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자진출두한 민세원 KTX지부장 풀려나

민세원 지부장, "내년에도 계속 투쟁합니다"

최인희 기자 flyhigh@jinbo.net
경찰 수배 탓에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와 민주노동당 등에서 생활해 온 민세원 지부장은 지난 9월 26일 노동부의 공정한 불법파견 조사를 촉구하며 삭발식을 갖기도 했다./참세상 자료사진
지난 3월 16일 체포영장이 발부된 이래 9개월 여의 수배생활을 하던 민세원 철도노조 KTX승무지부장이 27일 용산경찰서에 자진출두해 조사를 받고 이틀만인 29일 풀려났다.

 

민세원 지부장은 경찰에 자진출두하게 된 배경에 대해 "조합원들이 밖에서 점거투쟁도 하고 많은 활동을 한 데 반해 지부장으로서 바깥생활을 전혀 못해 개인적으로 힘들었고 건강도 좋지 않았다"며 "체포영장 발부 건인 철도공사 서울지역본부 점거 건은 다른 조합원들이 모든 조사를 마치고 마무리된 사건인 만큼, 구속될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앞으로 제대로 된 투쟁을 이어나가려고 했다"고 밝혔다.

 

민세원 지부장과 함께 체포영장이 발부됐던 정혜인 부산KTX승무지부장은 점거농성중인 철도공사 서울지역본부에 공권력이 투입된 지난 5월 11일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풀려났으며, 한효미 서울KTX승무지부 부지부장도 며칠 후 자진출두해 풀려난 바 있다.

 

용산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나온 민세원 지부장은 "몸 수색을 당하고 수갑을 차는 것을 각오하고 출두했지만 그동안 두 번 세 번 이런 경험을 했을 승무원들이 생각나 안타까웠다"는 심경을 밝혔다. 파업 300일을 훌쩍 넘어선 KTX승무원들은 그동안 철도공사 서울지역본부, 국회 헌정기념관, 강금실 서울시장 후보 선거사무소, 서울지방노동청 등지에서 농성을 벌이다 경찰 병력에 의해 강제 연행돼 조사를 받은 경험들이 있다.

 

민세원 지부장은 "많은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철도공사가 아무런 제재나 법적 조치를 받지 않는 데 비해, 그 불법을 지적하고 있는 KTX승무원들에게는 합법적인 집회시위조차 문제삼더라"며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말이 새삼 와 닿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아울러 "올 한 해 동안 KTX승무원들의 투쟁에 함께 해 주신 교수모임, 의료봉사단체, 시민단체, 여성단체 등 사회 각계각층에 감사드리며 내년에는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싸워 승리를 맺겠다"고 전했다.

 

KTX승무원들은 29일 오후 6시에 세종로사거리에서 열 두 번째 촛불문화제를 갖고 연말연시를 보낸 후 1월 3일부터 다시 투쟁을 이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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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는 좋은 '새뜸'을 전할 수 있길 바랍니다"

참세상 선정 노동계 7대 뉴스

최인희 기자 flyhigh@jinbo.net
 
어느 해보다도 굵직한 사건이 많았던 2006년의 노동계. 하지만 안타깝게도 노동자들에게 희망적인 소식보다는 우울하고 절망적인 일들이 더 많았다. 물론 여러 지역과 현장에서 작지만 의미있는 투쟁의 성과를 내기도 했고, 마음 훈훈해지는 소식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해가 갈수록 안팎으로 점점 더 어려워져만 가는 노동자들의 현실이 우리를 우울하게 했다.

참세상에서 올 한 해 취재한 노동계 소식들 중에 노동담당 기자들이 굵직한 뉴스 일곱 가지를 추려봤다. 순위는 별도로 매기지 않았다.

 


노사관계로드맵 국회 본회의 통과

오랜 시간 끌어온 비정규직 관련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노사관계로드맵을 골자로 한 관련 노동법 개정안도 허무하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국회의 비정규법안 처리 시도시 여러 차례 보여줬던 '단상 점거' 전술을 생략하고 열린우리당의 수정안에 대해 민주노총에게 수용 여부를 묻는 등 논란거리를 낳았다. 민주노총은 비정규법과 로드맵 반대를 걸고 겨울 내내 총파업 투쟁을 벌였지만 로드맵 통과 이후 제대로 된 규탄 투쟁을 조직하진 못했다. 이제 노동자들은 노사관계로드맵 '이후'의 현장에서 살게 됐다.

 


비정규법안 국회 본회의 통과

파견법 개정안과 기간제법 제정안이 제출된 이래 수 년간 여의도에서 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법안 통과를 저지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피눈물을 뒤로 한 채 결국 처리되고 만 비정규법안. 조준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11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 법안이 강행 처리된 후 '패배'를 시인했다. 비정규법안의 '폐기'가 아닌 '수정'과 '진정한 보호법안'을 주장했던 이들은 "언제까지 국회 일정에 따라가는 투쟁만 할거냐"는 원성을 들어야 했다.

 


배신과 야합, 한국노총의 만행들

올 한 해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의 활약(?)은 눈부셨다. 작년 말 열린우리당 안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수정안'을 내고, 기자회견을 참관하는 전비연 대표자들에게 막말을 할 때부터 '조짐'이 보였는데, 올 9월 11일 민주노총을 배제하고 로드맵 노사정합의를 이루면서는 노동자들의 극한 분노를 삼과 동시에 민주노총과의 공조도 깨졌다.

이밖에도 한국노총은 이용득 위원장의 외국자본투자유치 활동, 노사발전재단 설립, 산재보험법 야합 등을 '잘했다'는 내부 평가와 함께 '공적'으로 삼았다. "한국노총이 언제는 안그랬냐"는 자조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좀 심하다. 야합에 항의하며 한국노총을 점거했던 노동자들은 지금도 옥중에 있다.

