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최고의 책이다. 조너던 사프란 포어는 최고의 작가다. 소설이 갖춰야 할 요소들을 완벽히 갖추고, 거기에 포스트모던적인 실험 정신을 가득 녹아져 있는 소설. 너무나도 인상 깊었고,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던 책이었다.
911테러. 그 테러로 아빠를 잃은 9살짜리 천재 소년 오스카의 이야기다. 한편, 2차 세계 대전으로 가족을 잃은 조부모님 세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 한편, 이 세상에 아픈 마음을 안고 살고 있는 모든 이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빠의 방에서 발견한 화병 속 Black이라고 적힌 봉투 속 열쇠. 오스카는 뉴욕시의 모든 Black들을 찾아 다니며 열쇠에 대해 탐문을 하고 다닌다. 오스카에게 열 수 없는 열쇠. 해결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앞길은 한편으로는 끝나지 않는 아빠와의 연결 고리이기도 하다. 그가 만나는 Black들. 하나 같이 상처를 안고 있다. 지나간 사랑에 아파하고, 현재의 질병에 힘들어 하고. 모두가 과거를 보고 있다.
한편 쉽지 않은 인생을 사신 할머니는 오스카에게는 둘도 없는 친구이다. 그녀의 이야기 또한 기가 막힌다. 할아버지와의 삶. 할아버지의 이야기. 2차 세계대전. 독일 드레스덴 지역에서 일어났던 폭격. 모든 가족을 잃고 미국으로 넘어온 말할 수 없는 할아버지와, 볼 수 없던(아닌 것으로 밝혀졌으나) 할머니. 죽은 언니를 그녀를 통해 보는 할아버지와의 생활. 임신한 자신을 두고 말도 없이 떠나버린 할아버지. 할머니의 삶은 얼마나 처참했을까. 그들은 왜 솔직할 수 없었나. 그들 사이에 존재했던 시간은 왜 뿌연 안개 같이 느껴졌나.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가면서. 아픔을 안고 소통의 부재에 직면한 이들을 대하며 마음 속에는 소통의 중요성과 사랑 표현의 중요성이 오롯이 떠올랐다. 그래. 이 책은 모든 아픔을 관통하는 "소통"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구나.
이 책을 다 읽고 덮은 지금. 내일은 없다.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늘 현재의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사랑을 표현하고 소통을 하며 살자.는 강렬한 인상만이 남아있다.
문득. 정현종 시인의 시가 생각난다.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 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더 이상의 후회는 만들지 말자.
소통하라. 사랑하라. 마지막인 것 처럼.-
*
포어가 셰스카의 Stinky Cheeseman을 봤을까 싶을 정도로 그림책에서 나왔던 실험적인 기법들이 등장했던 소설책! 파본인건 아닐까? 하고 의심하게 만드는 여러가지 장치들과 트릭들. 놀라웠다.
*
이 책에는 세 명의 화자가 나온다. 오스카, 할머니(편지), 할아버지(편지). 끊임 없는 반전의 연속. 반전 또 반전이라고 느껴졌는데. 그건 아마도 A라는 인물이 B라는 인물의 생각, 의도, 진심을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효과인 것도 같다. 어쩌면 우리는 그만큼 타인이 명시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혀줄 때에라야 이해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