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신화 그리고 페이어아벤트
페이어아벤트(P. Feyerabend)는 "방법에 대항하여"(Against Method, London: Verso 1988(개정판), pp. 238-252)에서 과학철학을 이렇게 묘사한다.
"과학철학 같은 잡종 분과(bastard subject)는 그 자체의 신뢰성을 위한 발견과 무관하다. 그것은 단지 과학의 부흥에서 이득을 얻었을 뿐이다."
2차 대전 이후 다른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페이어아벤트는 과학기술의 위험성을 본 사람이다. 그러한 위험성이 과학기술 자체에서 기인한 것으로 여기는 학자는 기술결정론(technical determinism)을 주장한다. 인류 역사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의해 결정된다. 마치 사회가 경제발전 모델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이 사용의 주체자로서 행위자의 역할을 무시하는 경제결정론도 그렇다. 기술결정론은 과학기술에 의한 위험성을 경고하고 새로운 문명론을 강조할 때 종종 사용된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이 역사를 결정한다는 확실한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과학과 기술도 역사와 무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과 기술 또한 문화적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왜 동양에서는 건축물 시공에 못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유물론의 약점은 이러한 질문에 특정 물리적 제한 요인을 동원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약점은 오로지 그런 요인에 의해 대답될 수 있다는 데 있다.
만약 과학과 기술이 여가와 문화에 무관할 수 없다면, 과학의 전통적인 합리성은 포기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과학의 합리성은 역사적 그리고 문화적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17세기 이후 물리학이 300여년 동안 과학을 대표하면서, 보편성(universality)과 불변성(immutability)을 함축하는 객관성이 과학의 합리성을 대표해왔다. 심지어 윤리학도 그러한 객관성을 함축하기 위해 몸부림쳤고, 객관적이라는 용어는 철학자들에 의해 상대적인 것의 반댓말로 굳혀졌다.
페이어아벤트는 전통적인 과학의 합리성을 비판함으로써 무차별한 상대주의자로 낙인찍혔다. "무엇이든 통용될 수 있다"(anything goes!)는 구호로 대표되는 그의 무정부주의(anarchism)가 2차 대전과 함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페이아벤트는 과학과 국가 혹은 정부의 분리가 그 교훈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민주주의에서 국가와 종교, 특히 기독교가 최소한 정치적으로 분리된 것으로 간주한다. 민주주의는 현실적 전략에서는 그렇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국가와 종교의 분리에서 얻어진 정치적 승리이다. 페이어아벤트는 그러한 승리의 깃발이 이제 국가와 과학 사이에도 꽂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페이어아벤트가 과학의 합리성에서 거부하는 객관성은 다음과 같이 두 측면에서 비판을 받는다.
(1) 이론에 대한 사실의 중립성 논제, 과학적인 것과 과학적이지 않는 것을 구별해주는 별도의 과학적 추론이 있다는 논제 그리고 과학의 발달을 규정하는 보편적 방법론이 있다는 논제에 근거한 모든 주장을 거부한다. 관찰과 실험에 이론이 개입하기 때문에 이론의 객관적 검증과 선택은 '이론에 대한 사실의 중립성 논제'에 의해 지지될 수 없다. 과학적인 것을 규정해주는 별도의 추리가 있다는 생각은 결과만을 보고 결과를 정당화하는 행위에서 비롯된 일종의 고정 관념이다. 실제 지금까지의 과학철학의 역사에서 정당화 문맥만이 강조되었지 발견법(heuristics)는 무시되어 왔다. 어떤 과학자가 순수 관찰에 근거해 일반 가설을 끄집어내었단 말인가? 과학자들이 귀납적 혹은 경험적으로 어떤 가설을 끄집어내었다고 주장할 때 그 의미는 19세기 휴월이 주장한 것처럼 이렇다. 어떤 사실의 인과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설을 세운 다음 관찰과 실험에 의해 가급적 설명력이 큰 가설이 선택된다. 이러한 귀납의 설명은 귀납주의의 그것과 다르다. 귀납주의의 한계가 드러나자 페이어아벤트의 선생인 포퍼는 반증주의(falsificationism)를 주장하였다. 포퍼는 반증주의 방법론에 의해 과학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할 수 있고 과학 발달에 고유한 구조를 보였다고 주장한다. 포퍼의 조교 제안을 거부했던 파이어아벤트는 그러한 포퍼의 생각이 정당화 문맥만에 관심을 갖는 철학자들의 섣부른 판단에 기인한 것일 뿐이라고 규정한다. 또 예측력에서 대등한 프톨레마우스의 천동설과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중에서 후자가 채택된 과정은 단순한 과학적 합리성의 승리가 아니다. 그것은 특정 이념의 정치적 선택과 효과적인 선전의 결과이기도 하다.
