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간 함께 했던 Guernsey 사람들의 이야기. 편지 형식의 책은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어느덧 Juliet의 센스있는 필체에 흠뻑 빠져서 나도 모르게 '영어스터디' 친구들에게 영어로 편지를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더라는;;
이야기는 꽤나 다층적으로 진행이 된다. 작가인 Juliet이 새로운 작품 소재를 찾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편집자 Sidney와 주고 받는 이야기, Juliet이 Guernsey 섬에 사는 Dawsey로부터 편지를 받고 섬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이야기, 날라리 미국인 Mark와의 살짝 스쳐가는 연애 이야기, 2차 대전 시절 독일군에 의해서 점령 당하던 시기의 이야기, Juliet이 Guernsey 섬의 이야기를 집필하기로 하고 그곳에서 생활하며 Elizabeth에 대해 알아가고, 그녀의 딸인 Kit를 입양하기까지의 이야기. 등. 모든 이야기들이 편지 형식으로 전개된다.
사실 초반에는 Juliet의 편지 문체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일일이 줄을 그어가면서 사전 찾아가면서 보느라고 스피드를 내지 못해서 흐름을 놓쳤는지, 몰입하지는 못했었다. 미시적으로 센스있는 표현들에 감탄을 많이 하긴 했지만.. 또 책 소개에서는 돼지를 먹기 위해 모인 무리가 얼떨결에 급조된 독서 모임으로 둔갑을 하고, 문학에 관심 있는 독일 대장이 그걸 좋게 보아서 어쩔 수 없이 독서 모임을 지속해야 하는 그런 내용이라고 나와있었기에, 뭔가 더한 드라마틱한 상황과 플롯을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여름에 본 역시 2차 세계 대전 시절 독일군 치하 스탈린의 죽음에 따른 애도 기간의 법을 어기고 결혼식을 올리다가 모두 몰살하고 마는 루마니아의 시골 마을이야기, 사일런트 웨딩(2008))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다르게 매우 잔잔하고 담담하게, 소시민들의 삶의 얘기들이 편지로 전해질 뿐이어서, 그다지 자극적인 재미와 충격적인 감동은 없었던 것 같다. 내용 자체는 매우 훌륭하다. 전시 하에 서민들의 삶. 그 공포 속에서도 지켜나가는 이웃 주민들간의 우정. 그들의 용기와 아픔이 매우 담담하게 편지에 조금씩 조금씩 담겨 나타나기 때문이다. 특히,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독일 군이 영국의 섬을 점령한 상황이 배경인데, 독일 사람들이 가질 수 밖에 없는, 그들의 떳떳할 수 없는 과거가 온 유럽 사람들의 마음에 피멍을 들게 했다는 사실은 몇일 전 벤츠 박물관에서 전쟁에 대한 사죄하는 마음이 그들의 '정직'과 '솔직'한 역사 의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명백하게 온 유럽 사람들을 피멍들게 한 장본인을오서 마땅히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가질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주홍글씨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일본을 생각할 때 드는 생각보다 더. 더 뿌리 깊이 많은 유럽 국가들은 그렇게 독일의 나치를 증오하고, 그들이 피로 얼룩지게 한 역사를 원통하게 생각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인 사람간의 우정보다는 두 사람 사이에서 피어나는 로맨스가 확실히 흡입력(자극적)이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마지막에 부록 식으로 달려있는 Isola의 일지에 나타나 있는 Juliet과 Dawsey가 지적인 엘리트 작가와 시골 섬마을 농부라는 어마한 신분적 격차를 극복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즉시 결혼을 결심하는 대목에서는 그야말로 가슴 설레어하면서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초반에 Izzy Bickerstaff 책을 홍보하러 다니며 그토록 바쁘게 살던 Juliet이 모든 것을 내버려 두고 Guernsey 섬으로 갈 수 있었다는 상황과, 한시도 빠지지 않고 일거수 일투족을 관리하던 편집자 Sidney가 다리를 다쳐서 Austria에 몇 개월간 거주하여 out of control 된 상태하며,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날라리 Mark의 등장 등등. 조금 어색한 전개가 거슬리기는 했지만, 책 전체가 가지고 있는 메시지와 표현 방식은 대체로 만족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