 


고 하중근 조합원의 사망과 포항건설노조 투쟁

하중근 포항건설노조 조합원이 부상을 입었던 7월 16일 당시의 정황과 목격자, 부검 결과 소화기로 추정되는 둔탁한 물체에 구타당한 것으로 보이는 두부 손상과 전신 구타의 흔적, 국가인권위원회의 '경찰의 과잉진압에 의한 사망'이라는 인정. 모든 '진상'이 여기 있는데도 하중근 조합원의 죽음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올해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포스코 점거투쟁과 동지를 보낸 포항건설노조 노동자들의 울분.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가슴 한 켠에 분노 반 죄책감 반으로 남아있을 고 하중근 조합원이 아직 잊혀질 때는 아니지 않나.

 


점점 길어지고 점점 많아지는 '장기투쟁' 노조들

파업에 들어간 지 며칠 안 된 3월의 어느 날, "투쟁한 지 200일 넘었어요"라던 기륭전자분회 조합원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며 탄성 반 한숨 반을 내쉬던 KTX승무원들은 올해 성탄절에 '파업 300일'을 맞이했다. "요즘은 100일 갖고는 '장기투쟁'이라는 명함도 못 내밀어요"라던 비정규직 노동자의 멋적은 웃음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투쟁 1년을 넘긴 오리온전기지회, 2년 전 성탄절에 해고된 하이닉스매그나칩사내하청지회, 기륭전자분회, 코오롱노조, 세종병원지부, 만영아름드리지부, 우진산업지회, 르네상스노조... 그리고 또 '장기투쟁사업장'에 명함 내밀 때가 된 투쟁하는 노동자들, 내년에는 꼭 공장으로 돌아가길.

 


아쉬움과 기대 속에 출발한 산별노조

민주노총이 선정한 2006년 10대뉴스 중 4위로 선정된 '산별노조시대 활짝'. 과연 올 한 해 민주노총의 거의 모든 산하 연맹이 산별노조추진위원회를 설치하고 토론을 벌여온 끝에 수 년간의 숙원인 산별노조, 그것도 가장 큰 금속과 공공에서 연말께 산별노조 건설이 가시화됐다. 총파업 투쟁 와중에 몇 번이나 속회를 연기해가며 총 38시간 동안 높은 참석률로 격론을 빚은 금속산별완성대의원대회는 열띤 토론현장이 생중계되며 산별노조에 대한 조합원들의 높은 관심을 불러모았다.

'완성'된 금속산별노조 시대가 과연 내년부터 '활짝' 열리나? 앞으로 3년간 더 인정될 '기업지부' 수와 규모가 '지역지부'보다 훨씬 많다는 대목에 이르면 석연찮은 기분이 드는 사람이 많을지도. 기대를 모았던 운수조직들과 공공연맹의 '대통합'은 대의원 성원미달로 일단은 유회됐다. '활짝' 열리는 건 좋은데 이래저래 소외되는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기반도 '활짝' 열려야 할 텐데.

 


기로에 선 공무원 노동자들

공무원 노동자들도 힘든 한 해를 보냈다. 올해 4월 정식으로 민주노총에 가입하고 공무원 노동자 노동3권 보장 투쟁을 선언했지만 정부의 탄압도 극심해졌다. 사상 초유의 '행정대집행'으로 전국 방방곡곡의 공무원노조 사무실을 강제 폐쇄하고 공무원노조특별법, 자진탈퇴 추진지침, 공무원 연금제도 개악, 총액인건비제 등 탄압 정책을 총동원했다.

공무원 노동자들의 단결에 다급했던 행정자치부는 강제적인 '노사관계 실무교육' 자리에서 "노조는 빨갱이다", "노조 내에 첩자가 필요하다", "노조는 퇴출대상 1호", "노조 담당자는 술로 해결해야"라는 등 막말을 쏟아내 '망언'의 역사를 새로 썼다. 지난 11월 25일 대의원대회에서 '법외노조' 원칙을 재확인하면서 조직 내 고비를 한 차례 넘은 공무원노조의 2007년 투쟁이 주목된다.
 
 
금속연맹 해산 결의, "기업별노조 시대는 이제 끝"
공공·운수 4조직 통합 대대 성원미달로 유회
노사관계로드맵, 국회 본회의 통과
결국..비정규법안 날치기 통과
공무원노조, 법외노조 원칙 재확인
KTX승무원 투쟁, 오해와 진실
[공무원탄압분쇄 종합] “사무실 폐쇄로 노조 못 없애”
민주노총 제외한 노사정, ‘3년 유예’ 합의
"넘어져서 죽었다고? 말장난 그만하라"
1년 8개월, 이제는 진짜 '공장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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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들의 자존심…"그냥 평범한 시민으로 봐달라"

 

  탈북자 1만명 시대의 그림자, 그리고 희망 (下)
  2006-12-29 오후 10:40:47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 특수부대가 개입했다."
  
  지난 20일 일부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다. 상식적으로는 믿기 힘든 주장이다. 한 탈북자 모임이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나온 주장을 기사화한 것이다.
  
  최근 탈북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하는 경우가 늘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는 아직 모호하다. 폐쇄적인 북한 사회의 특성 탓에 그들의 주장을 제대로 검증하기 어렵다는 맹점 탓이다.
 
 

  
  종이가 귀한 북한에서 유인물을 마구 뿌렸다고?
  
