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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 - 셰익스피어 & 컴퍼니
제레미 머서 지음, 조동섭 옮김 / 시공사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BE NOT INHOSPITABLE TO STRANGERS
LEST THEY BE ANGERS IN DISGUISE”
서점에 들어서면 이런 문구를 만날 수 있는 곳. 파리의 부셰리가 37. 정문에서 보면 시테 섬이 보이고, 노트르담 대성당과 시립 병원, 경찰서의 당당한 벽돌을 응시할 수 있는 곳. 그곳은 파리의 고서점으로 미국인 조지 휘트먼에 의해 만들어진 영미 문학 전문 서점이다.
작가 제레미 머서는 뜻하지 않는 사고로 인해 도피하듯 파리로 떠난다. 자신이 이룬 모든 것, 사랑하는 가족 모두를 뒤로한 채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떠난 것이다. 그렇게 도착한 파리에서 가진 것 없는 그가 할 수 있었던 건 없었다. 비가 오던 어느 오후 가진 돈도 떨어진 그에게 우연히 들른 파리의 고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사막의 오아시스였다. 그렇게 그는 조지가 낸 숙제 -이 숙제는 이곳을 머물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제출해야 하는 것이다-를 제출함과 동시에 그곳의 일원으로 생활하게 된다.
서점은 그리 청결하지 못하다. 많은 사람이 먹고 자고 떠나는 곳이라 사람의 손때가 곳곳에 묻어 있다. 청결하지 못한 화장실에서 편하게 씻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렇게 불편한 생활이지만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위해 이곳에 머문다.
하루의 한 권의 책 읽기, 하루 한 시간 서점을 위해 일하기. 이곳에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이다. 그들은 공통된 관심사를 가지고 다양한 민족과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좁다면 좁은 서점 안에서 서로 융합되어 살아간다.
조지는 괴짜, 낭만가, 고집불통 영감, 개구쟁이 뭐 이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이다. 실비아 비치의 서점의 맥을 이어받아 만든 이곳은 어떠한 체계도 없이 조지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졌다. 3층 가정집, 2층 도서관, 1층 서점. 누구나 책을 읽고 갈 수 있도록 되어 있기에 책을 사는 사람보다 읽으러 오는 사람이 더 많은 곳이기도 하다. 어떻게 비용을 감당하며 운영되는지 알 수 없지만 경제감각까지 없는 조지의 서점 운영은 그럭저럭 잘 굴러가고 있다.
하지만 나이 아흔을 바라보는 조지에게 서점 운영은 이제 버겁다. 호텔을 지어 돈을 벌고자 하는 개발업자들의 농간과 서점을 지키고자 하는 조지의 고집. 이 대립 속에 조지의 딸에 의해 구사일생으로 서점을 살아남는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조지다. 괴짜스럽고, 변덕스러운 영감으로 비춰지기도 하지만 자신의 꿈이자 희망인 서점을 지키고자 하는 그의 노력과 열정이 고스란히 책 속에 담겨 있다. 더불어 무엇보다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조지의 마음 씀씀이 또한 큰 매력이 아닐까 생각된다.
현재는 이 서점을 조지의 딸인 실비아가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 조지는 살아 있으며 어딘가 서점 한 귀퉁이에서 청소해라, 책 읽으라며 서점의 모인 이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을지 모른다.
자신의 삶에서 떠나온 저자가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 곳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이곳을 스치고 지나간 많은 이들이 서점을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건 그곳에서 보낸 시간을 기억하고 사랑하기 때문일는지 모른다. 난 이 책을 통해 파리의 고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만을 만난 건 아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 자신의 꿈과 열정을 위해 모인 사람들의 희망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