(2) 과학의 세속화 여정은 과학 이론에 함축된 세계관과 종교적 세계관이 분리되는 여정이기도 하다. 과학은 교회의 권위에 더 이상 종족 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은 섣부른 고정 관념을 생산했다. 종교를 포함한 여러 이념 중에서 어떤 것이 현실세계에 비추어 그럴듯한지는 과학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실제는 과학도 사회라는 환경에 적응하려는 종과 유사하다. 다른 이념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적응하기 위해 새로운 발견이 과장되기도 하고 숨겨지기도 한다. 과학은 다른 이념의 학교와 마찬가지로 사회 속의 또 다른 학교와 같다.
페이어아벤트는 '과학도 신념에 근거한 일종의 이념"과 마찬가지라고 결론 짓는다. 실제 과학의 역사에서 역사를 초월한 보편적인 진리를 함축한 지식은 없었으며, 현명한 삶이 반드시 지식을 전제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현명한 선택은 개인이 처한 상황과 연관된다. 만약 네가 무당 집 딸로 태어나 교육을 받고 점을 치며 살아간다면, 신화를 믿어라. 만약 네가 과학자라면 너의 작업에 신화를 섞지 마라.
과학도 어떤 의미에서 신화에 불과하다는 페이어아벤트의 입장은 극단적 상대주의로 분류되곤 하는데, 과연 그의 무정부주의가 그럴까? 그렇게 분류하는 사람들은 페이어아벤트를 반실재론자(anti-realist)로 몰아세운다. 아이러니 한 사실은 그가 뇌암으로 죽기 전 마지막에 쓴 자서전 "시간 죽이기"(Killing Time)에서 그는 자신을 실재론자로 규정한다. 그리고는 실재론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지 못한 채 눈을 감는 것을 아쉬워한다. 아쉬워하지만 후회는 없는 듯하다. 자서전에서 밝혔듯, 페이어아벤트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그의 말년이다. 60이 넘는 나이에 젊은 이태리 여기자와의 결혼은 그에게 상식과 일상생활 그리고 전문가가 아닌 일반 사람들이 가진 미덕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이 결혼은 그에게 6번 째 였다. 2차 대전 중 허리에 총을 맞아 성불구자와 마찬가지인 그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이 결혼은 이해되어야 한다. 그는 그 여기자와 아프리카 등 제 3세계에서 자원 봉사활동을 하였으며, 이 기간이 그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한다.
페이어아벤트가 실재론에 관한 책을 남기지 않았으니 그가 생각하는 실재론이 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자서전에서 밝힌 실재론에 관한 그의 실현되지 못한 오랜 구상은 무엇을 암시하는가? 페이어아벤트가 과학의 객관성을 비판할 때 그 객관성은 대부분 철학자들에 의해 그려진 그러한 것이다. 특수한 것에 반대되는 보편적인 성격을 갖는 그래서 역사와 문화를 초월한 그런 객관성의 이념이 사회를 지배하는 것에 페이어아벤트는 반대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그가 추진하지 않았던 중요한 '소박한 객관성' 개념을 만난다.
소박한 객관성: 과연 페이어아벤트는 반복 가능한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s)로서 과학적 사실마저도 부정했을까? 뉴턴역학이 틀렸다고 하지만 그가 했던 실험은 그의 이론틀 속에서 지금도 그대로 반복 재현 가능하다. 뉴턴이 하나의 이론이 선택되면, 동일한 관측 사실에 대한 유사한 해석에 과학자들은 동의한다. 과학적 사실들은 이러한 점에서 역사적 사실들이다. 역사적 사실들로서 과학적 사실들은 결코 의사결정의 공적 기반이 될 수 없는 꿈과 같은 주관적 경험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합리성, 곧 17세기 과학혁명 이후 확실성의 시대를 지배했던 합리성 개념에 구속된 '객관성'이라는 개념은 특정 철학 전통에 속한 것이지 결코 일상적 의미에서 '객관성'을 뜻한다고는 볼 수 없다. 반복 재현 가능한 측정량을 다루는 과학자들의 무의식 속에는 역사적 사실로서 소박한 객관성 개념이 자리잡고 있다.
