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를 금하노라 -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외치다
임혜지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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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 전날 엄마가 우체국 당일 배송으로 택배를 하나 보내셨다. 깜짝 선물인 택배를 설레는 마음으로 풀어보니 독일을 방문하는 내가 보면 딱 좋을 내용의 책 한권과, 몸을 따뜻하게 한다는 익모초(益母草). 짐이 되지 않으면서도 마음을 담아 보낸 엄마의 뛰어난 센스!

비행기 안에서 드문드문 책장을 넘기면서 보기 시작해서 조금 전에 마지막 장을 덮었다. '자유와 자긍심에 빛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작가의 바램 처럼 책 가득 그녀가 많은 것들을 포기하면서 지켜가고 있는 소신, 실천하는 행동과 인생 철학이 너무나도 빛이 났다. 

작가는 학사 때 독일로 유학을 와서 건축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독일인 남편을 만나서 25년이 넘도록 독일에서 살고 있으며, '소시민'이라고 주장하는 하지만 결코 그렇지도 않은 작지만 강하고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이 책은 삶과 사회 전반의 이슈들을 블로그에 종종 글로 기록한 글들이 작년에 책으로 묶여서 출판된 버전. 세상에나, 블로그라고 다 같은 블로그가 아니구나. 글 하나가 10 페이지 정도의 분량인데, 자신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논리를 끌고가는 테크닉도, 당차면서도 센스있는 그녀의 성격이 드러나는 문장력도, 뭔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런 70-80년대 학번 출신들이 가지고 있는 투쟁적이면서도 진취적인 분위기도 내용을 떠나서 참 멋졌다.

책은 총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독일 라이프와 그녀의 인생관이 묻어나는 1장 '자유로워라, 즐거워라', 교육관을 다룬 2장 '내가 자유로운 만큼 내 아이도 자유롭게', 독일의 역사와 사회관을 다룬 3장 '공존을 위한 예의'. 이렇게 나 개인의 문제에서 시작하여, 가족과 사회에 이르기까지의 그녀의 삶의 철학들을 엿볼수가 있다.

책 전반에 거쳐서 그녀의 인생관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자면 그것은 단연 '공존'과 '자유'일 것이다. 자연과, 커리어, 자녀, 역사와 세계 등 그녀를 둘러싼 환경과 공존하며 살기 위해, 그녀가 포기하고, 누리고, 또 실천하는 이야기들.

1장에서 다루고 있는 '자유로워라'의 대상은 돈과, 에너지, 그리고 세상적인 욕심이다. 바로 윗 단락에서도 썼듯이 이는 공존과 자유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이다.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고, 에너지가 아쉽지 않은 생활 습관을 실천하며 에너지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특히, 따뜻한 물주머니 하나를 몸 이곳저곳에 굴리며 추운 겨울 밤을 보내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주체적인 쇼핑을 통해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입장을 표현하기도 하며, 행복의 기회비용을 당연하게 감수하는 그녀의 삶은 참으로 멋지다. 사실 사회적인, 환경적인 문제에 대해서라면 '무개념'인 나에게 일침을 가했던 내용들도 많았다. 그건 그 일을 하는 그들만의 리그라고 치부해 버리고 펑펑 물도, 쓰레기도, 쇼핑도 아~무 생각 없이 하며 나도 모르게 환경을 파괴하고, 자본주의 사회의 노예가 이미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했다. 의식을 가진다는 것. 작은 습관 하나 조차도 나의 가치관과 통합되어 있는지, 이웃들과 자연과 공존하는 삶을 꿈꾸기나 했는지.

「고등어를 금하노라」라는 글이 바로 1장에서 다루어지고 있는데, 어떤 내용인지 추측해볼 수 있으려나? 독일은 내륙 국가로 고등어를 조달하기 위해서는 어선을 동원하여 긴 항해와, 기차나 다른 운송 수단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이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CO2가 발생하는데 과연 이렇게 환경을 해치면서 고등어를 먹는 것이 정당한가? 답은 NO. 환경을 해치는 일에 자신이 일조할 필요가 없고 그래서 그녀의 집 식탁에서는 고등어를 금한단다. 나도 바리바리 싸가지고 온 1Kg짜리 카레분말과 짜장분말, 양념들을 먹을 때 까지는 한식을 탐하는 것을 허하겠지만, 다 먹은 후에는 이곳의 값싼 현지 음식들을 먹으리라. 싼 가격에 혹하여 물건을 덥석 집어 카트에 넣기 전에 그 가격을 내기까지 그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변태적 사업들의 만행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지리라. (p.64) 


