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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한 보통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미야자카가의 사람이라면 반드시 키져야 할 규칙들]
1. 가족 중 세 명 이상이 함께 버스나 지하철을 탈때면 제각각 빈자리에 앉아서 마치 서로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인 척 하는 게임을 한다.
2. 해마다 12월 첫째 토요일은 크리스마스트리 사는 날로 정해져 있다. 아무도 산타크로스의 존재를 믿지 않기 때문에 가족들끼리 나누는 선물에는 보내는 사람을 적는다.
3. 가족 중 누군가의 입학식 때면 사진관에 가서 가족사진을 찍는다. 단, 이때 유치원 입학은 포함되지 않는다.
4. 아침에는 시리얼과 계란, 삶은 채소에 홍차를 먹는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이 메뉴를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5. 식구들 생일이면 엄마가 언제나 생일 맞은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드지만 1년에 딱 한 번 엄마 생일에는 항상 외식을 한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소란한 보통날'의 주인공인 미야자카가의 사람들의 일상은 보통 우리네 사람들의 일상과 비슷하지만 다른 모습을 보인다. 소소한 이야기 속에 담긴 그들만의 룰을 따라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귀엽기까지 하다.
회사원인 아빠, FM 같은 삶을 살아간다. 간단한 아침 식사로 회사에 출근하고 퇴근전 아내에게 전화해 자신의 출발을 알리고, 지하철 역에서 내려 다시 한번 전화로 자신의 위치를 알리며 퇴근하는 남자. 답답하리 만큼 일상의 변화가 없는 사람.
가정주부인 엄마, 낭만적인 삶을 꿈꾼다. 남편이 퇴근전 전화를 하면 얼굴의 화장을 지우고 저녁 준비를 한다. 저녁식탁에는 계절에 맞는 데코레에션을 가미한다. 나무가지나 나무잎으로...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로 남기위해 궁금해도 많이 물어보지 않는다. 그들이 얘기해줄 때까지 기다려주는.. 조금 현실과 동떨어진 인물이라는 느낌마져든다.
결혼 한 첫째 딸 소요, 결혼 1년 반만에 이혼을 결정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가 왜 이혼하는 가족 모두 잘 모르지만 그들은 항상 그녀 편이다. 그리고 임신.
직장인 둘째 딸 시마코, 정신적 장애?? 글쎄다 남들과 조금 다른... 이 집 사람들도 그리 평범하지 않지만 가장 평범하지 않은 이다. 종잡을 수 없는 인물 그러나 마음 따뜻한 그녀. 회사생활 4년 동안 한번도 매달 말 월급을 타면 식구들 선물을 산다. 그리 실용적이지 않지만 가족에게 웃음을 선사하려는 듯 재미나 선물을 하는 그녀. 조금 독특한 사랑을 하는 그녀다.
셋째 딸 고토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집에서 빈둥대며 논다. 그러고 싶어 진학을 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화자. 남자 친구에게 이제 신체적 접촉이 필요하다고 먼저 말하는 그녀.
막내아들 리쓰, 중학생 졸업반 피규어를 조립하여 팔다가 졸업을 일주일 앞두고 정학을 받는다. 결국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한다.
평범한 듯 보이는 이들의 일상이 결코 평범하지 않게 느껴지는 건 미야자카가의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룰 때문은 아닐런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결코 서로를 비난하거나 탓하지 않는다. 그들은 현실적이지 않을 만큼 서로를 감싸고 편들어준다. 그렇게 평생을 살아왔기에 그것이 옳은 것이라 생각한다. 화목해보이지만 현실적이지 않은 듯한 그들의 삶이 궁금하다면... 에쿠니 가오리의 섬세한 글솜씨를 즐기며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소소한 타인의 일상을 엿보는 즐거움이 있는 시간.