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아프리카 '시선교차운동' 아시나요?

 

  김영길의 '남미리포트'<217>양대륙 경제·문화통합 추진
  2006-12-04 오전 10:12:52
  언어장벽과 대서양이라는 거리를 뛰어 넘어 중남미 국가들과 아프리카대륙 국가들이 외교관계 개선과 상호방위를 목표로 통합을 추진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남미 내부의 국가들이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중심으로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면 아프리카와 중남미의 통합 움직임은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과 올루세군 오바산조 나이지리아 대통령, 무아마르 가다피 리비아 대통령이 주도하고 있다.

  
  아직은 태동 단계에 불과하고 갈 길이 멀지만, 아프리카 대륙과 중남미 정상들이 이처럼 경제와 문화통합을 추진하게 된 계기는 '상호 시선교차 운동'이라는 브라질 민간단체들의 운동에서 비롯됐다.

  
▲ 브라질과 아프리가 대륙의 '상호 시선교차 운동'의 공식 포스터.
  
  

  브라질 판 '이산가족 찾기 운동'의 시작이 양 대륙의 통합논의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흑인인구를 가지고 있는 브라질의 민간단체들이 아프리카 대륙의 흑인들과 서신 및 사진 교환 등 문화교류운동에 나서면서, 그 영향이 양 대륙의 정치권으로까지 번진 것이다.

  
  '상호 시선교차 운동'은 2001년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개최된 세계사회포럼에서 태동했다. 당시 브라질과 미국의 대표단을 이끈 주체는 흑인 여성들이었고, 상당수의 중남미국가 대표들은 토착 원주민들이었다.

  
  이 곳에 모인 브라질 흑인출신 사진기자단은 "우리의 뿌리 찾기 운동을 벌여보자"는 데에 의견을 모으고, 우선 양 대륙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가족사진과 서신왕래 프로그램을 마련해 형제의 정을 나누도록 주선했다.

  
  그 이후 양 대륙의 학생들은 사진과 카드, 그림, 비디오, 장난감, 전통악기, 조각작품 등을 교환하며, 대륙은 다르지만 서로가 같은 문화적인 배경을 가진 형제라는 공감대를 키워가고 있다.

  
  현재 이 운동에는 브라질 일부 언론사들과 MST(토지 없는 브라질농부들의 땅 갖기 운동본부)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아프리카와 브라질을 잇는 '상호 시선교차' 운동은 이에 그치지 않고, 내년부터는 양 대륙 학생들의 교환방문 프로그램도 실행할 계획이다.

  
  이 운동에 대해 브라질 인류학자들은 "아프리카라는 뿌리가 없었다면 오늘날 브라질이 존재했겠느냐"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브라질과 아프리카 사이에 민간 차원의 문화교류가 활발해지자 룰라 정부는 아프리카주재 공관을 대폭 늘리고 통상협력 증진과 정기항공노선 개설, 해상운송 확대 등도 추진 중이다.

  
  룰라 대통령은 집권 4년 동안 6차례에 거처 나이지리아와 가나 등 아프리카 전체 국가를 방문하는 등 남-남 협력에 심혈을 기울여 왔으며, 앞으로도 민간 차원의 문화교류 운동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또한 이 운동은 아이티까지 확대되어 브라질-아이티의 아프리카 후손들이 함께 참여하는 문화교류의 장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양 대륙의 정치권도 아프리카-중남미 정상회담을 정례화하는 등 정치와 경제, 문화, 예술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브라질의 흑인 인구는 전체 인구의 절반인 90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17세기 브라질과 아프리카는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노예매매라는 비극을 통해 이산가족이 대량 발생했다.

  
  잔인한 유럽의 노예매매상들에게 들짐승처럼 붙잡힌 아프리카 부족의 젊은이들은 유럽의 식민지였던 신천지 개발에 동원되는 상품으로 전락해 350년간을 노예로 살아 왔다.

  
▲ 제1회 중남미-아프리카 정상회담 공식로고.

  '상호 시선교차 운동' 본부의 한 관계자는 "양 대륙 학생들의 문화교류를 통해 느끼는 분명한 사실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브라질-아프리카인들의 문화적 정체성은 동일하다는 것"이라면서 "짐승처럼 내몰려 노예선을 타고 대서양을 건너는 참담한 여행과 수백 년간의 노예생활, 그들이 믿었던 토속 신앙을 버리고 신 종교 (주인의 신 혹은 외국종교)를 강요받으면서도, 문화적인 유산과 정체성은 그대로 지니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라고 말했다.

  
  흑인들의 뿌리와 열매는 대서양과 수백 년의 시공간적인 간격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아직도 동일하다는 것이다. 현지 역사학자들은 "중남미 토착 원주민 부족들과 국가들이 황금을 찾아 헤매는 유럽 정복자들에게 도륙되어 멸망했듯이, 아프리카 부족들 역시 젊은이들이 대거 노예상들에게 잡혀가 그들만의 삶을 누릴 기회를 잃어버리고 어렵게 살아 남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이어 "무차별한 노예사냥으로 부족간 상호 경쟁체제나 화친관계가 무너져 대다수 부족들이 힘을 잃고 대학살을 당하는 등 인력착취로 고통을 받았다"면서 "아프리카와 중남미 대륙은 동일한 비극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 제국주의자들이 남아메리카 대륙이라는 식민지 개발을 위해 노예인력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수천만의 브라질 거주 아프리카대륙 흑인들의 이산가족 찾기 운동은 한국적인 관점에선 다소 추상적인 면도 없지 않다. 서로가 헤어진 지 4세기가 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에서처럼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라는 등의 노래가 유행되거나 빛 바랜 옛날 사진을 보며 서로를 확인하는 눈물겨운 해후 장면은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혹시 이 사람이 우리의 먼 친척은 아니었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교류하면서 동질감을 느끼는 정도에 그칠 가능성이 훨신 크다.

  
▲ 브라질과 아프리카 대륙의 흑인들이 상호 교류운동에 나서고 있다. 사진은 땅 찾기운동과 양 대륙흑인들의 문화교류 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MST(토지 없는 브라질 농부들의 땅갖기 운동본부)월간지 표지.

  하지만 이 '상호 시선교차운동'이 양 대륙의 화합을 이끌어내는 정치적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은 크게 주목된다. 지난 11월 29~30일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아부자에서 개최된 제1회 중남미-아프리카 정상회담에는 6개국의 중남미 국가, 그리고 10개국의 아프리카 정상들이 참가했다.

  
  특히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유엔의 민주화가 현안으로 떠올랐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대륙 별로 안배해 아프리카 대륙의 평화정착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영길/프레시안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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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도반 2006-12-04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계사회포럼(WSF)에서 단초를 마련한 "시선교차 운동", 한계는 있겠으나 민간단체로부터 시작했다는 점이 자못 고무적이다. 첫번째 사진은 지극히 압축적인 함의 때문에 꽤나 인상적이다.
 

'예방의 원칙'이 안 통하는 중재심판

 

  [한미FTA 뜯어보기 116 :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정치경제학(10)] 보건과 환경
  2006-10-10 오전 9:04:42
  투자자-국가 직접소송 제도는 자유무역협정(FTA)이나 투자협정(BIT)을 체결하는 나라에 환경 및 폐기물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서 이런 문제가 두드러지게 부각됐고, 이에 따라 전 세계 시민운동가들이 이 분야에서 나타나는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의 폐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왜 그런지를 몇 가지 실제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① 메탈클래드 대 멕시코 사건
  
  1990년에 멕시코의 폐기물 처리회사 코테린(Coterin)은 산루이포토시(San Luis Potosi: SLP) 주로부터 폐기물 하치장(transfer station)을 설치할 허가를 얻어, 과달카사르(Guadalcazar)라는 조그만 동네의 빈터에 마침내 하치장을 만든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이 하치장을 대규모 폐기물 매립지로 발전시키려기 위해 허가를 갱신하고자 한다. 하지만 1991년과 1992년에 각각 SLP 주정부와 과달카사르 지방정부는 이 매립지 건설허가 신청에 대해 거부 조치를 내린다.
 

  
  이 지역은 코테린의 활동으로 끔찍한 환경재난 지역이 된 상태였다. 무려 2만 톤에 해당하는 5만5000드럼통의 독성 폐기물, 심지어는 폭발성 폐기물이 유입돼 이곳을 오염시켰고, 이후 몇 년 간에 걸쳐 이 조그만 동네에서 암환자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게다가 이 지역은 지반이 대단히 취약해 보관 중인 폐기물이 지반 아래 지하수로 그대로 흘러들어가는 등의 문제를 일으켰다. 그리하여 이미 1991년에 과달카사르의 주민들은 하나로 뭉쳐 쓰레기장을 폐쇄하고 들어오는 트럭 차량들을 막거나 쫓아 보내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었다.
 

  
  여기에 NAFTA 발효를 몇 달 앞둔 1993년 미국회사 메탈클래드(Metalclad)가 뛰어든다. 이 회사는 30년 이상 산업폐기물, 특히 석면(石綿)과 같은 심각한 유해물질을 처리하고 폐기하는 사업을 계속해 온 캘리포니아의 기업인데, 이 지역을 유해물질 폐기장으로서 사용할 계획이었다. 메탈클래드는 멕시코 연방정부로부터는 허가를 얻었고, 이어 지방정부와 이미 큰 분쟁에 휩싸여 있는 코테린으로부터 과달카사르의 폐기물 하치장을 살 수 있는 옵션(option)을 구매한 다음 그 하치장을 폐기물 매립지로 확장해 건설하는 방안을 타진한다. 메탈클래드는 멕시코 연방정부의 여러 관리들은 물론 SLP 주지사까지 접촉해 그러한 방안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허가를 내주겠다는 언질을 받자 1994년에 옵션을 행사해 코테린을 매수하고 폐기물 하치장을 매립지로 확장하는 공사에 본격 착수한다.
 

  
  하지만 과달카사르는 물론이고 SLP 주 전체 주민들은 이러한 메탈클래드의 계획에 대해 격렬하게 반대했다. 메탈클래드는 확장공사에 필요한 지방정부의 허가를 얻기 위해 주정부와 과달카사르가 속한 지방정부에 모든 필요한 서류를 제출했다. 하지만 메탈클래드는 주정부와 지방정부의 결정이 아직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연방정부로부터 얻어낸 허가의 약속만 믿고 공사를 강행했다. 과달카사르 지방정부는 1994년에 메탈클래드에 허가도 안 받고 진행하고 있는 공사를 즉각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메탈클래드는 막무가내로 공사를 계속해 1995년 3월에 마침내 공사를 완료한다.
 