  실제로 탈북자들의 증언은 서로 모순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일반인들은 이런 모순을 발견하기 어렵다. 하지만 북한 전문가들은 다르다. 오랫동안 탈북자들을 인터뷰하며 북한 사회를 연구해 온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최봉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북한에서 반체제 운동을 했다고 주장하는 탈북자가 있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좀 이상한 대목이 있다. 그는 북한에서 반체제 유인물을 뿌리며 도망을 다녔다고 말했다.
  
  남한 사람들이 들으면 별로 이상한 느낌이 안 들 것이다. 하지만 북한 사회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입장에서는 다르다. 우선 북한에서는 선전지를 마구 뿌릴 만큼 종이가 흔치 않다.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놀라는 것 중 하나가 하얀 A4용지를 마구 낭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출력기(프린터), 인쇄기, 복사기, 등사기 등의 사용이 철저히 통제된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앞서의 탈북자의 증언은 그대로 믿기 어렵다."
  
▲ 외국 대사관에 진입을 시도하는 탈북자들. 목숨을 건 탈북에 성공했다는 자신감은 이들의 중요한 정신적 자산이다. ⓒ프레시안

  탈북자들의 증언이 어느 정도의 신뢰도를 가진 것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북한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탈북자들의 증언은 북한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참고 자료다. 하지만 그것을 무조건 믿는 것도 위험하다"는 것이 북한 전문가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이런 지적에 따르면 전문가의 검증 없이 탈북자들의 증언만으로 기사를 작성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인 셈이다.
 
 

  
  탈북자도 평범한 시민, 그런데 왜 이혼도 못 하나
  
  이런 위험에 대해 언론이 무감각한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 사회를 연구하는 한 대학원생은 자신이 만난 탈북자가 "'멘트'만 따려고 접근하는 것은 이제 지긋지긋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보수 언론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부합하는 증언만 수집하기 위해 탈북자들에게 접근해 왔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보수 언론과 뉴라이트 진영에게 탈북자 문제는 그저 정부의 대북 유화 정책을 비판하기 위한 소재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이렇게 탈북자들을 정치적 수단으로 여긴다면 그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도, 그들의 자존심과 개성을 충분히 배려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은 '탈북자 1만 명 시대'가 코앞에 다가오면서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요컨대 탈북자들을 북한 체제에 대한 '증언자'가 아닌 한국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시민'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
  
  그런데 이런 태도를 취하려 애쓰는 이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있다. 지난 22일 국회를 통과한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일부 개정 법률안'(개정안)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자들이 그동안 문제제기했던 것들중 상당부분이 반영된 것이기 때문이다.
  
  탈북자 김영순 씨(가명)도 이번 개정안을 반긴 이들 중 하나다. 이번에 신설된 탈북자의 이혼특례 조항 때문이다. 김 씨는 지난 2004년 한국에 들어왔다. 그는 올해 내내 "한국에 입국할 당시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한국에서 호적을 만들면서 기혼자라고 적어 넣은 게 후회스러워서였다.
  
  김 씨는 북한에서 결혼했다. 하지만 탈북 과정에서 남편이 김 씨를 버렸다. 가까스로 한국에 들어온 김 씨는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 줄곧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런 김 씨에게 지난해 말 우연히 '새로운 사랑'이 다가왔다. 김 씨는 곧 재혼을 결심했다. 하지만 김 씨는 혼인 신고를 할 수 없었다. 북한에서 결혼한 남편과 이혼 수속을 밟지 못 했기 때문이다. 헤어진 남편이 한국에 들어와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기 전까지는 김 씨는 영원히 기혼자 신분이다. 그러나 김 씨는 헤어진 남편과 실질적으로 이혼한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남편은 생사조차 불분명하다. 만약 살아 있다면 김 씨와 같은 생각일 것이라 믿고 있다.
  
  김 씨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까지는 통일이 되거나 남편이 한국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에 탈북자의 이혼특례 조항이 신설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이 특례조항(제19조 2항)에 따르면 북한에 배우자가 있었던 탈북자는 그 배우자가 현재 남한 지역에 거주하는지 여부가 불분명한 경우 재판 상 이혼청구를 할 수 있다. 북한에 배우자를 두고 온 경우에도 단독으로 이혼 청구가 가능해진 것이다.
  
 
 

  북한에서의 경력은 모두 지우고 맨땅에서 새로 시작하라고?
  
  또 다른 탈북자 이철수 씨(가명)도 이번 개정안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번에 신설된 전문분야 자격증 소지 탈북자의 자격인정을 위한 보수교육 및 재교육 실시, 심사위원회 설치에 관한 조항(제14조 제2항 및 제3항) 때문이다. 그는 북한에서 의사였다. 하지만 한국에 온 뒤에는 전혀 다른 일을 하며 지낸다. 북한에서 취득한 의사 면허를 인정받지 못 했기 때문이다. 이 씨가 한국에서 의사 직을 수행하려면 의과대학에 다시 입학해야 한다. 하지만 비싼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씨의 사례는 탈북자 사회에서 낯선 경우가 아니다. 한의사 출신 탈북자 김 모 씨의 경우는 보다 극적이다. 김 씨는 북한에서 8년 간 한의사로 일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세명대 한의학과에 재학 중이다. 이 씨와 마찬가지 이유로 한의사 면허를 인정받지 못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의대에 편입하기까지도 만만치 않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한국에 온 직후 그는 북한에서의 경력을 인정받기 위해 여러 기관을 돌아다녔다. 우선 찾아간 곳은 통일부. 그곳에서 북한에서의 학력을 인정받았다. 다시 그 서류를 들고 교육부를 찾아갔다. 그리고 한국에서 한의대 6년을 졸업한 자와 동등한 학력을 인정받았다. 그럼 한의사가 될 수 있었을까. 아니다. 한의사 자격 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응시 자격이 없다는 통보를 전달받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한의사 면허를 관할하는 보건복지부를 찾아갔다. 돌아온 대답은 "북한에서 취득한 면허증을 갖고 오라"는 것.
  