2장은 자녀 교육에 대한 내용들이다. 내가 자유로운 만큼 아이들도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 아무리 봐도 이 분은 보통 분이 아니야. 보통은 나의 생각을 나 하나 살아내기도 어려운데, 내가 느끼는 나의 권리와 의무가 자녀에게도 있다고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참아내는 그녀. 정말 통합된 인격체인듯. 자녀 교육의 목적은 부모의 도움으로 잘 사는 게 아니라, 부모의 도움 없이 잘 사는 것(p.94)이기에 아이들의 '놀이'를 진지하게 보호하고 '호기심과 창조성을 유발/촉진 시킬 수 있는 환경 만드는 것'과 '친구들이 기꺼이 놀러 오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두 가지 원리에 기초해서 양육했다고 했다. 이렇게 부모가 프레임을 만들고 그 안을 채우는 몫은 고스란히 아이들의 자율성에 맡겼다. 울타리만 칠 뿐 그 안의 컨텐츠는 터치 하지 않는 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부모가 되어 보지도 못한 나도 안다.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아이들의 행복을 누구보다 바라면서 그들을 절대 터치 하지 않는 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어렵고 인고를 요하는 일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부모의 교육관이 과연 바람직 한 것인지는 좀 더 고민을 해봐야겠다. 사실 글 만으로는 부모가 그다지 스캐폴딩도 많이 해주지 않고 전적으로 아이들이 자신의 힘으로 새로운 세계를 개척해 나간 것 같은데, 아무래도 비고츠키 보다는 삐아제의 사상이 서유럽 쪽에 많이 확산 되어 있는지. 여튼. (이분의 교육 철학은 일반적인 독일 사회에서도 outlier에 속하는 것 같다. ㅎ)

자율성과 함께 중요시 여기는 교육 목적은 '평생 신념과 사랑을 가지고 전념할 일을 찾아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p. 103)이다. 실천하기에는 참으로 이상적인 얘기이지만, 돈과 세상 명예를 포기하면 가능 할 것도 같다. '돈 = 행복'이라고 믿는, 믿게 만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참 따르기 어렵겠지만.

큰 비중을 할애하여 교육 파트를 구성하고 있는 내용은 성교육이다. 성교육의 핵심은 무엇일까? 그것은 '나를 사랑하는 것' 사회 통념이나 예의 범절을 무시하더라도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자유를 주어야 한다는 원칙에 근거한 것(p. 110)이기에 실천해 내기가 정말 어렵다. 어떨 때는 어른 말을 잘 들어야 하고, 또 어떨 때는 아니고가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얘기할 수 있도록, 나의 감정을 소중히 여기고 권위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 이것이 곧 성과 관련한 사고를 근본적으로 예방하는 방안이며, 아이들을 지켜내는 방법인 것이다. (휴우. 정말 실천하기는 어렵겠군!)

이 분이 크리스쳔이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이렇게 사고와 행동과 정서가 하나로 일치된 사람은 보기 드문 것 같다. 가치관이 성경적인 잣대로 보면 성경적이지는 않다(당연히). 나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 그 믿음이 내 삶의 구석구석을 속속들이 관통하고 있는가? 그 믿음을 소중히 여기며 지켜내기 위해서 정당한 기회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가? 그야말로 순전한 기독교인으로 살아내고 있는가?

참. 재밌게 읽었는데 다 읽은 지금은 마음이 많이 무겁다. 아니 무겁다는 표현보다는 '숙제'를 가득 받은 듯한 기분이다. 작가는 자신의 인생에서 소중히 여기고 있는 주제를 일관되게 모든 인생의 챕터마다 채우며 완성도 높은 삶을 살아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삶에서의 정답이다. 나는 내 삶의 주제를 무엇으로 삼고 있으며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교육관이며, 생활 습관이며, 어물쩡 어물쩡 되는 대로 닥치는대로 살지 말고 내 삶의 기본 공식(진리)을 세우고, 그 진리를 내 삶에서 백방으로 실천하며 살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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