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의 민주화 선언
마광수 지음 / 책읽는귀족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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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수의 글은 문학가 다운 글이라고 매번 느낀다. 철학자 같은 준엄하고 맹렬한 자기 주장이 없기 때문이다.

철학적 메세지가 부족하다기 보다 철학적 메세지를 포장하는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것이라고 본다.

 

쉽게 말하자면 논리를 끌어다 쓰지 않는다는점이다. 덕분에 읽고 이해하기는 쉽다. 덤덤히 자기 이야기를

소설적 허구를 쓰듯이 솔직히 써내려가서 읽는 이를 당황하게 만든다.

 

갈수록 에세이나 저서는 늘어나는데 조금 식상하는감도 없지않아 있다.

매번 같은주장 비슷한 주장이 들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새차를 타면 아니 새로운 모델을 타면 그 차가 기존의 차와 뭐가 다른지 어떤점이 좋은지

단순히 새차를 좋아하는 심리에 기대기 보다 구형같은 기존의 방식을 뛰어 넘는 설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럴려면 자기 주장에 대한 철학성이 있어야한다. 야한여자가 좋다 처럼 주역적 설명도 집어 넣고

아니 기존의 비슷한 인용구라도 찾아서 동조자를 만드는 방법이라도 보여줘야 신선도가 느껴질것 같다.

 

그냥 새롭게 그를 알고자하고 처음 접하는 이에게 충격적으로 느껴질 내용이 아닌가 생각된다.

무조건 긍정하고 읽으면 주장은 옳지만 삶의 고정적 패턴에서 그런 긍정이 질서를 무너지게 할까 스스로 자율을 가하게 된다.

 

그렇다고 주장을 반박하는것은 결코 아니다. 성해방 같은것! 위선을 벗어보는것! 얼마나 좋은가

홀라당이란 말 한마디로 느껴지는 자유!

그렇게 하지 못하고 남의 문학적 표현과 주장에 그리고 그 위안에 매달려 자유를 얻는  현실이 안타깝고 상상으로만 존재해야 함이 싫을뿐이다. 그저 자고나면 꽃은 피고 새는운다는 말에 동조하며 늙어가는 범부들에겐 짜증스런 푸념만 생긴다.

 

대개 문학을 좋아하는 이는 음악도 좋아하는데 음악적 취미가 없는지 음악 애기는 한번도 읽어본적이 없다.

그리 오랫동안 주장하던 그 만의 강의가 얼마나 주변에서 실제적으로 나타났는지도 은근 알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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