  결국 김 씨는 당장 한의사 업무를 시작하는 것은 포기했다. 대신 김 씨는 한의대 편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학교 측으로부터 동일 전공으로 편입하는 것은 안 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교육부에서 한의대 6년 졸업을 인정받은 게 오히려 발목을 잡은 셈이 됐다.
  
  그래서 김 씨는 국회의원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김 씨의 이런 노력은 결국 빛을 봤다. 김 씨는 2004년 10월 탈북여성으로서는 최초로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참가했다. 이 자리에서 김 씨는 탈북자들이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북한에서의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고 주장했다. 김 씨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국감에 참석한 의원들의 도움으로 김 씨는 세명대 한의대 편입 시험에 응시할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의 성과는 김 씨 개인에게만 머무르지 않았다. 2004년 국감 당시 김 씨의 증언은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는 데도 큰 영향을 끼쳤다. 김 씨의 사례는 탈북자 사회에서 '역사적 사건'으로 통한다. 탈북자들이 기존의 어두운 이미지를 벗고 한국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북한 출신 공학도들의 자신감 "우리는 기초가 튼튼하다"
  
  탈북자들이 전문적인 영역에 도전하려는 움직임은 의사나 한의사처럼 '면허'가 중요한 분야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탈북자 정철우(가명) 씨는 한 정보통신 벤처기업에 근무한다. 그가 하는 일은 회로 설계. 북한에서 전공한 전자공학 지식을 활용한 것이다. 직장에서 정 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유능한 엔지니어다. 정 씨는 "영업이나 기획 업무는 좀 부담스럽다. 하지만 기술 개발 업무에 대해서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정 씨의 자신감에는 이유가 있다. 북한에서 교육받은 과학기술자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은 "김책공대나 평양리과대학 출신이라면 카이스트나 포스텍(포항공대) 출신과 겨뤄도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들 대학의 경우 연구 및 교육 시설의 수준은 한국보다 훨씬 뒤쳐져 있다. 그리고 해외 과학기술 정보에 대해서도 어둡다. 하지만 학생들의 수준은 매우 높다. 게다가 첨단 분야의 지식에 뒤쳐진 대신 수학과 물리 등 기초 실력이 탄탄해서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빠르다.
  
  이런 특징은 컴퓨터공학 분야에서 잘 나타난다. 정 씨는 "한국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학생들이 새로운 기술적 유행에 대해서는 해박하면서도 C언어처럼 기초적인 지식은 부족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기초와 원리를 중시하는 것은 북한 공학 교육의 대표적인 강점이다. 정 씨는 "북한의 공대생들은 컴퓨터 운영체제에 대한 이해도가 한국 학생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그리고 그것은 다양한 응용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바탕이다"라고 이야기했다.
  
 
 

  "'탈북자 출신 배우'가 되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의사나 엔지니어 등의 직업은 지식과 기술만 있으면 그런대로 적응할 수 있다. 하지만 음반이나 영화 등 문화산업은 다르다. 지식과 기술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해당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대중의 '코드'를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문화에 낯선 탈북자의 진출이 쉽지 않았다.
  
▲ 북한 출신 5인조 음악 그룹. '달래음악단' ⓒ스타뉴스

  하지만 이제 조금씩 변화의 기미가 나타나고 있다. 배우 겸 가수 김혜영 씨나 뮤지컬 배우 김경복 씨 등에 이어 지난 8월에는 탈북자 출신 여성 보컬 그룹이 음반을 냈다. 한옥정, 허수향 씨 등 5명으로 구성된 '달래음악단'이 그것. '멋쟁이'라는 앨범을 낸 그들은 KBS1 TV <폭소클럽2>에도 출연하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런데 김철용 씨는 "그저 '탈북자 출신 배우'가 되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경우다. 2001년 입국한 탈북자인 그는 북한에서 기동예술선전대 활동을 했다. 일종의 관영 순회극단인 셈이다. 그는 대중 앞에 나서는 일이 마냥 좋았다. 북한에서 만담 경연 대회에 나가 상을 타기도 했다. 한국 대학에 입학하면서 경제학과나 경영학과를 주로 택하는 다른 탈북자들과 달리 연극영화과에 진학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김 씨는 탈북자라는 꼬리표 없이 순수하게 연기력으로만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일단 말씨부터 문제였다. 북한 억양을 지우는 것이 영 쉽지 않았다. 사실 그것은 사소한 문제였다. 배역에 몰입하는 것이 영 쉽지 않았다. 연기를 하려면 관객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연출자가 요구하는 게 무엇인지를 본능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하지만 그게 잘 안 됐다. 관객과 다른 문화적 배경 때문이다.
  
  "감독과 소통할 수 없는 배우에 머물러야 하나." 오래 고민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 그래서 직접 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다. 우선 시나리오 습작부터 시작했다. 대중의 '코드'를 읽으려 애썼다. 한양대 연극영화과 졸업반이던 지난해, 기회가 왔다. 올해 5월 개봉한 영화 '국경의 남쪽' 조감독으로 참여하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잠시 망설였다.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라서다. 북한이라는 소재에 계속 집착하다보면 탈북자 출신 영화인이라는 정체성에 갇혀버릴까 두려웠다. 그래서 거부할까하는 생각도 잠깐 했다.
  