과연 페이어아벤트는 이러한 소박한 객관성을 부정했을까? 그가 일상경험과 상식의 중요성을 깨달은 말기에서 실재론을 상식적으로 부정할 수 없다고 고백했을 때 그는 소박한 객관성 개념을 쉽게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소박한 객관성과 과학의 역사 의존성만으로도 객관성 추구와 진보라는 과학의 미덕은 구제된다. 내가 발견한 사실이 미래에 깨어진다는 사실은 결코 소박한 객관성 개념을 붕괴시킬 수 없으며, 틀린 것으로 판명 난다는 사실이 객관성을 지향하겠다는 의도를 약화시킬 수는 없다. 만약 페이어아벤트가 통속적인 해석에 따라서 극단적 상대주의를 주장했다면, 그는 또한 과학의 진보를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방법에 대항하여" 소개부에서 그는극작가 브레히트의 인용과 함께 다음의 화두를 던진다.
"질서는 오늘날 사방 도처에 널려있지만, 그런 곳은 실제는 무(無)이다. 이것은 하나의 결함의 증표이다."("Ordnung ist heutzutage meistens dort, wo nichts ist. Es ist eine Meinung Mangelerscheinung", Brecht) "과학은 본질적으로 무정부주의적인 작업이다. 이론적인 무정부주의는 더욱 인본주의적일 뿐더러 법칙과 질서를 전제한 대안들보다 진보를 촉진한다." (페이어아벤트)
페이어아벤트가 전통적인 과학적 합리성 개념을 부정했으니, 그가 생각하는 과학의 진보 역시 기존의 진보 개념과 다르다. 영화 하이랜더(Highlander)를 보면 마지막 승리자는 단 한 명만 남는다. 전통적인 합리성 개념에 의하면 진보된 이론은 과거의 이론을 사장시킨다. 그러나 페이어아벤트는 실제 과학적 작업 속에서 선대의 업적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얼마나 다양한 패러다임들이 한명의 과학자에게 공시적으로 적용되는지 잘 알고있는 그 당시 유일한 학자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만 나오면 토마스 쿤(T. Kuhn)과 유사하게 밀어붙여 비판하는 앨런 차머스와 같은 학자의 공력으로는 페이어아벤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국내에서 꽤 많이 나간 그의 책 "현대의 과학철학"에서 페이어아벤트는 쿤과 비교되면서 이해할 수 없을 뿐더러 출처가 애매한 '주관적 인식론'을 주장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페이어아벤트는 자신의 오스트리아 대 선배 마흐처럼 합리성과 비합리성의 이분법,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의 이분법 그리고 실체와 경험의 이분법을 깨는 것이 자신의 목적이라고 "방법에 대항하여" 끝에 선언한다. 그의 선언이 철학적으로 구체화된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경고가 필요하다. 언급된 그러한 이분법에 나오는 개념 혹은 용어들은 일상적인 것이 아니라 '서양철학 전통'에서 굳어진 것이다. 그가 그 전통의 객관성 개념을 부정하였다고 하여 맞바로 주관적 인식론자라는 칭호를 갖다 붙여서는 안 된다.
페이어아벤트가 생각한 과학의 진보가 무엇인지는 그의 저술만 가지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의 무정부주의에서 하나의 힌트를 얻는다. 그에 따르면 어떠한 이념이든 나름대로 효과적인 영역을 갖는다. 현재의 시점이 아니라 그 이념이 통용된 그 당시 시점에서 그 이념을 이해하면, 페이어아벤트의 생각을 제대로 읽는 데 도움이 된다. 그의 무정부주의는 서로 이질적인 이론과 이념이 다양해지고 풍부해지는 것을 허락하며, 개인은 그런 다양성과 풍부함 속에서 선택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 이념의 좋고 나쁘고 그리고 선별해주는 절대적 척도는 없다. 마치 다윈의 수평적 진화론에서 종들간에 우열에 차이가 없듯, 이론과 이념들 사이에 본래적인 우열의 차이는 없다. 어떤 시대적 상황 속에서 효과적인 이념은 다른 상황에서 그렇지 않다. 페이어아벤트를 읽을 때 종종 장자가 떠오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페이어아벤트의 무정부주의를 과학적 진보와 연관시키면, 그것은 다름 아닌 과학의 분과 다양성의 증가이다. 진화론의 핵심이 종 다양성 증가라는 것이 잘 알려지지 않았듯이, 과학의 발전 또한 분과 다양성의 증가라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페이어아벤트는 보편법칙이 없는 생물학을 모른 채 물리학의 패러다임 속에서 과학의 분과 다양성을 파악했다. 그의 뛰어난 능력에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 물리학의 역사를 제대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페이어아벤트가 과학과 연관해 이념의 독단화를 비판할 때 그것은 과학을 평가하고 설명하는 방법론과 직접 연결된다. 