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관리들의 기상천외한 '세계표준'론

 

  [한미FTA 뜯어보기 120 :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정치경제학(14)] 정부의 인식
  2006-10-15 오후 2:14:18
  우리는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를 포함한 한미 FTA가 체결된 뒤인 2020년에 한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한 공상소설로 이 기획연재 글을 시작했다. 그리고 아득한 중세로 돌아가 상인법과 근대 국제법이 어떻게 나타났고 20세기 들어 어떤 변용을 거쳐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라는 제도를 낳았는지를 살펴보았다.
 
 

  
  '구조조정'에 이은 '국가사회 속살 공격'
  
  그러면서 '투자자의 보호'라는 말의 의미와 '보호'라는 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구체적인 과정을 들여다보았다. 아울러 이 제도가 현재 얼마나 무서운 기세로 지구를 덮치고 있는가, 그리고 이에 대한 반대운동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가도 보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 제도가 어떤 특정한 사안, 특정한 부문에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전 사회, 전 부문에 걸쳐 그 파괴력을 미치고, 그 뒷감당은 모두 국가와 국민들에게 돌아오며, 이 제도를 통해 요구되는 배상금액이 적은 규모가 아님을 알게 됐다.

  
  또 이 제도는 흔히 상식적으로 생각하듯이 국내법이나 국제법의 원칙에 따라 작동하는 제도가 아니라 상인법이라는 오래된 전통과 1990년대 이후 자본의 지구화라는 시대적 국면이 만나며 생겨난 희한한 제도이며, 그 핵심은 투자자가 주권국가와 동일한 법적 지위를 얻어 주권국가의 모든 권력행사에 도전할 수 있게 하는 제도임을 보았다.

  
  즉 자본의 지구화 전략이 1980년대에는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을 앞세운 '거시경제' 차원의 '구조조정'이었다면, 1990년대 후반 이후에는 그 과정을 통해 껍질이 벗겨져 나간 세계 각국 내부의 속살을 공격적으로 재구조화하는 것이고,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는 바로 그러한 1990년대 후반 이후 자본의 지구화 전략에 속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그 성격을 진단했다.

  
  따라서 이 제도는 투자자를 보호하는 '방패'가 아니라 투자자가 투자대상국의 정치, 사회, 문화 전반을 헤집어 놓을 수 있는 '창'이며, 이 창의 양날은 '투자자 보호'와 '중재심판 과정'에 있음을 우리는 알게 됐다.

  
  투자자 보호란 흔히 생각하듯 투자대상국 정부가 외국 투자자의 소유를 물리적으로 강탈하거나 그 사용권을 빼앗아가는 것을 막는다는 뜻이 아니다. 여기서 '투자자'란 투자대상국에서 돈이 될 만한 것이면 무엇이건 사들이는 사람을 지칭하며, '보호'란 투자자가 그런 행위를 통해 벌어들일 예상수익에 타격을 입는 일이 없도록 투자자가 가진 사회적 권익과 기득권을 국가가 보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라는 '창'의 두 번째 날인 '보호'를 놓고 벌어지는 시비에 대해 판정을 내리는 국제 중재심판이라는 장치가 어떤 것이고 어떻게 진행되며 어떤 문제점이 있는가를 살펴보면서, 상인들 간의 상업적 분쟁을 다루는 데에나 적합한 이 제도로 하여금 국가의 정책이 대상으로 삼는 '공공이익'의 문제를 다루게 하는 것이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낳게 되어 있는지를 알게 됐다.

  
  이어 그런 양날을 가진 창이 휘둘러지는 양상을 들여다보니 이 제도가 얼마나 다양하고 폭넓은 영역과 관계가 있는지, 그 창이 얼마나 공격적으로 휘둘러지는지, 국가와 국민들은 그것에 대항하는 전략의 선택에서 얼마나 제한되어 있으며 얼마나 무기력하게 끌려가야 하는지를 우리는 몇 가지 사례들을 통해 확인했다. 그 몇 가지 사례들은 결코 특수한 경우가 아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지구적 차원에서 그러한 '창'에 대항해 수많은 풀뿌리 보통사람들, 운동단체, 지방자치단체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의 지배 엘리트들까지도 일정하게 저항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상황을 보았다.

  
  이제 다시 2006년 대한민국으로 돌아오자. 먼저 우리 정부는 과연 이 제도에 대해 어떤 인식과 이해를 가지고 있는가를 알아보자.
 
 

  
  대한민국 정부의 안이한 인식과 이해
  
  우리 정부가 이 제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우리가 알게 된 계기는 불행하게도 '폭로기사'였다.

  
  정부는 지난 2월 초 한미 FTA 협상 개시 선언을 한 이후로 한사코 우리 측 협상안의 공개를 거부했다. 그러자 <프레시안>이 그 내용을 입수해 지난 5월 19일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사건이 벌어졌고(☞'미국기업에 한국정부 제소권 보장'), 이를 통해 우리 측 협상안의 8장 투자 항목에 '국제중재를 이용한 적법 분쟁해결절차 보장',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가 들어 있음이 확인됐다.

  
  이에 대해 외교통상부는 곧바로 유감을 표명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은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가 협상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고 대신 이 제도는 마땅히 협상안에 들어가야 하는 표준적인 사항임을 길게 설명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진 뒤 이 제도에 대해 수많은 이들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이 제도는 반드시 협상안에서 제거돼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특히 청와대 경제보좌관을 지낸 정태인 씨가 <경향신문> 6월 28일자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 제도는 "다국적 기업의 이윤추구 행위를 방해하는 모든 법, 제도, 관행이 제소의 대상"이 되도록 할 것이며, UPS 사건에서 보듯이 철도, 우편, 수도 등 모든 분야에서 민영화나 가격인상 등의 큰 변화를 일으킬 위험을 안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한다(정태인 씨 외에 한신대학의 이해영 교수는 한미 양자간투자협정(BIT)의 논의 단계에서부터 이 문제를 천착해 왔고, 송기호 변호사는 이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여러 회의 글을 <프레시안>을 통해 발표한 바 있다).

  
  이에 외교통상부가 "밑도 끝도 없는 주장"이라고 반발하고 나서고 재정경제부에서도 몇 개의 보도자료를 내는 등 논쟁이 벌어지면서, 이 제도에 대한 정부 관리들의 인식과 입장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몇 개의 보도자료와 관리들이 신문에 기고한 칼럼, 그리고 '국정브리핑'에 게시된 정부 각 부서의 성명이나 홍보물 등을 토대로 정부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요약해본다.
 

  
  ①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의 성격
  
  "이 제도는 권력을 앞세운 국가의 횡포로부터 외국 투자자를 보호하는 제도다. 이것은 강대국의 자본가가 자국 정부의 '군함외교(gunboat diplomacy)'를 앞세워 자신이 투자한 나라의 정부에 힘을 행사하는 '힘의 논리'를 막기 위해 시작된 것이며, '자원 민족주의'를 앞세워 걸핏하면 국유화를 일삼는 경우에 외국 투자자를 안심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보편화됐다. 그래서 그 성격은 본질적으로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적인 것'이며, 이미 대부분의 투자협정에 포함된, 세계적으로 표준화된 제도다."
  
 

  ②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의 적용범위
  
  "위와 같은 성격으로 볼 때 이 제도가 환경, 보건, 공공정책 등을 시작으로 '다국적 기업의 이윤추구 행위를 방해하는 모든 법, 제도, 관행'을 제소의 대상으로 삼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실로 근거 없는 주장이다. 이 제도는 내국인 대우, 이행의무 부과 금지 등과 같은 협정의 중요한 의무위반에 한해서만 투자자의 투자대상국 제소가 가능하게 돼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외환위기 이후 투자에 관한 제도를 상당히 국제표준에 맞추어놓았다. 따라서 이 제도로 인해 소송 건수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보는 것은 기우다. 아니, 그런 걱정을 할 게 아니라 오히려 제소당할 일이 없도록 외국 투자자에 대한 보호를 확실하게 하는 것이 세계화 시대에 정부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③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에 대한 기존의 비판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가 환경, 보건, 안전, 노동과 같은 사회적 부문에서 국가의 각종 규제와 행정을 파탄 낼 것이라는 비판이 있는데 이는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경우 환경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조항이 있어 이 제도가 그렇게 남용되는 것을 막는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그런 비판은 모두 NAFTA 지역에서 벌어진 메탈클래드 사건과 에틸 사건을 피상적으로만 검토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예를 들어 에틸 사건은 환경정책을 가장해 캐나다 기업에 이득을 주려 했던 캐나다 정부 행정의 보호주의적 성격에 그 본질이 있다. 게다가 미국은 2004년에 이 제도에 대한 비판을 감안해 환경, 보건, 안전 등을 위한 정부조치는 소송대상에서 제외하는 방향으로 표준적 조항을 수정한 바 있다."
 