▲ 영화 감독을 꿈꾸는 탈북자 김철용 씨 ⓒ프레시안

  하지만 연출 경험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제안을 받아들였다. 일단 탈북자라는 소재에서 시작하여 영역을 넓혀가기로 마음먹었다. 영화 '국경의 남쪽'은 평론가들에게는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그래도 그는 담담하다. 이제 시작이니까. 그는 요즘 새로운 작품을 준비 중이다.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라는 제목이다. 하명준 감독과 함께 최인호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하는 것이다.
  
  그는 공포 영화에 관심이 많다. 두려움이 인간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본성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는 8년 전 북한을 빠져나와 중국과 동남아를 떠돌던 3년 동안 정말 지독한 체험을 했다. '두려움'에 대한 천착은 당시의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영화 감독이 될 준비를 하는 지금, 그는 자신만만하다. 함께 영화를 만드는 스텝들과 노래방에 가서 '아파트', '최진사 댁 셋째 딸'밖에 부를 게 없지만 문화와 예술의 본질에는 더 깊이 다가갔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자신감의 근거는 탈북 과정에서의 지독한 체험이다. 인간의 본성에 파고들려는 몸부림이 예술이라면, 극한 상황에서 나타난 인간군상에 대한 체험은 영화 감독을 꿈꾸는 그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일 것이므로.
 
 

  
  자존심 강한 그들 "그저 평범한 시민으로 여겨달라"
  
  취재 중 만난 탈북자들은 대부분 자존심이 강했다. 그리고 언론과의 접촉을 꺼리는 경우가 많았다. 언론의 취재에 너무 쉽게 응하는 탈북자들을 조심하라며 충고하기도 했다. 그들은 왜 언론을 꺼릴까. 한 탈북자는 "우리를 그냥 평범한 시민으로 봐 달라"고 이야기했다.
  
  언론의 구미에 맞는 증언을 쏟아내는 취재원이 아니라 동네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시민으로 여겨달라는 것이다. 영화 감독을 지망하는 김철용 씨 역시 "오직 영화로 승부하겠다"는 말을 거듭했다.
  
  "차별은 거부한다. 그러나 단지 탈북자라는 이유만으로 지나친 관심을 받는 것도 싫다." 한국에서 좌충우돌하는 동안, 본래의 자존심을 되찾아가는 많은 탈북자들이 한결같이 전하는 말이다.
   
 
  성현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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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도반 2006-12-31 0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학기 <동아시아사회비교>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새삼 북한 그리고 탈북자(새터민)에 대한 관심을 제고할 필요성을 느꼈다. 기사에 등장하는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한 김 군은 정병호 교수의 논문에서 접한 바 있고, 한의사 출신 탈북자로 소개된 김 모씨는 김지은 씨로, 수업에서 진행된 특강에서 만난 적이 있다. 다른 지면에서 이들의 소식을 듣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동시에 여전히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씁쓸하다.

기사를 읽은 후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탈북자 1만명" 시대에 "통일을 준비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의 담지자로서 탈북자를 바라볼 것을 주문했던 김지은 씨의 말이었다. 탈북자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을, 이제부터라도 다시금 찬찬히 되돌아볼 시점이다.
 

"탈북 여성이 모두 성매매자라고요?"

 

  탈북자 만명 시대의 그림자 그리고 희망 (上)
  2006-12-22 오전 9:27:16
  탈북자 윤영희 씨(가명)는 최근 '여성 탈북자의 누드 사진을 판매하는 사이트'에 관한 보도를 접하고 마음이 착잡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엄마, 성매매가 뭐야"라고 물어왔던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북한을 떠나 중국을 떠도는 어린 여성들을 다룬 방송을 본 아들의 질문이었다. 탈북자들의 인권 실태를 알리기 위한 보도였지만 주로 부각된 것은 '성매매', '꽃제비' 등의 단어였다. 윤 씨는 "방송을 본 아들의 주눅든 표정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탈북자 만 명 시대, 지워야 할 '꽃제비'이미지"
  
  윤 씨의 걱정은 무리가 아니다. '구걸하며 중국 대륙을 떠도는 꽃제비', '노예처럼 팔려다니며 성매매를 강요당하는 여성' 등으로 굳어진 탈북자의 이미지가 한국에 뿌리내린 그들의 삶에 질곡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윤 씨는 "(아들에게) 차라리 가난을 물려주더라도 '탈북자 이미지'만큼은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윤 씨는 "요즘 들어 탈북자에 대한 이미지가 조금씩이나마 바뀌고 있다"며 밝은 표정으로 돌아섰다. 윤 씨가 소개한 사례는 개그맨 박성호 씨의 결혼식이다. 지난 17일 결혼한 박 씨가 주례를 부탁한 인물이 탈북자였던 것. 북한 김일성 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중앙TV에서 기자와 작가를 지낸 장해성(1996년 탈북, 현 국가안보통일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씨가 주례를 섰다.
  
  이제까지 탈북자가 대중 앞에 선 것은 주로 '헐벗고 굶주린 북한'의 참상을 증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증언자가 아닌 결혼을 축복하는 주례자로 대중 앞에 나서는 경우가 생긴 것이다. 탈북자들의 위상 변화를 알리는 청신호로 받아들일 만했다.
  
  사실 이런 변화는 당연한 일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자의 수가 이미 무시할 수 없는 규모에 달했기 때문이다. 통일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으로 국내 탈북자의 수가 9100명을 넘어섰다. '탈북자 만 명 시대'가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다.
 
 

  
  탈북자는 3등시민…"초라한 체격, 벽에 키를 재보던 그 아이는 지금?"
  
