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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떨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아멜리 노통의 소설을 참 좋아라 하는 편이다. 기발하다고 할까? 생각하지 못했던
인간의 심리적 측면을 잘 집어내어 냉소적인 어투로 소설화하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다. 이번에 읽은 노통의 책은 자전적 소설 "두려움과 떨림"
어느 정도까지가 실제를 바탕으로 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벨기에 여성인 주인공
'나'는 요미모토사란 일본 회사에서 1년 계약직으로 입사를 한다. 관료주의가 팽배
하고 경직되어 있는 회사 분위기. 수직적 인간 관계. 일본 문화의 배타성과 지나친
체면치레와 명예. 그 안에서 묵살되는 개인들의 주관, 특성들. 특히 아멜리는 직속
상관 모리와의 대립 구도에서 겪는 갈등.
책을 보면서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시기심.이 얼마나 악한 것인지.
누군가 내 아래 있을 때. 그리고 그 아래의 자리. 불상한 자리에 머물 때는 관대하나,
그 사람이 자신의 본연의 능력을 발휘하여 아래 자리를 박차고 올라오려 할 때.
자신이 정해 놓은 경계를 아랫사람이 벗어나기 시작할 때 응징하려는 심리. 자신이
장시간 겪은 어려움을 누군가 같이 겪고 있으면 동정심의 차원에서 친절을 베풀지만,
자신이 경험한 기간보다 빨리 어려움을 극복하면 선의를 가장하여 억압하려 드는
인간의 악한 본성.
나도 저러한 본성이 아주 없다고는 말을 못하겠기에. 주인공인 아멜리가 겪는 고통과
직속 상관인 모리양이 겪는 고통. 그 두 사람의 고통 모두를 너무나도 잘 알겠기에
나도 함께 고통스러웠다.
모리와의 갈등을 겪으며 끝도 없이 좌천되어 가는 그녀. 상관의 영문 편지 쓰기에서
시작해서. 커피 타기. 달력 맞추기. 송장 베껴 쓰기. 화장실 청소하기까지. 끊임없이
희망의 싹을 짓밟아 버리려는 모리양과,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의 단서를 찾는 주인공
의 끝도 없는 전쟁. 모리는 몰랐던 것이다. 누군가를 지배하고 굴복 시키는 것이 그의
환경을 열악하게 바꾼다고 가능해 지지 않는다는 것을. 짓밟아도 되는 인간이란 없단
사실을. 그리고 설령 짓밟는다 해도 사람의 정신이란 그런 식을 결코 짓밟히지 않는단
사실을 말이다.
나보다 나은 남을. 오히려 내가 부러워 하는 위치에 있는 자들의 형통을.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