  
  ④ 정부가 나아가야 할 방향
  
  "따라서 이미 세계표준이 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를 협정에서 제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강하게 관철시켜 명시적으로 협정 문안에 성문화시키면 된다. 우리가 미국과 의견을 달리 하는 쟁점들(예를 들어 국제 중재심판이 벌어질 때 미국이 주장하는 대로 그 절차를 공개할 것인가 등)은 분명히 있다. 특히 중요한 것으로는 수용과 관련된 재판의 관할권을 국내로 할 것인지 국제 중재심판소로 할 것인지가 있다. 또 투자계약이나 투자인가와 같은 사안들까지 국제 중제심판의 대상으로 삼는 것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부정적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사안들은 우리의 입장을 협상에서 관철시켜야 할 것들이지,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 자체를 거부할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UNCTAD 국장 "각국 정부는 협상할 때 조심하라"
  
  앞에서 우리가 살펴본 바와 정부의 위와 같은 인식 사이에는 실로 큰 격차가 있다. 앞에서 10여 회에 걸쳐 했던 이야기를 여기서 또 다시 반복할 수는 없으니, 지혜로운 독자들께서 위와 같은 정부의 입장에 대해 어떤 반론이 제기될 수 있는지를 직접 생각해보시길 바란다. 다만, 중언부언이 될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위와 같은 우리 정부의 입장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한 번 더 논평을 붙여보겠다.
 

  
  ①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의 성격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의 근원이 '군함외교'로부터 약소국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분석은 가히 기상천외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군함외교란 19세기 영국의 해외 군사정책을 지칭하는 대명사로서, 제대로 채무를 변제하지 않는 나라를 위협하기 위해 주력함대가 아닌 몇 척의 군함만을 보내 은근히 무력시위를 하던 관행을 일컫는 말이다. 반면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는 1990년대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터져 나오는 다양한 투자협정 및 무역협정들에서 나타난 제도다. 게다가 '자원 민족주의'의 위험성에 관한 논리도 우리나라와는 별 상관이 없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기준으로 보아도 이미 외국 투자자의 권한에 관한 한 상당히 자유화된 나라에 속한다.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를 도입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혹시 차베스의 베네수엘라와 같은 나라가 되지 않을까 하고 두려워 할 외국 투자자가 있을 리 없다. 이 제도에 대한 정부의 이런 인식에서는 이 제도가 외국 투자자의 '방패'가 아니라 '창'이 돼버리고 만 1990년대 이후 지구정치경제의 상황에 대한 무지가 절절히 드러난다.
 

  
  ②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의 적용범위
  
  이 기획연재 글을 쓰면서 필자는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가 투자대상국의 공공정책을 포함해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제도 전체에 대해 힘을 발휘할 수밖에 없는 논리적, 역사적 구조와 실례, 그리고 그에 대한 저항의 사례들을 소개해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일개 백면서생의 목청만으로는 국사에 바쁜 정부 관리들의 주의를 끌지 못할 수도 있으니, 비단 NAFTA와 관련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벌어진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의 건수를 포괄적으로 조사한 결과가 수록된 2004년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자료의 일부를 다음과 같이 인용해 둔다.

  
  "중재소송 사건들은 각종 투자활동의 전 영역과 모든 종류의 투자를 아우르고 있는데, 여기에는 사유화 계약과 국가의 사업허가(state concessions)도 포함된다. 소송의 대상이 된 국가조치에는 금융위기 중에 시행한 비상 법률들, 각종 부가가치세, 농업용지를 상업용도로 재조정한 것, 위험폐기물 시설에 대한 조치들, 외국 투자자가 소유한 공기업 주식의 박탈에 관한 의도 통지에 관련된 문제들, 방송매체 규제기관이 외국 투자자를 어떻게 다루는가 등이 모두 포함된다. 분쟁에 걸린 조항들은 공평 대우, 내국인 대우, 수용(규제적 수용 혹은 수용에 맞먹는 조치들), 협정의 정의와 범위 등에 관한 것이다. 협정에 근거한 분쟁이 벌어진 경제부문들에는 건설업, 상하수도 서비스, 양조업, 원거리 커뮤니케이션 사업 허가, 은행 및 금융 서비스, 호텔 경영, TV와 라디오 방송, 독극폐기물 처리, 섬유 생산, 가스와 석유 생산, 다양한 형태의 광업 등이 포함된다."

  
  그리하여 UNCTAD의 '투자기술기업개발국(Division on Investment, Technology and Enterprise Development)' 칼 소방(Karl P. Sauvant) 국장은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이 모든 상황을 볼 때 각국 정부들은 투자협정에 관한 협상을 할 때 대단히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편 위의 '③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에 대한 기존의 비판'과 '④ 정부가 나아가야 할 방향' 부분에 요약된 정부의 입장과 주장은 우리가 특별히 강조점을 두어 좀 길게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 문제는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법적 관할권(jurisdiction)의 이동'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홍기빈/국제정치경제 칼럼니스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호주는 어떻게 직접소송제를 물리쳤나

 

  [한미FTA 뜯어보기 119 :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정치경제학(13)] 호-미 FTA
  2006-10-13 오전 9:16:07
  2004년에 미국과 자유무역협정(AUSFTA)을 체결한 오스트레일리아의 국민들과 정부가 그 협상 및 체결 과정에서 가장 큰 쟁점으로 떠올랐던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의 성격과 위험성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그리고 어떠한 선택을 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이렇게 하는 것은 'NAFTA 플러스'형 FTA를 한미 양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다는 소문이 떠도는 지금 시점에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줄 것이다. 왜냐하면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에 규정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가 멕시코와 캐나다에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켰음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제도에 대해 오스트레일리아 관리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대응했는가를 되짚어보는 것은 우리나라 정부 관리들이 지금 이 제도에 대해 보여주고 있는 인식과 태도를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MAI가 일깨운 경각심
  
  오스트레일리아 자체도 오랜 보호무역의 전통을 가진 나라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에 대한 경각심과 반대운동이 '풀뿌리'로부터 시작돼 번져나간 움직임의 직접적인 근원은 1990년대 후반에 벌어진, 다자간 투자협정(MAI)에 대한 국제적인 반대운동이었다고 한다.

  
  당시 MAI에 맞선 반대운동 진영에는 단순히 전통적인 좌파 운동단체들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이 반대운동 진영은 각종 교회 조직, 노조, 지역개발 단체, 원주민 조직, 환경단체, 인권운동 조직, 법률자문 단체, 심지어 기업계 단체들까지 포괄하고 있었다. 이렇게 폭넓게 조직된 MAI 반대진영은 미국이 NAFTA 11장에 규정된 방식의 투자자 보호 장치를 오스트레일리아와 체결할 FTA에도 집어넣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자 오스트레일리아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 제도에 대한 강렬한 반대의사를 표명하기 시작했다.

  
  특히 오스트레일리아 국내에서는 각급 지방정부에서도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빅토리아 주의 주지사는 이 제도가 북미지역에서 "주정부 및 지방정부의 주권과 통제력을 침식"하고 "지역 내 기업체보다 외국 투자자들에게 더 유리한 대우"를 해주는 데 이용됐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제도에 대한 시민사회의 여론이 좋지 않은데다 관리들까지 이런 인식을 하고 있었기에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이 제도를 미국과의 FTA에 포함시키는 데 대해 미국 관리들보다 훨씬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마침 당시에 통과된 싱가포르-오스트레일리아 자유무역협정(SAFTA)에 투자자-국가 분쟁해결 메커니즘이 들어갔다(8장)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혹시 중앙정부가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에도 이 제도를 집어넣으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경각의 여론이 끓어올랐다. 물론 SAFTA 8장은 NAFTA 11장과는 성격이 판이하다. 먼저 직접수용과 간접수용을 명확하게 구별하고 있고, 외국 투자자에 대한 내국인 대우에 대해서도 수많은 제한규정을 두고 있으며, 8장 전체가 NAFTA 11장의 복사가 아니라는 문구도 명시돼 있다고 한다.