  
  이에 분노한 지역 환경활동가와 시민들이 완공된 매립장이 운영되는 것을 막고 나섰고, 지방정부는 마침내 1995년 말에 메탈클래드의 매립지 설치허가 신청에 대해 거부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 메탈클래드는 1996년 10월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을 시작하겠다는 내용의 '의도 통지서'를 멕시코 정부에 보냈다. 게다가 1997년에 SLP 주정부가 이 지역을 영구적인 환경보존구역으로 지정함으로써, 이제 소송 외에는 다른 해결책이 없어지게 됐다.
 

  
  앞에서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2000년에 나온 이 중재심판의 재정은 실로 여러 가지 논쟁점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먼저 ICSID 추가기관(Additional Facility)의 주관 아래 구성된 중재심판소는 쓰레기 매립지 설립에 대한 허가는 지방정부의 권한이 아니라 중앙정부의 권한이라는 대담한 판결을 내린다.
 

  
  쓰레기 매립지 허가권을 지방정부가 갖느냐 중앙정부가 갖느냐는 문제는 멕시코의 국내법 해석에 관한 것이니 당연히 멕시코 국내의 문제였고 멕시코 법률가들의 압도적인 견해는 매립지 건설에 대한 허가권은 지방정부가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CSID 중재심판소는 "멕시코 법은 이렇게 해석되어야 한다"는 식의 강압을 한 셈이었다. 게다가 중재심판소는 "환경이나 지역주민의 이익은 본 심판소의 고려대상이 아니다"라고 명시하면서 '간접적 수용'에 대한 지극히 넓은 의미의 정의를 적용해 멕시코 정부에 대해 1600만 달러가 넘는 금액을 배상하라는 결정을 내린다.
 

  
  궁지에 몰린 멕시코 정부는 항소하기로 한다. ICSID 추가기관의 규칙 중에서, 중재심판이 벌어진 지역의 법원은 그 지역의 법에 따라 중재심판소의 결정을 재심할 수 있다는 규정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멕시코 정부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 밴쿠버 법정에 항소한다. 밴쿠버 법정은 중재심판소가 멕시코 국내법에 해당하는 지방정부와 연방정부의 법적 영역에 대해 '명령'을 내린 것은 권한침해였다고 분명하게 판단한다.
 

  
  하지만 중재심판소의 결정 전체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수용'의 의미에 대해서는 밴쿠버 법정도 중재심판소의 판결을 모두 인정했다. 이에 따라 밴쿠버 법정도 중재심판소에서 내린 배상금과 거의 같은 금액을 멕시코 정부가 배상해야 한다는 판정을 내렸다. 멕시코 정부는 이 판정에 불복하여 다시 밴쿠버의 상급 법원에 항소할 것도 고려하긴 했지만, 결국 배상금을 지불하고 사건을 끝내는 쪽을 선택한다.
 

  
  앞에서 메탈클래드 사건에 대한 판정에서 문제가 되는 쟁점으로 '수용'의 포괄적인 의미, 환경을 포함한 공공이익의 배제, 국내법 영역 침해 등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가 발동되면 지방자치단체에서 내리는 모든 결정과 조치들의 뒷감당이 다 중앙정부의 몫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결국 메탈클래드 사건의 결말이 지닌 의미 중 하나는 이제부터 중앙정부는 외국 투자자의 이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각급 지방자치단체의 모든 입법과 행정을 감시해야 하는 엄청난 부담을 지게 됐다는 것이다.
 
 

  
  ② 마이어스 대 캐나다 사건
  
  PCB(폴리염화비페닐, Polychronilated Biphenyl)이라는 물질이 있다. 이는 전기 절연제로 효과가 좋지만, 환경을 오염시키고 인체에 축적되면 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해로운 물질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 물질은 국제적인 유통과 교역에 극도로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1989년 스위스 바젤에 많은 나라의 대표들이 모여 체결한 바젤협약(Basel Convention)에도 이 물질에 관한 조항이 들어갔다.
 

  
  바젤협약은 원칙적으로 PCB의 국제교역을 자제하고, 부득이한 경우에는 이 물질의 교역에서 극도의 주의를 기울일 것을 가입국들에 요구하고 있다. NAFTA 가입국 중에서도 캐나다와 멕시코는 이 협약에 서명했다. 미국은 비록 이 협약에는 서명하지 않았지만, 1976년에 군사시설을 위한 목적 등 극히 제한된 예외를 빼고는 PCB의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킨 데 이어 1977년에는 이 물질의 국내 생산 또한 금지시킨 바 있다.
 

  
  미국 안에서는 PCB의 생산 자체가 금지되다보니, 미국기업인 마이어스(S.D. Myers)는 캐나다에서 생산된 PCB를 미국으로 수입해 오하이오 주에 있는 자사 공장에서 그것을 가공한다는 계획을 추진한다. 그리하여 마이어스는 캐나다에 자회사를 세우고, 미국과 캐나다 양국의 당국에 허가를 요청한다. 캐나다는 이 계획에 대해 미국의 환경보호청(EPA)이 허가한다면 자국도 허가한다는 입장이었다. EPA는 이 계획을 긍정적으로 검토했고, 마침내 1997년에 PCB의 수입을 허가하는 조치를 내렸다.
 

  
  그런데 그로부터 1개월 뒤인 1997년 11월에 캐나다 당국은 PCB의 국경통과를 일단 보류시키는 잠정명령(Interim Order)을 발표한다. 그 이유는 미국 EPA의 조치가 과연 합법적인 것인가를 연구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앞에서 본대로, 미국에서는 이미 PCB의 수입을 금지하는 법이 발효된 상태였다. 그런데 이런 법과 EPA의 조치가 모순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권위 있는 검토가 이루어진 바가 없으니, 바젤협약에 서명한 캐나다로서는 당국에서 당시 상황에서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는 것이었다.
 

  
  몇 달이 지난 후인 1997년 2월에 검토를 끝낸 캐나다 당국은 다시 PCB의 수출을 허가했고, 마이어스는 7번 정도 PCB 수입물량을 운송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미국에서 환경단체인 시에라클럽(Sierra Club)이 마이어스에 대한 EPA의 PCB 수입 허가조치를 위법이라고 주장하며 제소해서 위법이라는 법원의 판결을 받아냈다. 이로써 1997년 7월 20일에 PCB의 미국 내 반입은 완전히 중지된다.
 

  
  그런데 1998년 10월에 마이어스가 캐나다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을 제기한다. 미국의 EPA에서 허가를 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캐나다의 잠정명령으로 인해 PCB의 수입이 중단됐던 몇 개월의 기간 동안 심대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한 마이어스의 주장은 크게 보아 다음과 같은 세 가지였다.
 

  
  첫째, 캐나다 정부는 미국기업인 마이어스에 피해를 줄 것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잠정명령을 내리는 행동을 했으니 NAFTA의 차별금지(non-discrimination) 조항을 위반했다. 둘째, 결과적으로 마이어스는 자사가 구입한 PCB를 캐나다 국내에서 처분할 수밖에 없게 됐으니 투자자에게 아무런 요구사항도 붙이지 않는다는 '활동요건(performance requirement)' 관련 조항을 위반했다. 셋째, 마이어스가 사업을 위해 캐나다에 투자해 설립한 회사는 결국 아무런 이윤도 얻지 못하게 됐으니 캐나다 정부는 '수용에 해당하는 조치(tantamount to expropriation)'를 취한 셈이다.
 

  
  2000년 11월 13일 UNCITRAL의 중재심판소는 마이어스의 손을 들어주는 판정을 내렸다. 비록 수용이나 활동요건 조항과 관련된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캐나다 정부는 환경보호라는 목적을 달성함에 있어서 좀더 'NAFTA의 투자규칙들과 조화되는' 방법을 취했어야 하며, 따라서 차별행위가 인정된다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캐나다 정부는 PCB 수출이 중단된 기간 동안 마이어스가 올릴 수 있었던 사업이윤에 해당하는 금액을 감안해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이어스는 5천만 달러의 배상금을 요구했지만, 2002년 10월에 나온 최종 판결은 이에 훨씬 못 미치는 605만 달러의 배상금을 캐나다 정부에 부과했다.
 

  
  배상액의 크기는 차치하고라도, 이 판정은 메탈클래드 사건에 대한 판정에 못지않은 저항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 캐나다 정부가 PCB의 수출을 보류시킨 조치는 최소한 두 가지의 법적 정당성이 있는 것이었다. 한 가지는 바젤협약에 따른 (준)국제법적 틀에서의 정당성이고, 다른 한 가지는 미국 국내법에 대한 고려가 지닌 정당성이었다. 그 뒤에 실제로 미국 EPA의 수입허가 조치가 미국 국내법의 기준에서 불법 판정을 받았다는 것은 캐나다 정부의 잠정조치가 상당한 법적 정당성을 갖춘 사려 깊은 것이었다는 증거가 된다.
 

  
  하지만 중재심판소는 환경문제에 대한 법적 규약이나 환경보호의 필요성은 중시하지 않고, 그저 투자대상국 정부의 조치가 투자자를 괴롭히는 빌미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 세계무역기구(WTO) 식 용어로 말하면 '가장 교역을 덜 제약하는(the least trade-restrictive)' 조치여야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다른 법적 정당성을 모두 눌러버린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에 대한 중재심판소의 판정은 다음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 이 판정은 오로지 투자자 보호라는 기준 하나를 내세워 한편으로는 바젤협약과 같은 국제법,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법과 그 법에 근거한 판결과 같은 국내법을 모두 무시해버린 사례다. 그리고 무시된 사안은 '환경'이라는 가장 핵심적인 공공이익에 해당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하다.
 

  
  둘째, 이 판정을 통해 투자자의 정의가 실로 크게 팽창됐다. 마이어스는 PCB 교역을 위해 캐나다에 존재하는 마이어스캐나다라는 회사와 합작사업을 벌이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마이어스캐나다는 마이어스 집안에 속하는 사람이 소유한 회사였고, 캐나다에서 이 회사가 영위한 사업이라고 해야 그저 PCB를 구입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따라서 캐나다 정부의 조치로 인해 메탈클래드 사건의 경우에 맞먹는 정도의 가시적인 자산가치 감소가 일어났다고 보기도 힘들다. 하지만 중재심판소는 그저 PCB를 구입하는 정도의 활동도 분명히 '투자'로 인정했다. 캐나다에서 발생한 쓰레기를 미국의 모회사로 수출하는 '쓰레기 브로커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개인을 버젓이 '투자자'로 인정한 셈이다.
 
 

  
  ③ 에틸 대 캐나다 사건
  
  에틸 대 캐나다 사건은 비록 소송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보건이나 환경 분야의 행정에 대해 중요한 함의를 갖는 사건이다.
 

  
  버지니아에 자리 잡은 미국회사 에틸(Ethyl)은 연비를 올려 유독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자동차 연료에 집어넣는 첨가제인 MMT(Methylcyclopentadienyl Manganese Tricarbonyl)를 생산해 캐나다로 수출하는 업체였다. 그런데 캐나다 정부는 이 물질에 들어가는 망간이 인체의 신경조직에 치명적인 해를 입히며 환경에도 큰 위험이 된다는 증거를 상당히 축적했고, 이에 근거해 MMT의 수입과 주정부 간 거래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한다. 이런 캐나다 정부의 조치에 대해 에틸은 1997년 10월 자사가 앞으로 거둘 수 있는 수입에 대한 '수용'이라고 주장하며 2억5천만 달러의 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통지한다.
 