그가 실제 과학 작업의 배경 지침서로서 사용하는 '보존량 개념' 혹은 '자연선택 개념' 등을 직접적인 독단화된 이념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지침서 개념들은 문제 풀기에 동원되는 일종의 도구와 같은 것으로서 역사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그래서 많은 경우 그것들은 특정 세계 이해, 곧 세계관을 반영한다. 논의가 이쯤에 이르면, 페이어아벤트가 더 이상 다루지 않았던 주제가 나타난다. 과학기술은 특정 세계관을 확장시키는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주며, 또 세계관은 과학 이론의 지침서 개념 형성에 영향을 끼친다. 과학의 분과 다양성의 역사는 과학 안에 여러 다양한 세계관들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그런 세계관들은 기존의 다른 세계관과 내용적 측면에서 갈등한다. 과거 과학이 건드리지 못한 영역은 다른 세계관, 실례로 종교적 세계관의 성역에 속했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과학적 권위를 둘러싼 많은 문제는 더 이상 과학적인 것과 과학적이지 않은 것의 구분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 문제는 이제 현실이다. 과학을 둘러싼 여러 문제, 실례로 배아복제 문제를 둘러싼 논쟁은 이념의 갈등을 보여준다고 페이어아벤트는 말하겠지만, 나는 세계관의 갈등을 보여준다고 말하겠다. 그리고 과학 형성의 오랜 역사에 참가하지 않았던 우리에게 그런 갈등은 무척이나 중요한 주제이다.
많은 사람들이 페이어아벤트에 호감을 갖지만 그의 무정부주의는 존 레넌의 '이메진' 가사처럼 너무나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그가 비판한 합리성의 개념만큼이나 그의 무정부주의도 이상적이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국가에 종속된 과학, 자본에 종속된 과학 그래서 인기 없는 분과는 죽어가는 현 상황을 현실의 이름아래 보고있어야 하는가? 과연 국가 정책과 과학이 맞물리는 것이 장기적인 의미에서 경제와 과학에 이득이 될까? 페이어아벤트의 대답은 부정적이다. 다른 어느 곳보다 다양한 세계관이 판치는 우리나라는 어쩌면 복 받은 나라이다. 그 만큼 여러 다양한 주제를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상황에서 지나갔다고 대충 넘어갈 것이 아니라 페이어아벤트의 사상을 나름대로 새롭게 다시 조명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현실은 암울하다. 수입된 물이 흘러와 섞여서 새로운 강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썩어가고 있다. 사방에서 역겨운 냄새가 내 코를 자극한다. 역겨운 말인가? 내 말이 역겹다면 그대는 뭔가를 숨기고 있다.
아직은 두뇌가 탄력적인 학생이 철학과 과학을 공부하면서 "왜 우리는 새로운 것을 못합니까?"라고 반문한다. 그대들 중 누가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그대의 교수 혹은 대학원 선배는 어떤 대답을 줄까? 대게 교통정리를 잘한는 것 자체가 훌륭한 공부라고 말한다. 개인은 그렇게 판단할 수 있지만 올바른 대답은 아니다. 남의 것을 교통정리 한 후에 새로운 문제를 만들고 이론을 건설하겠다는 것은 어리석거니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과학도가 철학에 관심을 가져 충고를 원할 때 먼저 너의 분과나 열심히하라는 말은 제대로 된 충고가 아니다. 새로운 것을 못하는 것은 개인의 능력 부족임을 깨끗하게 인정해야만 한다. 솔직해야 한다. "나는 그러고 싶어도 못하니 교통정리나 하는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후학은 안 그랬으면 좋겟어" 혹은 "나는 못하지만 너를 위해 이러이러한 충고를 하고싶다"라고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서양철학의 개념적 교통정리를 최대의 과업인양 떠들면서 후대 학문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외친다. 그러나 문제 풀기와 병행하지 않는 그러한 교통정리는 이 땅에 특정 학문을 독단화, 곧 페이어아벤트의 용어로 이념화시키는 것이고, 그 정리가 학문 분과처럼로 정착할 때 해당 학문은 죽는다. 우리의 학풍이 없는 이유를 우리는 또 하나의 중요한 철학적 주제로 승화시켜야 한다. 나를 비롯한 여기 모임은 어쩌면 바위에 계란치기 시도를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뭔가 남이 제대로 건드리지 않은 것을 하는 것은 재미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