  
  오스트레일리아가 그 전에 다른 나라들과 맺은 여러 협정들 중에도 투자자 보호 조항이 들어간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개발도상국들과 맺은 협정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선진국의 반열에 속하는 싱가포르와의 협정에도 이 조항이 포함됐다는 소식은 첨예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따라 의회에서는 정부의 협상단에 대한 추궁이 이어졌다. 정부의 수석 협상대표인 스티븐 데디(Stephen Deady)가 "오스트레일리아의 국가이익이 반영되도록 문구를 잘 짜 넣을 수 있다"고 말하며 빠져나가려 했을 때 노동당 소속 스티븐 콘로이(Stephen Conroy) 의원은 이렇게 몰아붙였다. "그런 식으로 법적 정의를 엄격히 해봐야 그걸 뒤바꾸는 것을 업으로 삼는 변호사들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변호사들은 돈만 주면 흑을 백이라고 우기면서 소송을 만들어내는 이들이며, 종종 흑이 백이라는 주장을 관철시키고 만다." 요컨대 그런 변호사들에게 이용될 빌미가 될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 자체를 협정에서 근원적으로 빼라는 것이었다.
 
 

  
  상원 자문위 "미국기업이 부당한 권력을 갖게 된다"
  
  마침내 2003년 11월 오스트레일리아 상원의 외교안보통상 자문위원회는 미국과의 무역협정에 관한 포괄적인 보고서를 제출했고, 이 보고서에서 투자자 보호 조항을 협정에서 뺄 것을 강력하게 권유한다. 이 자문위원회 보고서는 국내외 전문가들의 의견을 두루 듣고 오랜 기간의 숙의 끝에 작성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이 보고서를 통해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에 대한 오스트레일리아 상원 자문위의 평가의견을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특히 그것이 우리 정부 관리들의 인식과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를 확인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먼저 이 보고서는 NAFTA 11장이 투자기업들이 투자대상국 정부를 자기 뜻대로 좌지우지한다는 비판을 광범위하게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한다. 그런가 하면 분쟁에 대한 심판이 벌어지는 ICSID(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나 UNCITRAL(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은 기본적으로 상업적 분쟁조정을 모델로 한 것이어서 "절차나 공청의 투명성이라는 기본원칙을 갖추지 못한 특별한 심판소이자, 분쟁이 벌어져도 공공에 알릴 의무도 국내 행정법에서와 같은 공공이익에 대한 요건 같은 것도 없다"는 문제점도 지적한다.

  
  또 이 보고서는 비록 오스트레일리아가 과거에도 여러 다른 국가들과 투자자 보호 조항이 포함된 협정을 맺은 적이 있지만, 싱가포르의 경우만 빼면 그것들은 법치 질서가 확립되지 못한 개발도상국들과의 관계에 국한된 협정들이었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미국기업이 투자자 보호 조항을 이용해 다른 나라 정부를 압박하는 사안들을 보면, UPS 대 캐나다 사건에서와 같은 공공서비스, 메탈클래드 사건이나 에틸 사건에서와 같은 환경과 보건 등 다양한 쟁점들에 걸쳐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고 나서 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표명한다.

  
  "본 위원회는 NAFTA를 모방한 자유무역협정은 지방정부, 주정부, 중앙정부 등 모든 차원에서 정부의 규제에 도전할 수 있을 만한 부당한 권력을 미국기업들에게 넘겨주게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렇게 오스트레일리아 국내의 여론이 풀뿌리에서 지방정부를 거쳐 상원에 이르기까지 하나로 뭉쳐 투자자 보호 조항을 반대하는 방향으로 가니 정부 협상단도 달리 행동할 도리가 없었다. 2004년 1월 워싱턴에서 벌어진 최종 협상에서 미국이 강력하게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밀어붙였을 때 오스트레일리아 정부 대표단은 "그러한 안은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다(unacceptable)"는 이유를 대면서 강경하게 맞섰다고 한다. 결국 미국 측이 후퇴했고, 그 결과 미국이 강력하게 주장했던 NAFTA 식의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는 무역협정에서 빠지게 됐다.

  
  최종적으로 체결된 AUSFTA(오스트레일리아-미국 FTA)는 11장에서 분명히 외국 투자자가 투자대상국 정부를 상대로 중재심판을 요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와 다르다.

  
  AUSFTA의 규정에 따르면 투자자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먼저 투자대상국 내의 모든 가능한 수단과 조치를 다 밟아야 한다. 그러고도 만족할 수 없을 경우에도 투자대상국 정부를 직접 심판소로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국 정부에 돌아가 호소해야 한다. 그래서 중재심판이 벌어지더라도 양 당사자는 오로지 두 나라의 정부로 국한된다. 이는 사실상 전통적인 '국제공법/국제사법' 체제로의 회귀이며, 1990년대 이후에 기묘한 형태로 되살아난 '상인법 전통의 국제 중재심판'과는 전혀 다른 틀이다.

  
  게다가 투자자와 국가 사이가 아닌 양 국가 사이에도 중재심판이 벌어질 가능성이 극히 낮다. AUSFTA에 따르면 중재심판은 "분쟁의 해결에 영향을 줄만한 중대한 상황변화"가 일어난 경우에 한해 열린다고 돼 있는데, 여기서 '상황변화'란 두 나라가 역사적으로 오래 전부터 공유해 온 법전통을 일컫는 것이다. 따라서 '상황변화'란 법전통이 근본적으로 뒤바뀌는, 사실상 혁명과 같은 극단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셈이 된다.

  
  오스트레일리아가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를 거부한 유일한 예는 아니다. 미국이 싱가포르 및 칠레와 맺은 무역협정과 같은 소위 'NAFTA 플러스'의 형태로 추진되던 전미자유무역협정(FTAA)도 남미를 휩쓸게 된 강력한 반미, 반신자유주의의 열풍에 밀려 현재 중단된 상태이며, 그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극히 불투명하다. FTAA와 관련된 남미 사람들의 분노가 향하는 가장 중요한 타깃은 바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를 비롯한 투자자 보호 조항이다. 그런가 하면 미국도 2004년에 새로 만든 양자 간 투자협정(BIT) 모델에서는 애매하게 함부로 이용될 위험이 있는 '간접수용'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한정하는 부속서를 첨가하게 된다.
 
 

  
  미국은 왜 뒤로 물러난 걸까?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조야(朝野)가 똘똘 뭉쳐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를 반대했고, 마침내 미국과의 협상에서 이 제도를 것을 철회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이해가 간다. 그런데 애초에는 이 제도를 AUSFTA에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던 미국 쪽은 왜 뒤로 물러난 것일까?

  
  우리나라 정부의 관리들은 미국 정부도 다른 나라 투자자에 의해 소송에 걸릴 수 있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면서 이 제도의 정당성을 설파한다. 그렇지만 이 제도가 미국 정부만 빠져나갈 수 있는 제도라는 이유로 이 제도를 비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실제로 미국도 NAFTA 11장이 보장하는 다국적 기업들의 넓어진 오지랖에서 자유로운 것이 아니었다.

  
  캐나다의 장례(葬禮)업체인 뢰벤(Loewen), 화공업체인 메타넥스(Methanex), 부동산업체인 몬데브(Mondev International)가 차례로 미국 국내 사법부의 판결에 불복하고 NAFTA 11장을 이용해 국제 중재심판소로 달려가 미국 사법부의 판결을 분쟁대상으로 삼아버렸다. 미국인들은 졸지에 자기 나라 법정이 외국 어딘가에서 비밀리에 만나는 세 사람이 마음대로 판단하는 대상으로 전락한 꼴을 보게 된 것이다. 특히 이 일을 당하면서 미국의 법조인들이 겪은 당혹감은 상당한 것이어서, 결국 이들을 중심으로 국가의 주권을 침해하는 NAFTA 11장을 어떻게든 바꾸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진다.

  
  미국 공영방송(PBS)의 라디오 쇼 '전국(The Nation)'에서 어떤 논자는 이러한 미국 여론의 배후에 깔린 감정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만약 미국인들이 메타넥스 때문이건 뢰벤 때문이건 누구 때문이건 미국에 해가 가해지는 판결이 한 건이라도 나오는 것을 보게 된다면 대단한 충격을 받을 겁니다. 우선 이렇게 말하겠죠. '응? 뭐야 이거? 뭐 이런 게 다 있어?' 어떻게 된 건지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면 이렇게 말할 걸요. '우리가 언제 이런 걸 하자고 했어? 누가 이런 걸 국제 무역협정이라고 하는 거야? 그 다음에는 아주 빠르게 분노의 단계로 넘어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2002년이 되면 미국 전역의 각급 자치단체와 임의단체들이 NAFTA 11장의 위험성에 대해 우려를 표현하는 흐름이 거세게 나타났고, 여기에는 캘리포니아, 미네소타, 오클라호마, 오리건 등의 주의회들도 참여한다.
 