  
  캐나다 정부는 MMT의 유해성에 대한 증거를 이미 상당히 축적했기에 자신감을 갖고 대응한다. 하지만 세밀히 검토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축적한 증거라는 것이 절대적인 과학적 확실성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이에 캐나다 정부는 점점 더 자신감을 잃어간다. 그 결과 캐나다 정부는 2억5천만 달러라는 거액의 배상을 하게 될 위험에 처하기보다는 에틸과 직접 만나 협상을 벌여 타협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내린다. 결국 캐나다 정부는 에틸에 1300만 달러를 건네주는 동시에 '멀쩡한' MMT를 유해한 물질이라고 주장했던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조건으로 1998년 7월 에틸과 합의를 본다.
 

  
  이 사건의 중요성은 무엇보다도 보건환경 정책과 관련해 국제법적으로 인정되던 '경찰권(police power)'의 한 중요한 기둥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게 했다는 데 있다. 원래 경찰권은 '예방의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에 의해 정당화되는 것이 관례였다. 즉, 어떤 물질이 해롭다는 절대적인 과학적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고 해도 그럴 만한 가능성이 있다는 근거만으로도 예방적인 차원에서 환경이나 보건에 대한 조치를 취할 권한이 국가에 있다는 것이었다. 예방의 원칙이 인정되는 것은 몇 년, 몇 십 년에 걸친 실험이 성공해야만 비로소 위험의 존재에 대한 절대적인 과학적 증거가 나올 수 있는 경우에 그때까지 기약 없이 인간과 자연을 위험 앞에 무조건 방치해 둘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의 심판소에서 이런 '예방의 원칙'이 어느 정도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점점 더 많이 나오고 있다.
 
 
   
 
  홍기빈/국제정치경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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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차밤바의 '쓰디 쓴 승리'와 그 교훈
  [한미FTA 뜯어보기 115 :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정치경제학(9)] 수자원 분쟁
  2006-10-09 오전 9:20:11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이 벌어지는 국제 중재심판은 철저한 비밀을 원칙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누가 누구와 어떤 문제로 얼마의 금액을 놓고 언제 어디서 심판을 진행하는지에 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모으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공공이익과 관련된 큰 문제들에 대한 소송이어서 외부에 알려진 것들만 해도 그 수가 적지 않다.
  
  이 장에서는 그 중 중요하고 또 유명도가 있는 사건들을 몇 가지 사안별로 묶어 살펴본다. 대충이나마 몇 가지 사안별로 묶어서 소개하는 목적은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가 결코 좁은 의미의 상업적, 금전적 문제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하고 얼마나 다양하고 핵심적인 공공이익의 쟁점들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는가를 보이는 데 있다. 이번 글에서는 우선 수자원과 관련된 사건들을 살펴보자.
  
  "물은 21세기 최고의 초국적 비즈니스 기회"
  
  1990년대 이후 가장 크게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유화의 대상 중 하나가 물이다. 경제지 <포천(Fortune)>이 언젠가 이렇게 지적한 바 있다. "물은 최고의 비즈니스 기회를 제공한다. 21세기의 물은 20세기의 석유와 같은 위치를 가질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주로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의 국가들을 필두로 수자원과 상하수도 시설 운영권을 사유화해 그것이 결국 초국적 투자자들의 손으로 들어가는 일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인간의 존엄성 유지는 고사하고 인간의 물리적 생명과 생존에 가장 기본적인 자원인 물을 이용해 수익을 올리고, 또 그 수익을 어떻게든 보호해야 한다는 투자자의 목적과 그 물을 공공이익에 맞게 이용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민중의 목적은 서로 충돌하면서 실로 첨예한 분쟁을 낳게 된다.
  
  ① 벡텔 대 볼리비아 사건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라는 것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이 주도했던 구조조정(structural adjustment)이라는 거시경제 차원의 지구화 전략에 이어 미시적 차원에서 각종 사회적, 자연적 관계를 자본의 수익성에 맞게 재편하는 1990년대 이후의 새로운 지구화 전략임을 앞에서 이야기한 바 있다. 미국기업 벡텔과 볼리비아 민중 사이에 몇 년에 걸쳐 벌어진 싸움은 이 두 개의 지구화 전략이 결합해 작동하면서 빚어진 최악의 사례이자, 제3세계 국가에서 외국 투자자가 얼마나 극단적으로 이윤추구를 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극적인 사건이다.
  
  볼리비아도 외채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IMF는 1999년 이 나라에 1억3800만 달러를 융자하기로 결정하고, 그 대신 '구조개혁'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이 프로그램에는 아직 남아있는 공기업들을 모두 매각하라는 요구가 들어 있었고, 매각대상 공기업 중에 코차밤바(Cochabamba) 지역의 상하수도 시설도 포함되어 있었다. 같은 해 6월 세계은행에서 나온 한 보고서는 볼리비아가 구조개혁을 완수하려면 확실한 재정지출 삭감을 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코차밤바 지역 상하수도 시설에 대한 일체의 보조금을 없애야 한다고 권고한다.
  
  이를 기회 삼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유명한 미국 건설기업 벡텔(Bechtel)이 뛰어든다. 벡텔은 19세기 말에 설립된 이래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규모의 건설기업으로 성장해 왔지만, 지금도 증시에 상장되지 않은 채 벡텔 가문의 개인적 소유로 되어 있으며 그 사업내역이나 내부구조 등은 거의 비밀의 장막에 싸여 있다. 벡텔은 특히 레이건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은 바 있으며 지금도 체니 부통령을 비롯해 미국 정계 곳곳에 소위 '벡텔 맨'을 심어 놓고 미국정부와의 강력한 유착 속에서 온갖 국제적 음모의 산실 역할을 해 왔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기업이기도 하다.
  
  엄청난 압력 속에서 별다른 방도가 없던 볼리비아 정부는 결국 코차밤바의 상하수도 시설을 매각하기로 하고 입찰을 개시한다. 그런데 이 입찰에 뛰어든 회사는 아구아스 델 투나리(Aguas del Tunari) 하나뿐이었고, 결국 2만 달러도 채 안 되는 헐값에 상하수도 시설 운영권이 이 회사로 넘어가게 된다. 이 회사는 일종의 국제 컨소시엄 형태를 띠고 있었는데, 그 소유구조를 보면 벡텔이 100% 소유한 자회사인 인터내셔널 워터 리미티드(International Water Limited: IWL)가 55%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사실상 벡텔의 손자회사라고 할 수 있었다.
  
  벡텔은 상하수도 시설 운영권을 따낸 지 단 1주일 만에 수돗물 가격을 급격하게 인상했다. 그 인상폭은 코차밤바 지역의 서민들이 감당하기가 힘든 정도였다. 당시 볼리비아 전체의 최저임금은 월 70달러 정도였는데, 한달 물값이 20달러를 넘게 되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물을 사야 할지 어머니 약을 사야 할지'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게다가 벡텔은 땅 위의 물 뿐만 아니라 공기 중의 물까지 잠가버렸다. 강수량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자기 집 지붕에 떨어지는 빗물을 받는 것까지 금지하는 법을 만들도록 한 것이다.
  
  마침내 그 다음 해 2000년 2월에 상하수도 사유화를 취소하고 벡텔의 상하수도 시설 운영권을 빼앗을 것을 요구하는 대중봉기가 일어나 시내 전체가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정부는 코차밤바에 경찰을 보내어 고무탄환과 최루탄으로 시위대를 강제진압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175명이 다치고 2명의 아이를 포함해 6명이 사망하고 말았다. 사태가 악화일로를 걷게 되자 볼리비아 정부는 4월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투입했다. 이때 또다시 17세의 소년 빅토르 우고 다자(Victor Hugo Daza)가 얼굴에 총을 맞고 사망한다. 벡텔의 자회사 IWL은 봉기를 일으킨 군중은 코카인 범죄조직의 사주를 받은 폭도들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마침내 4월 10일 볼리비아 정부는 굴복하고 민중의 모든 요구를 받아들일 것을 서약했다. 벡텔도 상하수도 운영권을 빼앗기고 나라 밖으로 쫓겨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후 볼리비아 곳곳으로 '물싸움'이 번져나갔다.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수자원 사유화에 맞서 싸우는 환경운동가들에게는 이 사건이 '2000년 4월 대첩'으로 불리며 승리의 대명사가 된다.
  
  실로 극적인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의 주제인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와 이 사건은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싸움의 2라운드는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에 근거한 국제 중재심판으로 옮겨간다.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볼리비아에서 쫓겨난 벡텔은 1992년에 네덜란드와 볼리비아가 맺은 양자 간 투자협정의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를 근거로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로 가서 볼리비아 정부를 상대로 2600만 달러 규모의 소송을 건다. 문서들이 공개되지 않아 자세한 내용은 알 길이 없지만, 나중에 드러난 바에 따르면 벡텔과 그 자회사가 볼리비아에서 지출한 비용은 100만 달러가 채 안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2600만 달러라는 배상청구액은 상하수도 시설 운영권을 통한 미래 예상수익을 근거로 추정된 '자산가치'로부터 계산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네덜란드와 볼리비아의 양자 간 투자협정이 왜 여기서 나오는가? 벡텔은 미국회사다. 그리고 당시 아우구스 델 투나리의 소유구조를 보면 4개의 볼리비아 회사가 각각 5%, 스페인의 어느 건설회사가 25%를 소유하고 있었고, 그 나머지 지분을 소유한 벡텔의 자회사 IWL은 당시 케이맨 제도에 등록되어 있었다. 아무리 봐도 아우구스 델 투나리는 네덜란드의 선량한 투자자가 투자한 회사는 아니지 않은가? 소유구조의 내력을 다시 살펴보자.
  
  벡텔은 볼리비아에서 사태가 벌어지기 전인 1999년 11월 4일에 자사가 100% 소유하고 있던 IWL의 주식 중 절반을 이탈리아의 전력회사인 에디슨(Edison S.p.A.)에 매각했다고 한다. 그 후 IWL은 등록돼 있던 케이맨 제도에서 사라지고, 대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복판에 본사가 있는 아이엔지(ING Trust)라는 기업의 자회사인 인트라 베헤르(Intra Beheer B.V.)라는 지주대행업체(holding agent) 사무실 안에 인터내셔널 워터 홀딩스(International Water Holding B.V.)라는 명패를 걸고 일개 '우편 사서함'만의 존재로 세상에 다시 나타난다.
  