▲ 탈북자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은 영화 '국경의 남쪽'의 한 장면. ⓒ프레시안

  하지만 결혼식 주례를 선 장해성 씨의 경우만으로 국내 탈북자들의 처지에 대해 속단하는 것은 무리다. 대부분은 무관심과 냉대 속에 방치돼 있다. 탈북자 윤 씨는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이 1등 시민, 외국인 노동자는 2등 시민, 탈북자는 3등 시민"이라고 이야기했다. "북한만 아니면 다 천국"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한국에 왔지만 실제 삶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
  
  올해 탈북자들 사이에서 조용한 화제가 된 영화가 있다. 지난 5월 개봉한 영화 '국경의 남쪽'이 그것. 이 영화의 조감독 김철용 씨가 탈북자 출신이라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이 영화는 탈북자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 속의 주인공 선호(차승원 분)는 할아버지가 한국에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과 함께 북한을 떠난다. 하지만 선호 가족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차가운 냉대뿐이다. 무조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몸이 부서지도록 일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다. 탈북자들이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대목으로 꼽는 것은 선호가 교회에 나가 간증을 하고 돈을 받는 장면이다. 많은 탈북자들이 경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2003년 사고로 사망한 탈북 청소년 김철수(가명) 군도 이런 경험이 있다. 2001년 한국에 들어온 김 군은 롯데월드와 63빌딩이 무척 놀라왔다. 하지만 경탄은 잠시. 그가 살아 온 곳은 대체로 비슷하게 가난한 사회였다. 누구나 자존심이 강했다. 그런데 한국은 달랐다. 일부만 가난했고 그들은 종종 비굴해져야 했다. 김 군 역시 교회에 나가 북에서 못 먹고 못 입던 이야기, 살려주셔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되풀이해야 했다. 흰 봉투에 담긴 돈을 받을 때마다 비참해졌다.
  
  이런 김 군을 더욱 참담하게 만든 것은 학교였다. 한국의 교육청은 19살인 그를 초등학교 교실에 집어넣었다. 입국 직후 적응 교육을 받던 하나원에서 실시한 학력평가 결과가 초등학교 6학년 수준이라고 나왔기 때문. 학교생활은 끔찍했다. 아직 사춘기도 지나지 않은 같은 반 아이들이 김 군보다 더 키도 크고 몸집도 튼실했다.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학교 밖을 주로 떠돌았다. 학교에서 외톨이로 지내던 김 군을 받아준 것은 폭주족들이었다. 밤마다 오토바이를 몰고 밖으로 나가던 김 군은 2003년 1월 벽에 오토바이를 들이 받고 죽었다. 경찰은 "자살 같은 사고"라고 이야기했다. 김 군의 방에서는 한국에서의 외로운 생활에 대한 불만을 담은 낙서가 가득한 공책이 나왔다.
  
  그리고 벽에는 키를 재는 눈금이 그려져 있었다. 김 군의 이야기를 기자에게 전한 탈북자 최 모 씨는 "김 군이 6살이나 어린 아이들보다 작은 자신의 키를 재보며 무슨 생각을 했겠느냐"고 되물었다.
 
 

  
  대학에 입학은 했지만….
  
  탈북자 최 씨는 현재 고려대에 재학 중이다. 최 씨는 한국에 들어와서 중학교에 편입했다. 김 군과 달리 최 씨는 한국의 학교생활에 큰 무리 없이 적응했다. 북한에서도 우등생이었던 까닭에 한국 학교에서의 수업도 그다지 어렵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최 씨는 학창 시절 내내 탈북자라는 사실이 드러날까봐 전전긍긍하며 지냈다. 중학교 3학년 때 친구들이 "최 씨의 아버지가 북한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왔다더라"며 수군거리는 것을 들은 뒤부터였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어쩔 수 없었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아주 친한 친구가 아니면 탈북자라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릴 때 태국에서 자랐다고만 이야기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북한을 떠난 뒤 동남아를 거쳐서 한국에 들어왔으니까.
  
  대학에서는 탈북자라는 이야기를 하기가 더 조심스럽다. 탈북자 특례입학으로 남들보다 편하게 명문대학에 입학했다는 시선이 불편해서다. '탈북자'라고 하면 괜히 정치적인 논쟁을 걸어올지 모른다는 부담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최 씨는 길에서 탈북자를 마주치면 모르는 척 지나간다. 최 씨는 "'척'보면 서로가 탈북자라는 것을 알아본다. 하지만 인사를 하는 경우는 없다"고 이야기했다.
  
▲ 한국에 들어오는데 성공한 탈북자들의 기념 촬영. 어떤 삶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프레시안

  하지만 큰 무리 없이 대학 생활을 하고 있는 최 씨는 탈북자 출신 대학생 중 드문 경우에 속한다. 지난해 대학에 입학한 탈북자는 총 430명이다. 그러나 이중 상당수가 한 해 만에 휴학하거나 자퇴했다. 실제로 2000년 이후 연세대에 입학한 43명 중 2명이 자퇴, 15명이 제적됐다. 휴학생도 10명에 이르러 재학생은 16명에 불과하다. 한국외대는 2002년 이후 입학한 52명 중 26명, 서강대는 2003년 이후 입학한 21명 중 8명이 제적, 자퇴, 휴학 등으로 학교를 떠났다.
  
  이들이 학교를 떠난 일차적인 원인은 경제적 어려움이다. 탈북자 특별전형으로 입학할 경우 정부가 등록금은 전액 면제된다. 하지만 그 밖의 생활비와 책값을 감당하는 것은 쉽지 않다. 대부분 기초생활수급대상자인 그들은 매달 30만 원 가량의 생활비를 지원받지만 아파트 임대비 10~15만 원과 관리비 5만 원을 내고 나면 식비도 부족하다. 게다가 한국 현실에 어둡고 아는 사람도 드물어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수업을 따라가는 것 역시 버겁기만 하다. 최 씨는 "한국 학생들의 상식 중 대부분이 탈북자들에게는 상식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했다. 문화적 배경과 교육 과정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또 북한 식량난이 본격화된 1990년대 중반 이후의 심각한 수업 결손 때문이기도 하다. 탈북자들은 한국의 특수목적고교와 유사한 제1고등중학교나 외국어학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교에서 최근 10여 년 동안 수업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게다가 북한을 떠나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수년간 유랑하는 과정에서의 학업 공백도 심각하다. 이런 수업 결손과 학업 공백에서 빚어진 학력 격차는 계속 탈북자들의 발목을 잡는다.
  