 

  
  대선주자 존 케리의 견제
  
  그리하여 2002년 미국 대통령에게 무역촉진권한(trade promotion authority, 소위 'fast track')을 부여하는 문제를 놓고 의회에서 심의가 벌어졌을 때 민주당 상원의원 존 케리(John Kerry, 2004년 대통령 후보)는 앞으로 있을 미국의 자유무역협정에는 NAFTA 11장과 같은 조항을 넣지 못하게 하는 수정조항을 무역촉진권한법에 삽입하자고 주장한다. 또 이 수정조항에는 '수용'의 개념과 관련해 그동안 넓게 해석된 '간접수용'의 의미를 배제하고 물리적인 사적 소유 침해로 국한시킴으로써 미국 국내 헌법 전통에 맞도록 좁은 의미로 규정하도록 하자는 내용도 담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비록 다수표를 얻는 데는 실패했지만, 존 케리 의원의 이 발의는 당시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오스트레일리아와 협상을 한 2003년경이 되면 심지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서도 NAFTA 11장이 현실적으로 운영되는 방향은 NAFTA 체결 이전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흐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미국은 2005년 7월에 비준한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에서는 NAFTA 11장에 들어있는 '수용에 맞먹는 조치'라는 조항을 아예 삭제하고 보건, 안전, 환경 등의 규제조치는 '간접수용'에 해당하지 않으며 따라서 배상도 할 필요가 없는 대상이라는 명시적인 해석규정을 두기에 이른다(송기호, '미 대법관들이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맞선 이유', <프레시안>, 2006년 7월 26일).

  
  지난 십몇 년 간 지구경제는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라는 국제법 사상 초유의 실험을 할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이 제도의 힘(투자자들에게는 위력, 그 일방적인 소송대상으로 전락한 정부와 민중들의 입장에서는 파괴력)은 유감없이 입증됐고, 양에서나 질에서나 폭발적으로 증대되고 있다. 그래서 이 제도를 둘러싼 논쟁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이 제도를 선호하거나 이용하려는 경향만큼이나 이 제도에 대해 강력히 반대하는 경향이 존재하면서 이 제도에 올가미를 씌우려 하고 있는 것이다.
 
   
 
  홍기빈/국제정치경제 칼럼니스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뭐? 배상금을 33조원이나 요구했다고?

 

  [한미FTA 뜯어보기 118 :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정치경제학(12)] 상황과 경위
  2006-10-12 오전 9:03:35
  앞에서 살펴본 대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는 그 내적 논리로나 실제 현실에서 빚어내는 상황으로나 실로 놀랄 만한 심각한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정부는 이 제도가 "외국 투자자 보호에 관련해서만 발동되는 방어적 제도"이며 이미 1960년대부터 존재해 온, 세계의 모든 자유무역협정(FTA)과 양자 간 투자협정(BIT)에서 "일반적으로 채택되는 표준절차"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정부는 왜 이런 주장으로 우리를 안심시키려고 하는 것일까? 과연 그럴까?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가 그렇게 부당한 국가의 조치에 대해서만 발동되는 예외적인 장치일까? 그리고 이미 오래 전부터 세계경제에 뿌리 내린 표준절차이니, 이 제도에 대한 비판과 경각심은 국정브리핑에 글('정부제소권은 힘의 논리 배제 장치', news.go.kr, 2006년 7월 26일)을 쓴 어느 관료의 말처럼 "밑도 끝도 없는" 것일까?
  

  아니면 필자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대로 이 제도는 투자대상국을 자본의 이해와 요구에 맞도록 전면적으로 재구성하는 무기로서 1990년대 이후, 특히 최근의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와 맞물려 갑자기 힘을 얻고 있는 공격용 '창'인가? 또 그것은 '표준절차'이기는커녕 세계 곳곳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여기저기서 거부당하고 있고, 급기야는 그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조차 시민사회가 폐지운동에 나선 제도인가?
  
 
 

  삼사 년 전부터 폭증하기 시작한 소송
  
  먼저 아래 그림을 보자.
  
▲ ⓒ 프레시안

  이 그림을 보면 투자자와 국가 간 중재심판이 실제로 벌어진 건수가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미미했지만 그 뒤로 기록적으로 늘어나 이제는 알려진 것만으로도 누적 건수가 200건을 훨씬 넘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최근 3년 간의 증가세는 괄목할 만하다.

  
  게다가 이 그림에 표시된 건수는 사건을 등록하게 되어 있는 ICSID(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에 접수된 사건과 그밖의 '알려진' 사건만을 합산한 숫자라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알려지지 않은 채 여러 다른 제도와 규칙들에 따라 국제 중재심판이 진행되는 것들과 정식으로 소송까지 가지는 않았더라도 소송의도 통지가 이루어진 것들까지 더한다면, 다시 말해 사실상 분쟁이 시작된 것들까지 다 더한다면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와 관련된 실제의 사건 수는 이 그림에 표시된 것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며, 그 증가세도 훨씬 더 극적일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국제 중재소송의 배상금 규모는 어느 정도나 될까? 이 또한 비밀에 붙여진 채 소송이 진행되는 경우가 허다한 실정이어서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게다가 '알려진 경우'라 해도 최종 판정이 나올 때까지는 투자자가 투자대상국에 배상청구를 하지 않아도 되고, 투자자가 소송에서 배상요구액을 올려 잡는다 해도 그 금액이 중재심판소에서 최종적으로 결정되는 금액과는 다를 수 있다. 따라서 배상요구액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그리고 중재심판소의 판결에 따라 실제로 오가는 배상금의 규모가 어느 정도나 되는지는 알기 어렵다. 하지만 실제 배상 판정이 내려져 일반에 알려진 경우들을 일별해 보면 그 금액이 상당한 사건들이 다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몇 가지 경우만 살펴보자.

  
  ▲ 2001년 12월 3일, 라우더 사건에서 체코 정부가 2억7천만 달러(상당액의 이자 추가)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 나옴.

  ▲ 2004년 7월 1일, 옥시덴탈 사건에서 에콰도르 정부가 7100만 달러(이자 추가)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 나옴.

  ▲ 2004년 12월 29일, CSOB 사건에서 슬로바키아 정부가 8억2400만 달러(법정 비용으로 1천만 달러 추가)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 나옴.
  ▲ 2005년 5월 15일, CMS 사건에서 아르헨티나 정부가 1억3320만 달러(이자 추가)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 나옴.
  ▲ 2005년 2월, 레바논 정부는 프랑스-레바논 투자협정을 어겼으므로 2억6600만 달러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 나옴.
  ▲ 2005년 5월, 아르헨티나 정부는 미국-아르헨티나 투자협정을 어겼으므로 1억3300만 달러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 나옴.
  ▲최근의 소송으로는 러시아 석유기업 유코스(Yukos Corporaton)의 지배지분을 가진 주주들이 러시아 정부를 상대로 진행하고 있는 3건의 중재심판이 있으며, 주주들이 요구한 배상금 총액은 330억 달러로서 국제 분쟁조정 사상 최대. (출처: UNCDAD)
  
  우리 외교통상부 관리들의 믿음과 달리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가 실제로 위력을 발휘하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며, 앞으로 그 위력의 크기와 영향력 행사범위는 급격하게 확대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즉, 이 제도는 1960년대에 성립된 ICSID 따위에 그 근원이 있다고만 볼 것이 아니다. 이 제도는 1990년대 이후, 특히 21세기에 들어서 강화되고 있는 '자본에 의한 각국 내부 사회 재구조화 전략의 공세'의 수단이며 그 일부임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또 이 제도가 과연 우리 정부의 관리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투자자들이 '정당한 보호'를 받는 데 이용하는 '방어적인 것'인지도 극히 의문이다. 프랑스의 투자자들은 도대체 무슨 '해코지'를 당했길래 저 가난한 레바논 정부에 3천억 원에 가까운 큰돈을 지불해야 하는 부담을 덮어씌운 걸까? 러시아에 투자한 '선량한' 외국 투자자들은 도대체 무슨 '피해'를 입었길래 자신들이 '보호'받는 데 33조 원이나 필요하단 말인가? 위에 열거한 금액을 그 배상을 지시받은 나라 각각의 경제규모 및 정부예산의 크기와 비교하여 생각해보라. 그것은 '힘없는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배상금'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정복자가 된 투자자들'이 뜯어가는 '승전배당금'에 더 가깝지 않은가.
 
 

  
  스티글리츠 "사업가들의 권리장전이 민주주의를 약화시켜"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대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는 1990년대 이후 각종 시민운동단체들, 특히 환경, 보건, 노동 관련 단체들로부터 집중적인 비판과 공격의 대상이 되었고, 1999년 시애틀 시위를 계기로 한층 더 확산된 각종 반세계화 시위에서 성토대상이 되고 있다.