  따라서 아구아스 델 투나리는 이제 기술적으로 벡텔만의 소유가 아니다. 벡텔은 이 회사의 지분 55%를 소유한 IWL의 지분 중 절반만을 갖고 있었던 것이니 결국 아구아스 델 투나리에 대한 벡텔의 지분은 27.5%뿐이었다. 따라서 암스테르담의 '사서함'이 벡텔과 동등한 지분을 가진 공동 최대주주이니 네덜란드와 볼리비아의 양자 간 투자협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지럽게 해서 죄송하다. 하지만 머리가 아픈 것은 독자들만이 아니라 필자도 마찬가지이니 용서하시기를 바란다. 어쨌든 ICSID는 이러한 벡텔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이 회사가 제기한 소송을 '수용'과 관련된 사건으로 접수했다.
  
  잠시 옆길로 빠져 참고삼아 말하면, 바로 이 벡텔-IWL(인터내셔널 워터 홀딩스)는 현재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전역에 걸쳐 8개의 수자원 관련 사업체를 가지고 있는데, 그 모두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사서함'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벡텔은 '수자원이야말로 지구상의 마지막 인프라'라는 흐름을 타고 최근 들어 세계각지의 수자원에 대한 각종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어쨌든 이 사례에서 다음과 같은 점들은 음미할 만하다. 첫째, 외국 투자자를 어수룩하게 보아서는 안 된다. 아직도 우리 사회의 얼치기 '미국통' 중에는 미국의 모든 것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우호적이라는 터무니없는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둘째, 벡텔의 투자가 어떤 성격의 것인지를 생각해 보자. 벡텔이 투자해 획득한 것은 볼리비아 정부로부터 넘겨받은 시설운영권, 즉 사업권(concession)이라는 무형자산의 일종이다. 이런 투자는 볼리비아 경제의 생산력에 어떤 보탬이 되었는가? 이 '투자'는 물이라는 볼리비아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밑바닥 자원을 독점하고, 물을 써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높은 독점가격을 매겨 수익을 뜯어내는 사회적 기득권이 되었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 이득 계산의 문제를 훨씬 넘어서는 심각성을 가진다. 앞에서 설명한 바 있듯이 '자산'이란 어떻게든 현금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모든 사회적 사실관계다. 그렇다면 가장 안정적으로 현금수익을 창출해줄 투자대상은 말할 것도 없이 사회조직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에 해당하는 사실관계들일 것이요, 이는 자연환경이나 보건과 밀접하게 연결된 부분일 공산이 크다. 벡텔의 이른바 '투자'는 바로 이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셋째, 볼리비아 정부가 소홀히 했다고 벡텔이 주장한 '투자자 보호'라는 것의 성격을 생각해보자. 벡텔이 직면하게 된 상황은 '탐욕스런 정부가 선량한 외국 투자자의 자산을 빼앗은' 사건이 아니라 거의 자연재해나 마찬가지의 불가항력적인 사회적 사건이었다. 이는 볼리비아에서 벌어진 유혈사태와 죽음들을 볼 때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그 상황은 모든 사업에 따르게 마련인 위험(risk)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볼리비아 민중의 분노가 벡텔로 향했던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민중봉기에 대한 벡텔 스스로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벡텔은 그 모든 사태가 정부에서 투자자 보호를 소홀히 하여 벌어진 일이며, 따라서 상하수도 시설 운영권을 다시 빼앗아 간 것은 '수용에 맞먹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런 점을 보면 투자자들에게 상식이나 양심 따위를 기대할 일이 아니다. 배상을 받을 확률이 어느 정도 있다면 그들은 어떠한 논리나 주장이든 내세워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를 활용할 것이다.
  
  넷째, 배상액의 크기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600만 달러라는 절대 액수만으로 보면 그렇게 큰돈은 아니라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에서 요구되는 액수는 소송의 대상이 된 국가의 경제규모와 배상을 해야 할 정부의 예산규모에 비교해봐야 한다. 볼리비아는 가난한 나라다. 이 나라에서 2600만 달러라는 돈은 공립학교 교사 1만2천 명의 1년치 봉급 총액에 해당된다. 이런 계산을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4억 달러에 육박하는 큰돈이다.
  
  마지막으로 다섯째, 어쩌면 가장 심각하고 예측할 수 없기에 더욱 위험한 문제가 있다. 기상천외한 소유구조 변경을 통한 초국적 자본의 현란한 재주에 주목하자. 실질적으로 초국적의 소유구조가 형성돼 있는 오늘날에는 어느 기업이든 그 국적을 따진다는 것이 거의 무의미하다. 벡텔뿐만 아니라 이 기획연재의 앞부분에서 보았던 로널드 라우더와 CME의 경우도 그렇다.
  
  이제는 어느 나라의 투자자가 어느 나라의 투자협정을 이용해 어느 정부를 겨냥해 공세를 취하게 될지를 쉽게 예측할 수 없다. 이는 숱하게 많은 이들이 지적한 점, 즉 초국적 자본이 분쟁 상대국을 공격할 때 자기에게 가장 유리한 투자협정을 골라서 이용하는(이를 위해 돈을 주고 뭔가를 사는 매수행위가 끼어들게 마련이다) '협정 쇼핑(Treaty Shopping)'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이미 체결한 FTA들에도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가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나라와 FTA를 체결한 나라들은 자본의 크기가 제한되어 있다. 이와 달리 초국적 자본들이 집결해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와 FTA를 체결해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가 시행되도록 하는 것은 어쩌면 도둑이 들끓는 거리를 향해 대문을 활짝 열어놓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을지 모른다.
  
  에필로그는 이 사건의 결말을 소개하는 것으로 하겠다. ICSID는 벡텔의 주장을 이치에 닿는 것으로 받아들여 접수했지만, 세계각국의 시민들이나 환경운동가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벡텔이 볼리비아 정부를 고소했다는 소식은 가뜩이나 악화되어 있던 벡텔에 대한 반감을 세계적으로 폭발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샌프란시스코의 벡텔 본사에는 항의의 우편물과 이메일이 쇄도했고, 본사 건물 앞에서는 시위대가 거의 상주하다시피하면서 출입구를 차단하고 로비를 점령하기도 했으며, 한 환경운동가는 암스테르담의 벡텔 사무실에 쳐들어가 죽임을 당한 소년 빅토르 우고 다자의 이름을 내걸었다고 한다. 또 42개 나라에서 300개 이상의 조직이 공동으로 ICSID의 상위조직인 세계은행에 볼리비아 사건에 대한 조사를 공개적으로 진행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이 사건은 초국적 기업이 저지르는 횡포의 대명사가 되어 수십 개의 관련 논문이 발표되는 등 대표적인 국제 스캔들이 되고 만다.
  
  결국 '2600만 달러의 배상금을 타내느냐, 기업 이미지의 계속적인 악화냐'를 놓고 고민했을 벡텔은 마침내 올해 1월 볼리비아 정부와 2볼리비아노스(300원 정도)를 받고 고소를 취하하기로 합의했다. 이 사건은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에 의한 국제 중재심판의 폐쇄성과 비민주성에 대한 경각심과 분노가 어느 정도의 범위와 강도로 지금 세계에 확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었고, 세계의 민중과 시민사회의 자발적인 운동이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의 발동을 미연에 막아버릴 수 있음을 보여준 소중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② 비방디 대 아르헨티나 사건
  
  프랑스의 복합기업 비방디(Vivendi)는 1994-5년에 아르헨티나 투쿠만(Tucuman) 지역의 상하수도 운영권을 확보하고 사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곧 투쿠만 지역의 주민들, 지방정부, 지역 정치인들과 비방디 사이에 수도값과 서비스의 질 등을 놓고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됐고, 아예 지방정부가 나서서 주민들에게 수도값 지불을 거부하라고 촉구하기에 이른다.
  
  이에 비방디는 프랑스와 아르헨티나의 양자 간 투자협정을 근거로 1996년 ICSID에서 아르헨티나 정부를 상대로 한 중재심판에 들어간다. 이 사건은 우여곡절을 거쳤음에도 2006년 현재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길고 지리한 싸움으로 알려져 있다. 싸움이 이토록 길어진 것은 2000년에 내려진 ICSID의 중재심판에서 나온 재정(판결)과 그것을 둘러싸고 벌어진 역전극 때문이었다.
  
  2000년 당시의 판결에 의하면, 중재심판소는 비방디가 제기한 문제가 양자 간 투자협정을 어긴 것인지를 판단하려면 먼저 투쿠만 지방정부와 비방디가 맺은 사업운영권 협약(Concession Agreement)의 의미를 정확하게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운영권 협약에 의하면, 그 의미를 정확하게 해석할 권한은 명시적으로 투쿠만 지방정부에만 있는 것으로 판단됐다. 따라서 이 문제는 일차적으로 투쿠만 지방정부의 법원으로 가야 할 일이며, 그 전에는 ICSID의 중재심판소가 어떤 개입도 할 수 없으니 소송을 각하한다는 판결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순순히 물러날 비방디가 아니었다. 비방디는 곧 ICSID에 이러한 중재심판소의 판결을 무효화할 위원회(Annulment Committee)를 소집해 달라고 신청한다. 앞에서 잠깐 보았지만, ICSID는 자신의 주관 하에 내려진 중재심판소의 판정이 심각한 절차상 결함이 있는 5가지의 경우에 한해 그 판정의 일부를 무효화할 수 있다. 작동되는 일이 많지 않던 이 위원회가 드디어 소집됐다. 위원회의 판단은 중재심판소가 갖고 있는 권한을 최대한 활용하지 않았다는 것이었고, 이는 기존의 판결을 무효화할 사유에 해당된다는 것이었다. 위원회에 의하면, 중재심판소는 지방정부의 법원에서 해결해야 하는 운영권 협약 따위에 얽매이지 말고 국제법이나 투자협정을 위반한 사안인지 여부를 독자적으로 판단해야 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극적인 반전으로 싸움의 2라운드가 시작됐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가급적 무효화 판정을 뒤집으려고 노력했고, 비방디는 이제 결함이 있다고 판정된 첫 번째 중재심판소를 해체하고 새로운 구성으로 중재심판소를 다시 짜야 한다고 주장하며 기세를 올렸다. 최근 알려진 바에 따르면, 마침내 비방디의 주장대로 새로 구성된 중재심판소가 이 사건을 맡아 2005년에 소송을 속개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국제 중재심판소가 각국의 국내 법해석에 대항해 자신의 영역권을 주장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국제 투자자들이 자신들에게 열려 있는 모든 기회를 끝까지 얼마나 집요하게 이용하는지도 이 사건은 보여준다.
  
  한편 프랑스의 상수도 운영회사인 CGE와 연결돼 있는 비방디는 베올리아(Veolia)라는 초국적 수자원 회사를 설립하고 이를 통해 세계 곳곳의 상수도 운영권을 따내고 있다. 최근의 보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정부가 상수도의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드디어 인천의 상수도 사업본부가 바로 이 베올리아와 함께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노동시민단체 "물 사유화 저지 공동행동" 발족'(인터넷신문 <레디앙>, 2006년 9월 21일).
  