  한국 대학생들의 자유분방한 문화를 접하며 겪는 문화적 충격을 극복하는 것도 부담이다. 2002년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해 올해 졸업한 김철용 씨는 "여대생들이 남학생 앞에서 담배를 피는 모습이 처음에는 큰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강의시간에 떠들거나 자유롭게 질문을 하는 모습 역시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어려움을 뚫고 간신히 졸업을 해도 문제는 남는다. 심각한 취업난이 그것. 대학생 최 씨는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학생들도 취직을 못 하는데…"라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차라리 과거처럼 시험 성적만으로 취직이 되면 편할 것 같다"고 말했다. 취업에서 자기소개서와 면접이 중요해진 게 영 불안하다는 것이다. 당장 자기소개서에 탈북자라는 말을 써야 할지부터가 고민이다.
 
 

  
  정착금 뜯어가는 브로커는 줄었지만…여전히 비좁은 취업문
  
  물론 이런 취업난은 대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들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호소하는 문제다. 공식적으로는 실업이 없는 사회에서 지내다 실업에 대한 불안이 일상화된 사회에 적응하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정부는 현재 탈북자를 채용한 기업에 대해 급여의 50%까지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탈북자를 고용하는 기업은 드물다. 지난 12일 통일부와 노동부 공동 주최로 첫 탈북자 취업박람회가 열렸다. 하지만 당시 참가기업은 40곳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모두 중소기업. 대부분 탈북자를 채용할 경우 받게 될 정부 지원금 때문에 참가했다.
  
  그래서 탈북자들은 소규모 장사나 허드렛일을 하며 생계를 꾸리는 경우가 많다. 2005년 1월부터 통일부는 새터민(탈북자) 정책을 '보호' 중심에서 '자립·자활' 중심의 정착지원으로 바꿨다. 자립의지를 갖춘 탈북자들에게 장기직업훈련, 자격증 취득, 장기취업 등을 지원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탈북자 수의 급증에 따른 재정 부담에서 비롯된 측면이 더 크다. 과거에는 1인당 최고 3600만 원의 자립지원금이 지급됐다. 하지만 2005년 이후 최고 1540만 원으로 줄었다.
  
  자립지원금 외에 탈북자들은 입국 당시 1인 2000만 원, 2인 2900만 원, 3인 3300만 원, 4인 3700만 원씩의 기본 정착금을 받는다. 그리고 매달 10~15만 원의 임대료를 내는 영구임대아파트를 배정받는다. 탈북자들은 서울 노원구, 강서구, 양천구 등에 사는 경우가 많다. 이들 지역에 영구임대아파트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본 정착금 역시 2005년 이후 1000만 원 가량 줄었다. 과거에는 정착금을 노린 사기가 흔했다. 정착금을 분할 지급하지 않고 일괄 지급했기 때문이다. 탈북 브로커의 갈취도 심각했다. 2004년 조사에 따르면 탈북자의 83%가 브로커를 통해 들어왔고, 1인당 평균 400만 원 가량을 브로커에게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브로커가 임대아파트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탈북자가 나타나면 폭력을 휘두르며 돈을 뜯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흔히 '기획 탈북'이라 불린 과정이 대개 이런 식이었다. 브로커가 정착금의 일부를 받기로 하고 탈북을 돕는 것. 하지만 정착금 지원방식이 바뀌면서 이런 경우는 많이 줄었다.
 
 

  
  마음을 터놓을 상대가 없다…그나마 기댈 곳은 교회뿐
  
  탈북자들이 겪는 또 다른 어려움은 외로움이다. 2005년 〈시사저널〉조사에 따르면 탈북자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남한 사람은 평균 한 명을 조금 넘는 정도다. (2003년 이전 입국자는 1.38명, 2004년 이후 입국자는 1.24명, 2005년 입국자는 1.42명)
  
  그렇다고 해서 탈북자들 간의 유대가 끈끈한 것도 아니다. 취재 중 만난 탈북자들은 대부분 다른 탈북자와 어울리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이야기했다. "탈북자 중 북한의 정보원이 섞여 있다"는 소문 때문이다. 혹시나 자신의 근황이 북한에 알려질 경우 남아 있는 가족과 친인척들이 불이익을 겪을까 두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예 탈북자 신분을 숨기고 조선족 행세를 하는 경우도 많다.
  
▲ 차를 타고 이동하는 탈북자 가족. 탈북자에 대한 보도가 종종 그들의 인권을 배려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프레시안

  탈북자 천모 씨는 "사기 한번 당하고, 회사 한번 사직하고, 사업하다 한번 부도맞고, 사고 한번 당하고, 연인과 한번 헤어지고, 알코올 중독에 한번 빠지는" 여섯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남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다는 농담이 탈북자 사회에서 회자된다고 전했다. 사기, 실연, 알코올 중독 등의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심한 외로움과 인간관계의 단절이다. 평소 외롭게 지낸 탓에 한번 가까워지면 무턱대고 정을 주다 상처를 입는다는 것.
  