  
  또 이러한 운동세력 외에도 세계 각국에서 자국의 사법체계, 주권, 민주적 질서 등이 침해되는 것을 걱정하는 보수세력도 이 제도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에 대한 이런 비판의 스펙트럼은 조금만 시야를 넓혀서 인터넷의 검색포털에서 몇 개만 관련 검색어만 쳐 넣으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나오니, 여기서 재삼 논의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여기에서는 세계적으로 명망이 있는 경제학자 두 사람의 의견을 간단히 소개하는 것으로, 그간 이 제도에 대해 세계적으로 형성되어 온 여론이 어떠한 것인지를 가늠해보고자 한다.

  
  먼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며 전 세계은행 부총재인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의 견해를 들어보자. 그는 2004년 1월 6일자 <뉴욕타임스>에 'NAFTA, 그 깨어진 약속(The Broken Promise of NAFTA)'라는 글을 기고해 그때까지 10년 간에 걸친 NAFTA의 경험과 성패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가운데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간명하게 요약했다.

  
  "…NAFTA에 숨겨져 있던 것은 새로운 종류의 권리장전(사업가들을 위한)이었으니, 이는 북미 전체에 걸쳐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NAFTA의 규정에 의하면, 만약 외국 투자자가 각종 규제에 의해 자신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믿게 될 경우 (그러한 믿음이 얼마나 정당한가와는 무관하게) 그는 그 피해를 놓고 특별 심판소에 소송을 걸 수 있는데, 그 특별 심판소란 정상적인 법적 절차가 보장하는 투명성을 갖춘 곳이 아니다. 그래서 성공을 거두면 그는 해당 중앙정부로부터 직접 배상을 받아낸다. 이로 인해 환경, 보건, 안전을 위한 각종 규제들이 공격을 받아 존폐의 위기에 처한다. 현재까지 소송이 벌어진 건수의 배상액을 합치면 130억 달러가 넘는 상황이다.

  
  이 중 많은 소송은 아직 판정이 나오지 않았지만, 이 제도로 인해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데 대해서는 NAFTA 통과 이전에 한번도 공개적이고 충분한 토론이 있었던 적이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정부의 각종 규제로부터 피해를 입을 때마다 배상을 받아내고자 오랫동안 애를 써 왔지만, 미국의 법원과 의회는 그러한 시도를 무시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이제 이 사업가들은 이처럼 그들이 국내의 민주주의 정치과정 때문에 공개적으로 얻을 수 없었던 것을 무역협정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성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외국 기업들의 행동, 예를 들어 그들이 자연환경에 저지른 일 때문에 피해를 입은 이들은 국제 심판소에 제소하여 배상을 받아낼 수 있는, 마찬가지의 보호수단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하다. 그리하여 환경, 보건, 안전에 아무리 중요한 규제활동이라 해도 NAFTA가 결국 그 숨통을 막아버릴 것이라는 걱정이 제기되는 것이다. … [미국은] 남미의 여러 나라들에서 투자자에게 '각종 보호'를 해주기 위해 그 나라들의 국가주권을 협상의 대상으로 삼기를 원하고 있다."

  
  혹자는 "스티글리츠는 명성은 높지만 원래부터 지구화나 국제 자본이동에 대해 적대적 입장을 가진, 왼쪽으로 치우친 인간 아니냐"면서 그가 내린 평가의 중립성을 문제 삼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미국이 추진하는 종류의 투자협정 및 무역협정에 포함되는 '투자자 보호' 장치의 파괴적 위력에 대해 경고하고 있는 이는 그뿐만이 아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자유무역과 WTO 체제 옹호자인 바그와티(Jagdish Bhagwati)도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스티글리츠의 견해가 환경, 보건, 민주주의 등과 같은 규범적, 윤리적 사안에 대한 이 제도의 역작용을 지적하고 있다면, 바그와티는 국가가 스스로에게 이로운 경제정책을 추구할 능력에 이 제도가 얼마나 큰 제약이 될 수 있는지를 경고하고 있다. 미국은 2003년에 NAFTA보다 더 폭넓게 '투자'를 정의한 투자조항을 포함해 소위 'NAFTA 플러스'라는 강력한 자유무역협정(FTA)을 싱가포르 및 칠레와 체결한 바 있는데, 이것들은 외국 투자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각국 정부의 자본통제 재량권을 크게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그와티와 그의 동료는 <파이낸셜타임스> 2003년 3월 17일자에 기고한 '자본통제 금지는 수지가 맞지 않는 장사다(A Ban on Capital Is A Bad Trade-Off)'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부시 행정부가 이 싱가포르 및 칠레와의 협정을 '주형(鑄型)'으로 삼아 이후의 다른 무역협정(아마 도하라운드(Doha Round)도 여기에 들어갈 것이다)을 이것과 똑같이 찍어낸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그 협정에 포함되는 자본통제 조항들을 받아들일 경우 실로 광범위한 피해를 초래할 무역정책을 낳게 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다른 나라들에게 자본통제를 금지시킬 경우엔 결국 미국 외교정책의 붕괴가 초래될 소지가 다분하다. 어떤 나라 정부가 금융위기에 봉착하여 단기적 자본통제를 강행했다고 해보라. 이 조치로 인한 배상의 요구가 줄줄이 나오겠지만 그 배상은 오로지 미국 투자자들만을 위한 것이다. 그러면 개발도상국의 시민들은 금융위기로 모든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가운데 부유한 미국의 기업과 개인들만은 오히려 배상을 챙기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 끓어오르는 미국에 대한 분노에 대처할 방법을 찾기란 정말로 어려울 것이다."

  
  아마도 이 글은 2001년 외환위기로 인해 외환통제를 시도하다가 투자자들이 제기한, 40건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소송에 휘말린 아르헨티나의 경우를 배경에 깔고 한 이야기로 보인다. 바그와티의 이 경고는 싱가포르와 칠레의 뒤를 이어 부시 정부와 FTA를 체결하게 될 나라(현재로서는 대한민국이 바로 그 나라가 가능성이 가장 높다)가 잘 새겨둘 필요가 있다.
 
 

  
  좌초된 다자간 투자협정(MAI)의 의미
  
  1990년대에 일어난 지구정치경제의 제도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분수령 중 하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에서 1997~98년에 진행되던 다자간 투자협정(MAI: Multilateral Agreement on Investment) 논의가 결실을 내지 못하고 좌초한 사건이다.

  
  1998년에 벌어진 MAI의 좌절은 이후 1999년 말의 시애틀 반세계화 시위를 거쳐 칸쿤 회의와 도하라운드에서 보다 가시화된 '지구화 로드맵의 탈선'으로 이어지는 긴 여로의 시작점에 해당한다. 이로써 탈선의 길로 접어든 '지구화 로드맵'은 세계적 차원에서의 다자주의적 무역질서의 꿈과 더불어 세계무역기구(WTO)의 협정문에 담겨 있기도 하다.

  
  대한민국 정부의 관리들은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가 세계의 모든 투자협정이나 무역협정에 당연히 들어가는 '표준적인 절차'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 표준적인 절차가 포함된 MAI를 어째서 개발도상국도 아닌 세계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발전된 OECD 국가들이 거부하게 되었는지는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원래 MAI의 초안에 포함된 외국 투자자 보호 조항들은 NAFTA의 그것에 맞먹는 광범위하고도 포괄적인 것이었다. '투자'의 범위도 좁은 의미에서의 기업증권 구매 따위를 훨씬 넘어서는 폭넓은 것이었고, 투자에 대한 부당한 '수용'에 대해서는 시장가치를 기준으로 한 배상 의무가 부과돼야 한다는 점도 명시돼 있었다. 게다가 투자자가 정부를 상대로 중재심판을 걸 수 있는 장치도 아주 튼튼하게 마련돼 있었다. 이 초안에는 국가 간에 분쟁이 일어나는 경우와 투자자와 국가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는 경우를 구분하고 각각의 경우에 대해 서로 다른 해결절차를 도입하자는 제안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투자자는 NAFTA에서와 마찬가지로 MAI에서도 국가에 준하는 지위를 누리는 것으로 돼 있었다.