  ③ 아주리 대 아르헨티나 사건
  
  아주리(Azurix Corporation)는 원래 저 유명한 미국회사 엔론(Enron Corporation)에서 분사(spin-off)된 기업인데, 1999년에 아르헨티나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 지역의 수도를 30년간 운영할 권리를 따낸다. 그 뒤의 이야기는 낯익은 줄거리로 진행된다.
  
  우선 주민들은 수돗물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고생해야 했고, 2000년 봄에는 수돗물의 질을 놓고 난리가 벌어진다. 수돗물에서 독성 박테리아가 쏟아져 나오는 극악한 사태가 발생한 것이었다. 이에 부에노스아이레스 지방당국은 보건위생 차원에서 주민들에게 수돗물을 마시는 것은 물론 수돗물로 몸을 씻는 것조차 최대한으로 자제하라고 당부하게 된다. 이 지역의 공중보건 단당 관리는 "내가 25년이나 이 일을 해 왔지만, 이렇게 끔찍한 물 위기는 처음 본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주리는 이 모든 잘못의 원인이 원래 운영권 협약에서 약속된 기간시설을 지방당국이 제공하지 않은 데에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2001년에 운영권 협약이 종결되자 아주리는 미국과 아르헨티나의 양자 간 투자협정을 근거로 하여 아르헨티나 정부의 규제는 '수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5억5천만 달러가 넘는 규모의 소송을 걸었다. 이 소송은 2006년 현재도 진행 중이다.
  
  ④ 선벨트 대 캐나다 사건
  
  미국의 캘리포니아 지역은 종종 심한 가뭄에 시달리는 등 물 부족 현상이 자주 일어난다. 그래서 샌타바버라에 자리 잡고 있는 회사 선벨트(Sunbelt)는 강과 호수가 많아 물이 풍부하며 가까이에 있는 캐나다의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에 차량을 보내어 그곳 물을 수입한다는 대담한 계획을 세운다.
  
  선벨트는 브리티시컬럼비아 주로부터 제한된 양의 물 수출 허가를 받아 놓고 있는 캐나다 회사 스노캡(Snowcap)과 '합작사업(joint venture)'를 하기로 계약을 맺고, 스노캡의 물 수출량을 늘릴 수 있도록 1991년에 새로이 허가를 신청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사업을 추진하는 기업은 선벨트만이 아니었다. 이에 따라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 주민들 사이에 자칫 지역의 수자원이 순식간에 고갈돼버리는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하게 됐다. 마침내 같은 해에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정부는 기존의 물 수출 허가까지 취소해버리는 '물 모라토리엄'을 선언한다. 이와 함께 주정부는 물 수출 허가를 내주었던 캐나다 회사 스노캡과는 33만 캐나다달러 정도로 배상액을 합의한다.
  
  그런데 갑자기 1999년에 선벨트가 나섰다. 선벨트는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 그런 조치가 자사가 하려고 했던 사업에 대한 '수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캐나다 정부를 상대로 UNCITRAL(유엔 산하 국제상법위원회)에 소송을 제기하고, 자사의 사업이 성사됐을 경우의 수익 추정을 근거로 105억 달러라는 거액의 배상을 요구한다.
  
  이 소송은 법률가들 사이에서 그다지 정당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았고, 그 후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게 해줄만한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사건은 수자원보호라는 그야말로 기초적인 공공이익과 관련된 사안도 얼마든지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홍기빈/국제정치경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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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재심판 피난처'까지 생겨난 이유

 

  [한미FTA 뜯어보기 114 :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정치경제학(8)] 공공이익과의 충돌
  2006-10-08 오후 1:09:55
  앞 회에서 보았듯이 투자자-국가 직접소송 제도에 의한 국제 중재심판은 공적 재판과는 전혀 다른 원칙과 절차로 구성되고 운영된다. 그러나 그 중재심판에서 논의되는 사안은 투자자의 수익성에 영향을 주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모든 입법과 행정 활동이니, 전통적으로 국내공법 및 국제공법 체계에서 다루어져 온 '공공이익'과 관계가 있다.
 
 

  
  이 치명적 결합의 결과는?
  
  그렇다면 이런 치명적인 결합, 즉 투자자-국가 직접소송 제도를 통한 공공이익과 국제 중재심판의 결합은 어떤 결과를 낳을까? 공공이익과 관련된 사안들에 대한 법적 판결이 갖추어야 할 세 가지 덕목, 즉 정당성, 투명성, 석명성이라는 세 가지 요건에 비추어 그 결과를 살펴보자.
 

  
  ① 정당성(legitimacy)
  
  먼저, 투자자-국가 직접소송 제도에 의한 중재심판은 일반적인 국내법 및 국제법 체계의 바깥에 있는 것임을 기억하자. 따라서 이 심판에 우선적으로 적용되는 법이 있다고 보기 힘들며, 가장 우선하게 되는 것은 해당 소송의 기반이 되는 투자협정에서 투자자의 이익 보호에 대해 양국이 합의한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가다.

  
▲ 메탈클래드가 멕시코에 폐기물 처리장을 건설하려고 했던 곳. ⓒKBS

  물론 중재심판소의 법률가들은 이밖에도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국제법의 원칙들을 폭넓게 고려할 수 있다. 만약 NAFTA의 경우처럼 협정 당사국들의 통상 관련 부서들이 함께 참여하는 자유무역위원회(Free Trade Commission)와 같은 것이 있어서 관련되는 협정 조항들에 대한 해석(interpretive statement)을 내놓는다면, 이는 중재심판소에서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 된다.
 

  
  그렇다면 판정에 큰 영향을 끼치는 심판관의 자격은 어떠한가? 이것이 또 하나의 큰 문제다. 중재심판에서 다루어지는 쟁점들은 환경, 보건, 지방자치, 문화, 인권 등과 같은 무수한 '공공정책'의 제반 사안들을 포괄한다. 하지만 중재심판은 그러한 다양한 쟁점들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 어떠한 금전적, 상업적 득실이 발생했으며 그것이 협정을 위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좁은 의미의 경제적인 것을 따지는 데 국한된다. 따라서 심판관의 자격도 제기되는 구체적 쟁점들에 대한 전문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오로지 금융이나 상업 등에 관련된 법 전문가일 것만을 요구한다. 한 예로 ICSID의 관련 조항(14조 1항)은 심판관의 자격에 대해 "높은 도덕적 인격과 법, 상업, 산업 혹은 금융에 있어서 능력을 인정받은 자로서 독립적 판단을 내릴 것으로 믿을 수 있는 자"라고만 규정해놓고 있다.
 

  
  여기서 또 문제가 생긴다. 원래 공공의 이익이라는 것과 그것과 관련해 내려지는 법정의 판결은 그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복잡한 체계를 바탕에 깔고 있다. 먼저 그 판결의 모태인 법은 인민의 의사를 대변한다고 여겨지는 의회에서 만들어진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법을 집행하는 주체인 행정부의 구성은 물론이고 그 법에 의거한 사법부의 판단도 주권국가의 엄격한 법규와 절차를 따라 이루어지고 운영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어떤 사안에 대한 법정의 판결이 그 나라 안의 국민들과 전문가, 관련 단체 등의 의견과 정치적 고려 등이 종합적으로 반영되어 비로소 만인을 승복시킬 수 있는 정당성(legitimacy)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제 중재심판소에서 내린 결정은 과연 그와 같은 정당성을 가질 수 있을까? 앞에서 잠깐 본 메탈클래드(Metalclad) 사건에서처럼 중재심판소가 "공공의 이익 등은 본 심판소에서 고려할 대상이 아니다"라고 공언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모든 사안이 오로지 '자산가치에 준 영향과 그에 대해 애초에 투자협정에서 합의되어 규정된 바'라는 좁은 틀에서 고려되지 않겠는가?
 

  
  메탈클래드 사건은 더욱 심각한 또 하나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 사건은 중재심판소의 재정(award)이 심지어 해당국 국내의 법률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판단할 경우에도 우월한 권위를 가짐을 보여주었다.
 

  
  메탈클래드 사건에서 중요한 쟁점 중 하나는 폐기장 설립허가를 교부할 권한이 중앙정부에 있는가, 아니면 지방자치단체에 있는가였다. 이에 대해 멕시코 측의 법률가들은 멕시코의 국내 법률로 볼 때 그 권한의 소재는 지방자치단체에 있고 따라서 멕시코 중앙정부에는 책임이 없다는 의견을 중재심판소에 보내왔다. 하지만 중재심판소는 그러한 의견을 묵살해버리고 폐기장 설립허가 교부권은 중앙정부에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는 유권해석을 내려버렸다. 훗날 이 사건을 검토하게 된 밴쿠버의 지방법정에서 분명히 판단됐듯이, 이러한 유권해석은 명백하게 한 나라의 법적 자율성이라는 영역에까지 중재심판소가 침범해 들어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메탈클래드 사건은 위와 같은 경우가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반복될 가능성이 높은 것임을 암시한다. 이 사건처럼 멕시코 중앙정부가 거액의 배상 위험에 처한 순간에 멕시코 국내의 법률적 의견이라는 것은 항상 멕시코 정부에 유리한 쪽으로 편향되게 나올 가능성이 있고, 멕시코 국가와 외국 투자자라는 양쪽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는 경우에 중재심판소는 그런 멕시코 국내의 법률적 의견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 비추어도 중재심판소의 재정이 우선권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
 

  
  ② 투명성(Transparency)
  
  일반 법정의 재판은 그 기록을 누구나 볼 수 있고, 그 절차도 원칙적으로 공개된다. 하지만 국제 중재심판은 앞에서도 보았듯이 '비밀성'을 그 원칙으로 한다. 공공의 이익에 아무리 중차대한 문제라고 해도 분쟁의 양 당사자와 심판관 외에는 누구도 국제 중재심판의 내용을 알 수 없고, 그 심판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더 더욱 불가능하다.
 

  
  ③ 석명성(Accountability)
  
  공적 사안에 대한 법적 판결은 그것이 어째서, 어떤 원칙으로 내려졌는지를 누구에게나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며, 그래서 누가 판결을 내리든 동일한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석명성(釋明性)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앞에서 본 대로, 중재심판의 성격이란 기본적으로 상업적 관계에서 분쟁을 빚게 된 쌍방이 서로 합의를 보는 것이다. 따라서 중재심판의 결과가 명쾌하고 일관된 석명성을 과연 갖게 되느냐가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 다음 세 가지를 검토해보자.
 