  그나마 탈북자들에게 정신적 위안을 주는 것은 종교다. 돈을 받기 위해 교회에서 마음에 없는 신앙 간증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상당수는 진심으로 신앙 생활을 한다. 연세대 의대 전우택 교수(정신의학)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조사 대상 탈북자의 64%가 매주 1회 이상의 종교 활동에 참가했다. 다른 연구에 따르면 탈북자의 종교 활동 참여율이 80%를 넘게 나타난 경우도 있다.
  
  전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탈북자들이 가장 많이 믿는 종교는 개신교다. 한국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개신교 단체의 도움을 받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개신교가 다른 종교에 비해 탈북자에 대한 선교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탈북자들의 종교 활동에 대한 참가율은 한국 체류 기간에 비례해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 교수의 조사에 응한 탈북자 149명 가운데 개신교인의 수는 2001년 98명에서 2005년 91명으로 줄었다.
  
  이는 많은 탈북자들에게 종교가 신앙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것을 돕는 민간기구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시민사회의 노력이 절실…"통일시대를 준비해 나가는 과정"
  
  이런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시민사회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탈북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종교인들의 박애심에 기댄 봉사 활동이나 정부의 정책적 지원만으로 해결하기 힘든 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 대해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정병호 교수는 지난 5월 출간한 〈웰컴 투 코리아, 북조선 사람들의 남한살이〉라는 책에서 "서로 다른 근대화를 경험한 데서 오는 문화적 간극"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탈북자 문제를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이런 문화적 간극을 좁히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 정치권이 아닌 시민사회의 노력을 강조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탈북자 문제를 다룬 인류학, 심리학, 교육학, 의학, 경제학 분야의 논문을 모아 펴낸 이 책에서 정 교수는 "이런 사회문화적 차이와 역사적 배경을 무시한 채 탈북자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반공주의가 시들해진 이후 미국이 탈북자 인권 문제를 정치적 이슈로 만들었다. 그러나 동정심에 호소할 따름인 미국의 접근 방식은 자국 문화 중심주의에 따른 일방적인 주장을 낳기 쉬우며 그것은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충북대 심리학과 정진경 교수 등 다른 저자들의 생각도 비슷하다. 이들은 "북한이탈 주민의 남한 생활은 앞으로 남북한 사람들이 섞여 살게 되었을 때 서로 얼마나 잘 적응할 수 있을지를 예측하게 해주는 리트머스 시험지이자, 소규모 예비실험"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탈북자들이 겪는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는 것은 통일 이후 남북한 사람들이 평화롭게 섞여 살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라는 것이다.
   
 
  성현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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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장이모의 <황후화>, 중국 흥행 역사 다시쓰나
배급 독점 계약 스캔들 불구, 10년만에 중국 최고 흥행 기록 경신 기대
김희정

중국 최대 규모의 블록버스터 <황후화>(감독 장이모)가 중국 내 박스오피스 기록을 하나둘씩 갈아치우고 있다. 전국 동시 개봉된 지난 12월14일 인민폐 1500만위안(약 18억원)의 성적으로 개봉 당일 최고 기록을 세우더니, 개봉 첫 주말에 극장수익 9600만위안(약 150억원)을 올리면서 지금까지 상영 첫 주말 최고 성적이었던 <무극>의 8200만위안을 가뿐히 넘어섰다. 또 지금까지 중국의 자국영화 중 최고 흥행성적으로 기록되고 있는 <영웅>의 총극장수입인 2.5억위안의 기록을 깨는 것도 시간문제다. 개봉 4일 만에 1억위안 가까운 수익을 낸데다가, 크리스마스 대목과 연말연시라는 황금시기를 앞두고 있어 국내 총박스오피스가 최소 3억위안은 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좀더 뒷심을 받는다면 10여년 전 <타이타닉>이 세운 3.5억위안이라는 중국 영화시장 최고 흥행수익 기록도 경신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게다가 언론에 보도된 대로 지금까지 해외에 판매한 판권수익만 8억위안, 중국과 홍콩, 대만 등지의 극장수익 등까지 모두 합산하면 <황후화>의 예상수익은 10억위안(약 1200억원)을 훨씬 웃돌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중국 자국영화가 올린 것 중 최고 수익이다.

 

그러나 이런 기록 경신의 배경에 깔린 독점적인 극장 점유로 또 다른 쟁론이 일고 있다. <상성>(傷城, 감독 유위강·맥도휘)의 배급사인 ‘바오리보나’는 <황후화> 배급사쪽이 한달간 디지털영화관에서 <황후화> 이외의 다른 영화를 상영하지 못하도록 하는 부당한 독점계약을 디지털 원선(극장망)과 맺었다고 폭로하면서 광전총국의 관여까지 의심하는 수위 높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황후화> 제작·배급사인 ‘신화면’은 관례상 맺은 협정일 뿐 부당독점협정은 없다며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하고 나섰고, 바오리보나쪽은 증거를 대겠다며 이런 불공평한 상영 조건에 대해 광전총국에 조정 신청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대작의 경우 필름 상영과 디지털 상영을 동시에 추진하는 중국 배급시장에서 총극장수입의 15% 가까이 차지하는 디지털원선 확보는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에 이번 분쟁은 향후 중국 대작들간에 일어날 치열한 극장 확보 싸움의 전초전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스캔들에 불구하고 이전의 다른 블록버스터들과 달리 <황후화>에 대한 입소문이 비교적 좋게 나고 있어서 관객의 극장 행렬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22일, 29일에 각각 전국 상영에 들어가는 양조위, 금성무 주연의 <상성>과 애니메이션 <레이싱스트라이프스>, 할리우드 제작진들이 중국에서 올 로케이션한 중·미 합작영화 <면사> 등이 연말 황금시기의 극장가에서 각축전을 벌이며 <황후화>의 뒷심을 흔들지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글) 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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