  
  그런데 투자자에 대한 그렇게 포괄적이고도 철저한 법적 보호장치가 실제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국내 정치사회 체제를 일정하게 개혁할 필요가 있다는 쪽으로 논의가 흘러가기 시작했다. 1997년 4월 서울에서 열린 회의서 독일 대표 미카엘 그라우(Michael Grau)는 이를 위해서는 각국의 노동제도와 노동 관련 정부부서를 개혁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꺼냈고, 이는 곧 여타의 사회제도와 환경 부문의 쟁점들에 대한 논의로 번져갔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런 여러 분야들에서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활동할 수 있는, 시장질서에 부합하는 기율(discipline)이 관철되도록 해야 한다는 관점이 두드러지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관점은 간접적인 방식으로 협정 초안에 반영됐다. 투자자 보호에 관한 규정이 대단히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모습을 띤 반면 노동, 사회, 환경에 대해서는 오직 선언적이고 추상적인 명제들만 초안에 반영됐고, 구체적으로 그 명제들이 어떻게 실현돼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내용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협정 초안의 내용을 알게 된 각국의 노동, 사회, 환경 분야 단체들의 저항이 일어났다. 이미 인터넷이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던 1997년 당시에 원래는 대외비였던 이 협정 초안이 누설되어 인터넷을 통해 세계 곳곳에 알려지게 됐다. 이리하여 협정 초안이 회람되게 된 것은 '지구의 친구들(Friends of the Earth)'과 '공공시민(Public Citizen)'을 비롯한 각국의 시민운동 단체들로 하여금 일제히 일어서게 하는 계기가 됐다.

  
  협정 초안을 들여다본 시민운동 단체들은 국가 외에는 오직 유일하게 법적 존재가 인정되는 실체가 투자자뿐이라는 초안 내용을 알게 되자 경악했다. 이들은 MAI가 '자본의 지구화'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게 될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적어도 비공식적인 위치에서나마 노동, 사회, 환경 분야 시민단체들의 목소리가 그 존재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압력을 OECD 국가들에게 가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1997년 말에 에틸(Ethyl)이 캐나다 정부의 환경보호 조치를 중재심판에 제소한 사건이 불거진 것은 이들의 공포심을 더욱 증폭시켰다고 한다.

  
  한편 이러한 사태 진전에 대응해, MAI의 추진력인 각국의 주요 자본단체들(미국의 국제사업위원회(US Council of International Business), 일본의 경단련(經團聯) 등)도 각을 세우기 시작한다. 이들은 심지어 구속력이 없는 종류의 표현으로라도 협정에 노동, 환경, 사회 등에 관한 진술이 포함되는 것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시민운동 세력과 정면으로 맞서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갈등이 계속되면서 지구적 자본진영 내의 담론에서는 MAI 자체에 대한 회의론이 커져간다. 즉 MAI가 원래 꿈꾸었던 '진정으로 자유로운 자본투자의 지구화'라는 그림이 실현되지 못하고 대신 아래로부터의 반대에 발목이 잡혀 노동, 사회, 환경과 관련된 온갖 제약과 조건을 덕지덕지 붙인 상태로 성립되는 투자협정이 고작이라면 그런 협정은 아예 없는 편이 더 낫지 않은가라는 회의론이 확산된 것이다. 결국 1998년에 MAI는 추진력을 잃어버리게 되어 협정안에 대한 국제사회의 동의를 얻는 데 실패하고 만다.

  
  이 MAI의 시도 및 그 좌절의 과정이 1990년대 지구정치경제의 한 분수령이라고 평가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공산주의의 몰락과 세계시장의 급속한 팽창으로 특징지어지는 1990년대 초반은 자본과 시장의 지구화가 대세로 승승장구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때 NAFTA가 실현되고 WTO 체제가 출현했으며, 전 세계에 걸쳐 민영화와 자본의 국제적인 진출이 확대됐다.

  
  이러한 추세에 대한 저항과 반대가 없었거나 위축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고, 그런 저항과 반대가 조직노동자들과 같은 전통적인 좌파 진영에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여성, 환경, 노동, 사회, 인권 등과 관련된 수많은 사회적 쟁점들에 대한 논의의 과정에서 자본의 지구화와 그것을 보장하는 투자자 보호 협정이라는 것에 대한 저항이 조직화되고 있었고, 그 결과로 MAI라는 자본의 지구화라는 자본 쪽의 환상적 프로젝트를 놓고 정명충돌이 빚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1998년이 지나고 나자 지구적 자본도, 지구적 저항세력도 각각 새로운 방향으로 길을 모색하게 된다. MAI 반대 운동을 계기로 서로 연대와 소통의 경험을 쌓은 저항세력은 이후 1999년 시애틀에서의 대규모 반지구화 시위를 통해 본격적으로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런가 하면 지구적 자본은 서서히 수많은 개발도상국들은 물론이고 각종 사회운동 단체까지 포괄하다보니 지지부진함을 면치 못하던 각종의 다자주의적 틀보다는 지역 간 혹은 양자 간 투자협정이나 무역협정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돌아서게 된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2001년 9.11 테러 사건 이후에 특히 전면화된다.
 
   
 
  홍기빈/국제정치경제 칼럼니스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흉기로 변해가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한미FTA 뜯어보기 117 :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정치경제학(11)] 공공서비스
  2006-10-11 오전 9:07:31
  이번에는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가 공공서비스와 국가의 경제정책 등에 미치는 효과를 잘 보여주는 사례들을 추가로 살펴보자.
 
 

  
  ① UPS 대 캐나다 사건
  
  캐나다는 원래 정부의 한 부서로 존재하던 우체국을 1981년에 공기업(Crown Corporation)으로 전환했다. 캐나다 포스트(Canada Post)라는 이름의 이 공기업은 어디까지나 정부가 전국에 걸쳐 우편이라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필요성에 의해 생겨난 것이었다. 캐나다 포스트는 1993년에 캐나다 최대의 택배서비스 업체인 퓨롤레이터(Purolator)를 인수(지분 96%)해 사업을 확장한다.

  
  한편 UPS(United Parcel Service of America Inc.)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지구 전역을 잇는 세계 최대의 택배회사이며, 그 자회사인 'UPS 캐나다'가 1973년부터 캐나다 안에서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딱히 어떤 극적인 사건이나 특별한 정부의 조치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1999년 4월에 UPS가 느닷없이 캐나다 정부를 UNCITRAL 규칙에 의거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의 대상으로 삼아 1억6천만 달러의 배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 논리는 이렇다. 캐나다 포스트는 캐나다 국내의 우편물 관련 사업에서 독점적 위치를 누리는 공기업이다. 그러나 캐나다 포스트가 최대주주인 퓨롤레이터는 택배업이라는 일반 산업에서 UPS를 비롯한 다른 택배업체들과 경쟁하는 사실상의 사기업이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퓨롤레이터는 캐나다 포스트가 우체업무를 위해 갖고 있는 온갖 시설과 장비들, 예를 들어 각지의 우체국과 우편물 운반차량 등을 독점적으로 이용하고 있는데, 이는 UPS와 같은 외국 업체에 대한 차별대우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캐나다 포스트는 캐나다 정부가 자국 문화의 관점에서 중요한 우편물로 지정한 것들을 배달할 경우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데 이것도 문제가 있으며, 캐나다 포스트가 운영하는 연금플랜도 그렇다고 UPS는 주장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자산가치가 있는 어떤 UPS의 소유물이 직접수용이건 간접수용이건 수용된 것도 아닌데, UPS는 어떤 근거로 배상요구액을 산정했을까? UPS는 NAFTA가 발효된 1994년 1월 1일부터 소송제기 당시까지는 물론 추후 소송 진행에 2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그 기간까지 더해, 그때까지 자사가 캐나다 정부의 차별조치로 인해 입게 될 '피해' 규모를 금액으로 추정해 제출했던 것이다. 이 소송에 대한 심의는 2005년 중순까지도 진행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중재심판의 판결이 어떻게 나왔는지는 이 글을 쓰는 필자로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이 사건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측면에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의 앞날을 가늠해보게 해주는 중차대한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 이 사건은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가 정부나 지방정부의 부당한 조치로부터 투자자를 '보호'하는 수세적인 것이 아니라 명백하게 '공격'용 무기로 바뀌었음을 잘 보여준다. 캐나다 포스트와 퓨롤레이터의 합작 체제는 NAFTA가 발효되기 전인 1993년부터 이미 가동되고 있었다. 캐나다 정부가 어떤 조치이든 새로 내린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또 UPS 캐나다가 그 어떤 조치에 의해 소유권의 훼손이건 자산가치의 변동이건 무언가를 겪은 것도 없었다. 이 사건은 오로지 '기존의 제도적 장치' 중에서 외국 투자자가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골라 투자협정 규정을 들이대며 그대로 공격대상으로 삼아버린 사건이다.