  
  첫째, 동일한 분쟁 사안에 대해 국제 중재심판은 여러 개의 중재심판소에서 동시에 진행될 수 있다. 앞의 글(7회)에서 본 '새서울방송'의 예에서 폭스TV를 필두로 한 여러 '투자자'들은 각자 자신이 원하는 규칙과 조건을 골라 한국정부를 서로 다른 중재심판소로 불러낼 수 있다. 이런 '복수 법정(multiplicity of fora)'의 위험은 이 기획연재의 앞부분에서 설명한 체코 공화국의 경우 등에서 현실화된 바 있다.
 

  
  그리하여 최근 NAFTA에서처럼 복수 법정의 위험으로 인해 동일한 사실관계로 인해 여러 개의 소송들이 동시에 발생할 경우 그것들을 하나로 합쳐서(consolidation of related cases) 진행하자는 합의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투자협정에서는 이런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두고 있지 않아서 동일한 사안이 여러 개의 중재심판 소송이 제기되고 진행될 가능성이 항존한다. 예를 들어 인도의 다브홀(Dabhol) 발전소 프로젝트(Dabhol)와 관련된 국제 중재심판의 경우에는 무려 7개가 넘는 주체들에 의해 각각 다른 투자협정에 근거해 제기된 소송이 동시에 진행된 적이 있다.
 

  
  둘째, 각각의 중재심판소는 제각각 독립적인 판단을 내리게 된다. 비슷한 사건, 심지어는 동일한 사건을 심의하게 된다 해도 각각의 중재심판소가 다른 중재심판소의 결정을 판례로 삼아야 할 의무가 전혀 없다. 즉 '판례 구속의 원칙(stare decisis)'이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동일한 사실관계를 놓고도 중재심판소들이 서로 모순되며 심지어는 반대되는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앞에서 소개한 CME 대 체코 공화국의 사건에 대한 판결이 그 전형적인 예다.
 

  
  이러한 혼란으로 인해 어떤 구체적인 소송이 제기됐을 경우 그 대상이 되는 국가의 정부가 소송에서 이길 수 있을지 여부를 가늠해보는 것은 현실적으로 '주사위놀음(crapshoot)'의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 논평가도 있었다.
 

  
  국제 중재심판이 이렇게 극도의 예측불가능성을 갖고 있다면 그 피해자는 주로 누가 되겠는가? 국가 쪽이 될 수밖에 없다. 투자자는 맘대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국가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따라서 소송의 예측불가능성이 크다면 투자자 쪽에서는 소송비용의 부담만 제외한다면 "까짓 거 밑져야 본전"이라며 소송에 뛰어들겠지만, 국가의 입장에서는 소송에 휘말려봐야 아무것도 못 얻고 자칫 피만 흘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주로 투자자들로부터 소송을 당하는 처지인 개발도상국과 준개발도상국들은 외국의 투자자로부터 '소송 의도서(notice of intent)'가 날아오면 실로 안심하기 어려운 처지가 된다. 따라서 이런 처지가 된 나라의 정부는 실제로 소송이 벌어지기도 전에 미리 알아서 외국 투자자의 비위와 눈치를 살피느라 국내의 관련 입법이나 행정 활동을 스스로 위축시키는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셋째, 국내의 재판은 재심을 거쳐 '삼세판'까지도 갈 수 있지만, 국제 중재심판은 1심으로 끝이다. 그야말로 '단칼'에 끝나는 승부다. 국제 중재심판의 틀에서는 애초부터 삼세판이 가능하도록 '상급 기관'을 설정하는 것 자체가 이치에 닿지 않는 일일 수 있다. 그래서 중재심판소의 결정이 나오면, 패배한 국가는 군말 없이 결정된 액수의 배상금을 물어내는 수밖에 없다. 어떤 소송의 근간이 되는 투자협정이 살아있는 한, 그 소송의 중재심판에서 내려진 결정은 투자협정의 두 당사국 사이에서는 국제법적 효력을 갖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외는 있다. 먼저, ICSID가 주관하는 중재심판의 경우 결정을 내부적으로 다시 심의하는 경우가 있다(Annulment Committee 규정). 하지만 그 사유는 "심판소 구성과정이 부적절했거나, 심판소가 명백하게 권능을 넘어섰거나, 그 구성원이 부패를 저질렀거나, 기본적인 절차의 규칙이 심각하게 위반됐거나, 결정의 논리적 근거가 진술되지 못했거나"하는 5가지 경우로 국한된다.
 

  
  ICSID 외의 다른 틀에서 진행되는 국제 중재심판의 경우에는 중재심판이 벌어진 장소(거의 항상 제3국이다)의 국내법에 따라 그 나라 법원이 중재심판 결정을 재검토하는 것이 허용되는 게 관례다. 앞에서 본 메탈클래드 사건에서 중재심판이 벌어진 캐나다 밴쿠버의 법원이 이 사건을 재검토했던 것이 그 예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것이 있다. 중재심판이 벌어지는 장소는 항상 분쟁당사자 간 합의에 의해 선택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투자자는 중재심판이 벌어지는 장소가 자신에게 불리한 국내법을 가진 나라가 되지 않도록 얼마든지 힘을 쓸 수 있다. 게다가 장소 선택의 최종 결정권을 가진 심판관은 자신이 내릴 결정이 도전받는 일이 없도록 아예 국내법에 국제 중재심판에 끼어들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는 나라를 중재심판의 장소로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좀 어이없는 일이지만, 1980년대 이후에 가급적 많은 국제 중재심판을 자국에 유치해 법률서비스업을 부흥시켜보려는 목적에서 스스로 국제 중재심판에 개입하지 않는 방향으로 자국의 법과 제도를 뜯어고치는 나라들이 속출했다고 한다. 벨기에가 가장 심한 경우다. 벨기에는 이미 1985년에 자국 내에서 벌어지는 국제 중재심판에 대해 국내에서 재심의할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해버렸다고 한다. 국제적 자본이동을 가급적 자국으로 유도하기 위해 조세를 철폐해버린 '조세회피지역(tax haven)'들과 비슷하게 국제 중재심판을 끌어들이려고 하는 '중재심판 피난처(arbitration haven)'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새로운 지구화 전략을 떠받치는 기둥
  
  국제 중재심판의 구체적인 절차와 성격을 살펴보았으니, 이제 그것을 앞에서 거론했던 '투자자 보호'라는 말의 의미와 결합시켜 음미해볼 때가 됐다.
 

  
  우리는 앞에서 '투자자 보호'란 외국 투자자가 투자대상국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환경적 구조 전체에 걸쳐 돈이 될 만한 자산이면 그게 어떤 종류이건 취득하면, 그 자산의 수익성을 떨어뜨릴 만한 모든 종류의 제도적, 법률적, 행정적 변화를 막아야 할 책임이 그 투자대상국 국가에 있다는 뜻임을 보았다.
 

  
  그리고 이런 책임을 등한시하는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에 책임을 다시 따져 물어 변화된 것을 원상복구하든가, 아니면 그 변화로 인해 초래된 자산의 가치손상만큼의 배상금을 물어내도록 결정하는 중재심판소가 어떠한 성격을 갖고 있는지를 좀 전에 보았다. 또한 그렇게 국가에 요구되는 조치는 공공이익에 대한 고려와는 형식상으로나 내용상으로나 거리가 있으며, 오로지 '자산가치의 변동과 그에 대한 애초의 협정 내용'이라는 지극히 상인법적인 고려에서 결정되는 것이 국제 중재심판이라는 점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결론은 '외국 투자자의 수익성을 해치는 일이 없게 하는 방향으로 정치, 행정, 문화, 환경 등 사회 전체에 걸친 국내의 제도와 관행과 법률이 순응되도록 하거나 바뀌도록 하는 것'이 결국 투자자-국가 직접소송 제도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1980년대에 IMF나 세계은행을 앞장서 추진한 '구조조정'이라는 거시적 차원의 지구화 전략을 대체하는 것으로서, 각국 국내의 각종 제도와 관행을 투자자의 수익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재구조화하도록 하는 1990년대 이래의 미시적 지구화 전략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투자자-국가 직접소송 제도는 투자자들을 보호하는 '방패'의 성격을 넘어서는 것으로, 오히려 투자자들이 투자대상국 사회 전체를 공격하는 '창'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그럴까?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모두 이론적인 설명이요, 분석이요, 추론이 아닌가? 실제로 현실에서 나타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 제도의 실상도 '방패'가 아닌 '창'인가? 이 세상이 그래도 최소한의 상식과 양식이 지배하는 곳일 텐데, 설마 그럴까? 이 글은 세상을 지나치게 비관적으로만 보도록 몰아가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다음 회부터는 이 세상의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홍기빈/국제정치경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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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게 다 있나' 싶은 심판 과정

 

  [한미FTA 뜯어보기 113 :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정치경제학(7)] 국제 중재심판
  2006-10-06 오전 9:30:38
  이번에는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이 어떻게 시작되고 진행되며, 그 결정은 어떤 효력을 낳는가를 살펴보자. 그리고 그 전체 과정이 소송을 당한 국가의 공공이익, 즉 민주주의, 지방자치, 환경 및 보건, 헌정질서 등에 어떤 결과를 미치는지를 들여다보자.
 
 

  
  분쟁당사자 둘이 만나 '쇼부 치는' 과정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국제 중재심판(international arbitration)이라는 것이 보통의 국내법 및 국제법 체계와는 전혀 이질적이라는 점이다.
 

  
  앞에서 우리는 중세 이래의 '상인법(lex mercatoria)'이 한편으로 각국 국내법에 상법으로 흡수된 과정,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근대 국제공법 및 국제사법 체계의 경직성을 우회하기 위한 상인들 및 투자가들끼리의 자율적인 분쟁해결 수단으로 살아난 과정을 보았다. 거기서 보았듯이 국제 중재심판이란 일정한 법적 효력의 근거와 원천이 명확하게 규정된 법체계 내에서 그 법체계가 정해놓은 절차와 규칙을 따라 행해지는 일반 법정의 재판과는 그 성격도 절차도 완전히 다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지 않고 보통의 재판의 관점에서 그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국제 중재심판을 바라보면 "뭐 이런 게 다 있나"하는 당혹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상인법에 따른 심판의 과정은 사실 두 명의 분쟁당사자 간에 '합의'를 보는 과정에 가깝다. 그리고 합의가 이루어지도록 중간에서 심판자의 역할을 하는 중재자(arbitrator)가 있을 뿐이다. 합의가 성경 말씀의 정신과 합치하며 교회법적으로 옳은지, 또는 해당 지역의 군주가 공포해놓은 실정법과 모순되지는 않는지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그야말로 글자 그대로, 서로 싸우는 두 당사자의 분쟁을 중재해 양쪽 모두 승복할 수 있는 '재정(裁定, award)'을 내놓으면 그만이다. 아주 거칠게 말해서, 한국식 일본어를 쓰는 것을 용서하신다면 그냥 양쪽이 모여 '쇼부(勝負)를 치는 과정'이 그 본질적 성격이라고 볼 수 있다.
 

