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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otebook (Mass Market Paperback)
니콜라스 스파크스 지음 / Warner Books / 199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내게는 여러 컴플렉스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바로 로맨스 컴플렉스이다. '손수건 7장으로도 모자란 감동!',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볼 수 없는 영화', '최고의 감동' 등의 영화를 보러 갈 때면 설마 이번에는 감동 받겠지 싶어서 티슈를 가져 갔다가 손수건 1장은 커녕 휴지 한 칸도 적시지 못하고 돌아오기 일수였다. 뭐. 사설이고. 난 정말 로맨스를 즐길 수 없는 것일까? 남들은 최고의 명작으로 여기는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도 책과 영화로 3-4번은 봤는데 매번 맹숭맹숭. 아니 남들이 다 받는 감동을 난 왜 못 받는거야. 싶으면서. 나의 로맨스 모듈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이번에 여행이 끝나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 이 책을 반드시 즐기고 돌아가겠다는 오기가 생기기도 했다.
워밍업(?) 차원에서, 또 잠자고 있는 발달이 안된 로맨스 모듈을 깨우기 위해서 여러 로맨스 소설들을 읽어보기로 했고 첫 타자로「The Notebook」을 읽었다. 워낙 유명할 뿐 아니라, 영화로 만들어진 후에 한국에서도 매우 크게 히트를 친 실화를 바탕으로 한 대표적인 로맨스 소설.
내용과 설정이 아주 특별하지는 않다. 시골 마을 뉴베른에 몇 주간 휴양을 온 아티스트적인 감수성을 지닌 열정적인 갑부집 딸 앨리와 순수한 영혼을 가진 시를 좋아하는 시골 남자 노아의 어린 시절의 불 같았던 한 때. 당연히 부모의 개입이 들어오고, 둘은 이후 14년 동안 연락도 못하고 잊고 지낸다. 물론 노아가 앨리에게 수없이 많은 편지를 보냈으나 이 편지는 결코 앨리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노아는 골드만 목재소에서 일을 하다가,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군인으로 지원한다. 전쟁이 끝나기 전 골드만 사장은 노아에게 유산을 남기고 죽고 그 돈으로 전쟁에서 돌아온 노아는 낡은 집을 사서 수리를 하는데 모든 시간을 보냈다. 또 멋진 리폼으로 그의 집은 신문 기사화 되기도 한다.
한편, 그 신문 기사는 14년 전 노아의 첫사랑인 앨리에게도 전달된다. 뉴베른을 떠나온 앨리는 엄마가 편지를 가로챈 것도 모른체 그렇게 노아와의 사랑을 마음에 묻게 되고, 대학을 가고, 전시에 간호조무사로 봉사를 하다가 법조인 론을 만나 4년간 연애를 하고 약혼을 했고 그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는 예비 신부이다. 그런데 그 예비 신부의 마음에서 늘 한켠에 잡고 있던 노아의 소식을 신문을 통해서 보게 된 것이다. (아. 줄거리가 너무 길어진다. 이제부터 축약 버전으로) 앨리는 노아를 찾아가고, 둘은 다시 사랑을 확인하고, 론은 난리나고, 엄마는 둘이 함께 있는 집에 급습하고, .... 결국 앨리는 노아와 결혼해서 45년간을 행복하게 살다가 4년째 알츠하이머병에 시달리고 있다. 즉, 남편과의 모든 사랑의 추억은 고사하고, 남편의 얼굴도 못알아보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된 거지. 그런 할머니에게 자신들의 러브스토리를 매일매일 읽어주는 할아버지 노아의 이야기인 것이다. 프레임 구조로 시작과 끝은 요양원에 있는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인 현재 시점을, 중간은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그들의 젊은 날의 러브스토리로 구성이 되어 있는 것이다.
감상을 쓰려고 하니. 뭐라고 딱 하나로 집약되어서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책을 읽을 때면 작가의 주된 메시지가 뭐지를 계속 파고 들려고 하는데, 그것이 좀처럼 쉽게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사랑에 대해서 얘기하고자 했다는 것. 사랑. 어떤 사랑? 우리가 일평생 살면서 만나게 되는 세 가지 사랑에 대해서 얘기하고자 했던 것일까?
#1.
첫사랑. 첫사랑의 기억은 뜨겁다.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 그렇게 한 눈에 반한 사랑을 한 노아와 앨리. 이들의 어릴 때 했던 첫사랑의 만남이 일평생을 좌우했지만, 작가는 이 첫사랑 자체에 비중을 많이 두고 있지는 않는듯 했다.