  
  둘째, 더욱 심각한 것은 공격대상 된 것이 상식적으로 문제가 있는 악습이나 부패, 불합리 따위가 아니라 한 나라의 우체국과 택배서비스라는 공공서비스였다는 점이다. 캐나다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은 영토에서 우리나라의 절반 정도 밖에 안 되는 인구가 사는 나라이며, 그나마 대부분의 인구가 몇 개의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광활한 평야와 심지어 북쪽의 냉대 지방에까지 띄엄띄엄 흩어져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국민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전기, 전화, 우편 등의 공공서비스를 공평하게 제공하기 위한 정부의 고심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이런 여건에서 저렴한 요금으로 전국 곳곳에 공공서비스가 제공되도록 하려면 택배서비스를 기존 우편체제의 인프라를 빌어 운영하는 것은 필수적인 선택일 것이다. 만약 UPS가 요구하는 금액으로 택배가 이루어진다면, 캐나다 영토 중 압도적인 부분은 엄청나게 비싼 요금을 치르지 않는 한 택배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 공공서비스는 국가기관, 공기업, 공기업과 소유관계를 맺고 있는 사기업 등으로 분화되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이런 점에서는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이런 분화된 관계를 끊어버릴 것을 명시적으로 요구하는 UPS의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각종 공공서비스 체계에 의해 스스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온갖 외국 기업들의 소송이 줄을 잇게 되어 나라 전체의 공공서비스 체계에 대한 대공세가 펼쳐질 위험이 있다. 특히 캐나다의 통상문제 전문 변호사로 명성이 높은 스티븐 쉬라이브만은 외국 투자자들의 다음 번 공격목표는 캐나다의 공영 방송국인 CBC(Canadian Broadcast Corporation)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셋째, 이처럼 사안이 심각하고 특히 공공이익에 대해 갖는 함의가 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건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단위는 중세 이래의 상인법대로 분쟁 당사자 쌍방이 단일의 심판관 앞에서 '쇼부를 치는' 곳, 즉 비밀법정이나 다름없는 중재심판소다. 퓨롤레이터는 캐나다 굴지의 대규모 사업체로 수만 명의 종업원을 거느리고 있다. 중재심판의 내용에 따라서는 이런 기업이 구조조정을 하게 되어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이 심해질 것이다. 이에 '캐나다 우편노동조합(CUPW: Canadian Union of Postal Workers)'는 우편노동자들도 이 사건의 한 당사자로 인정해줄 것을 중재심판소에 탄원했지만, "본 심판소는 국가와 투자자 이외의 제3자를 당사자로 인정할 권위를 갖고 있지 않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한다.
  
▲ 캐나다 포스트 @ 위키피디어
 
 
 

  ② 아르헨티나에 대한 외국 투자자들의 집중공격
  
  1990년대의 아르헨티나 메넴 정부는 경제를 개방하고,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외국자본을 위해 금융체제를 개혁하고, 자국 화폐를 달러에 고정시키는 등 남아메리카에서 소위 '워싱턴 컨센서스'를 가장 충실하게 신봉한 정부이자 신자유주의적 시장정책의 모범생이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아르헨티나는 미국을 위시한 여러 나라들과 투자협정을 맺었고, 수많은 공기업과 공공서비스를 외국 투자자들의 소유로 넘겨주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최고의 경제적 효율성이 달성된다는 신념에 가득 찬 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의 호언장담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르헨티나는 2001년에 심각한 외환위기에 빠지게 된다. 이에 아르헨티나 정부는 어쩔 수 없이 그동안 달러 가치에 고정돼 있었던 자국 화폐의 평가 관계를 끊어버리고 석유와 가스 등의 수출에 25%의 세금을 매기는 등 비상조치를 단행한다.

  
  그러자 국내에 들어와 있던 외국 투자자들의 반격이 곧바로 시작되어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게 된다. 이런 반격을 선두에 선 외국 투자자는 천연가스 수송 분야에 투자했던 CMS였고 가스의 공급과 배급 관련 업체, 각종 전력사업체, 공공교통용 차량 제조업체 등이 그 뒤를 이었다고 한다.

  
  2005년 초에 나온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의 보고서에 따르면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2003년 한 해에만 20건 이상의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이 제기됐으며, 2005년 초까지의 총 소송 건수는 알려진 것만 해도 40건에 육박했다고 한다.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소송까지 더하면 전체 소송 건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으며, 소송까지 이르지 않고 물밑 협상으로 마무리된 것들까지 더하면 2001년 이후 외국 투자자들이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벌인 반격의 규모가 전체적으로 어느 정도나 되는지는 더욱 오리무중이라고 한다. 게다가 동일한 정부 조치가 다수의 소송에서 문제가 되어 복수의 소송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아르헨티나의 경험은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 아래서는 한 국가의 거시 및 미시 경제정책, 더 나아가 외환위기와 같은 절박한 상황에서 취하게 되는 조치까지도 외국 투자자들의 감시와 감독을 받게 되는 위험을 현실에서 보여준 것이다. 정부의 경제정책 중에서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 투자자 몇몇의 사업적 이익에 직간접의 영향을 주지 않을 게 과연 얼마나 있을까?
  
 
 

  ③ 텍사스 농부 대 멕시코의 '물꼬 싸움'
  
  리오그란데(Rio Grande) 강은 록그룹 '지지 탑(ZZ Top)'의 노래나 앨범 표지에 자주 등장하는 텍사스의 상징이다. 그런데 그 이름이 시사하듯 이 강은 멕시코로부터 흘러들어오는 '큰 강'이며, 따라서 미국과 텍사스 사이에 이 강물의 유량 관리를 놓고 일종의 '물꼬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1944년에 두 나라 정부는 멕시코가 리오그란데 강의 전체 유량 중 최소한 3분의 1은 미국 쪽으로 흘려보내야 한다는 내용의 조약을 맺는다.

  
  그런데 1992년 이후 이 강의 유랑이 크게 줄어 텍사스 쪽의 농부들이 곤욕을 치른다. 농부들은 멕시코가 강 상류에 저수지들을 많이 만들어서 강물을 조직적으로 빼돌리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미국 쪽으로 흘려보내는 유량을 조속히 회복시킬 것을 요구하게 된다. 하지만 리오그란데 강의 유량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이에 텍사스의 농부 29명과 농장주 17명이 2004년에 NAFTA 11장에 규정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를 이용해 멕시코 정부에 5억 달러의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 의도서'를 보낸다. 멕시코 정부가 즉각적으로 리오그란데 강의 유량을 시정한다 해도 그간의 피해액은 물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젠 텍사스 농부들까지 멕시코를 상대로 '외국 투자자'의 권리를 외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을 법적으로 대표한 법률회사(Marzulla&Marzulla)는 레이건 시절의 법조 인맥으로 연결된 회사로서 물이나 토지에 대한 소유권과 얽힌 소위 '규제에 의한 수용(regulatory takings)' 관련 사건을 전문으로 맡아 처리해주는 곳이라고 한다. 이 회사의 변호사인 낸시 마르줄라(Nancie Marzulla)는 멸종 위기에 처한 연어들을 보존하기 위한 조치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며 미국 정부를 상대로 10억 달러 규모의 소송을 제기했던 클래머스(Klamath Basin) 지역의 농부들의 경우와 이 사건이 비슷하다고 보고 있다. 이는 비록 텍사스의 농부들이 멕시코에 직접 투자를 한 것은 아니지만, 1944년의 조약에 의해 그들에게 귀속되는 것으로 정해진 재산, 즉 물이 그들에게 흘려보내지지 않고 멕시코에 붙들려 있는 것은 곧 '자산의 수용'이라고 볼 수 있다는 논리인 것이다.

  
  이 사건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의문과 쟁점을 불러일으킨다. 1944년의 조약에 따라 미국 쪽으로 흘려보내져야 할 물이 과연 텍사스 지역의 농부나 땅주인 개개인에게 귀속되는 '사유재산'인가, 아니면 공공자원인가? 내 땅 위를 흐르는 물은 모두의 공공자산인가, 아니면 그것은 '내 것'이니 조금이라도 그 양을 해치는 자가 있으면 '나'에게 배상해야 하는 것인가? 텍사스의 농부들이 도대체 어떤 의미에서 멕시코에 대해 '투자자'가 되는 것인가? 5억 달러라는 배상요구액을 계산해낸 근거는 얼마나 정당성을 갖는 것인가? 강물이 줄어든 책임이 자연현상이 아닌 멕시코 정부의 조치, 즉 '수용'에 있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텍사스의 농부들이 내세운 논리에 따른다면 '투자자'가 아닌 사람은 누구이며, '자산'이 아닌 것은 무엇인가? 또 '수용'에 해당하지 않는 행위는 무엇이며, '배상'의 한계는 있는가?