  
  나중에 더 자세히 보겠지만, 문제는 이 '양쪽이 쇼부를 치는 과정'에 회부되는 사안에 사람들이 물을 마실 권리, 국가나 국민이 자국 문화를 보호할 권리, 모든 국민이 건강하게 살 수 있게 하려는 보건정책, 심각한 오염물질을 멀리하고 환경을 보호할 권리, 국가가 외환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국의 외환관리 방식을 변경할 권리 등과 같은, 실로 전통적인 '공공이익'의 쟁점들이 휩쓸려 들어가게 된다는 점이다.
 

  
  옛날처럼 상인법 전통에 따른 국제 중재심판의 관행이 공적 문제를 다루는 국내법 및 국제법 체계의 밖에 머물면서 그것을 보완하는 주변적 성격에 머물러 있었을 때에는 이런 혼란스러운 뒤섞임이 벌어지지 않았다. '공공이익'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주권국가가 자국 영토 안에서 지고(至高, 이것이야말로 주권(sovereignty)의 원래 뜻이다)의 권위를 가지고 마음껏 자의대로 처리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어느 주권국가의 공공이익을 침해할 수 있는 것은 그 주권국가와 동일한 권위를 가진 다른 주권국가뿐이었고, 주권국가들 사이에 경쟁이 붙을 때에는 국제공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그만이었다.
 

  
  독특한 성격을 가진 상인들이라는 집단이 이런 공법 체계에 문제를 느껴 자기들끼리 자체적인 분쟁해결 방식을 찾아 운영하는 것은 상관없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의 운영은 어디까지나 국내공법 및 국제공법의 영역 바깥에 존재하는 자기들끼리의 상업이라는 특수한 영역에 국한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투자자-국가 직접소송 제도는 공법의 영역에 속하는 사안들을 국제 중재심판이라는 '쇼부 치는 장'으로 끌어내어 공법과 상관없이 제멋대로 결정하고 있다.
 
 

  
  국가는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투자자-국가 직접소송 제도에서 소송은 투자자가 투자대상국을 상대로 제기할 수 있지만, 투자대상국은 외국 투자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이 제도의 목적은 '외국 투자자의 보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외국 투자자란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앞에서도 보았듯이, 특히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11장에 나오는 '투자'의 개념은 그 포괄범위가 대단히 넓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넓은 범위에 해당하는 자산을 가지고만 있으면 누구나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기업 소유구조의 예를 들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이 기획연재의 첫 회에서 소개한 가상의 시나리오를 되짚어 보자.
  
  노무현 정부의 뜻을 받들어 한국 서비스업의 꽃이라 할 방송산업을 '업그레이드'해주기 위해 폭스TV가 분연히 일떠섰다. 폭스TV는 직접 한국에 '폭스코리아'를 설립할 수도 있겠지만, 외국인에 대한 방송국 설립허가 허용과 관련된 복잡한 문제를 피하기 위해 한국인 노종현 씨를 파트너로 삼아 그로 하여금 폭스TV의 지분을 80%로 하는 '새서울방송'을 설립하게 한다. 예상대로 사업은 폭발적으로 번창했다.
 

  
  새서울방송을 통해 폭스TV가 아시아 전체 광고 및 문화콘텐츠 시장으로 뻗어나갈 조짐이 보이자, 이번엔 AOL-타임워너가 끼어든다. 막후에서 모종의 흥정이 벌어진 뒤 폭스TV는 AOL-타임워너에 새서울방송의 지분 30%를 넘기기로 합의하면서 함께 손잡고 아시아 전체 시장 공략에 나선다. 이에 불안을 느낀 중국의 차이나TV는 방어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미국에 '옐로우 페릴 엔터테인먼트'라는 자회사를 설립하고, 이 자회사의 명의로 새서울방송의 지분 10%에 해당하는 주식을 확보하도록 한다.
 

  
  이 복잡한 과정에서 한바탕 홍역을 치른 새서울방송은 사업의 추가적인 확장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때 소유구조 변동이라는 예민한 문제가 또 불거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증자보다는 사채발행 방식을 택한다. 이때 미국의 '아메리카은행'이 나서서 새로 발행된 새서울방송의 사채를 다량 보유하게 된다.
 

  
  그런데 날로 커지는 새서울방송의 파괴적 영향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에 따라 정부가 나서서 일정한 규제조치를 취함으로써 새서울방송의 자산가치가 감소하게 됐다고 하자. 이런 상황에서 한미 FTA의 투자자-국가 직접소송 제도를 이용해 한국정부를 제소할 수 있는 주체는 폭스TV, AOL-타임워너, 차이나TV, 아메리카은행, 노종현 중 누구일까?
 
 

  
  "세상은 넓다. 이제 어디로 갈까"
  
  2006년에 '글로벌 리걸 그룹(Global Legal Group)'이 낸 <국제중재 2006: 국제 투자자를 위한 국제비교 법률 안내>(Shenkman, 2006)에 의하면, 이 경우 한국정부를 고소할 수 있는 주체는 '모두 다'이다. 물론 FTA의 구체적인 합의내용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다소 다르겠지만, 지난 몇 년 간 국제사회에서 실제로 벌어진 소송의 경우들을 보면 위의 가상 시나리오에서 거론된 종류의 주체들 모두가 투자대상국 정부를 고소하고 있다.
 

  
  최근의 투자협정들이 보여주는 경향에 따르면 첫째, 폭스TV와 같은 '간접투자자(indirect investor)'도 소송을 제기할 자격을 갖는 게 일반적이다.
 

  
  둘째, AOL-타임워너와 같은 '소수주주(minority shareholder)'도 마찬가지다. 지난 2003년에 시작된 아르헨티나 대 CMS의 소송이 그 예다. 미국기업 CMS는 아르헨티나의 국영기업이었다가 사유화된 에너지회사 TGN의 지분 30%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르헨티나가 심각한 외환위기로 인해 외환통제가 불가피한 상황이 되고 이로 인해 TGN의 수익이 타격을 받게 되자 소수주주인 CMS가 아르헨티나 정부를 고소해 ICSID 주관으로 중재재판이 벌어진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CMS가 소수주주에 불과하므로 고소할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중재법정은 "투자협정 어디에도 '투자자'라는 규정만 있지 그 투자자가 다수주주여야 한다는 조건은 없다"는 이유로 그 주장을 묵살한다.
 

  
  셋째, 마찬가지의 이유로 아메리카은행과 같은 '채권 보유자'나 주주의 형태가 아닌 투자자들도 고소할 자격을 갖는 것이 거의 분명한 관행이 돼 있다.
 

  
  넷째, 투자협정의 내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노종현도 새서울방송의 법인 차원에서 한국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다. 투자대상국의 법에 따라 현지에 세워진 법인도 그 소유가 외국 투자자에게 넘어갈 경우 자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도록 하고 있는 투자협정은 다수 존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다섯째, 차이나TV의 경우를 주목해야 한다. 그 악명 높은 '투자협정 쇼핑(Treaty Shopping)'의 경우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초국적 소유구조가 형성된 21세기의 세계경제에서 기업이나 투자자가 어떤 고정된 국적에 묶여 있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저 원하는 국적의 나라로 가서 자회사를 세우든가, 아니면 그 나라의 회사를 인수해버리면 그만이다. 일본의 SF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인터넷과 한 몸이 된 '공각기동대'의 쿠사나기 소령이 내뱉는 회심의 한마디처럼 "세상은 넓다. 이제 어디로 갈까"인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글로벌 리걸 그룹'의 투자자 안내서는 다음과 같이 권유하고 있다.

  
  "투자자들과 기업의 법률자문단은 투자의 초기단계부터 수많은 투자협정들의 최근 발전경향을 잘 살펴 그것들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도록 투자계획을 짜나가야 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만약 투자자가 투자하려고 하는 대상국과 투자자 자신의 나라가 투자협정을 맺지 않은 상태일 경우에는 투자대상국과 투자협정을 이미 맺은 제3국에 투자해 그곳에 자회사를 설립하는 우회적인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투자대상국이 이미 맺은 여러 투자협정들 중에서도 투자자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의 투자협정을 고르라는 전략이 도출될 수 있다. 이 기획연재의 앞부분에서 살펴본 네덜란드-체코 투자협정과 미국-체코 투자협정을 모두 이용한 로널드 라우더와 CME의 경우, 그리고 뒤에 살펴보게 될 벡텔 대 아르헨티나 사건의 경우에 바로 이런 전략이 이용됐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외국 투자자의 우회투자 전략에 따른 국내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협정을 체결하기 전에 어디까지를 '상대국의 투자자'로 인정할 것인지에 대해 세심한 검토를 하고 협상을 해야 한다. 과연 한국정부는 이런 자세로 한미 FTA 협상에 임하고 있을까? 참고로 말하자면, NAFTA의 경우는 외국 투자자가 보호받기 위해서는 그 투자자가 국내에서 '실질적인 사업 활동(substantial business activity)'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단서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런 단서를 둔다 하더라도 '실질적'이라는 것이 과연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것인지에 대한 상세하게 정해놓지 않으면 안심할 수 없을 것이다.
 

  
  한미 FTA가 이 문제에 대해 엉성하게 체결되고 나면, 위에서 본대로 모든 종류의 투자관련 주체들이 다 한국정부를 국제 중재기관에 고소할 수 있다. 게다가 그들이 함께 뭉쳐서 할 필요도 없다. 각자 자기에게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기관과 룰, 투자협정을 입맛대로 골라 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 그래서 한국정부는 하나의 동일한 사건을 놓고도 여러 다른 주체와 여러 다른 곳에서 여러 다른 소송에 동시에 휘말리게 될 수 있다.
 
 

  
  국제 중재심판의 세 가지 특징
  
  그러면 국제 중재심판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먼저 투자자가 소송을 걸 의도가 있다는 통지서(notice of intent)를 투자대상국 정부에 보낸다. 앞에서 설명했던 '규제활동에 대한 된서리(regulatory chill) 효과'가 있기에 투자자는 비용도 거의 들지 않는 이 통지서 한 장만으로도 자신이 원치 않는 투자대상국 정부의 조치를 예방하거나 후퇴시킬 수 있다. 통지서를 받은 정부의 입장에서는 실제 소송이 벌어질 경우 이기거나 질 확률과 질 경우 지급해야 할 배상금의 크기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물러서지 않고 버틸 경우, 투자자는 90일 간의 조회기간(period of consultations)을 거친 후 국제심판 소송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된 소송의 과정을 살펴보자. 다만 이 소송이 공법 체계에 의해 진행되는 일반적인 소송과 구별되는 세 가지 특징으로 나눠 살펴보기로 한다.
 

  
  ① 규칙과 절차는 양쪽 당사자들이 결정한다
  
  국제심판 소송이란 본질적으로 분쟁의 양쪽이 각각 자신을 대표할 수 있는 법적 대표(counsel)을 선임하고, 그 중간에서 심판을 진행하고 재정을 내릴 중재자(arbitrator)를 선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렇게 구성된 중재심판소(arbitration tribunal)는 양쪽 대표가 합의한 절차와 규칙에 따라 심판을 진행한다.
 

