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서재 방문이다. 오늘은 하루 종일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9호선, 4호선, 3호선, 6호선, 공항철도. 중간 중간 택시와 버스도 탔다. 지하철 노선도만 봐도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노선도에서 잠시 시선을 옮겨 앞에 서 계신 어르신의 신문을 엿본다. 아이돌 가수와 같은 문 대통령의 인기에 언론도 영합하고 있단다. '문비어천가'를 들먹이면서 비판 없는 찬양은 결국 정권에 독이 될 것이란 충고를 하려는 모양이다.
불순하기 짝이 없게도 나는 탄핵당한 전직 대통령을 떠올렸다. 그의 집권 시절, 나는 그의 행보가 연예인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었다. 완벽하게 연출된 방법으로만 자신을 드러내는 인기 많은 연예인. 어떻게 해야 팬들이 환호하는 지를 잘 아는 노련한 연예인. 한때는 그의 팬클럽에나 어울릴 법한 이름을 내세운 정당이 만들어지기도 했던 연예인, 아니 정치인.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신문 우측 상단으로 눈길을 준다. 역시나 조선일보다. 아, 그의 집권 시절에도 조선일보가 이런 사설을 냈더라면 하는 생각은 정녕 쓸 데 없는 생각인가.
조선일보는 믿을 것이다. 이것이 정녕 정론의 자세라고, 이것이 정녕 국익을 위한 충고라고. 선조도 믿었을 것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마자 명나라로 도망치는 것이 조선을 살리는 길이라고. 명성황후도 믿었을 것이다. 임오군란의 와중에 청을 끌어들인 것은 사익이 아닌 대의를 위한 것이라고. 이승만도 믿었을 것이다. 한강 다리를 끊고 도망치는 것만이 적화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그도 자신의 아버지가 일으킨 쿠데타를 가리켜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했었다.
제기랄, 문제는 다들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선택이 최악일 수 있다고 의심하지 않고, 최선이라고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도 그러하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도 그러할 것이다. 나는 정말 양비론이 싫지만, 나의 상념은 양비론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다시 한 번, 제기랄. 선택에는 쉬운 길과 옳은 길이 있다고 했다. 나는 비겁하다. 굳이 어려운 길을 가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쉬운 길을 가면서도 그것이 옳은 길이라고 우기지는 않으려 한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으니, 이것만은 지키자고 생각해낸 것이 고작 이 정도다. 역시 나는 겁쟁이에 위선자다.
충무로역에서 3호선으로 갈아탄다. 나는 일곱 번째 칸에 탔다. 토요일 오후의 북적이는 지하철에 난 데 없이 자전거가 등장했다. 한 노인이 자전거를 끌고 앞으로 움직인다. 통로에 사람이 서있으면 경적을 울린다. 나는 그 소리가 참으로 뻔뻔하게 느껴진다. 사람이 어찌 이리 무례할 수가 있는가. 경적을 몇 차례 울린 끝에 여섯 번째 칸으로 이동한다. 보아하니 앞 칸 사정이 만만치 않다. 노인은 개의치 않고 제일 앞 칸까지 자전거를 끌고 갈 기세다. 타고 가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노인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나는 문득 노무현을 떠올렸다. 자전거 때문만은 아니었다.
과연 지하철은 서민의 발이기만 한가.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노선으로는 모자라는지, 다들 신규 노선을 원한다. 정치인도 유권자도, 집 주인도 세입자도, 자동차가 있어도 또 없어도. 물론 나도 원한다. 의정부와 용인과 김해의 경전철은 내가 알 바가 아니다. 지하철 역명에 담긴 부동산의 경제학은 또 어떤가? 신목동역과 신중동역이라는 이름에 담긴 욕망은 과연 그 지역 주민들만의 욕망일 뿐인가.
지하철은 욕망의 덩어리다. 노무현은 그 욕망의 덩어리 안으로 자전거 하나에 몸을 싣고 홀연히 들어섰다. 그리고 그 과정과 결말은 이미 우리가 지켜본 바다. 이제 9년의 세월이 흘러 노무현의 친구가 다시 자전거를 탔다. 지하철 안 사람들은 전보다 훨씬 힘들고 지쳤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람들의 욕망마저 지친 것은 아니란 것을. 그것은 어쩌면 더 강렬해졌다는 것을. 이 욕망의 덩어리 안을 비집고 헤쳐 나가려면 때로는 뻔뻔하고, 때로는 무례할 필요도 있다는 것을. 그 모습을 보며 9년 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많은 지지자들이 떨어져 나갈 것임을.
지난 가을부터 올봄까지, 많은 사람들은 각자가 응원하는 자전거가 지하철 맨 앞 칸까지 무사히 도착하기를 소망했었다. 이제 겨우 노무현의 친구가 탄 자전거가 출발했을 뿐이다.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헌법을 지키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아는 자전거 주인이 지하철 운전석에 앉기를. 영화를 보지 않아 설국열차의 반전은 잘 모르지만, 현실 속의 반전은 잘 알고 있다. 바로 자전거를 응원하는 사람과 지하철 안을 욕망으로 가득 채운 사람이 동일 인물이라는 것. 어쩌면 여기에서 노무현의 실패와 비극이 기인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부디 노무현의 친구는 실패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