  
  같은 논리를 더 확장해보자. 미국은 세계에서 화석연료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임에도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공기오염과 온실효과 등을 막기 위한 교토의정서를 끝까지 거부했다. 클린턴과 부시의 말에 따르면, 미국인들이 그렇게 한 것은 '미국의 문화와 생활방식이 존중돼야' 할 뿐 아니라 자동차 및 에너지와 관련된 온갖 미국 내 산업계의 이익이 '보호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그런 이기적인 태도로 말미암아 공기오염과 온실효과가 더 심각해져서 세계 곳곳에서 흉작 피해가 더 커지고 오존층 파괴로 피부암에 걸리는 아이들이 더 늘어났다면? 미국인들이 자국의 배타적 이익을 위해 지구의 대기권 전체를 망침으로서 세계 곳곳의 농작물, 사람들의 건강, 깨끗한 공기라는 '재산'을 '수용'한 것이 아닌가?

  
  여기서부터는 가상의 시나리오로 넘어가자. 미국과 투자협정을 맺고 있는 세계 모든 나라의 농민, 시민, 땅주인들과 그들에게 이런저런 돈을 댄 '투자자'들이 전 지구적으로 뭉쳐 미국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소송의 근거는 텍사스 농부들이 내세웠던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이고, 배상요구액은 미국이 교토의정서를 거부한 1990년대 이래 미국 밖의 전 세계 모든 농민들이 입은 농작물 피해, 환경악화로 인해 암에 걸린 전 세계 환자들이 부담한 치료비 등을 모두 더해 산정된다. 복잡한 국제 중재심판을 거쳐 미국정부는 결국 교토의정서에 조인하고 그 내용을 준수하겠다고 서약하는 동시에 전 세계에서 요구받은 배상금을 지불한다. 지불된 배상금은 미증유의 액수일 테니 그것을 가지고 환경개선을 위한 환상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할 지구적 재단을 창설한다.

  
  어떤가? 한 번 해볼 만하지 않은가. 단판 승부일 필요도 없다. 소송비용으로 쓸 돈만 있고 법적 대표가 되어줄 법률가만 있으면 국제 중재심판을 요구해 중재심판소를 차릴 수 있다. 전 세계가 똘똘 뭉쳐 십시일반으로 소송비용을 마련하고 수십 개의 중재심판소를 차려놓고 동시에 소송을 진행시키면 된다. 그 중에 어디에서건 한 건만 잘 터져주면 된다. 그러면 환경문제를 걱정하는 전 세계의 '외국 투자자'들에게는 일대 쾌거가 되지 않겠는가? 이건 단순한 상상만이 아니다. 실제로 동일한 사안을 놓고 100명이 넘는 쇠고기 업자들이 NAFTA에 근거해 제각각 미국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다고 한다.

  
  다시 텍사스 농부들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텍사스 농부들의 논리를 국제 중재심판소가 받아줄지 어떨지는 알 수 없다. 필자는 텍사스 농부들의 '의도 통지서'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날부터 90일이 지나는 동안에 멕시코 정부가 어떤 대응의 결정을 내렸는지, 이 사건이 실제로 소송으로 이어졌는지를 알기 위해 관련되는 정보를 열심히 찾아보았으나 그 후의 소식을 알아낼 수는 없었다. 어쩌면 텍사스 농부들이 그저 멕시코 정부에게 겁주기 위한 목적으로 의도 통지서를 보낸 것인지도 모른다.
  
 
 

  속도 편한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그러니 여기서 상상력의 발동은 중단하고자 한다. 이번 회까지 그동안 몇 회에 걸쳐 살펴본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의 현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우리 정부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투자자-국가 간 투자분쟁 해결절차는 기본적으로 투자와 관련해 내외국인 차별 금지, 이행의무 부과 금지 등 외국인투자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협정상 중요한 의무 위반에 대해서만 제소가 가능하다. … 따라서 투자자-국가 간 투자분쟁 해결절차는 외국인투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적인 장치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된다."(외교통상부 뉴스, 'FTA 투자분쟁 생겨도 공공정책 훼손 없어: 투자자 정부제소권에 대한 오해와 진실', 국정브리핑, 2006년 6월 11일)

  
  하지만, 여기에 나타난 외교통상부의 입장대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를 "외국인투자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협정상 중요한 의무 위반에 대해서만 제소가 가능"한 것으로 속 편히 바라보기에는 이미 이 제도가 너무나 살벌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흉기로 변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홍기빈/국제정치경제 칼럼니스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법조계는 왜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침묵하나?"

 

  송기호 "법률시장 개방 안 한다는 정부의 약속 때문"
  2006-12-03 오전 9:16:12
  "정부가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우리 법률시장이 개방되지 않아 국제법과 관련된 법률서비스 시장이 발달하지 않아서 생기는 구조적인 문제의 한 산물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나라는 법률시장을 전면 개방할 필요가 있다."

  
  1일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의 주최로 서울 정동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관에서 열린 '참여사회포럼: 투자자-국가 소송제,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의 송기호 변호사가 이같이 주장했다. 이 포럼은 최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논란되고 있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주제로 한 국내 최초의 토론으로, 송 변호사 외에 이해영 한신대 교수, 홍기빈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 저자, 박상표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국장, 서준섭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 등이 참여했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란 외국인투자자에게 우리나라 정부는 물론 국회와 법원을 상대로 직접 소송을 걸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현재 '투자자-국가 간 분쟁 해결절차'라는 이름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협상문안에 포함돼 있다. 이와 관련해 현재 송기호 변호사와 민변은 정부를 대상으로 한미 FTA에 포함된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관한 협상정보를 공개하라는 소송을 진행 중이다.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차별 시정하는 정의의 사도'라고?
  
  송기호 변호사는 이날 포럼에서 '정부의 투자자-국가 소송제 사례에 대한 분석은 정확한가'라는 주제의 토론문을 통해 "정부가 국회 한미 FTA 특별위원회에 보고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관련된 투자자-국가 제소 사례에 대한 분석은 이 제도를 '부당한 차별을 시정하는 정의의 사도'인 것처럼 보여주기 위해 사례의 사실관계를 왜곡하거나 중재판정부의 판정 내용을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송 변호사는 정부가 외국의 투자자-국가 소송 사례를 왜곡하거나 잘못 분석한 사례 4가지를 제시했다. 가령 정부는 국회 한미FTA특위 보고에서 "(미국 기업) 메탈클래드는 멕시코 연방정부와 주정부 관계자를 접촉해 (원래 멕시코 기업인 코테린이 소유하고 있던 유독성 폐기물 처리장에 대해) 가동 허가가 발급될 것이라는 보장을 받은 후 (이 시설을) 인수했다"고 밝혔지만, 중재판정부는 '멕시코 주정부 관계자가 이 시설의 가동에 대한 허가를 해주겠다고 보장한 적이 없다'는 판정을 내렸다는 것이 송 변호사의 지적이다.

  
  송 변호사에 따르면 이런 왜곡은 정부만의 책임은 아니다. '대륙법'을 기반으로 하는 우리나라의 법률체계 하에서는 개인과 기업은 물론 정부도 '영미법'을 기반으로 하는 있는 국제법에 대한 법률서비스를 제공받기 힘든 상황이라서, 투자자-국가 소송제와 같이 위헌 소지가 있는 제도를 도입하자면서도 그 제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 송기호 변호사. ⓒ 프레시안

  현재 우리나라는 외국인 변호사들이 국내에서 사무소를 설립해 영업활동을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정부가 국회 한미FTA특위에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한미 FTA 협상에서 우리나라에 법률시장을 개방하라고 요구하고 있으나 우리 측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대신 정부는 WTO(세계무역기구) DDA(도하개발아젠다) 협상의 진행상황을 봐가며 법률시장을 점진적으로 개방하자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송 변호사는 "일본은 이미 1986년에 '외국 변호사에 의한 법률사무의 취급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입법하고 법률시장을 개방함으로써 외국 변호사들이 일본에서 자유로이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중국도 1992년에 외국 법률회사들이 중국에서 법률사무소를 설립해 외국법에 대한 자문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결과 2005년 현재 상하이에서만 82개의 외국 법률회사가 영업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 변호사는 "(한미 FTA가 체결돼) 한국정부가 론스타에 멱살을 잡혔을 때 누구에게 SOS(긴급구조요청)를 보낼 것인가"라면서 "한국 변호사들 중에선 이 소송을 다룰 변호사가 없고, 결국 론스타를 위해 일했을 수도 있는 미국 변호사에게 법률서비스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 변호사는 나아가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법무부, 검찰, 헌법재판소 등에서 인식하고 있는데, 이 문제의 1차적인 관계자인 법조계가 도대체 왜 침묵하는가"라고 지적한 뒤 "이는 한미 FTA가 한국 법조계를 좌지우지하는 세력인 대형 로펌(법률회사)들의 기득권을 침해하지 않기 때문이며,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들이 정부로부터 법률시장을 개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놨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주희/기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