  
  이렇게 진행되는 국제심판 소송을 주관하는 국제적 기구와 틀은, 기존에 만들어져 있는 것들이 몇 개 있어서 대부분의 투자협정은 투자자와 국가 간에 소송이 발생할 경우 그 중 어떤 기구와 틀을 통해 소송을 진행할 것인지를 규정해놓고 있다. 가장 널리 이용되는 기구는 앞에서 본 바 있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다. 이것은 1965년에 130개 국이 세계은행 산하에 설립하기로 합의한 기구다. 그리고 분쟁 당사국 중 어느 한 나라가 ICSID 규약에 서명하지 않은 나라일 경우를 대비해 ICSID는 그 산하에 '추가기관(ICSID Additional Facility)'를 두고 있다.
 

  
  이 ICSID 제도의 특징은 투자자와 국가 사이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특별히 마련된 규칙과 절차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규칙과 절차를 정해놓은 국제적인 제도는 이것 말고도 또 있다. 투자협정들 중에는 투자자가 ICSID가 아닌 '국제통상회의소의 중재법정 규칙(ICC rules)'이나 '스톡홀름 상업회의소 중재제도(SCC rules)'를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상업적인 기구들보다는 유엔 산하의 국제상법위원회(UNCITRAL) 규칙을 ICSID 대신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앞에서 든 상업적 기구들은 상설조직이 있어서 그런 조직에서 중재심판 과정을 주관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하지만, UNCITRAL 규칙은 그저 규칙일 뿐 과정을 주관하거나 감독하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UNCITRAL의 경우는 분쟁의 양쪽 당사자가 그저 그 규칙에 따라 자신들의 분쟁만을 다룰 특별 중재심판소(ad-hoc arbitration tribunal)를 새로 구성하게 돼 있다. 그리고 투자협정에 따라서는 어떤 규칙을 따를 것인가를 전혀 정해놓지 않고 규칙부터 양쪽 당사자가 협상해서 결정하도록 하는 '고전적인 특별 중재심판소(classical ad-hoc arbitration tribunal)'의 방식을 선택사항으로 올려놓은 경우도 있다.
 

  
  이들 각각의 기구와 제도는 서로 다른 역사적 기원과 맥락에서 발전해 온 것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차이와 특징이 있다. 대부분의 투자협정은 이들 가운데 몇 개를 '메뉴'로 제시해놓고 투자자로 하여금 그 중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NAFTA는 ICSID의 두 가지 기구와 함께 UNCITRAL의 특별 중재심판소를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어 두고 있다. 그래서 보통 규칙과 제도를 양쪽 당사자가 함께 정하는 고전적인 국제 분쟁조정 절차와 달리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의 경우에는 투자자가 자기에게 가장 유리해 보이는 제도를 선택하고 그것을 통해 투자대상국 정부를 공격하는 '규칙 쇼핑(rule-shop)'을 감행할 수 있다.
 

  
  ② 중재심판의 진행과정은 철저히 비공개다
  
  규칙과 절차가 결정되면 양쪽은 각자의 법적 대표(counsel)를 내세우고 심판관을 결정하며, 양쪽의 법적 대표와 심판관이라는 세 주체로 중재심판소가 구성된다. 심판관은 양쪽의 합의로 결정되기도 하지만, 널리 이용되는 ICSID 규칙을 이용하는 경우에는 ICSID에서 미리 작성해놓은 명단에서 한 사람을 지명하는 방식으로 선임된다. 이어 세 주체가 분쟁의 쟁점들에 관한 서류를 주고받고 반대심문을 하는 등을 절차를 거친 다음 심판관이 재정(award)을 내리게 된다.
 

  
  그런데 이는 철저하게 세 주체만의 과정이며, 세 주체 외에는 누구도 중재심판소에 가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수 없다. 진행과정 전체도 철저하게 비공개다. 양쪽 당사자는 자신의 문서나 의견을 공개할 의무가 없다. 심판관은 누구이며, 양쪽의 법적 대표가 각각 누구인지도 비밀이다. 심지어 판결문은 말할 것도 없고 누가 이겼는가조차 비공개다. 이뿐만이 아니다. 양쪽 모두 중재심판 소송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조차 공표할 의무가 없다. 따라서 양 당사자 외에는 어떤 사건이 존재하는지조차 알 길이 없다.
 

  
  중재심판이 이렇게 철저한 비밀성(confidentiality)의 원칙을 갖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중세 이래 상인법의 유제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장사와 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온갖 사업상 기밀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지켜야 할 평판도 있다. 상업적 분쟁의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분쟁과 관련해 소송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공공에 알려지는 것이 도움이 될지 어떨지는 상당히 민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앞에서 말한 대로 원래 상인법에 의한 심판이란 무슨 공공의 이익처럼 여러 사람들의 이해가 걸린 문제가 아니라 그저 두 장사꾼이 만나 '쇼부를 치는' 과정에 불과한 것이니 그 내용을 공표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이런 비밀성의 원칙으로 인해 투자자-국가 직접소송 제도의 현황을 파악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우선 1990년대 이래 벌어진 투자자와 국가 간 소송이 몇 건이었는지, 현재 그런 소송이 몇 건이나 진행되고 있는지의 숫자조차 완전히 오리무중이다. 그저 ICSID만이 소송 사건이 발생하면 이를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심판일정을 공표하게 돼 있으므로 ICSID의 자료를 통해 투자자-국가 소송 전체의 대략적인 증감 추세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전체 소송 건수 중에서 ICSID에 등록되어 우리가 알게 되는 소송의 건수가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지도 파악할 수 없는 상태이니, ICSID 자료를 통한 전체 추세 짐작이 어느 정도나 신빙성이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지금도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어디에선가 얼마짜리인가의 소송이 어느 기업과 어느 나라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소송이 좀 큰 건일 경우에는 그 판결문이 국제 법률업계에 나도는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럴 경우에도 소송 양측의 명의는 물론 판결문 내용 중에서 양쪽 당사자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정보는 모두 지워진 상태로 회람된다고 한다(정보 비공개에 대한 문제제기의 목소리가 커지자 NAFTA의 경우 소송 관련 통지서를 보관하고 있다가 요청하는 이가 있을 경우 그 사본을 교부하도록 했다고 한다).
 

  
  우리가 어떤 소송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포함해 소송 사건에 관한 어떤 정보이건 알게 되는 것은 오로지 양쪽이 공개에 동의하거나, 혹은 어느 한쪽이 그것을 널리 알려서 공론화시키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할 경우뿐이다. 따라서 소송에 걸린 금액이 무척 크거나 아주 중대한 공적 이익과 관련된 소송의 경우에는 소송이 진행된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고 그 사건의 내용도 비교적 잘 알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해당 소송 자체의 과정에는 양쪽 당사자와 심판관 등 세 주체 외에는 누구도 참여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이런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계속 불거지자 중재심판소들은 '심판소의 벗들(amici curiae)'이라는 이름의 틀을 허용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심판소에서 논의되고 있는 문제와 관련이 있는 환경단체나 지역주민을 비롯해, 투자자와 투자대상국이라는 당사자 이외의 이해집단에게 자신들의 의견과 입장을 심판소에 전달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양 당사자가 동의할 경우에만 가능하며, 설사 이 틀을 이용해 이해집단이 의견이나 입장을 심판소에 전달한다 해서 그것이 어떤 구속력을 갖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재판진행 과정을 청취하거나 관련 문서들을 열람할 기회가 '벗들'에게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③ 중재심판소는 법적 대표들은 물론 심판관도 보상을 받는 상업적 원칙으로 운영된다
  
  우리가 아는 보통의 재판에서는 분쟁의 양쪽 당사자가 그 재판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 특히 공공의 이익과 관련된 사안에 대한 재판인 경우에 분쟁의 양쪽 당사자는 재판의 절차와 규칙은 물론 판사 선임에도 어떠한 영향도 미쳐서는 안 된다. 이것은 상식에 속한다. 판사가 분쟁의 양쪽 당사자와 금전적인 관계로 얽힌다는 것은 완전히 상식 밖의 일이다.
 

  
  그러나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을 다루는 중재심판소는 분쟁의 양쪽 당사자의 법적 대표는 물론이고 심판관도 보상을 받는다는 상업적인 원칙 아래 운영된다. 이는 일반적인 재판의 상식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상인법의 오랜 전통에서 보면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분쟁이 생겨 골치가 아프게 된 상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중재심판소의 심판관은 그 분쟁을 해결해주는 값진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셈이니 마땅히 그에게 응분의 보상을 해줘야 하는 것이다.
 

  
  심판관에게 지불되는 보상의 금액은 얼마나 될까? ICSID는 2002년에 심판관에게 지불되는 일일 수수료를 1100달러에서 2000달러로 인상했다고 한다. 이렇게 했어도 ICSID의 심판관 보상 금액은 다른 여러 중재제도들에 비하면 제일 싼 편이라고 한다. ICSID의 추정에 따르면, 국제적으로 행해지는 중재심판에서 심판관이 받는 수수료는 평균 22만 달러라고 한다. 분쟁의 양쪽 당사자가 각각 자신의 법적 대표에게 지불해야 하는 금액은 이보다 훨씬 더 크다.
 

  
  게다가 심판소 유지에 필요한 각종 비용까지 지불돼야 하니 소송비용은 몇 백만 달러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메탈클래드(Metalclad) 사건으로 인해 멕시코 정부는 소송비용으로만 400만 달러를 지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에서 본 CME 사건의 경우에는 체코 정부가 두 개의 소송에 모두 1000만 달러를 지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것이 심판관 보상비까지 포함된 금액인지는 확실치 않다.
 

  
  누구를 심판관으로 선정하느냐가 최종 심판결과에는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나중에 다시 보겠지만, 국제법 체계는 물론 심지어 판례도 구속력을 갖지 못하는 가운데 분쟁의 양 당사자가 팽팽하게 맞서는 중재심판 과정에서 심판관이 결정적인 캐스팅 보트를 쥘 수밖에 없다고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국제 중재심판의 경험이 있는 법률가들은 그 숫자가 극히 제한되어 있어, 한 법률가의 표현대로 서로 뻔히 다 아는 일종의 '클럽'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특정 기업이 제기한 소송의 중재심판에서 그 기업의 법적 대표로 일한 법률가가 다음 번에 그 기업이 제기한 다른 소송에서는 중재심판의 심판관으로 나서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그런데 중재심판에 나올만한 법률가들에 관한 정보에서도 그렇지만 그들과의 인적 친밀성에서도 국가보다는 초국적 기업이 더 나을 수밖에 없고, 그런 법률가들은 국제 중재심판 시장에서 인정을 받고 평판을 쌓아 계속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는 초국적 기업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홍기빈/국제정치경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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