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 욕망 + 모더니즘 + 제국주의 + 몬스터 + 종교 다섯 가지 힘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뜨인돌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한글책을 읽었다. 으허허. 이렇게 좋을수가. 생각보다 번역서 특유의 밍밍함이 너무 싫어서 처음에는 휙 던져버린 책이었다. 그러다가 후반부로 가서 어느 순간 노트까지 옆에 끼고 개념을 도식으로 정리하고 다시 곱씹으며 이해하려고 애쓰는 나를 발견했다. 어떻게 보면 너무 밍밍한 그저그런 번역서이지만 읽다보면 세계의 역사를 바라보는 안목, 기저에 깔린 원리를 체험할 수 있어서 정신차리고 읽어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책이기도 하다. 그냥 생각 없이 후루룩 읽어버릴 수도 있지만, 그러면 별로 남는 것이 없을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세계 근대사를 이끈 다섯 가지 기저의 힘, 욕망, 원리를 하나씩 소개하고 있다. 그 다섯가지라 함은 표지에 나타나 있는데로, 욕망(Desire), 모더니즘(Modernism), 제국주의(Imperialism), 몬스터(Monster), 그리고 종교(Religion)이다.

 그 힘을 학교 교과서에서 정보를 전달하듯, 몇 세기에는 무엇이 어디에서 어떻게. 이렇게 나열식으로 전개하는 것이 아니고. 현대 사회에서 스포트라이트 받고 있는 것을 화두로 시작해서 수면 아래에 잠겨 있는 거대한 역사적 본체를, 그걸 이루고 있는 많은 이해관계와 욕망들, 권력구조가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아서 지금까지 왔는지를 알려준다. 즉, 현상 기저에 위치한 톱니바퀴 구조 움직임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도록 설명한다고나 할까? 이렇게 표현하면 어떤 책일런지 감을 잡을 수 있으려나? 

예를 들어볼까? 오늘날 직장인들의 필수 기호품인 커피. 그것이 흥행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고, 화려한 까페 디자인이 아니고 의식을 각성 시킨다는 커피가 가진 본질이다. 그러한 커피의 본질은 근대의 이념과도 맞아 떨어진다. 그래서 맛이 감미롭고 자연적이지 않은 '쓴' 커피에 대한 수요가 급속도로 늘어난다. 감성을 누르고 의식을 깨우는 잠들지 않게 하는 카페인. 하지만 재배 공정이 까다롭고 노동력이 많이 들기 때문에 이윤을 극대화 하기 위해서는 싼 노동력을 구할 수 밖에 없다. 제국주의. 식민 사회에 플랜태이션을 설립해서 자동으로 자본이 주기적으로 들어오는 구조를 만든다. 이는 지배 국가와 식민 국가간에 엄청난 빈부 격차를 만들어 내는 요인이 된다. (이건 1장 1챕터의 일부 내용으로 매우 심플한 케이스. ㅋ)

이런식이랄까? 

현재 누리고 있는 문화, 현재 딛고 있는 땅, 현재 믿고 있는 신앙. 그것이 과거에서 부식되어 현재에 오기까지 거쳐왔던 전체적인 흐름. 그것을 논리적으로 수긍하며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사실, 하나를 알려주면 '그렇다면 이건요?'하고 물을 걸 예상이라도 한 듯, 바로 그 의문에 대한 답을 바로 다음에 얘기하고 있어서 작가와 대화하고 있는 듯한 기분 마저도 들었다. 읽다보면 '좋은 게 좋은 거지'식의 그냥 느껴지는 '삘'에 근거해서 판단했던 내 모습이 얼마나 무지몽매하게 느껴지던지;;; 이러니 황선생님도"자네 공대 출신인가?"라고 하시는건 아닌지. 흑. 현재 드러난 표층적인 문제가 주는 '감'을 넘어서서 그것이 안고 있는 역사적 뿌리가 뭔지, 그래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생각'하도록 하는 것 같다.  

즉, 책을 일고 느끼는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 실패로 귀결된 과거를 보고, 그걸 교훈 삼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현재와 미래를 내다보는 좀 더 뜨인 안목을 가지기 위해서. 가령,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아프칸 공습을 보고. '아이고, 나쁜 이슬람 테러범들. 혼나도 싸지. 근데 그렇다고 저렇게 바로 보복하는 것도 나쁘네'하는 식의 반응이 아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뿌리 깊은 원한의 역사를 인식하고, 미국의 행보를 객관적으로 역사적으로 평가하도록, 이슬람=테러범으로 비춰지는 매스미디어에 휘둘리지 않고 본질을 보도록 한다는 것이지.  가상의 적을 만들어 놓고 그들을 몰살하려는 시도가 미국의 내부적 응집에 미치는 영향을 보게 하고, 대응명분 뒤에 숨겨진 '돈'을 노리는 진짜 속셈을 알아차리도록 하고. 또 미국의 행동 방식이 과거 나치의 수법과 다르지 않음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한다는 것이다. 

좀 왔다갔다 한다. 사실. 정리가 잘 안된다. 이 다섯 힘을 이루는 요소들이 또 서로 얽히고 섥혀서 완성된 근대 역사의 위계 도식을 가지기 위해서는 따로 생각을 많이 해봐야 할 것 같다. 이 책이 애초에 하나의 주제를 가진 책으로 출판되기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닌 것 같으니 만큼 일본인 작가가 이만큼 안내했으면, 한국인인 내가 나의 역사관을 정리하는 것은 내 몫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책을 통해서 잡은 감은 인간의 욕심이 역사를 이끄는 원동력이자, 방해물이 된다는 것. 또 권력이든, 자본이든 어느 특정 이익집단에 집중되어 있으면 반드시 견제가 들어온다는 점. 비교우위를 차지하는 것. '더' 잘하고, 잘살려는 욕심. 그 욕심은 끝이 없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기는 1장.욕망이 가장 재미있었고, 4장.몬스터에서 가장 많은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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