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부모
카트린 게겐 지음, 이주영 옮김 / 창비교육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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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부모님의 품에서 떨어져 나오던 날을 기억한다이웃 도시기숙사가 있던 학교로 진학하며 짐 바리바리 싸 들고 아빠 차에 올라 1시간을 달렸다기숙사 방과 침대를 배정받고 엄마와 함께 짐을 풀었다부모님을 배웅하고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았다그 자리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기숙사로 돌아갔다엄마가 부려 주신 이불을 덮어쓰고 열일곱의 슬픈 나는 한참을 숨죽이고 울었다잡히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움켜쥐려 애쓰며 도달해야 할 나의 스무 살은 한없이 멀어 보였다.

 

곁에 아무도 없다는 망연함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안갯속에 홀로 서 있는 듯한 막연함부모라는 목적지를 향해 출발한 지금의 시간들나의 열일곱 해에 맞닥뜨렸던 그 시절의 기억을 뒤적이고 헤집는다나의 한마디 말과 나의 사소한 행동 하나가 어떤 파급으로 나의 아이에게 가 닿게 되는 것일까성숙한 나의 부주의가 미성숙한 나의 아이에게 무슨 흔적을 남기게 될까내가 건네는 말들과 내가 보이는 행동들이 내 아이가 가야 할 길에 정녕 얼마만큼의 모습으로 가 닿고 있는 것일까.

 

처음 부모이 책은불확실함이 지피는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전전긍긍하며 보내고 있는 새내기 엄마와 아빠에게 위로와 안정을 건넨다내가 걷고 있는 이 길에 따뜻한 이정표가 되어 때로는 후회를 그리고 때로는 확신을 선사한다지난날의 나와 부딪치고 부대끼며 좀 더 나은 부모로의 길을 다짐하게 한다망연함과 막연함이라는 안갯속을 걷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엄마와 아빠에게감히 한 치 앞을 내디딜 수 있게 하는 책처음으로 부모가 되어 가고 있는 우리이제 조금은 서로를 다독여 주어도 좋을 듯하다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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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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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초반, 젊었던 작가를 만난 적 있다. 국문과 학생도 아니면서 국문인의 밤행사에 기웃하며 먼발치에서 작가의 작은 목소리와 조우했다. 눌변에 가까운 말솜씨로 부끄럼 많은 소녀처럼 수줍게 자신의 작품을 이야기하던 작가. 글로만 만나며 머릿속에 그려오던 모습과 동떨어진 모습에 적잖이 당황하면서도 나는 달변가가 아닌 작가라 다행스러워했던 것 같다. 말을 버거워하는 천성이니 진심과 진력을 다해 글로 술술 풀어내겠구나. 그날로부터 조금 더 내 안으로 들어온 작가.

 

아버지에게 갔었어. 담담하지만 쉼 없는 호흡으로 아버지의 시간 그리고 아버지와의 시간을 한껏 펼쳐 놓는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품을 떠나왔어도 저렇게 많은 시간을 아버지와 공유하며 추억을 한 겹 두 겹 쌓아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가 자꾸만 부러워졌다. 그랬기에 는 아버지가 영영 떠나시기 전 일생의 마지막 과업이라는 의무감으로 아버지의 이야기를 한 땀 한 땀 기록해 나갔으리라. 아버지를 생각하는 이 세상의 누구에게나 아버지와의 시간이 너무 짧았어.’라는 아쉬움 되뇌이게 하며 깊고 넓은 그리움의 물꼬를 트는 시간. 아버지에게 갔었어.

 

작가의 손끝에서 그려지는 J시의 풍경 그리고 그 외곽에 위치한 의 고향을 머릿속으로 따라가다 보면 익숙한 광경과 친근한 분위기에 이끌려 나 또한 S시의 변방 중의 변방에 폭하니 안겨 있는 나의 고향을 떠올리게 되었다. 시골을 고향으로 둔 사람들에게는 내가 거닐던 과거를 소환해 또 한 번의 그리움에 젖게 하는, 잊혀진 듯했던 시간을 선물처럼 쥐어 준다. ‘의 뒤를 졸졸 따라가며 듣기 시작했던 이야기는 어느 시점에선가 와 함께 나란히 걷고 있는 나를, 종국에는 를 몇 발자국 뒤에 두고 아버지를 향해 서둘러 걸어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세상의 묵묵한 아버지들에게 성큼 다가서는 시간. 덕분에 나도 요 며칠, 이젠 꿈에도 좀체 찾아오시지 않을 만큼 저 멀리에 계신 아버지에게 한참을 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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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속밖 2021-04-21 08: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경숙 작가가 왔었어?
현역 작가 중에 챙겨 읽는 작가가 있다니 부럽구나.
나는 오래 전 안도현, 유하, 김영하, 성석제, 김연수, 김훈 등등 안녕했는데.
유하는 현역 아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