끼면서 자랑스러워 하던 독일 병사라고. 하지만 이 독일인은 아버지는 프랑스 사람이고 어머니는 독일 사람이었어. 마지막에 포로가 되었을 때, 프랑스 군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독일은 아버지가 독일인 사람만 징집을 했다는 거야. 그래서 이 남자는 석방 된다고 하는 거야. 말이 돼? 애초에 진정한 독일인으로 인정 받지 못하던 콤플렉스를 안고 독일군에 입대해서 똑같이 훈련받고 전투하면서 자신이 독일인으로 인정 받는 걸 자랑스러워 하던 병사에게 사지에서 함께 살아난 동료를 남겨두고 결국엔 자신은 독일인이 아닌 것으로 분류되어 석방 된다는 게? 대독일 사단으로서의 자부심은 어쩌지? 아니면, 애초에 이 사람은 왜 그런 잔혹한 경험을 해야만 했지? 지나고 나서 어떤 이유로든 엄청 억울했을 것 같아. 그 억울함들을 이겨내고 이렇게 책까지 낸 걸 보면 꽤 강한 사람이었나봐. 전쟁이 안겨준 정신적 충격, 자신의 정체성, 눈 앞에 묻어버린 동료들, 홀로 석방된 기억. 이 모든 걸 가슴에 묻고 잘 살아갔나봐. 이렇게 회고록까지 쓰고.

 

난 이 병사가 자신이 살육한 이야기는 교묘하게 피해가는 것 같아서, 자신들이 받은 공격, 공습, 피해, 아픔, 상처들만 늘어놓는 것 같아서 역시 어느 정도는 자신을 방어하면서 글을 썼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모든 감정들이 그 어이없는 석방 앞에 눈물이 되어 쏟아지네. 그렇게 잔인한 책이라는 생각을 하지도 못했고 그렇게 슬프다거나 감동적이라거나 그런 생각 하지 못했는데, 이 책의 의의가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들이 윗세대들이 저지른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주의를 환기시키는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뭔가 한 방 맞은 기분이야. 와, 반전드라마인 걸.

 

마지막으로, 이 책은 독일 병사가 쓴, 패전국의 병사가 쓴 회고록이라고 광고를 하고는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아. 국적 따윈 상관 없어. 그냥 한 병사의 이야기이야. 평범한 한 병사. 어느 나라 병사인가는 중요하지 않아. 모두 비슷한 일들을 겪었을테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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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약속
소르주 샬랑동 지음, 김민정 옮김 / 아고라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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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은근한 감동이 참 따스하게 와 닿았던 책이다. 이건 꼭 감동스러워해야 해! 이런 게 바로 감동인거야!라고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아프다기 보다는 따뜻해 지는 감동.

소르주 살랑동의 첫 작품이었던 말더듬이 자크에 비하면 많이 부드러워진 덕분인지 책은 쉽게 잘 읽혔다. 하지만, 그냥 술술 읽히기만 하진 않고 적절히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가게 끔 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각각의 인물의 특징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었고, 노부부에 대한 궁금증도 품게 되었으며, 그들의 어린 시절 일화들 속에서 지금 현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짐작해 볼 수도 있었는데, 이 모든 과정이 재미있었다.

자,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어느 한 인물이 어느 저택을 찾는다. 그래서 문을 두드리고 벨을 울리고서는 그냥 가 버린다. 물론 이 집엔 노부부가 살고 있다. 이 노부부는 음, 누가 왔군, 이제 벨을 울리겠지? 이렇게 밖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다음 행동은 무엇인지 추측은 하면서도 문은 열어주지 않는다. 이 노부부는 참 다정해 보이는데 여자는 낱말을 맟추고 남자는 우표를 들여다 본다. 그리고 조곤조곤 나누는 이야기들.

그런데 왜 문을 열어 주지 않는 거지? 분명 존재하는 인물인 것 같은데, 그래서 나는 처음엔 집안에 숨어 지내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했다가 나중에 돌아가는 정황을 보고서는 시체를 유기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런 끔찍한 이야기는 아니었고 망각이란 무엇인가라는, 망각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 죽음을 말하는 것이라는 그런 의미심장한 구절로 끝나는 이야기이다.

그럼 이젠 대충 감이 잡히겠지? 그들이 그 저택을 방문하고 손님이 온 것처럼 벨을 누르고, 창문을 열고 식탁을 차리고 하는 것들이 결국엔 그 노부부를 잊지 않기 위함이었음을. 그리고 그들은 그 노부부에 대한 사랑과 갑판장에 대한 우정으로 그 수상쩍은 행동을 왜 그래야 하는지 단 한번도 물어보지 않은 채, 단 한마디 불평도 없이 묵묵히 수행해 냈다는 것을.

그리고 마지막에 각자가 이 노부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을 보면 역시 이 작가는 말더듬이 자크를 쓴 그 작가가 맞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형식이 어떻게 되었든, 어떤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가든, 이 작가는 참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는, 소외된 사람들에게 어떻게 마음을 전달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 내가 알고 있는 그 작가가 맞다는 사실이 또 기뻤다. 어떤 작품을 써 내든 작가의 이런 마음은 오래도록 이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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