다시 돌아온 첫사랑. 14년의 공백 끝에 이들은 다시 만난다. 그 옛날의 기억은 전혀 빛이 바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빛난다. 그뿐 아니라 긴 기다림의 세월 동안 인격적으로 육체적으로 성숙한 노아는 약혼자에게 돌아가는 그녀에게 '가지마'라는 말을 마음으로 삼킬 뿐 붙잡지도 못한다. 역시 이야기 전체에 포커스가 여기에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매일 매일 새롭게 시작하는 첫사랑. 이제 그녀는 치매에 걸려서 그들의 사랑을 기억하지 못한다. 노아는 그들의 러브스토리를 매일매일 새로 읽어주며 잠시라도 그녀의 기억이 돌아와 주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앨리의 기억이 돌아올 때면 그는 forgotten paradise를, 완전히 새로운 heaven을 만끽한다. 나는 이 책의 포커스를 이 마지막 첫사랑에 두고 싶다. 아마 작가의 생각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세 종류의 마음 아픈 첫사랑. 첫사랑의 현재는 그 뜨거움으로 서로의 몸과 영혼을 아프게 하고, 돌아온 첫사랑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게 하고, 마지막으로는 일생을 지배했던 그들의 사랑의 기억을 쓰고 또 쓰게 하며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 책이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노아의 헌신적인 사랑과 그 사랑이 만들어내는 기적, 또 로맨틱한 캐릭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도 언제라도 찾아올 수 있는 보편적인 사랑의 서로 다른 모습들을 통해 일상에 묻혀 있는 사랑을 돌아보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이러한 사랑은 어느 시기를 막론하고 올 수 있다. 그 대상이 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고, 그 깊이 또한 천차만별 다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 그 사랑이 나에게 현재로서의 첫사랑이냐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을 과거로 묻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한 때 좋았었지. 한 때 불 같았었지. 그 한 때. 그 한 때가 지나가 버린 것인건가.
이 책에는 한 때가 아닌, 상대가 예쁘고 젊어서가 아니라, 나의 영혼을 만져주고, 나를 나되게 하기에 그래서 유일한. 그래서 매일매일 첫사랑이 되는 앨리를 향한 노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완전히 픽션 스토리이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둔 소설. 그런 사랑이 가능하다고 얘기하는 것 같다.
#2.
왜 로맨스는 인기가 있을까? 이 책의 중반까지는 책을 즐기기가 어려웠다. 근데 궁금했다. 수많은 몇백, 몇 천 권의 책 중에서 왜 사람들은 이 책에 열광하는지. 그리고 나는 왜 그들 중 하나가 될 수 없는지. 그러다가 후반으로 가면서 많은 생각들을 하며 책을 즐길 수 있었다.
1) 잘은 모르겠지만, 이 책에는 공란이 많다. 독자가 추측할 수 밖에 없는 틈을 남겨둔다. 그 틈은 독자가 자신의 경험을 자신의 생각을 넣어서 채울 수 밖에 없다. 즉, 그 이야기는 작가 혼자 만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2) 보편적인 삶의 태도에 대한 나의 생각을 돌아보게 하기 때문에 많은 이들로부터 공감을 사게 되는 것 같다. 현실을 따를 것인가, 이상을 따를 것인가. 희안하게도 책을 읽을 때면 모두가 이상주의자가 된다. 그래서 현실을 따르는 것 처럼 보이는 앨리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나 또한 이상을 따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그리고 작가는 이상을 따르더라도 happiness는 happy & end가 되지 않고 그야말로 happily ever after가 수 있다는 낙관적인 견해를 보여준다. 물론 그 ever after의 끝에서는 또다른 넘어야 할 산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3) 영원한, 변하지 않는 사랑의 극치를 보여준다. 우리는 책을 볼 때 캐릭터가 그 사랑을 지켜내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것이 힘들기 때문에. 그 힘든 걸 극복하고 사랑을 지켜나가는 모습은 독자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도록 해준다. 변하지 않는 사랑. 그건 가능하다. 어떻게 해야? 매일매일 새롭게 사랑에 빠지면. 또 내가 아닌 상대방을 first로 여겨주면. 요구하는 사랑이 아닌 채워주는 사랑을 하면.
또 여러가지 생각할 꼭지들이 있었는데. 너무 길어져서.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